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盧패권 작동법' 보여준 48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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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고, 밀어붙이고, 어르기…
정우성,원선우기자
입력 : 2016.03.23 03:00
총선 D-21]
더민주 비례명단 '전문가 중심→운동권 중심' 바뀌기까지
20일 김종인 비례명단 발표하자 "도덕성·정체성 문제" 공격 시작
親盧·운동권이 다수인 중앙委는 투표 통해 비례순번 뒤집기 성공
뜻 이루자 입장바꿔 일제히 '후퇴'
조국 "그분에게 맡기는 게 예의", 문성근 "金의 2번을 받아들여야"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가 주도했던 비례대표 명단은 22일 새벽 중앙위를 거치며 친(親)문재인 및 운동권 중심 명단으로 탈바꿈했다. 김종인 대표의 사퇴 소동을 초래한 '비례대표 파동'에 대해 더민주 비주류들은 "친노 패권이 어떻게 작동하는가 하는 메커니즘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친노·운동권 그룹은 어디엔가 지휘부가 있는 것처럼 이틀 동안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김종인, 새누리 시절 샀던 빨간무늬 넥타이 매고 -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가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구기동 자택에서 국회로 가기 위해 승용차에 탑승하고 있다(왼쪽 사진). 새누리당 상징색인 빨간색이 들어간 넥타이를 맸다. 김 대표가 새누리당 활동 시절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 사퇴를 만류하기 위해 이날 경남 양산에서 급거 상경해 김 대표 자택을 찾은 문재인 전 대표가 면담을 마친 뒤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조인원 기자</FIGCAPTION></FIGURE>
◇일단 흔들기
지난 20일 김종인 비대위가 비례대표 명단을 발표하자 인터넷과 진보 매체를 중심으로 "정체성과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는 포격이 시작됐다. 비례대표 1번이었던 박경미 홍익대 교수에 대해선 논문 표절, 6번 최운열 서강대 교수는 박근혜 대선 캠프 경력이 문제가 됐다.
당선 안정권이었던 김숙희 서울시 의사회장은 노무현 대통령을 '자살로 자신의 과오를 묻어버린 대통령'이라고 쓴 4년 전 칼럼이 문제가 됐다. 김종인 대표가 자신을 비례대표 2번에 배치한 것에 대해서도, 정청래 의원 등 강경파들은 "좌시하지 않겠다"며 반발했다. 김 대표가 "후순위로 놓는 것이 오히려 꼼수"라고 해명했지만 SNS 등을 통한 파상 공격은 이어졌다. 김 대표가 임명했던 비대위원들조차 김 대표에게 등을 돌렸다. 공천 과정에서 침묵했던 주류 의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공격에 가세했다.
◇일사불란·인해전술
21일 밤에 열린 더민주 중앙위 참석자들은 "자기들이 뭔데 마음대로 하겠다는 거냐"며 웅성거렸다. 홍창선 공천위원장이 회의장에 들어가자 일부 당원은 "비례대표 후보를 3개 군으로 나눈 기준이 뭡니까. 몸무게로 나눈 겁니까"라며 야유를 보냈다.
한 참석 여성은 "우리가 평생 당에서 저것(비례)만 바라보고 있는데 위에서 마구 꽂은 것들이 자리를 다 차지한다"고도 했다. 중앙위는 현역 의원, 지역위원장 등 487명으로 구성돼 있고, 친노와 운동권 출신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의 투표로 비례대표 순번이 정해진다. 중앙위원들은 투표를 통해 농민운동가 김현권씨, 여성운동가 권미혁씨 등 당선권 밖 운동권 인사들을 상위 순번으로 바꿔놓았다.
투표라는 형식을 통해 다수파의 위력과 일사불란함을 보여줬다. 김현권 비례대표 후보의 아내이자 문재인 전 대표 때 야당 혁신위원으로 활동했던 임미애씨는 이날 페이스북에 "중앙위원들이 기적을 만들었어요"라는 글을 올렸다. "중앙위 안 죽었네요. 뒤집기 한판승" 같은 댓글이 붙었다.
◇달래기·바람잡기
그러나 김 대표가 강하게 반발하고 문재인 전 대표가 김 대표 다독거리기에 나서자 조 교수는 21일 오후 "김 대표의 비례 순위는 그분에게 맡기는 게 예의"라고 적었다.
21일 오전 트위터에 "후안무치도 유분수"라고 비난하는 글을 썼던 문성근 전 민주통합당(더민주 전신) 대표 권한대행도 오후에는 "김 대표의 비례 2번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우리에겐 승리가 목표"라는 글을 올렸다.
비대위는 친노·운동권 반발을 업고 김종인 대표 비례 순번을 14번까지 뒤로 밀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비대위 역시 이날 오후 들어 "순위는 김 대표가 정하면 된다"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었고, 그렇게 강경하던 당 중앙위원들도 이날 밤부터 김 대표 비례 순번은 문제 삼지 않기 시작했다.
그리고 22일 아침 문재인 전 대표는 공개적으로 "김 대표가 비례에 들어가는 것은 절대 노욕이 아니다"라고 했다. 비례대표 명단이 자신들 뜻대로 재구성되자 논문 표절(박경미 후보)이나 설악산 케이블카 추진(심기준 후보), 론스타 옹호(최운열 후보) 같은 비례대표 반대 목소리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조용해졌다.
비주류에선 "친노패권주의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했다. 한 당직자는 "비례대표 명단을 친문(親文)·친노(親盧) 인사로 채우라는 명령은 아마 없었을 것"이라며 "그러나 그런 드러나는 명령 없이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게 친노 패권의 힘"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주류 측 한 의원은 "민주화 운동 동지들끼리 당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암묵적 동의가 있었던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표는 이날 김 대표의 자택을 방문한 뒤 '친노 패권'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런 이야기는 이제 그만 좀 하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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