한국 대사관의 잘못이 캄보디아 사태 키웠다(시사인)

한국 대사관의 잘못이 캄보디아 사태 키웠다

 
2014년에 접어들자마자 캄보디아에서 군인들이 의류 노동자들의 시위를 쇠파이프와 중국산 총으로 진압해 사망자 5명, 부상자 수십명이 발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노동자들은 최저임금(현재 월 80달러)을 95달러로 인상하겠다는 정부의 결정에 항의하는 중이었다(당초 의류 노동자들의 요구는 50% 인상이었다).

노동자들은 일터로 돌아갔다. 그러나 현장 분위기는 여전히 삼엄하다. 100곳 이상의 기업이 캄보디아 의류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주 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은 1월15일 페이스북에 올린 공지에서 “한국 기업들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일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시위대에 가해진 폭력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았다.

한국 대사관의 말 바꾸기

단지 자국 기업의 이익을 지키려 했을 뿐이며, 이 점에서는 다른 나라 정부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태를 지켜본 사람들이 분노하는 지점은 명확하다. 캄보디아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이 나라 정부가 시위대에 가혹한 폭력을 행사할 위험은 매우 컸다. 그런데도 한국 대사관은 자국 기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캄보디아 정부 측에 과도한 로비를 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캄보디아 군이 시위를 진압한 지 사흘 뒤(1월5일), 한국 대사관은 페이스북에 공지사항을 게시했다. 현재 삭제된 이 게시물에 따르면, 한국 대사관은 군대와 ‘국가대테러위원장’에게 보호를 요청했다(“총리에게 일일보고를 하는 국가대테러위원장과 접촉하여 현 상황이 외국인 투자자에게 미치는 깊은 우려를 전달하였습니다” “특히 수경사령부에 우리 업체와 동반 방문하여 실상을 전달하였으며…”). 그리고 이런 조치를 한 덕분에 “주재국 정부 당국이 금번 상황을 심각히 고려하고 신속히 대처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생각한다”라는 것이었다.

현재 캄보디아에서는 시위가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1월12일에는 한국 주재 캄보디아인들이 서울시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이번 폭력 사태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캄보디아 의류 노동자들을 “이윤 극대화를 위해 착취하는” 한국 기업들을 사법처리하라고 요구했다.

지금까지의 전개 과정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한국 대사관이 페이스북 공지에서 캄보디아의 무소불위 기관인 국가대테러위원회 수장에게 “깊은 우려를 전달했다”라고 밝힌 것이다. 캄보디아 전문가들에 따르면, 국가대테러위원회는 지난 30년 동안 사실상 독재자 훈센의 사설 정보기관으로 활동해왔다. 더욱이 이 기관에는 노동 분쟁에 개입할 법률적 권한도 없다. 국가대테러위원회를 관장하는 사람은 훈센 총리다. 또한 훈센 총리의 아들인 훈마넷 장군이 미군으로부터 훈련받은 특수부대의 지휘권을 갖고 있다.

그런데 1월15일 주 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은 당초(1월5일)의 입장을 바꾼다. 이날 페이스북에 다시 올린 공지문에 따르면, 한국 대사관 측은 단지 연말 행사에서 국가대테러위원회 위원을 만났을 뿐이다. 그러므로 국가대테러위원회에 공식으로 보호 요청을 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연말 행사에 초청된 캄보디아 고위 인사 중의 한 분이 여러 개 직함(대테러위원회 상임위원,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반부패청장)을 보유하고 있는데, 만찬을 계기로 이 인사를 포함한 참석자들에게 한국 기업들의 심각한 우려를 전달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부탁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그리 납득할 만한 해명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 문제와 관련해 저명한 서남아시아 전문가인 칼 타이어 교수(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 대학)는, 한국 공무원들이 “소름끼칠 정도의 판단력 결여를 보여줬다”라고 말했다. “캄보디아 의류산업에 투자한 한국 기업들을 보호하고 파업을 중단시키기 위해 개입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개입 방법이 매우 비정상적이다. 한국 대사관은 민주주의 국가를 대표하는 기관인 만큼 (캄보디아 노동자들의) 시민권과 정치적 권리, 인권 등에 정당한 존중을 보여줘야 했다”라는 것이다.
 

“경찰에 보호 요청했어야”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의류 노동자 진압에 동원된 특수부대는 미국·오스트레일리아·한국의 지원으로 2000년대 중반 창설되었다. 미국이 특수부대 창설을 지원한 이유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캄보디아 서남부의 이슬람계 소수민족인 참족을 포섭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타이어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목적은 캄보디아에서 북한의 활동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0여 년 전 폭탄테러 미수 사건 이후, 미국 국무부 역시 캄보디아에는 테러 조직의 활동 기미가 없는 것으로 본다. 캄보디아 정부가 반정부 인사나 승려, 토지분쟁 관련 시위대 등에게 테러리스트라는 명칭을 붙이며 장기 복역을 선고하고 있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에서 한국 대사관이 캄보디아의 법률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개입해야 했다고 말한다. 국제인권감시기구의 아시아 부국장인 필 로버트슨은 “한국 정부는 캄보디아의 법과 질서를 유지할 합법적 책임을 지닌 경찰에게 보호를 요청해야 했다”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이번 캄보디아 파업이 국가대테러위원회의 개입이 필요한 ‘테러 문제’로 간주될 만한 적절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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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8 14:08 2014/01/28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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