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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8/29
    이제사 얘기지만
    새물
  2. 2006/08/28
    예의없는 것들의 발생요인???(2)
    새물
  3. 2006/08/03
    펌)언니네이발관---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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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6/08/03
    엄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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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6/08/03
    사교육비가 어머니의 희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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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6/07/31
    간단 여행, 어린이집의 휴가
    새물
  7. 2006/07/29
    펌)미디어몹에 올라왔던 글
    새물
  8. 2006/07/29
    존경할 수 밖에 없는 사람?!
    새물
  9. 2006/07/22
    내 닉, 그 변천사(3)
    새물
  10. 2006/07/19
    전쟁과 혁명의 시대, 개인적인 스케치
    새물

이제사 얘기지만

나는 아직도 지난 서울시장 선거 때, 여성주의의 이름으로 강금실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의 납득할 만한 이유를 듣지 못했다. 물론 납득하지 못했던 것은 개인적인 사정이고 다른 이들은 납득했을 지도 모르겠지만.

 

 

단지 한나라당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지지하는 페미니스트도 보았고,

꽤 훌륭한 여성이기 때문에 지지한다던 페미니스트도 보았고,

하여간 이유는 다양했지만 내가 아는 '많은 여성주의자들'이 '여성주의의 이름'으로 강금실을 지지하는 걸 보았다.

 

그 때 나는 왜 박근혜는 안되고 강금실은 되고,,, 적어도 여성주의자로써 여기에 대한 의문이 생겨났었다.

 

 

나는 강금실이 꽤 매력적인 여성이란 걸 인정하지만(어떤 면으로 팬이기도 하다) 왜 그이에 대한 지지를 여성의 이름을 걸고 했어야 한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

 

 

열린우리당의 지지자로써 강금실을 선택해야 마땅했던 것 아닐까?

 

가끔 반한나라전선을 얘기하며 열린당과 민노당, 심지어는 사회당까지도 연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는데, 정말, 이 건 아니다 싶다.

 

오히려 열린당과 한나라당이 연합하는 것이야 말로 정치적인 포지션이 맞아 떨어지는 것 아닐까?

 

나는 열린당이 집권을 또 하건, 한나라당이 다시 정권을 잡건 내 삶이 달라질 아무런 이유도 없는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여성의 이름으로 강금실을 지지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생경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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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없는 것들의 발생요인???

내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4년제 in 서울이면 취직은 무난한 편이었다.
요즘은 지방대건 서울이건 의대, 약대 쪽이 무조건 경쟁이 심하지만 나 때만 해도 지방 쪽 치의예과는 커트라인이 낮은 편이었다.

"엄마, 나, **대 치의예과 갈래요"
"딸내미를 지방대 보내? 나, 그거 못한다. 아빠두 반대할 거야"
"서울에 있는 의예과는 내 점수로 못간단 말야"
"그러게 공부 열심히 하라구 했지!"

IMF가 터졌다. 내가 애 엄마가 되던 해였다.

내가 지원하려 했던 **대 치대를 졸업한 남자친구 철수(가명)는 드디더 빛을 보기 시작했다.

나는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하고 턱없이 낮은 보수를 받으며 학원강사 일을 계속하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청년실업이란 신조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지나친 경쟁에 노출됐다.




올 초부터 싸이코들의 등장이 시작됐다.
작년까지도,,, 사회생활하면서 그다지 크게 사람 스트레스 받은 기억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상한 사람들이 "나, 사실은, 여기 있었어"라고 아우성 치며 나타나는 것 같다.


며칠 전 아침 시사프로를 보는데 스토킹을 당하는 남자 얘기가 나오는 거다. 나는, 너무 놀라워, 입을 헤~ 벌리고 보았는데.

그 얘기는 또한 결혼한 남자친구를 협박하고 그 아내를 괴롭히는 괴이한 여성의 얘기이기도 했다. "**이는 아직도 저를 사랑해요. 저랑 이루어지지 못할 것 같아 마지못해 그 여자랑 결혼한 거구 억지루 살구 있는 거예요"<---'왜 상대남자를 스토킹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가해 여성의 답변, 헉스!

올 초에 나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근 몇 년만에 전화를 통해 나타나 '남자 좀 소개시켜달라'고 들들 볶아대는 어떤 여자애한테 근사한 남성을 소개시켜 주었는데,,, 계속 이 여자가 *&*&^$^(말로 다할 수 없는 도저히 글로 묘사가 안되는) 황당무계한 짓거릴 벌이더니 드뎌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 남자 연애하는 거 아세요? 그 남자가 연애하는 거는 나에 대한 반발 때문이예요. 나를 사랑하면서 다른 여자랑 사귀는 미친 놈, 나쁜 놈 *&~&$%"<---나는 띠옹, 띠옹~ 지가 싫다고 차버렸다고 하더니 도대체 그 남자가 누굴 사귀던 말던 무슨 상관???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 멍하다가 울 돌쇠한테 "애가 이상하다 싶긴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징그러 죽겠어. 나 ***(내가 소개시켜 준 남성)한테 쪽팔려 고개도 못들겠어. 이게 무슨 망신이야. 도대체 살다 살다 이게 몬 일이냐구~ !"

그러니 시사 프로그램의 스토킹 가해 여성의 답변을 듣는 도중, 잊고 있었던 그 싸이코 여자애의 목소리가 들릴 수 밖에. 내가 전화를 통해 들었던 말이랑 기자가 들은 답변은 거의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 같았다. 당근 악! 소리 절로 나왔다.



최근에는 싸이코 고객님의 등장.

왈왈왈~ 한참 전화기 속의 소음을 듣고 있다가 아예 수화기를 내려 놓는다. 왈왈왈 하는 소리가 잦아 든 것 같아 다시 수화기를 집어들고 "하고 싶으신 말씀이 모죠? 요점이 모냐구요?"
상대방은 뒤집어 진다. 또 다시 소음공해 시작. 나는 전화를 끊어 버린다. 실장도 그렇고 회사 쪽에서는 나를 두둔하는 척은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경고 먹을 각오해야 한다. 

회사에서, 이제까지 나는, 고객에 대해 참을성이 많은 직원으로 통해왔다. '어이구 성질같아서는 확~' 속으로 이러다가도 애들 얼굴 생각나서 참는 적이 간혹 있었구, 그러다 보면 구렁이 담 넘어가듯 지나치게 되고, 모, 그랬었다. 근데 올 들어서는 그 정도가 "살다보면 이런저런 인간 다 만나게 되는 거지" 중얼거리게 되는 수준을 뛰어넘는 악질들을 만나게 된다.

경쟁, 경쟁, 1등, 1등,,, 이 싸움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점점 늘어간다는 증거일까?

티비 시사프로에서도 부쩍 이런 사람들의 정신건강 부재, 그들로 부터 피해 받는 사람들의 고통을 다루는 일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서, 내가 사는 세상 자체가 미쳐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여기에 FTA라도 체결되면 양극화는 더 심해질 거구, 사람들은 극심한 생존경쟁에 밀려 더 사악해 질 것 같다.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 착해지려면,,, 이 무한경쟁시스템을 제거해야 한다.
개개인이 지들 심성 자체가 나빠서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자들이 몇 이나 될까?
다 사회가 만들어 낸 괴물들이다. 그러니 다시 사회 안에서 치유 받아야 한다.


자본주의적인 경쟁은 착한 사람 씨를 말리려 한다. 나는 착한 사람이 좋고 나도 착해지고 싶기 때문에, 나는,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에 반대한다.<---요즘 내가 절실하게 생각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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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언니네이발관---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지난 금요일 집에 들어가면서
갑자기 부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가
너무나 보고 싶어

뭐에 홀린사람처럼 비디오가게를 찾아 헤멨으나
테잎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내가 살지도 않는 동네까지 가서
어렵사리 빌려온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15년전쯤이었을까.. 소영이누나하고 대한극장에서 이 영화를
처음 봤을때 누나가 눈물 흘리는것을 보며 내가 했던 생각이라곤

영화가 왜 이렇게 어두울까..
트랄랄라는 저렇게 안예쁜데 왜 여주인공일까.. 등등
바보같은 생각들 뿐...

스무살의 나는 누나의 눈물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언젠가 크라잉게임을 보고 별로라고 게시판에
리뷰를 올렸다가 누군가가
"아직 크라잉게임을 이해할만한 나이가 아닌것 같다"고
반박해 발끈했던 기억..

이제 15년만에 부룩클린을 다시 보며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알것 같았다..


"난 일어나 도시의 거리를 걸을 것이다.
내 영혼이 사랑하는 그이를 찾아보리라..."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나는 뜬 눈으로 토요일아침을 맞이해야만 했다.


새 양복을 입고 서둘러 개포동으로 향했지만
30분 지각.

나는 끝내 어머니를 뵈지 못하고 아직도 나를 그 집
큰 사위로 알고 있는 전 처가의 어른들과 인사해야 하는
곤혹스러운 상황을 견딜 수 없어

서둘러 성당을 빠져 나왔다.


집에 왔을때 뜻밖에 소영이 누나가 와 있었고..

누나랑 뭔가 이야길 나누고 싶었지만
타이밍이 맞질 않아
나는 그냥 집을 나서야 했다.


"난 일어나 도시의 거리를 걸을 것이다.
내 영혼이 사랑하는 그이를 찾아보리라..."


사랑했던 내 영혼의 짝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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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집에 들어오는데 엄마가 작은 꽃다발을 들고 계셔

웬 꽃이냐고 여쭈니

"아버지 조직검사 받으신거 이상 없다고 결과 나왔어.
그래서 아버지 드릴려구 사왔다."

하시는거다.


아...


어쩌면 좋아. 울엄마 소녀감성..



봄 되면 어머니께 예쁜 화분 하나 사다 드려야 겠다.


 

-동생의 홈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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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비가 어머니의 희생으로?

사교육비가 어머니의 희생으로? | go left! 포스트 삭제 2006/08/03 19:09
http://blog.naver.com/rewom/140027097784

미 명문대(아이비리그 어디란다)에 진학하게 된 부산영재학교 출신의 소년이 요즘 뜨고 있단다.

하도 떠뜰썩 해서 함 봤다. 그리고 고개를 갸우뚱.

 

그 소년에겐 축하를 보내고 유감 없으나,,, 소년이 책도 내고 강연도 하고 다니나 본데,,,

 

강연내용 중, "저희 어머니는 IMF 이후, 집안 사정이 나빠지고 나서도, 제 (사)교육비를 우선으로 책정하여 살림을 하셨습니다. 식당에도 나가시고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일을 하셨는데 월 80만원의 수입으로 살아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제 (사)교육비를 우선 하셨습니다"

 

소년의 일상을 취재하던 리포터는 물론이고, 티비 속의 아나운서들, 패널들까지 어머니를 칭송하고 나섰다.

 

여기서 의문점 하나, 그 사람들은 어머니의 희생만 보이고 한국 사회의 기형적인 모습은 안 보이나?

 

 

 

내 어머니가 한식당을 경영하신다. 당근, 음식점 일, 엄청 고되다는 걸, 어깨 너머 알고 있다.

그래서 이 노동분야 쪽으로 이주노동자(특히 조선족 동포들)들이 대거 유입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고된 노동의 댓가가 80만원? 대한민국, 이상한 나라다.

 

그리고 80만원으로 4식구 살기는 거의 불가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교육비를 우선으로 살림하는 어머니가 장한 어머니가 되는 나라, 한국. 나는 이 나라, 한국이 자랑스럽지 않다.

 

 

 

 

1.고된 노동에는 그만큼의 댓가가 주어져야 한다.

 

2. 살림 비용 중, 사교육비를 최우선으로 하고 그 어머니의 희생을 칭송하는 사회는, 앞으로도 여러 부모들의 희생을 요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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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 여행, 어린이집의 휴가

지난 일요일 남한산성에 다녀왔다.

더운 날씨 탓으로 등산은 무리였지만, 아주 조금 산도 타고 산채정식도 먹고, 나름 재밌게 놀다 왔다.

 

역시 어른들은 아이들 돌보느라 피곤한 법.

집에 오자마자 돌쇠와 나는 골아 떨어졌는데 애들은 그 사이에도 쌩쌩하게 잘도 놀았나부다.

 

녀석들이 왁자지껄 떠들고 노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월요일, 어린이집 여름 휴가 첫날, 아이들만 두고 출근을 했다. 내 휴가는 담 주다. 에고고고===333

 

아침을 먹이고 점심을 챙겨주고 나왔지만 컴퓨터 가지고 계속 짜증을 부리는 아들놈때문에 엉덩이를 두어 대 때려준 것이 내내 찜짐했다.

 

수시로 전화를 했다.

 

"엄마, 사랑해~"

 

"엄마두 너희들 사랑해~"

.

.

.

 

퇴근할 때 싸장님과 마주쳤지만 걍 눈인사하고 바쁘게 나와 버렸다.

 

 

 

집에 와서 두 아이들의 열렬한 뽀뽀를 받고 나니 맘이 푹 놓였다.^^*

 

빨래를 돌리고 국을 끓이고 그 사이 애들 목욕 시키고 집안 정리하고,,, 그런데 여전히 집안은 너저분하다. T.T

 

 

 

이럴 때 국가에서 아이들을 안전하게 돌봐주는 기관이 있었으면 좋겠다.

일하는 동안 어찌나 불안하던지 안절부절.

 

사회주의가 별건가, 사회복지가 별건가,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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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미디어몹에 올라왔던 글

어제 밤 늦게 미디어몹에 블로그가 있는 분께서 전화를 주셨더군요.
여기저기 블로그마다 블라인드 처리가 시작됐다구요. 그리고 몇몇 분들, 난리가 났다고 하더군요. "네가 맞지? 너, 누구지?"하면서 서로 믿지 못해 '당신들끼리' 뒤엉켜 공황상태라구요.

며칠 접속 못하고 있다가 전화받고 어제 잠깐, 그리고 오늘 아침 대충 이 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제가 몹시 싫어하며 전혀 신뢰하지 않는 분께서 꾸준히 제 욕을 하고 계시더군요. 진영논리가 어쩌구 저쩌구,,, 저는 푸하하하 웃었습니다. 간만에 정말 배꼽 잡고 웃었답니다. 사람이 싫은데 거기 진영논리는 왜 들어갑니까? 누구 말대로 '나는 네가 싫다'는 말조차 제대로 할 자신이  없단말입니까,,, 아, 안타깝습니다. ^^



1. 제가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어떤 분이 저를 신뢰하지 않는 것은 제가 바라는 바입니다.
가령 제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유형이 악질마초(이에 대응하는 말은 차칸마초) 넘들인데 이런 사람에게 "당신은 정말 좋은 여성이야. 다른 페미니스트는 싫은데, 나같은 마초도, 당신같은 여성은 참 좋더군요오~"라는 말을 듣는다면 이건 정말 제가 들을 수 있는 최악의 욕이지요.

같은 맥락으로, 저는, 제가 인간적으로 믿을 수 없는 분의, 저에 대한 험악한 욕설을 칭찬으로 받아들입니다. 탱큐~

2. 포럼참석 중이라 빡센 일정보내다가 여기 다시 들어와 보니 자기 자신조차 믿지 못해 불안하신 분들이, 자신의 글에 달린 혹은 여기저기 달린 리플들에 thdud이가 익명으로 악플을 다네, 멀티네, 다중 아뒤를 가졌네 하고 꾸준히 마타도어하고 계신데, 이것도, 정말, 푸하하하~ 입니다.

제가 즐겨보는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이 떠오르더군요. 그 시간에 저랑 함께 토론장에 계셨던 여러 만장하신 분들과 맥주 마시며 낄낄거리던 분들에게 미디어몹 구경 좀 오라고 해야겠네여. 이거 이런 코미디 구경 또 다시 없을 거 같아요. 으흐흐흐

수사반장: 곽한구, 조사하면 다 나와. 그 악플, 멀티 아뒤로 네가 달았지!

곽한구: 아니, 제가 그 시간에 **대에서 포럼 참석중이었고 뒤풀이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어찌 악플을 답니까?

수사반장: 그러니깐~ 네가 대단한 놈이라는 거야!



3. 저는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 생각해요. 자기가 해보지 않은 짓거리를 가지고 불안해 하는 사람은 없다구요.

자신이 익명으로 악플을 달고 다닌 경험이 있는 사람, 다중 아이디를 지니고 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악플에 대한 공포를 고스란히 저에게 투사하는 몇몇 분들, 계속 그러고 사세요.
안말릴테니 젖은 채로 사시라구요. 저에게 저지른 못된 악행으로 인해 본인들 스스로 끊임없이 저를 버리지 못하고 괴로와 하는 것이, 당신들이 받는 제일 큰 고통(벌)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허공에다 대고 "나한테 관심 끊어조" 징징거리는 분, 대체 저에대한 관심은 언제 끊을 겁니까? 허긴 것두 안말려요. 불교에선 입으로 지은 죄가 가장 크다 하고 후생에 업보로 남는다 하는데 벌써 현생에서 벌을 받고 계신 듯 해서 기분 나쁘지 않아요.^^

도대체들 그런 짓거리들은 모하러 하고 다니고 그렇게들 불안에 떠는 건지, 쯔쯔.

"이 리플 thdud이가 단 거지? 난 네가 누군지 알아. 너는 다중 아뒤를 가졌을 거야"<---자신글에 달린 악플마다 이러고 있는 몇몇 분들, 정말 멋지세요. 세상에서 나를 욕할 수 있는 사람은 단 두명 뿐일 거라 생각하면 얼마나 맘이 편하겠어요. 그런데두 초조감을 감추지 못하는 건 왜 일까요? 두둘겨 팰 때는 재밌었죠? 그쵸? 역시 업보입니다. ^^


*이 글 블라인드 처리하면 탈퇴한 뒤에 다시 미몹에 들어와서 또 올릴겁니다. 미리 경고하는데 시끄러운 거 싫으시면 블로그알리님께서는 자중하세요. 저는 미몹에 손톱만큼의 애정도 없는 사람이라 당신들이 부당한 짓거리만 안하면 들어오라고 해도 안들어 올거거든요. 그러니 제가 다시 들어올 일 만들지 마세요. 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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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할 수 밖에 없는 사람?!

요즘 언니네에 들어가면 부러 찾아 읽고는 감탄을 하거나 키득키득거리거나 하는 단골자방이 하나 생겼다. 인기 짱!이다.

 

가령 '배신때린 남자에게 복수하는 법'을 일러준다면서 '말대가리 잘라서 그 남자 침대에 숨겨두기' '그 남자 집에 불지르기' 등등, 읽다보면 조심해야 될 남자 얘기인 것 같은데, 어찌나 유머러스한지 웃다가 배꼽 빠지는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ㅎ ㅎ

 

머, 오늘은 '남자를 존경하기는 어렵다'는 내용의 글을 읽었는데 문득 '존경'이라는 말에 삘이 꽂혔다.

 

 

내가 존경하는 사람,

 

일단 생활공동체를 꾸려 나가야 할 돌쇠.

 

친구들.

 

또 몇몇 사람들.

 

 

내가 처음 "나는 당신의 이러저러한 면을 존경한다"고 말한 사람은 친구였다. 그 이전에는 위인전기전집에 나오는 사람들을 주로 존경했었는데, 주변의 사람을 존경하게 될 줄이야. 행운이다.

 

**이는 혼자서 세상을 헤쳐나가는 것 보면 존경 안하고 싶어도 절로 존경이 우러난다.

 

대학 후배인 **이는 굳이 페미니스트가 아니어도 어떤 결혼이 여성주의적 선택인가를 온 몸으로 보여주었고,,, 남의 눈 의식하지 않고 사는 것 보면 역시 존경 스럽다.

 

돌쇠는 함께 하면서 여러모로 존경할 구석이 많다는 걸 수시로 느낀다. 친구랑 전화통화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단골 레파토리, "대한민국에 이런 남자 드믈어"<---요기엔 친구 남푠님도 들어간다.

 

 

 

또 인터넷으로 알게 된 사람들.

 

"미친년, 또라이페미년,,," 별별 소리 다 듣고서도 끝까지 자신이 남성이라고 밝히지 않은 모~님. 그 분이 부러 여자라고 한 적도 없었고 남자라고 한 적도 없었는데 워낙 여성친화적이라 당연히 여자라고 생각한 나도, 참.

 

두루두루 세상의 약자에게 시선을 주는 모~님. 나는 이 분이 그냥 똑똑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명민함 속에 드러나는 따뜻한 시선을 볼 때마다 감탄하고 존경한다.

 

유행지난 것이라도 자기만의 원칙을 지키려 하는 모습이 존경스러운 모~님.

 

너무 선량해서 글을 볼 때마다 그 사람의 미소가 먼저 떠오르는 모~님.

 

어후, 존경하는 사람이 왜 일케 많은 거야. 다 적을 수도 없는 지경이네. 그런 면으로 난 행복하다. 으흐흐흐 ^^*

 

 

 

결론, 생각해 보니 나는 존경할 수 없는 사람과 연애할 수 없고 친구할 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존경할 수 없는 사람과도 일시적 연대는 가능하다.<---요건 내가 아직도 민노당원인 점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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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닉, 그 변천사

전남편과 이혼하면서 '새물'이란 닉을 버렸다.

처음으로 인터넷에서 가져본 '새물'이란 이름은 정이 많이 들었지만 당시 사정으로 인해 '언니네의 자기만의 방'을 닫으면서 함께 닫아버렸다.

전남편의 전화만 받아도 공포때문에 가슴이 뛸 정도였는데 그 남자가 알고 있는 닉을 계속 사용할 수가 없었다.   

 

이후, 이홍이란 닉을 사용했다. 부모님의 성을 함께 넣은 것이다. 엄마는 여성신문에 실렸던 이홍**라는 내 이름을 보고 의외로(?!) 참 좋아하셨다.

 

미디어몹이란 곳에서 이 닉을 사용했다.

호주제폐지시민의 모임과 언니네와 같은, 여성에게 안전한 곳만 드나들다가 남자들이 우글거리는 공간에 있으려니 좋은 지인들도 알게 됐지만 엄청난 미움도 동시에 받게 됐다.

 

내 성향이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엄마, 나는 엄마 뱃속에서 나왔는데 왜 아빠 성씨만 써야 해?"라고 물었다가 "얘가 커서 모가 되려고 이렇게 엉뚱한 소리만 하냐"는 소릴 들어야 했다.

 

87년 대선 때 처음으로 투표를 했는데, 그 당시 후보를 사퇴한 백기완씨 이름에 기표하여 무효표를 만들었다.

 

그 담에도 민중당을 찍었고,,, 어찌보면 지금의 민주노동당을 꾸준히 지지해 온 셈이다.

 

한 번도 내 표가 사표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고 내가 진보정당에 던지는 한 표가 언젠가는 한 알의 밀알이 되리라 생각했었다.

 

여성주의자라고 자칭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여의도에서 성대하게 열리는 여성대회보다는 인사동마당에서 소규모로 열리는 여성대회 쪽에 더 맘이 끌렸고,,, 거기서 '조이여울'을 보고 첫눈에 반해 버리는 일도 생겼다. 얼마전 '일다독자모임'에 가서는 "당신은 내 딸의 여성모델입니다"라고 조이여울편집장에게 인사를 건넸다.

 

 

 

팔자라는 것이 있다면 이게 내 팔자다. 나는 단 한 번도 "돈 많은 남자 만나 행복하게 살아야지" 따위의 꿈을 꿔 본 적도 없고(여성주의자라 자칭하기 전에도 그랬다) 이 세상의 주류가 되고 싶어 안달해 본 일도 없다.

대충 순하다는 소릴 듣는 편인데 화나면 엄청 무섭다는 소릴 듣는 것도 그렇고.

 

그 사람의 성향이 자기 팔자를 만든다면 난 100% 믿어버리련다.

 

 

 

삼천포로 빠질 것 없이 이 글을 끄적이게 된 연유를 말해 보자면, 미디어몹에 기거하는 마초새끼들의 스토킹을 피해 이홍이란 닉을 버렸는데, 우연히 진보넷에 블로그를 열면서 새물이란 닉을 다시 살려낸 것이다. 많이 담담해진 것이다.

 

그럼 이홍이란 닉은?

 

아직 이홍을 주워담을 자신이 없지만 그래도 꼭 쥐고는 있어야겠다.

 

미디어몹은? 제2의 서프라이즈 혹은 열우당 2중대나 되라고 축복해 주겠다. 심심할 때 안주거리 삼아 뒷담화도 가끔 해주고. 으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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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혁명의 시대, 개인적인 스케치

다함께가 주최하는 '전혁'은 고대에서 열리지 못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님을 감히 모독(???)하고 보건대 합병과정에서 보여준 '다함께 고대생들'의 열렬한 투쟁 덕분에 경희대와 외대를 왔다리갔다리하는 생고생을 하며 포럼에 참석했다.

 

경희대에선 크라운관의 전기를 끊어버려 자가발전기를 돌리고 에어컨도 가동이 안돼 난리법석을 치루며 토론이 이루어졌고, 식당은 외대에 있는 관계로 토론 마치고 경희대 후문을 지나 다시 외대 후문으로 이동하는 등 그야말로 빡세게 다녀야했다.

 

아이들은 놀이방에서 무척 재밌었다고 하며 "내년에 또 가자~"

 

 

박노자 강연을 들으러 가는데 큰언니한테 전화가 왔다.

"너, 오늘 경희대에 왔니? 우리집에 들릴거니?"

"엉, 강연 들으러 왔어"

"알어. 점심 때 와라"

 

내가 포럼 참석한 거 어찌 알았누???

 

돌쇠랑 함께 언니네에 갔는데 "다함께 에서 선전물을 돌리는데 니네 애들 사진이 놀이방 코너에 나왔더라. 애들한테도 초상권이 있는 건데 그러면 안되는 거지" 그러더니,

 

"안그래도 좌파로 살기 힘든 세상인데 '어린이좌파'로 찍히게 해서야 되겠냐.(언니 웃는다. ㅋㅋ) 근데 너 다함께 회원이니?"

 

"아니, 이 친구가 가입하라고 꼬시는데 난 가입할 생각없어"<---돌쇠를 가르키며. 흐흐

 

"근데 경희대 총학도 외대 총학도 다 넘어갔는데 용케 포럼은 여는구나"

 

"어, 총학을 우파들이 장악한 거 어찌 알았어?"

 

"요 옆이 민주동문회인데 어찌 모르겠냐?"

 

이 때, 갑자기 돌쇠를 찬찬히 보는 큰언니, "몇 학번이예요?"

 

--------- 우하하하 돌쇠의 수줍음은 가히 하늘을 찌를듯. 이 표현이 말이 되나? ㅋㅋ

 

 

 

나는 주로 돌쇠와 토론을 했는데(여성문제에 대한 반론) 자꾸만 돌쇠가 '나가서 발언하면 좋지 않겠느냐' 권하는 거다.

 

"내가 김규항이유? 잘모르지만 딴지 좀 걸겠다 하는 건 김규항이나 하는 짓이지. 배우러 온 사람의 자세는 열심히 듣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나도 페미니즘 토론회같은 곳에 가면 열심히 손들고 얘기하고 그러는 편인데 작년도 그렇고 올해도 그렇고 내가 잘모르는 부분에 대해 배우는 중인데 반론펴고 충고하고 그러는 거는 올바른 태도가 아닌 거 같아"

 

 

 

작년에 맑스주의와 여성억압이란 주제는 그야말로 대 실망이었다.

 

여성은 연대할 수 없다는 요지의 발제자의 발언과 프론트 토론까지, 내 속이 터지는 줄 알았다.

 

"콘돌라스 라이자와 우리가 연대할 수 있습니까? 박근혜와 우리가 연대할 수 있습니까?"

 

"가부장제는 여성억압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자본주의적 수탈이 없어져야 비로소 여성은 해방되는 겁니다"

 

 

올해 동성애자 억압에 관해서는 전혀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다.(참고로 여성억압 발제자와 동성애억압 발제자는 다른 분들이다)

 

"부자인 게이, 가난한 레즈비언, 흑인 동성애자, 백인 동성애자 등등 그 차이만 놓고 본다면 영원히 연대는 불가능하겠지요. 하지만 그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라는 지점에서 연대하고 함께 싸워야 합니다"라는 요지의 얘기는 백번 동의한다.

 

나의 반론이라면.

자, 여성도 브루조아 여성에서 부터 레즈비언이며 흑인이며 가난한 여성까지 그 층위가 다양하다.

하지만 여성연대는 그 여성들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성이기 때문에 받는 억압때문에, 바로 그 지점에서 연대성이 생기는 것이다.

 

조금 철 지난 얘기지만, 한나라의 야당당수인 박근혜씨가 커터칼로 얼굴에 자상을 입었을 때, 그녀는 공주마마이기 때문에 나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여성인가?

그렇지 않다. 애초 오세훈을 목표로 했던 범인이 박근혜 쪽으로 시선을 돌린 것은 그녀가 만만한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나는(혹은 여성주의자는) 이 부분에 있어 정치적인 눈으로 박근혜를 비아냥거리는 시선에 동의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약자가 연대하는 지점은 자신이 약자인 지점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계급을 떠난 여성연대, 당연히 가능하다.

연봉이 1억에 가깝다는 남성비행기 조종사의 파업을 남성비정규직노동자가 지지해야 하는 이유가 마땅한 것처럼.

 

나도 '민주적인 사회주의' 세상을 원한다. 자본주의에 반대한다.

따라서 나는 페미니즘이 사회를 변혁할 수 있는 완벽한 이론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여성억압(나아가서는 모든 차별)의 원인을 설명하고 그 억압을 극복할 수 있는 무기라고 생각하기에 여성인 나에게는 소중한 이론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페미니즘을 인정하지 않는 맑시스트에게 동의하지 못하며, 맑시즘만으로 이 세상의 모든 억압을 끝장낼 수 있다는 생각에는 더더욱 동의 못한다.

 

좌파들은 여성주의자를 동지로 인정해야 하는데 왜 끊임없이 타자화하는 지 모르겠다고 돌쇠에게 얘기하면서,,, 약간 흥분. ^^;;<---맑시즘만으로 모든 억압을 설명하려 하니 니네 주장끼리도 일관성이 유지되지 않는 거야.

 

사실 내가 울 돌쇠에게는 "니네 다함께는 여성의식, 문제있어" 그러면서 쪼아대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다함께 얘기를 할 때에는 상당히 우호적으로 발언하는 편이다.

나는 다함께 사람들을 민주적인 사회주의 건설의 동지로 생각하거든.

 

 

 

 

 

하여간 다함께 회원들의 그 성실성, 열정, 약자를 배려하는 자세 에는 무한한 존경을 보낸다.

 

 

 

 

포럼 마지막 날에도 어김없이 비가왔고 경희대 근처 '언니네비빔밥'에서 **이 생일축하케잌에 촛불도 밝히고 지인들끼리 백세주 한 잔을 기울이며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었다.

 

이리저리 바쁘게 다니시던 루나님이 잠시 짬을 내어 우리 쪽으로 와주셨고 박노인님의 환한 미소를 볼 수 있어 좋았고(내가 그에게 미안한 부분이 있어서 내내 찜찜했는데 그저 아무 말없이 예전처럼 대해 주셔서 너무 고마웠다) 푸드테이크님의 진지모드는 너무나 귀여웠다.(귀엽다고 하면 프드테이크님 정색을 하시려나? ^^;;)

 

멀리 사는 **이가 먼저 일어났고 11시 경에는 모두 자리를 파했다.

 

 

돌쇠랑 나랑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손을 꼭 잡고.

 

'돌쇠야, 내가 그렇게 좋으니? 얼마나 좋으니?' 장난스레 묻기도 하고 '나도 네가 하늘만큼 땅만큼 좋아' 하면서 그의 어깨에 기대기도 했다.

 

 

큰언니한테 돌쇠를 후배라고 소개시킨 것이 내내 미안하다.

나야말로 울 돌쇠를 투명인간 만드는 것 같아,,,

 

앞으로 둘이 열심히 벌어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면 **시에 있는 집도 공동명의로 바꾸어야겠다.

이제 생각해 보니 돌쇠명의로 된 것이 아무것도 없는 거야. 나중에 울 돌쇠가 내 혈연가족에 의해 배척받는 일은 만들지 말아야 해. 지금도 우리 4식구 사는데 기여하는 바가, 어느 때는 나보다 더 큰 거 같은데,,,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은 울 돌쇠를 착취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

 

결혼을 거부한 건 내 쪽인데 마냥 상대방만 감수하라고 하는 건 내가 못된 거야.

미안해, 돌쇠야. 앞으로 좀 더 나은 타협지점을 찾아갈 수 있을 거야.

 

아, 노바리님께도 엄청시럽게 미안하고 고맙고 눈물 찔끔 났는데 어케 이 맘을 전달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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