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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헤드 신드롬의 정체

라디오헤드 신드롬의 정체
장호연 bubbler@naver.com | contributor
 

정규 앨범 발매에 앞서 mp3 파일이 인터넷에 유출되는 현상은 이제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놀랍다면 화이트 스트라이프스(The White Stripes)에서 최근 스피리추얼라이즈드(Spiritualized)에 이르기까지 mp3 파일 유출 관련 뉴스가 미디어의 중요한 기사거리로 자리잡은 속도와 (의도했든 안 했든) 그것이 갖는 홍보 효과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것이 뮤지션의 인기를 말해주는 한 척도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네임밸류가 높은 뮤지션일수록 뉴스는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유출 시점 또한 빠르다. 심지어는 잘못 확인된 음원이나 채 녹음이 완료되기도 전의 음원이 떠돌아다니기도 한다.

금년도 가장 기대를 모으고 있는 화제작인 라디오헤드(Radiohead)의 6집은 이런 소동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정식 발매일을 세 달이나 남겨둔 지난 3월말 믹싱도 마치지 않은 채로 인터넷에 등장한 [Hail to the Thief]는 네티즌들의 열렬한 관심 속에 폭발적인 다운로드로 이어졌다. 한편 이보다 조금 앞서 밴드는 정규 앨범에 앞서 소규모 투어를 갖겠다는 발표를 내놓았다. 영국과 아일랜드의 다섯 개 도시에서 열리는 이번 공연은 특히 6년 만에 처음으로 갖는 실내 공연이라는 점에서 팬들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게다가 이미 인터넷에 공개(?)된 음원이 지난 앨범들이 보여준 지나친 실험성의 우려를 불식시키듯 좀더 대중친화적인 사운드를 담고 있었던 터라 기대가 더욱 컸다. 홈페이지를 통해서만 판매된 공연 티켓은 당연히 수시간만에 매진이 되었다. (한편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티켓 역시 오프닝을 맡은 R.E.M.과 더불어 라디오헤드의 참가 소식이 알려지면서 기록적인 시간만에 매진되었다.)

지난 토요일부터 더블린에서 시작된 이번 투어는 예상대로 미디어의 대대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NME는 (그렇게 구하기 어려웠다는) 티켓을 경품으로 제시하며 독자들의 관심을 유도했고, 거의 매공연 리뷰를 신속하게 홈페이지에 올리는 열의를 보여주었다. 멀리 미국과 일본에서 이들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의 인터뷰까지 실으면서 말이다. 월요일자 몇몇 일간지들도 이들의 공연을 관심 있게 보도하는 등 이런 열기는 정식으로 앨범이 발매되는 6월초에 정점에 달할 전망이다. 그런데 대체 이런 열기의 정체는 무엇일까? 라디오헤드 '신드롬'이라 불러도 좋을 이런 열광에는 뭔가 별난 구석이 있어 보인다. 사실 대중성으로만 따지자면 라디오헤드만큼 음반 판매량이 유명세에 못 미치는 밴드도 없을 것이다. 물론 이들이 현재 거의 유일하게 영국이 세계에 내세울 만한 밴드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신드롬은 비단 영국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록 음악의 미래라는 설명은? 미래를 진단하는 일에 일관된 합의를 끌어내는 것도 어렵거니와, 여기에는 록 음악이 현대 문화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설명해야 하는 까다로움 또한 따른다.

운이 좋게도 티켓을 구한 나는 셋째 날(5월 19일) 벨파스트(Waterfront)에서 공연을 보면서 나름대로 의문을 풀었다. 이는 잠시 뒤로 미루고 먼저 공연장 분위기부터 스케치하자. 이들의 인기를 실감했던 것은 벨파스트에서 공연이 열리던 날 시내 호스텔 예약이 일치감치 끝났다는 점이다. 물론 공연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성수기도 아니고 주말도 아니고, 유명한 관광 도시도 아닌 점을 생각한다면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공연장소를 확인하러 간 오전부터 공연장 주변에서 사진찍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일본인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실제 공연장에서는 수많은 인파에 묻혀 이들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일본에서 라디오헤드를 보러 많은 사람들이 떠났다는 소문이 사실인 듯했다. 모르긴 해도 유럽이나 미국에서 건너온 사람들도 제법 되었을 것이다. 라디오헤드의 팬덤이 국제적임을 새삼 확인한 순간이었다.

이들의 공연의 시작은 여느 공연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등장한 이들은 첫 싱글로 결정된 "There There"를 시작으로 신곡들과 예전 곡들을 적절히 오가며 연주했다. 인터넷으로 얻은 첫날 공연리스트는 이들이 다른 곡들과 순서로 공연을 채운 탓에 별 쓸모가 없었다. 솔직히 첫 느낌은 과도한 기대에 다소 못 미쳤다. 경력에 비해 손발이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고, 여기에 영국 밴드는 미국 밴드에 비해 라이브가 딸린다는, 경험상에서 얻은 편견이 더해졌다. 그런데 곧 나는 정신없이 이들에 홀려들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톰 요크(Thom Yorke)의 마술에 홀려들고 있었다.

한마디로 공연장에서 만난 라디오헤드(톰 요크)는 우리가 가장 편안하게 생각해온 예술가 이미지에 정확히 부합하는 밴드였다. 즉, 영감에 사로잡힌 천재이자 그들만의 세계의 창조자였다. 사실 천재니 영감이니 자율성이니 하는 관념들은 19세기 낭만주의 시대로부터 이어져온 미학으로 서구의 클래식 문화 전통의 우월성을 확보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는 20세기의 대중 문화와는 근본적인 충돌을 보였고, 그 과정에서 록 음악은 밴드 공동체와 진정성(authenticity)이라는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냈다. 즉, 록 음악은 개인의 산물이 아니라 밴드 멤버들 간의 공동 작업의 소산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동시대를 반영하는 산물로서 리얼리티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체계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러면 낭만적인 예술가상은 간단하게 폐기처분 되었을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여전히 예술가에게 특별한 뭔가를 기대한다. "예술가는 시대의 예민한 촉수"라는 말을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예술가, 특히 음악가가 본질적으로 자기들과 다른 세계를 갖고 있을 것이라도 믿는다. 이는 저널이나 아티스트 전기물에서 '표현'이라는 말이 여전히 득세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데, 아마 이것이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드러나는 것은 공연장일 것이다. 여기서 모든 사운드는 마치 보컬리스트의 '직접적인' 표현인 것처럼 연출되고 경험된다.

라디오헤드의 공연장에서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철저하게 톰에 집중된다. (물론 모든 공연이 그런 것은 아니다. 화이트 스프라이프스의 공연은 맥과 잭의 주고받음으로 긴장감과 재미를 높이고 있고, 욜라 텡고(Yo La Tengo)의 경우 악기를 서로 바꿔 연주함으로써 멤버들간의 평등한 관계를 잃지 않는다.) 이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톰 요크의 목소리다. 독특한 울림과 풍부한 표현력을 자랑하는 그의 목소리는 이들의 음악에 담긴 다른 멤버들의 아이디어와 노고를 '간단히' 그의 표현으로 만들어버린다. 풍부한 성량과 카리스마로 무장된 목소리가 신들린 듯한 제스처와 만날 때, 무대에는 오직 톰 요크밖에 보이지 않는다. 즉, 라디오헤드는 그의 메신저에 불과한 것이다.

사실 이런 점은 이들의 음악에서도 어느 정도 확인될 수 있다. 라디오헤드의 곡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도처에 분석이 불가능해 보이는 즉흥성이 발견된다(특히 [Kid A] 앨범이 그렇다). 블러(Blur)의 음악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고민 끝에 이뤄낸 사운드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는데, 라디오헤드의 경우 멤버들이 만나 사운드를 하나하나 구축해가는 광경보다 톰이 영감에 홀려서 혹은 꿈속에서 계시를 받아 적어낸 사운드라는 비유가 더 적절해 보인다. 물론 우열을 가리자는 의미가 아니라 음악 구조가 환기시키는 이미지가 전혀 다르다는 뜻이다. 그만큼 라디오헤드의 음악은 곡 진행을 예측하기가 어렵고 화성이나 선율 진행이 독특하다.

이들의 사운드가 [OK Computer]부터 점차 세상과 거리를 두고 우주적인 사운드스케이프로 이동하는 것도 이런 심증에 힘을 더한다. 몽롱하고 수수께끼 같은 사운드와 톰 요크 특유의 웅얼거리는 보컬은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라디오헤드만의 세계의 징표가 되었다. (꿈, 무의식이야말로 예술가를 상징하는 기표가 아닌가.) 그래서 이들이 커버곡을 연주한다는 것은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우며, 다른 밴드가 라디오헤드의 곡을 연주하는 것 역시 선뜻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이라면, 한때 자발적인 표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간주되었던 테크놀로지가 라디오헤드의 경우 표현성을 드높이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칸트의 말대로 "천재는 스스로에게 부과된 하나의 법"이므로 천재를 규율할 수 있는 것은 천재 자신밖에 없다. 그래서 라디오헤드 이후는 있지만 라디오헤드 이전은 없다. 라디오헤드에 대한 열광은 거의 [OK Computer]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앞서의 두 음반이 그런지와 느슨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데 비해 이 음반은 전혀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혹은 개척한 것처럼 들렸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동시대의 트렌드나 로컬 씬과 무관한, 말 그대로 스스로 규율을 창안해낸 창조자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라디오헤드가 누구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말은 거의 들리지 않은 반면, 트래비스(Travis)로부터 콜드플레이(Coldplay)에 이르기까지 199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영국의 기타팝 밴드들은 다들 라디오헤드의 적자로 거론되는 상황을 맞이했다.

톰 요크의 퍼스낼러티 또한 낭만적인 예술가상에 더없이 잘 들어맞는다. 그의 예민한 목소리는 세상과의 불화를 혼자 짊어진 듯 들리며, 왜소한 체격 또한 병을 앓듯 마른 체형을 선호했던 낭만주의 예술가 신화에 부합한다. 천재는 시대로부터 외면을 받는다는 말은 이들의 컬트적 팬덤과 연결되며, 예술은 시공을 초월한다는 통념은 팬덤의 국제적 양상과 일치한다. 예술가 신비주의는 이들의 인터뷰가 톰보다는 다른 멤버들에 의해 주로 이뤄짐으로써 유지된다. 게다가 그의 목소리와 무대에서 보여지는 제스처에서 예술가의 상징인 정신분열적 양상을 발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또한 진정한 예술가는 대중에 영합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의 음악에서 업템포의 발랄한 댄스 곡을 찾기 어렵다는 점과 연결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공연장 입구에 붙은 모싱을 금지한다는 안내말은 사실 불필요했다. 이들의 음악은 모싱은 고사하고 박수조차 치기 어렵다.

이상이 라디오헤드의 공연을 보면서 나름대로 얻은 해답들이다. 정리하자면,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영감에 찬 초월적 예술가라는 이미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있으며, 이는 라디오헤드의 경우 록 이데올로기의 정반대편에서 극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영화 담론에서 작가주의 관점이, 영화 자체의 산업적인 속성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공연장에서 연출되는 이미지와 실제 모습과의 거리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으며, 이렇듯 예술가상을 강화하기 위해 연출되는 콘서트가 비단 라디오헤드만은 아닐 것이다. 다른 점은 (그리고 이점이야말로 이들에 대한 이상 열기를 설명해주는 것일 텐데) 그 '강도'에 있다. 그래서 이런 해석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애석하게도 하나밖에 없다. 라디오헤드의 공연을 직접 보면서 톰 요크의 마술에 홀려들어 보라고.

한 가지 말하고 싶은 점은 톰 요크가 모차르트로 대표되는 천재 음악가상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이다. 모차르트처럼 음악적 재능은 탁월하지만 사회적으로 무능한 사람도 아니고, 또 로큰롤 초기부터 있어왔던 기인(奇人)과도 구별된다. 그는 사회와의 소통에 실패해 자폐적인 세계에 함몰되는 사람이 아니라 철저히 자신의 광기를 통제하는 사람이다. 뭔가에 홀린 듯 신들린 제스처와 목소리를 들려주다가도 곡이 끝나고 불이 꺼지면 다시 평정심을 되찾는 통제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그런 극단적인 정서를 오가려면 엄청난 신경쇠약을 감내해야 할 것 같다.) 기타의 조율 상태나 사운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연주 도중 무대를 떠나버리는 괴팍함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이내 다시 무대로 돌아와 곡을 연주했다. 종종 청중들에게 말을 건네기도 했고 간간히 유머를 던져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결코 동시대와 떨어진 세계에 살지 않는다는 점이다. 로스 엔젤레스 거리에 붙은 포스터 광고로 화제를 모은 "We Suck Young Blood"는 헐리우드에 대한 경멸을 담은 곡이고, "The Gloaming"을 연주할 때 톰은 "We need to stop them"이라고 말하면서 부시 행정부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했다. 아니 모든 것은 앨범 제목 속에 잘 드러나 있다. [Hail to the Thief]에서 도둑은 앨 고어로부터 대통령 직을 빼앗아 간 부시를 가리키는 말로, 부시의 취임식 때 일부 청중들이 내던진 말이라고 한다. 2003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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