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임금의 ‘비극’ 잇따르는 까닭(시사인)

저임금의 ‘비극’ 잇따르는 까닭

 
캄보디아와 방글라데시 두 나라에서 거의 동시에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 1월3일 캄보디아 프놈펜의 카나디아 공단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시위하던 의류 노동자 5명이 사망했다. 1월9일 방글라데시 남부의 항구도시 치타공의 한국 수출가공공단에서는 스무 살 여성 노동자 한명이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그 패턴은 비슷하다. 아시아 개도국들이 저임금이라는 사실상 유일한 비교우위를 앞세워 해외자본을 끌어들였다. 그러나 물가마저 불안한 이 나라들에서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저항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고, 이에 대한 개도국 정치 시스템 특유의 권위주의적 대응이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이어진 것이다.

캄보디아 의류 노동자들의 파업과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항의 시위 역시 최저임금을 둘러싸고 벌어진 것이다.

1월9일 방글라데시 노동자 5000여 명은 “한국의 영원무역이 수당을 축소했다”라며 대규모 항의 시위를 벌였다. 영원무역은 4개국에 생산기지, 9개국에 해외 사무소를 둔 아웃도어 제품 수출 전문기업이다. 시위가 벌어진 1월9일은 최근 인상된 최저임금 기준이 처음으로 노동자들의 수령액에 반영되는 날이었다. 그러나 영원무역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이 올랐는데 어떻게 수당은 더 줄어들었나”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이들은 통근수당이 줄고 식대 공제액(월급에서 식대로 빼는 금액)이 늘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영원무역 경영진은 노동자들의 오해였다고 해명했다. 영원무역은 사태 직후 “방글라데시 당국의 최저임금 인상을 임금 체계에 반영하는 과정에서 일부 수당을 기본급으로 돌렸는데 이를 두고 오해가 생겼다. 수당은 줄었지만 전체 월급은 오히려 이전보다 많다”라고 반박했다.


의류 산업은 아니지만 같은 날(1월9일) 베트남에서도 한국 기업이 진출한 현장에서 수천명이 시위를 벌였다. 베트남 북부 타이응우옌성 삼성전자 제2공장 신축 현장에서 노동자와 보안요원들이 충돌해 양쪽을 합쳐 10여 명이 다친 것이다. 일부 노동자들은 컨테이너와 오토바이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시공사는 삼성물산이다. 삼성물산 홍보팀 관계자는 “베트남에서 있었던 일이라 현장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순 없다. 지각을 한 노동자가 출입증과 헬멧 등 보호장구 없이 일터로 들어가려다 보안요원에게 저지를 당했던 것 같다. 한국도 그렇지만 베트남 같은 나라는 하루 쉬게 되면 생계가 더욱 절박할 거다”라고 사건의 배경을 설명했다. 삼성물산 관계자와 베트남 현지 언론 보도를 종합해보면, 어떻게든 일터로 들어가려던 노동자가 보안요원과 승강이를 벌였던 것이 사태의 발단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노동자 수천명이 한꺼번에 폭발한 이유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베트남 현지 언론은 이번 사태 전에도 삼성전자 공장 신축 공사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평소 쌓인 불만이 많았다고 전한다. 1월12일 현지 신문 <탕니엔 뉴스(Thanh Nien News)>는 “노동자들은 종종 도시락을 지참하곤 했다. 구내식당이 없는 데다 길거리에서 식사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보안요원들이 도시락을 못 갖고 들어가게 하는 바람에 싸움이 일었다”라고 보도했다. 공사 현장 근처에서 음료수를 팔던 응우옌반뚜안 씨는 <베트남 익스프레스(VnExpress)>와의 인터뷰에서 “보안요원들이 평상시에도 노동자들을 함부로 대했다”라고 증언했다.

높은 물가상승률과 ‘생산 피라미드’가 문제

캄보디아와 방글라데시에서 의류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인상 요구는 갑자기 터져나온 것이 아니다. 얼핏 이 나라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은 꾸준히 급등해온 것처럼 보인다. 방글라데시만 해도 지난해 12월부터 의류업체 노동자의 월 최저임금이 약 38달러(약 4만원)에서 약 68달러(약 7만2000원)로 인상됐다. 무려 77%나 인상된 것이다. 하지만 물가상승률이 변수다. 최근 5년 사이 방글라데시 물가상승률은 37.2%, 캄보디아는 12.1%를 기록했다. 참고로 한국의 2014년 물가상승률은 약 2%대로 전망된다.

이런 분규의 근본적 원인인 개도국 저임금은 꽤 오래전부터 국제적 문제가 되어왔다. 유엔 같은 국제기구는 물론 미국의 민주당 정부도 꽤 관심을 가졌던 사안이다. 국제적 가이드라인도 있다. 지난 1월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민주당 전순옥 의원 주최로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효과적 이행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공익법센터 어필의 김종철 변호사는 “해외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그 나라가 정한 비현실적 최저임금을 주면서 법을 다 지켰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OECD 가이드라인을 보면 노동자와 그 가족이 기본적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적정 임금을 주도록 돼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은 강제로 이행해야 하는 사안이 아니다. OECD 부국들의 기업이 아시아 개도국으로 진출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저임금이다. 높은 임금을 줘야 한다면 그 나라에서 자본을 빼버리면 그만이다.

좀 더 거시적으로 보면, 아시아 개도국의 저임금은 전 지구적으로 조밀하게 짜인 ‘글로벌 생산 피라미드’의 결과물이다. 이 생산 피라미드의 최정점에는 월마트·시어스·나이키 같은 글로벌 소매업체들이 있다. 글로벌 소매업체들이 하는 일은, 상품을 기획(디자인)하고 이를 제조하는 데 필요한 여러 업무를 생산 피라미드 하부에 있는 여러 나라에 배분하는 것이다(아웃소싱). 완성품에는 글로벌 소매업체의 브랜드가 붙어 전 세계로 판매된다. 또한 이런 피라미드의 중간에 있는 한국 같은 나라의 의류업체는 글로벌 소매업체의 하청 주문을 이행하기 위해 캄보디아나 방글라데시 같은 개도국에 투자해서 공장을 세운다. 이 공장에는 그 나라의 저임금 노동자들이 고용되어 ‘자르고 깁고 붙이는’ 저부가가치 단순 작업을 수행한다. 만약 개도국의 임금이 오르는 바람에 피라미드 중간쯤의 한국 기업이 글로벌 소매업체의 ‘하청 가격’을 맞추지 못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최정점의 소매업체는 한국 기업에 압박을 가할 것이고, 한국 기업은 해당 개도국에 대한 투자를 다른 개도국으로 옮기려 할 것이다. 해외 투자가 빠져버린 개도국은 엄청난 경제적 충격을 감당해야 한다.

지금 같은 전 지구적인 생산 피라미드 네트워크가 유지되는 한 아시아 개도국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은 크게 개선되기 어렵다. 그렇다고 개도국들이 단기간에 ‘글로벌 생산 피라미드’의 윗 단계로 올라가 수출 실적과 소득(임금)을 개선할 수도 없다. 캄보디아와 방글라데시의 비극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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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8 14:13 2014/01/28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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