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해외 진출해 하는 일이…"비정규직 양산"(프레시안)

한국 기업들, 해외 진출해 하는 일이…"비정규직 양산"
[토론회] 해외진출 한국기업의 인권침해 상황 실태조사 결과 발표회
기사입력 2014.02.14 18:56:57 | 최종수정 2014.02.14 18:56:57 | 최하얀 기자 | hychoi@pressian.com
 
 
과도한 기업 규제와 높은 인건비 및 노무 비용, 적은 지하자원 등 기업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해외로 떠난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해외로 나간 이들 기업이 어떻게 경영을 하는지, 그들에게 종속된 노동자들이나 인근 지역 주민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는 좀처럼 알 수가 없다. 
 
최근 캄보디아 의류 노동자 파업 유혈 진압 사태는 그래서 슬프게도 기회였다. 현행 80달러의 최저임금을 160달러로 인상해달라고 요구하다 많은 노동자들이 죽고 다치고 구속됐다. 그리고 이 불상사의 한 원인으로 한국 의류 기업들이 지목됐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말들이 나돌았다. 
 
이런 가운데 14일,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서 '해외 진출 한국기업의 인권침해 실태조사 결과 발표 및 토론회'가 열렸다. '공익법센터 어필'이 지난해 10월 작성한 인권위 연구용역 보고서를 토대로다. 연구에 참여한 9명의 연구원은 지난해 하반기 필리핀, 미얀마, 우즈베키스탄을 직접 방문해 관계자들을 면담하고 자료를 수집했다. 이들이 정리한 세 개 국가에서 발생한 한국 기업에 의한 각종 인권 침해 사례를 소개한다. (☞ 보고서 다운 받기)
 
"수빅 조선소, 6개월짜리 하청 노동자 돌려쓰고 노조 결성 방해"
 
한국 기업들이 필리핀에 직접 투자를 시작한 건 196년대부터다. 이후 1990년대에는 삼성전자, 삼성전기, 한국전력 등 대기업 투자도 본격화되었다. 특히 2006년 한진중공업이 수빅에 대규모 투자를 시작함으로써 수천만 달러 수준에 머물던 투자 금액은 최근 많게는 4억 달러 규모로 급격히 증가했다. 
 
공익인권법재단의 황필규 변호사와 김진 변호사, 좋은기업센터 유정 팀장은 지난해 8월 열흘간 필리핀 내 수빅과 가비테, 마닐라, 일로일로 등 지역을 방문 조사했다. 
 
경제특구지역인 수빅에서 이들이 발견한 것은 비정규직과 노조 활동 방해였다. 2만 명 이상의 조선소 노동자들 대부분은 간접 고용 노동자였다. 필리핀 노동법에 따라 6개월 견습 기간을 거치면 정규직으로 간주해야 하지만, 간접 고용 노동자인 탓에 이들을 그런 기회를 누릴 수 없었다. 6개월이 지나면 일하던 하청회사에서 해고된 후 다른 하청회사에 재고용됐다. 
 
조선소 건설이 시작되고 1~2년 후인 2007~2008년 현지 노동자들은 노조 설립을 시도했다. 그러다 필리핀 노동부는 '직접 채용한 직원이 없어 노조 설립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한국 회사의 의견을 받아들여 이를 반려했다. 한국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기업들의 간접고용을 이용한 책임 및 대화 회피 방식이다. 
 
"2008년 이 한국 회사에서 근무하다 알게 된 많은 문제 때문에 노조를 결성하기로 한 후, 설립 신고를 했으나 반려되었다. 2011년 4월 항의시위를 조직했더니 회사에서는 나와 동료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렸고 1달간 정직 처분을 내렸다. 복직 후 하루가 지났을 때 조사실로 불려가서 하루 동안 노조 조직한 것에 대해 말하라면 조사를 받았다. 한국인 매니저는 왜 해고당했는데 다시 왔느냐고 물었다." 
- 이 회사에서 3년간 일한 후 2011년 해고된 B씨 (보고서에서 발췌)
 
한편, 연구진은 문제가 된 한국 기업의 하청회사 임원과 인사 책임자와도 면담했다. 면담에서 하청업체 한국인 직원들은 불만은 제기한 노동자들의 단체는 불법 단체라고 일축했다. 원청 측은 노조 결성을 방해한 적이 없고 노조가 생긴다면 반대할 이유도 없다고 해명했다고 전했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통제, 오래 있으면 월급에서 공제"
 
이상수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김동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사무차장은 미얀마를 찾았다. 최근 미얀마는 한국 기업들에 매력적인 투자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안먀 정부 개혁 조치로 외국인 투자 관련 법 제도가 개선되고 풍부한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이미 약 50개 한국 기업이 진출해 있으며, 대부분은 의류 봉제업 업체들이다. 앞서 나 사무차장은 재작년 미얀마 현지조사를 통해 한국 가발업체 H사가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을 상대로 사업을 철수하겠다고 협박하고 실제로 공장을 폐쇄했다 다시 여는 등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방문 조사팀은 미얀마 노동 시민단체의 도움을 얻어 한국업체 다섯 곳에서 일하는 미얀마 노동자 8명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조사팀에 응한 한 노동자는 3일간 아침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일을 하고 휴식 차원에서 다음 날 아침 7시부터 밤 8시까지 일을 하는 방식을 2주째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노동자는 조사팀과 면담하게 된 일요일이 3개월 만에 맞이한 첫 휴일이라고 했다. 
 
장시간 노동을 시키면서 휴게 시간도 제대로 보장하지 않았다. 조사팀에 따르면, 대부분 점심시간 45분이 유일한 휴식 시간이었다. 이에 더해 휴게 시간에만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게 하고 화장실에 빈번하게 출입하거나 오래 있으면 제재를 받는 경우도 확인됐다.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12시간 동안 20분을 쉰다. 근무시간 중 화장실을 가려면 관리자한테 카드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화장실에 오래 있으면 관리자가 월급에서 공제한다. 700명이 일하는 공장에 화장실이 20개 정도 있다. 그래서 휴게 시간 안에 화장실을 다녀오기도 쉽지 않다. 휴식 시간이 지나면 관리자가 벨을 누르기 때문에 다시 돌아와야 한다." 
- 한국 업체 E사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S 씨. (보고서에서 발췌)  
 
"아동강제노동으로 생산된 목화로 돈 버는 한국 공기업, 제재받아야"
 
우즈베키스탄에선 아동 강제 노동 문제가 끊이질 않는다.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한 이 나라에선 대통령 카리모프가 20년 넘게 집권하고 있다. 수백 명의 시위자를 학살(2005년)하는 등 공포 정치를 이어가고 있다. 
 
워낙 인권 문제가 심각하다 보니 지난 십 년 간 많은 유럽 기업들이 우즈베키스탄에서 투자를 철수해 왔다. 인권 침해 사건에 연루될 것을 우려해서다. 그러나 한국은 그 투자를 외려 유지거나 늘려왔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의 2011년~2012년 자료에 따르면, 우즈베키스탄에 진출한 한국 기업 수는 약 70개다. 러시아를 제외한 독립국가연합(CIS) 국가 중 이 나라에 가장 많은 한국 기업이 진출해 있다.
 
진출 기업 중 상당수는 우즈베키스탄 정부로부터 사들인 면화로 면사를 제조해 한국에 들여오거나 외국에 수출을 한다. 이곳에 진출한 한국 공기업은 목화 린터를 구입해 면펄프를 만들고 그것을 한국에 들여와 지폐 등을 만드는 재료로 쓰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한 김종철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와 좋은기업센터 김민철 연구원 등 4명이 초점을 맞춘 것은 '한국 기업의 공급망 안에서 아동 강제 노동이 실제 일어나는가', '일어난다면 한국 기업의 연루 정도는 어느 정도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지난해 9월 24일부터 약 열흘간 우즈베키스탄에 머물며 타쉬켄트와 양기바자의 학교와 목화밭 등을 방문했다.   
 
방문 조사 후, 연구진은 2013년 목화 수확기에도 아동강제노동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고 확인했다. 또 최근 우즈베키스탄 아동강제노동이 세계적으로 알려지며 국제 인권단체들의 감시가 강화되자 역으로 성인강제노동이 강화되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다. 교사들이 강제로 목화 채취를 하러 가야 했기 때문에 아동의 학습권도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었다고도 했다. 
 
김 변호사는 "면 펄프를 생산하는 한국 공기업은 우즈베키스탄 목화밭에서 아동강제노동은 없다며 그 이유로 우즈베키스탄 법령이 아동강제노동을 금하고 있다는 점을 든다"며 "그러나 이런 법들은 거의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아 외려 인권 침해를 숨기는 알리바이 장식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즈베키스탄에서 강제 노동으로 생산된 목화를 구입해 면 펄프를 제조하는 한국 기업은 그 인권 침해에 연루된 것"이라며 "공급망 내에서의 심각한 인권 침해를 알면서도 그로부터 이익을 얻는 행위를 제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코트라 해외투자지원단 "한국 기업, 잘 하고 있다"
 
한편, 이날 토론자로 참여한 코트라 해외투자지원단 박상협 단장은 "여기(토론회)에선 한국 기업 인권이 논쟁거리가 됐지만, 현지에선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인권을 지키고 노동자들을 잘 대우하고 있다고 말하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며 "우리(코트라)도 그렇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권침해 사례를 발굴해 나쁜 이미지를 키우기보다, 잘하는 기업을 발굴해 포상하는 방식의 긍정적 방법이 더 좋다고 본다"며 "코트라는 해외에서 한국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키우기 위해 이러한 방법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박 단장은 또 캄보디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과 관련해 "부당해고, 초과 근무에 대한 불만으로 분쟁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으나, 대체로 다국적 기업의 노동 기준을 잘 지키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최하얀 기자 (hycho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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