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하트, 정동적 노동

마이클 하트, 정동적 노동

 

-정동적 노동은 그 자체로 직접적으로 공동체들과 집단적 구체성들을 구성하는 것이다.

 

탈근대화

 

-근대화 과정이 종료되었고 오늘날 세계경제가 정보경제로 나아가는 탈근대화 과정을 경험하고 있다는 주장은 (지구의 가장 지배적인 지역에서조차도) 공업생산은 폐기처분되어질 것이라거나 중요한 역할을 그만둘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정보혁명은 제조업 공정을 재정의하고 다시 활성화하면서 공업을 변형시킬 것이다. “제조업을 서비스로 간주하라.” 종속된 나라들에게 근대화의 붕괴는 산업화가 더 이상 경제의 향상과 경쟁에서의 열쇠로 간주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세계의 위계제에서 중간위치를 점하기 위한 경쟁은 대부분 산업화가 아니라 생산의 정보화를 통해 벌어진다. 그리고 정보화 이전에 근대화를 반드시 통과할 필요는 없다.

 

비물질노동

 

-정보, 통신, 지식 그리고 정동은 생산과정의 기반이 되는 역할을 하게 된다. 포드적 모델에서 도요타적 모델로의 공장노동의 변화. 도요타주의는 생산과 소비 사이의 포드주의적 소통구조를 역전하는 것에 기초를 둔다. 소통과 정보가 새로운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된다. 하버마스의 도구적 행위/소통적 행위 구분, 아렌트의 노동/작업/행위 구분이 파열된다. 그러나 이는 빈약한 소통 개념으로 시장 정보의 단순한 전파일 뿐이다.

-서비스 부문들은 생산적 소통에 관한 더 내용 있는 모델을 보여준다. 점증하는 컴퓨터 사용은 노동관행들과 관계들을 재정의하는 데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 일반적인 사회적 지식이 더욱 직접적인 생산력이 될수록 우리는 점점 더 컴퓨터처럼 생각하게 되고 소통기술의 상호작용적 모델은 우리의 노동활동에서 더욱더 중심적이게 된다. 상호작용적이고 인공두뇌적인 기계들은 우리의 몸과 정심 속에 통합되는 새로운 보철이 되고 우리의 몸과 정신 자체를 재정의하는 하나의 렌즈가 된다. 그러나 컴퓨터라는 모델은 서비스의 생산에 포함된 소통적이고 비물질적인 노동의 일면만을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빗물질 노동의 다른 측면은 인간적 접촉과 상호작용이라는 정동적 노동이다. 정동적 노동은 인간적 상호작용과 소통의 계기들 속에 심어진 서비스 산업 전체에 걸쳐 일정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 노동은 비록 몸과 관련되고 정동적이지만, 그것의 생산물들을 손으로 만질 수 없다. 정동적 노동이 생산하는 것은 사회적 네트워크들, 공동체의 형태들, 삶능력(bio-power)이다. 이 경우 소통은 빈약해진 것이 아니라 생산이 인간 상호작용의 복합성을 포섭할 정도로 더 풍부해진 것이다. 물론 이는 자본에 이해 전적으로 지배되고 자본 내부에 있는 인간관계이다.

-새로운 것은 정동적 비물질노동이 자본을 현재 직접적으로 생산하는 정도이며, 이러한 노동이 경제의 광범위한 부문들을 통해 일반화된 정도이다. 정동적 노동은 현대의 정보경제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가진 지배적인 위치를 점했다. 오늘날의 지배적인 경제형태인 인공두뇌학과 정동의 결합에 의해 정의되는 생산을 고려해야 한다.

-비물질 노동의 영역 내부에는 분명히 많은 분할들이 있다.(국제적, 성적, 인종적 분업 등) 세 가지 유형 ①산업생산과정 그 자체를 변형하는 방식으로 정보화되고 마찬가지 방식으로 소통기술을 통합해 온 산업생산에 포함. ②분석적이고 상징적인 직무들의 비물질 노동. ③정동들의 생산과 조작을 포함하며 대인접촉과 접근을 필요.

 

삶능력(bio-power)

 

-정동적 노동의 네트워크들에서 창조되어지는 것은 삶의 형식(form-of-life)이다. 삶권력에 대한 푸코적 견해는 통치권의 특권처럼 상황을 위에서부터 설정하는 것일 뿐이다. 반면에 삶정치적(biopolitical) 생산에 관여하는 노동의 관점으로부터 상황을 볼 때, 우리는 아래로부터 삶능력을 이해하기 시작할 수 있다.

-삶정치적 생산을 하는 노동은 성별화된 노동을 강하게 띠고 나타난다. 자본주의 경제발전의 수단으로 설정되어왔던 녹색혁명과 기타 과학기술적 계획들은 실제로 자연 환경의 황폐화와 여성을 종속시키는 새로운 메커니즘을 동시에 초래했다. 여성과 자연은 공히 지배의 대상이지만 협력적이 관계 속에서 삶을 생산하고 재생산하기 위해 함께 일한다고 에코페미니스트들은 주장한다. 다른 미국의 페미니스트들 또한 쌩산과 재생산에서 여성 노동의 주된 역할을 분석해왔다. 보육노동에 포함되는 돌봄 노동은 삶정치적 생산을 분석하기 위한 매우 풍부한 지형임이 증명되었다. 여기서 삶정치적 생산은 무엇보다도 정동들의 생산과 재생산에서 삶을 창조하는 노동을 말한다.

-이러한 관점의 위험 ①여성과 자연의 동일시가 성차를 당연하고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다. ②보육노동에 대한 찬양은 오이디푸스적 종속과 주체화가 일어나는 가족적 구조들과 성적분업 모두를 강화시키는 데 쉽게 복무할 수도 있다.

-한편에서는 정동적 노동 즉 삶의 생산과 재생산이 자본 축적과 가부장적 지배의 필수적인 토대로서 견고하게 뿌리내렸다. 다른 한편 정동, 주체성 그리고 삶의 형태를 생산하는 것 그 자체는 아마도 자기가치화의 회로와 해방의 거대한 잠재력을 창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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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08 18:49 2014/02/08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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