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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11
    5월 9일 대한통운
    더불어 함께
  2. 2005/09/25
    잠깐 짬을 내서 흔적을...
    더불어 함께
  3. 2005/06/16
    김우중의 귀국
    더불어 함께
  4. 2005/06/14
    [펌] 송두율 교수의 메세지(6.15남북공동선언 5주년)
    더불어 함께
  5. 2004/11/18
    [펌] 공무원 노조 파업의 정당성
    더불어 함께

5월 9일 대한통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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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짬을 내서 흔적을...

추석을 보내고 참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

 

조만간 9월 22일부터 24일까지 경남창원에서 있었던

지방의제21 전국대회에 관련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토요일에 전국대회를 마치고 오늘 어머니 제사를 지내러

고향에 내려왔습니다.

 

그려서 글 올릴 시간이 없었네요.^^

 

그럼. 내일 글로써 다시 여러분에게 찾아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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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의 귀국


 김우중의 귀국 결심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진행됐다면

우리는 다시한번 가진자들에 대한 없는자 들의 상대적 박탈감에서 헤어나오질 못할것이다.

 

오늘 오후에 신라호텔에서 전경련 회장단 회의가 있단다.

그곳엔 이해찬 국무총리도 참석한다는데.. 이때 전경련 회장단들은

김우중에대한 선처를 부탁할 예정이란다.

삼성의 이건희도 기자들에게 그러더만.. "김우중이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복돋아준 사람이고, 기업에 기여하는 바도 있으니 선처를 바란다고.."

 

그러니 가만히 앉아있다간 사면처리돼서 이땅에서 김우중이 얼굴들고 활보하게 생겼으니.. 분통터질 일이다.  병든모습, 늙은이의 초췌함, 예전의 기업 및 사회 기여도의 관점으로 언론에 회자되어 특별사면으로 몰아가는 김우중 옹호론자들의 움직임도 만만치 않다.

 

"41조원의 그룹분식회계와 불법 대출 26조원의 해외도피 등 불법 부실 경영으로 경제를 망친 주범이며 대우자동차를 GM에 헐값으로 팔아치우고 1700여명의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 몬 악덕경영자" 바로 이게 김우중의 실체다.

 

다시는 가진자들의 오만과 뻔뻔함을  보고 싶지 않다.

김우중은 본인의 죄에 대한  철저하고 응당한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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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송두율 교수의 메세지(6.15남북공동선언 5주년)

송두율 (독일 뮌스터대학 사회학 교수)

송두율 교수가 6.15남북공동선언 5주년에 즈음하여 통일뉴스에 특별메시지를 보내왔다. 지난 2003년 9월, 37년만에 고국땅을 밟았다가 곧바로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어 1년간 고초를 받다가 2004년 8월 출국한 이래 10개월만의 일이다. 송 교수는 메시지를 통해 "자주"의 의미를 폭 넓게 이해한다면 6.15공동선언이 남북을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민족통일의 인식론적인 틀로서도 새롭게 평가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 편집자 주

▶2003년 9월22일 37년만에 고국땅을 밟은 송두율 교수가 인천국제공항 기자회견장
에서 상념에 잠겨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은 이론적인 내공 필요

<6.15공동선언>의 발표 5주년을 맞아 그 내용을 다시 한번 살펴본다. 그간 어떤 조항들이 과연 선언의 기본정신에 따라 실천에 옮겨졌으며, 또 어떤 조항들이 그렇지 못했던가를 가늠해 보기 위해서다.

우선 인도적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을 위시한 남북간의 여러 분야에 걸친 협력과 교류를 규정한 공동선언의 제3항과 제4항은 비록 만족스럽지는 못해도 선언 이전의 상태와 비교해 본다면 나름대로 큰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될 수 있다.

선언의 제2항, 즉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간에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자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다지는데 있어서 별로 진전은 없었다.

물론 이 항목의 내용이 장기적인 과정을 전제하고도 있지만, 또 정치형태에 관한 여러 가지 이론적인 내공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일반국민의 정서 속으로 파고드는데 있어서 한계가 있었다. 또 이 항목의 내용을 보다 더 구체화시키고 풍부하게 만들 수 있기에는 북의 "연방제"가 남쪽에서 오랫동안 너무 부정적으로만 인식되어왔다.

"자주"는 통일문제의 사활이 걸려 있는 문제

무엇보다도 문제는 제1항, 즉 “통일문제를 주인인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한다”는 내용이다. 바로 이 내용을 공동선언의 첫째자리에 남북이 함께 놓았다는 사실에서도 이의 중요성은 분명하다.

여담이지만 남북정상이 만나기 바로 전날 <동아일보> - 이 신문은 작년 7월 말 서울 구치소를 나오면서 필자가 지적했던 바로 그 썩은 내나는 신문들 가운데 하나였지만 - 의 부탁으로 기고했던 글 가운데 공동선언 발표의 가능성과 함께 자주적 통일 원칙이 제일 먼저 부각될 것이라고 필자가 예견했던 적이 있다.

이 분석이 적중해서 필자는 북을 아주 잘 아는 사람으로 평가도 되었지만, 이로 인해 후에 필자에 대한 일부 사람들의 악의적인 평가를 더욱 부채질까지도 했다.

그러나 과학적인 입장에서 우리의 통일문제를 분석해 보고, 무엇이 가장 절실한 문제인가를 조금만 고민해 본다면 "자주"는 우리의 통일문제의 사활이 걸려 있는 문제라는 것은 곧 드러난다. 물론 이때의 "자주"의 개념은 그저 일직선(一直線)적인 "주체-객체"의 관계에서만 이해될 수 없을 정도로 다차원(多次元)적인 여러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자주" 개념은 일직선적이 아닌 다차원적인 내용

공동선언이 발표된 지 얼마 안 되어 남북간에 "자주"의 내용을 둘러싼 해석상의 차이와 갈등이 곧 나타났다. 북이 "민족공조"와 "우리 민족끼리"를 강조하면서 남의 "한-미-일 공조체제"를 문제삼자, 남은 오늘날의 "자주"는 주변국과도 잘 지내는 것을 의미한다고 응수했다.

사실 이와 같이 "자주"의 내용을 둘러싼 상호공방은 이론적으로 보아도 무리는 아니다. 오늘날 철학과 사회과학에서도 "주체"를 둘러싼 인식론적인 논쟁은 치열하다.

한 쪽에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전제하는 "주체"는 단지 가상(假像)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는 이미 주어진 "체계(體系)"나 "관계(關係)"속에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데 대하여, 다른 쪽에서는 "주체"는 결코 사라질 수 없는 계몽과 해방의 담지자(擔持者)라고 반박하고 있다.

전자가 이른바 탈근대주의적인 해체(Deconstruction)의 철학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근대주의적인 주체(Subject)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도 남쪽의 "세계화"를, 북의 "주체화"를 담고 있는 서로 다른 인식론적인 틀을 엿볼 수 있다. "세계화"를 통해서 주체를 강화하겠다는 남쪽의 개발전략과 "주체화"를 통해서 세계 안에서 자기자리를 구축하겠다는 북쪽의 개발전략의 차이도 느낄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전자는 탈(脫)민족적 지평(地平)의 개념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후자는 민족적 경계(境界)의 개념을 고수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6.15선언은 민족통일의 인식론적인 틀로서 새롭게 평가될 수 있어

바로 이렇게 "자주"의 의미를 여러 차원에 걸쳐 보다 더 폭 넓게 이해한다면 <6.15공동선언>은 남쪽의 "세계화"를 통한 "주체화"는 물론, 북쪽의 "주체화"를 통한 "세계화"를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민족통일의 인식론적인 틀로서도 새롭게 평가될 수 있다.

민족국가가 "세계화"의 엄청난 도전을 맞고 있는 이 세계사적 전환기에도 아직 통일된 민족국가를 건설하지 못한 불행한 현실을 타개하면서, 동시에 이를 넘어서서 보편적인 지구적 과제도 해결한다는 전망 속에서 <6.15공동선언>의 의미를 그의 발표 5주년을 맞아 다시 한번 음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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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공무원 노조 파업의 정당성


<<<공무원 노조의 파업이 너무나 정당한 이유 >>>


 하종강 / 한울 노동문제 연구소장    


옮긴이의 말 : ----------------------------------------------------------
공무원노조의 파업이 한창이던 때에 한 시사라디오 프로 쟁점 의견시간에 전화걸려오는 이의 의견이 다른 주제엔 대개 반반이었는데 공무원노조 파업에 대해서는 비난일색이었답니다. 
이걸 운전중 듣고 있던 하종강 노동문제 연구소장이 전화를 걸어 파업의 정당성과 합리적인 생각을 호소하였다 합니다. 그후에 하종강소장님이 이렇게 글을 정리해서 올렸습니다.
안타까움과 아픔, 그리고 그걸 감수하고 첫발을 열었던 1500명의 해직을 낳았던 전교조의 역사처럼 꿋꿋하게 가고자 한 공무원노조 지도부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담아 이 글을 퍼왔습니다. 
공무원 노조는 업무복귀를 선언하고 재차 민주노총 파업일인 26일에 맞춰 재파업을 결의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도 그렇고 지금도 정부가 대화에 나서지 않는 현실에서 그들은 커나가고 있습니다.
혹여, 깨졌다고, 뭐한거냐고 안하니만 못했던거 아니냐고 하시는 분이 있다면,
89년 전교조 투쟁을 기억해 보시고
노동자의 노동선언과 승리의 역사를 알아보셔야 할 것입니다. 너무나 왜곡되고 모르는 것 투성인 사회에서 알량한 지식과 자존심으로 남의 뜻과 생명을 논하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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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노조 파업이 너무나 정당한 이유>

하종강 / 한울 노동문제 연구소장


  공무원노조의 파업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먼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공무원이 아닌 일반 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이해가 가능합니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 글을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수십년 세월 동안 노동조합에 대한 그릇된 혐오감을 국민들에게 일방적으로 주입시켜 온 사회입니다. 자신의 의식을 그렇게 조율당해 온 사람들은 나름대로 노동조합에 대해 알 만큼은 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노동조합의 파업이 사회에 미치는 유익한 영향에 대하여 설명하시오?”라거나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노동3권이 노동자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로 법제화된 이유는 무엇인가?”라거나 “1929년에 세계를 휩쓴 대공황이 인류에게 남겨준 교훈에 의해 각 나라의 노동법 체계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따위의 논술 과제에 대해 모범 답안을 정리하기가 막막한 사람이라면, 이 글을 읽는 것이 공염불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이 글은 최소한 노동조합에 대한 합리적 이해가 가능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소위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나라들에서는 초등학교 정규 수업 과정만으로도 위와 같은 의문에 대한 모범답안을 정리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불가능하지만….
  
  공무원이 아닌 일반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서도 합리적인 이해가 불가능한 사회에서 공무원의 파업에 대해 호의적인 이해를 한다는 것은 거의 ‘원초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우리나라 공무원노조의 파업이 다른 나라 공무원노조와 달리 기본적으로 처해 있는 조건은 우선 그것입니다.
  
  
  시민들의 공무원에 대한 ‘사용자’ 의식
  
  시청 앞 아스팔트에 천막을 치고 농성하는 환경미화원들에게 시민단체의 대표들이 찾아와 항의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시민단체의 대표라는 사람들이 당당하게 환경미화원들을 꾸짖으면서 하는 주장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자기 할 일은 우선 해놓고 권리를 주장해야 하는 것 아니냐? 그것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가 아니냐? 자신들의 가장 기본적 의무인 청소를 하지 않으면서 하는 권리 주장이 어떻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느냐?”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당신들 모두 우리가 낸 세금으로 월급 받는 사람들 아니냐?”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 주장은 앞에서 설명한 노동자 권리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비롯된 것이니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의 주장은 우리나라 공무원 노동조합이 처한 특수한 상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공무원들의 권리 주장에 대해서는 시민들이 사용자 의식을 갖게 됩니다. 자신들이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생각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사용자 의식은 공무원들의 권리에 대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이해를 어려워지게 만듭니다.
  
  다른 노동문제 같은 경우는 국민들의 여론이 노사 중간에서 완충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프랑스 국민들의 그러한 정서를 홍세화 같은 이는 ‘똘레랑스’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공무원들의 권리 주장에 대해서 우리나라 국민들은 사용자 의식을 갖는데다가 당장 자신들이 불편을 겪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정부와 공무원노조의 갈등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노동자의 권리부터 지켜져야 시민들의 권리도 지켜진다”는 생각으로 공무원 노동자들의 투쟁을 바라보기는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노동3권에 대한 이해
  
  노동3권은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이르는 말입니다. 이번에 마련된 정부의 특별법안은 공무원에게 단결권은 보장하고, 단체교섭권의 경우 일부를 보장하되 법령․조례․예산에 의해 규정된 내용이나 정책 결정에 관한 사항, 임용권 등 관리 운영에 관한 사항 등은 교섭대상에서 제외하며, 단체행동권은 일체 보장하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이에 대한 공무원노조의 주장은 단체교섭권의 경우 “공무원의 특성상 교섭대상에서 제외된 것들을 빼버리고 나면 실질적으로 어떤 교섭도 할 수 없다”는 것이고, 단체행동권을 제한하면 단결권과 교섭권도 실효를 보기 어려워 결국 공무원노조가 종이호랑이에 불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노동3권은 ‘통일적 권리’라는 개념으로 분류됩니다. 법학계 내에서는 노동3권을 각각 구분해서 따로따로 허용하고 제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학설이 더 우세합니다. 마치 화로의 세 다리처럼 하나라도 온전치 못하면 나머지 두 개의 다리도 제 구실을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노동3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단체행동권을 단체교섭권에 포함시켜 ‘노동2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교섭권과 행동권은 따로 구분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단체행동이 뒷받침되지 않는 교섭이 어떻게 힘을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선진국들 중에는 노동3권을 헌법에 따로 명시하지 않은 나라들이 많습니다. 바로 ‘관습헌법’이기 때문입니다. 관습헌법이란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변할 수 없는 것에만 붙일 수 있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인간이 공기를 호흡할 수 있는 권리는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절대로 변할 수 없습니다.
  
  관습헌법이란 아무데나 갖다 붙이는 말이 아닙니다. 역사가 발전하면서 바뀔 수 있는 것은 관습헌법이 될 수 없습니다. 노동자가 노동3권을 갖는 것은 인간이 공기를 호흡할 권리를 갖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에 어떤 이유에서도 침해당할 수 없다는 것이 국민적 공감대로 된 사회에서는 굳이 헌법에 명시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국민들이 겪어야 하는 불편
  
  공무원들이 점심시간에 일을 하지 않게 되면서 시민들이 겪어야 하는 불편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많이 강조했으니까, 저는 좀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겠습니다.
  
  공무원들은 오래 전부터 점심시간을 20분 정도로 줄이면서 교대로 일해 왔습니다. 점심시간의 업무 수행은 근로시간으로 인정받지도 못했지만, 그동안 동절기에는 1시간 일찍 5시에 퇴근할 수 있으니까 참을 만했는데 조례를 개정해 동절기에도 6시까지 일해야 한다니까, 그것에 대해 공무원들이 점심시간의 변칙 근무를 거부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의사 표시를 한 겁니다.
  
  직장인들은 점심시간밖에 관공서에 갈 시간이 없다고 하지만, 다른 예를 들어, 병원에 갈 때는 사람들이 국립대학병원이라고 해도 점심시간에 진료를 받을 수 없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려면 근무시간에 일부러 짬을 내야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다른 직장인들도 근무시간에 짬을 내서 관공서 업무를 볼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 더 옳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장 자신이 불편을 겪어야 하거나 사람들을 관리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그걸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잠시 불편을 겪더라도 그것이 우리 사회의 발전에 유익하다면 참을 필요도 있습니다.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노동자들이 파업할 수 있는 권리를 합법적으로 보장하게 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입니다. 노동자들의 파업이 사회에 끼치는 해로운 영향이 유익한 영향보다 바늘 끝 만큼이라도 많았다면,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며 싸울 수 있는 단체행동권이 법제화됐을 리가 없습니다.
  
  
  다른 나라의 경우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 선진국에서는 공무원의 단체행동권을 대부분 보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사안에 따라 공무원을 형사고소하거나 징계할 수는 있습니다. 일본도 비슷한 법률 체계를 갖고 있는데, 지금까지 일본에서 단체행동 때문에 징계·해직 당한 공무원은 단 한 명뿐이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전형적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에서도 공무원들의 단체행동권을 인정하고 있고, 상황에 따라 법원이 파업 금지 명령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소방관, 경찰, 군인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아예 노동조합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는 특수한 직종에 한해서 부분적으로 단체행동권을 제한하는 경우는 있지만, 공무원이라고 해서 단체행동권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입법 예가 선진국에는 거의 없습니다. 선진국 국민들이 우리나라 국민들보다 어리석어서 그렇게 했을 리는 없습니다. 단지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파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금기시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유익하지 않습니다.
  
  
  공무원들의 파업이 사회에 유익한가?
  
  공무원노조의 파업이 과연 우리사회에 유익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에 대해서는 공무원노조가 설립된 이래 지금까지 해온 활동의 내용을 보면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습니다.
  
  공무원노조가 공무원들의 처우 개선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공무원노조는 지금까지 공무원 사회의 불공정한 관행이나 고위 공직자들의 비위 행위 등 공직사회를 투명하게 하고 부정부패를 추방하는 일에 전적으로 매달려왔습니다. 최근에 점심시간 업무 수행을 거부한 것이 자신들의 처우와 관련된 거의 유일한 주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방송 노동조합의 파업이 임금인상 때문이 아니라 공정한 방송을 쟁취하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이나, 병원 노동조합의 파업이 공공의료 확보를 가장 중요한 목표로 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보수언론처럼 공무원노조의 파업에 대해 천편일률로 융단폭격을 할 것이 아니라, 공무원노조의 파업이 사회에 미치는 유익한 영향은 없는지 한번쯤은 곰곰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명백한 현행법 위반 행위 아닌가?
  
  우리나라에서는 공무원이 노동조합을 설립하는 것 그 자체가 아직까지는 현행법 위반 행위인 것이 사실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법은 지켜야 할 것 아니냐?”는 시각에 대해서는, 최근의 판결을 하나 소개하는 것으로 제 주장을 대신하겠습니다.
  
  온전한 노동3권 보장을 요구하며 집단행동을 한 혐의로 공무원노조 활동가들 23명이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는데, 법원이 피고들 모두에게 선고유예 판결을 했습니다. 그 판결 논지는 이렇습니다.
  
  공무원들이 현행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집단행위를 한 이상 이를 정당행위라 할 수는 없지만, 공무원의 노동3권이 일찍이 제헌의회 때부터 인정되다가 5·16 군사쿠데타에 의해 부정된 이래 아직까지 인정되지 않고 있고, 이미 60년 전 최초의 헌법에서 보장됐던 공무원 노동기본권을 되찾기 위해 불법행동을 한 점과 아직 입법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이러한 생각들이 다수 의견이 될 것입니다. 진보적인 생각은 항상 소수에서 출발해 다수가 됩니다.
  
  전교조가 합법화되는 데 10년의 세월이 걸리면서 1,600명의 교사가 해직당했습니다. 만일 우리나라 교사들이 현행법을 위반하지 않고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만 활동했다면 전교조는 아직까지도 합법화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현행법상 허용되지 않지만 누군가는 국민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앞서 나가는 역할을 해야만 사회가 발전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공무원노조 집행부는 아마 파업을 결행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한번쯤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공무원들까지 파업을 해서 행정기관이 온통 마비됐을 때 이북에서 쳐들어오면 어떻게 할 거냐?” 하는 꽉 막힌 생각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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