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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8/30
    Dulce et Decorum Est
    pug
  2. 2006/08/30
    위험한 家系 · 1969
    pug
  3. 2006/08/27
    오리 망아지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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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6/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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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6/08/24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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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6/08/24
    곤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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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6/08/24
    원하는 대로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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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6/08/18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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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6/08/18
    작가/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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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6/08/17
    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
    pug

Dulce et Decorum Est

Bent double, like old beggars under sacks,

Knock-kneed, coughing like hags, we cursed through sludge,

Till on the haunting flares we turned our backs,

And towards our distant rest began to trudge.

Men marched asleep. Many had lost their boots,

But limped on, blood-shod. All went lame, all blind;

Drunk with fatigue; deaf even to the hoots

Of gas-shell dropping softly behind.

자루를 짊어진 늙은 거지들처럼, 두 배로 휘고,

무릎은 덜컹거리고, 노파처럼 기침하면서, 우리는 진창을 헤치며 저주했다,

그러다 섬광이 출몰하면 등을 돌렸고,

다시 먼 휴식을 향해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졸면서 행군했다. 대부분 구두를 잃었으나,

다리를 절며 나아갔다, 피딱지를 신발 삼아. 모두가 절름발이었고, 모두 눈멀었다;

피로에 취해서; 귀도 멀어서 심지어 독가스탄이

뒤로 부드럽게 떨어지며 삐이 소리를 내는 것도 듣지 못했다.

 

Gas! GAS! Quick, boys!─An ecstasy of fumbling,

Fitting the clumsy helmets just in time,

But someone still was yelling out and stumbling

And flound'ring like a man in fire or lime.─

Dim through the misty panes and thick green light,

As under a green sea, I saw him drowning.

In all my dreams before my helpless sight

He plunges at me, guttering, choking, drowning.

가스다, 가스야! 빨리, 제군들!─미친듯이 더듬어

딱 맞춰 투박한 헬멧을 썼건만,

누군가는 아직 소리치며 비틀거리며,

불이나 덫 속에 있는 듯이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희뿌연 창과 두꺼운 녹색 빛 사이로 어슴프레

그가 익사하는 게 보였다, 마치 녹색 바다처럼.

내 모든 꿈에서 그는 어쩔 줄 모르는 내 앞에 나와

내게로 달려든다, 흐르며, 질식한 채, 물에 빠지듯.

 

If in some smothering dreams, you too could pace

Behind the wagon that we flung him in,

And watch the white eyes writhing in his face,

His hanging face, like a devil's sick of sin,

If you could hear, at every jolt, the blood

Come gargling from the froth-corrupted lungs

Bitter as the cud

Of vile, incurable sores on innocent tongues,─

My friend, you would not tell with such high zest

To children ardent for some desperate glory,

The old lie: Dulce et decorum est

Pro patria mori.

만약 어떤 숨막히는 꿈에서, 너 또한

우리가 그를 던져넣은 마차 뒤를 따라갈 수 있다면,

그러면서 그의 얼굴 위에서 몸부림치는 그 눈알을 볼 수 있다면,

그 축 늘어진, 악마도 질려버릴듯한 얼굴을,

덜컹거릴 때마다 피가 그르륵 소리를 내며

거품으로 오염된 폐로부터 솟아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면,

결백한 혓바닥에 난 불치의 사악한 종기에 닿은

쓰디쓴 새김질거리처럼,─

친구여, 만약 그렇다면 네가 그토록 높은 열의로

절망적인 영광에 혈안이 된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을,

그 오래된 거짓말: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은

달콤하고도 바람직하다는 것.

 

─ Wilfred Owen, 'Dulce et Decorum 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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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家系 · 1969

 

1

 

   그해 늦봄 아버지는 유리병 속에서 알약이 쏟아지듯 힘없이 쓰러지셨다. 여름 내내 그는 죽만 먹었다. 올해엔 김장을 조금 덜 해도 되겠구나. 어머니는 남폿불 아래에서 수건을 쓰시면서 말했다. 이젠 그 얘긴 그만하세요 어머니. 쌓아둔 이불에 등을 기댄 채 큰누이가 소리질렀다. 그런데 올해에는 무들마다 웬 바람이 이렇게 많이 들었을까. 나는 공책을 덮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 잠바 하나 사주세요. 스펀지마다 숭숭 구멍이 났어요. 그래도 올 겨울은 넘길 수 있을 게다. 봄이 오면 아버지도 나으실 거구. 風病에 좋다는 약은 다 써보았잖아요. 마늘을 까던 작은누이가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지만 어머니는 잠자코 이마 위로 흘러내리는 수건을 가만히 고쳐 매셨다.

 

2

 

   아버지. 그건 우리 닭도 아닌데 왜 그렇게 정성껏 돌보세요. 나는 사료를 한줌 집어던지면서 가지를 먹어 시퍼래진 입술로 투정을 부렸다. 농장의 목책을 훌쩍 뛰어넘으며 아버지는 말했다. 네게 모이를 주기 위해서야. 양계장 너머 뜬, 달걀 노른자처럼 노랗게 곪은 달이 아버지의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이리저리 흔들 때마다 나는 아버지의 팔목에 매달려 휘휘 휘파람을 날렸다. 내일은 펌프 가에 꽃 모종을 하자. 무슨 꽃을 보고 싶으냐. 꽃들은 금방 죽어요 아버지. 너도 올봄엔 벌써 열 살이다. 어머니가 양푼 가득 칼국수를 퍼담으시며 말했다. 알아요 나도 이젠 병아리가 아니예요. 어머니. 그런데 웬 칼국수에 이렇게 많이 고춧가루를 치셨을까.

 

3

 

   방죽에서 나는 한참을 기다렸다. 가을 밤의 어둠 속에서 큰누이는 냉이꽃처럼 가늘게 휘청거리며 걸어왔다. 이번 달은 공장에서 야근 수당까지 받았어. 초록색 추리닝 윗도리를 하나 사고 싶은데. 요새 친구들이 많이 입고 출근해. 나는 오징어가 먹고 싶어. 그건 오래 씹을 수 있고 맛도 좋으니까. 집으로 가는 길은 너무 멀었다. 누이의 도시락 가방 속에서 스푼이 자꾸만 음악 소리를 냈다. 추리닝이 문제겠니. 내년 봄엔 너도 야간 고등학교라도 가야 한다. 어머니. 콩나물에 물은 주셨어요? 콩나물보다 너희들이나 빨리 자라야지. 엎드려서 공부하다가 코를 풀면 언제나 검댕이가 묻어나왔다. 심지를 좀 잘라내. 타버린 심지는 그을음만 나니까. 작은누이가 중얼거렸다. 아버지 좀 보세요. 어떤 약도 듣지 않았잖아요. 아프시기 전에도 아무것도 해논 일이 없구. 어머니가 누이의 뺨을 쳤다. 약값을 줄일 순 없다. 누이가 깎던 감자가 툭 떨어졌다. 실패하시고 나서 아버지는 3년 동안 낚시질만 하셨어요. 그래도 아버지는 너희들을 건졌어. 이웃 농장에 가서 닭도 키우셨다. 땅도 한 뙈기 장만하셨댔었다. 작은누이가 마침내 울음을 터뜨렸다. 죽은 맨드라미처럼 빨간 내복이 스웨터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러나 그때 아버지는 채소 씨앗 대신 알약을 뿌리고 계셨던 거예요.

 

4

 

   지나간 날들을 생각해보면 무엇하겠느냐. 묵은 밭에서 작년에 캐다 만 감자 몇 알 줍는 격이지. 그것도 대개는 썩어 있단다. 아버지는 삽질을 멈추고 채마밭 속에 발목을 묻은 채 담배를 태셨다. 올해는 무얼 심으시겠어요? 뿌리가 질기고 열매를 먹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심을 작정이다. 하늘에는 벌써 튀밥 같은 별들이 떴다. 어머니가 그만 씻으시래요. 다음날 무엇을 보여주려고 나팔꽃들은 저렇게 오므라들어 잠을 잘까. 아버지는 흙 속에서 천천히 걸어나오셨다. 봐라. 나는 이렇게 쉽게 뽑혀지는구나. 그러나, 아버지. 더 좋은 땅에 당신을 옮겨 심으시려고.

 

5

 

   선생님. 가정 방문은 가지 마세요. 저희 집은 너무 멀어요. 그래도 너는 반장인데. 집에는 아무도 없고요. 아버지 혼자, 낮에는요. 방과 후 긴 방죽을 따라 걸어오면서 나는 몇 번이나 책가방 속의 월말고사 상장을 생각했다. 둑방에는 패랭이꽃이 무수히 피어 있었다. 모두 다 꽃씨들을 갖고 있다니. 작은 씨앗들이 어떻게 큰 꽃이 될까. 나는 풀밭에 꽂혀서 잠을 잤다. 그날 밤 늦게 작은누이가 돌아왔다. 아버진 좀 어떠시니. 누이의 몸에서 석유 냄새가 났다. 글쎄, 자전거도 타지 않구 책가방을 든 채 백 장을 돌리겠다는 말이냐? 창문을 열자 어둠 속에서 바람에 불려 몇 그루 미루나무가 거대한 빵처럼 부풀어오르는 게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날, 상장을 접어 개천에 종이배로 띄운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6

 

   그해 겨울은 눈이 많이 내렸다. 아버지, 여전히 말씀도 못 하시고 굳은 혀. 어느 만큼 눈이 녹아야 흐르실는지. 털실 뭉치를 감으며 어머니가 말했다. 봄이 오면 아버지도 나으신다. 언제가 봄이에요. 우리가 모두 낫는 날이 봄이에요? 그러나 썰매를 타다 보면 빙판 밑으로는 푸른 물이 흐르는 게 보였다. 얼음장 위에서도 종이가 다 탈 때까지 네모반듯한 불들은 꺼지지 않았다. 아주 추운 밤이면 나는 이불 속에서 해바라기 씨앗처럼 동그랗게 잠을 잤다. 어머니 아주 큰 꽃을 보여드릴까요? 열매를 위해서 이파리 몇 개쯤은 스스로 부숴뜨리는 법을 배웠어요. 아버지의 꽃 모종을요. 보세요 어머니. 제일 긴 밤 뒤에 비로소 찾아오는 우리들의 환한 家系를. 봐요 용수철처럼 튀어오르는 저 冬至의 불빛 불빛 불빛.

 

─ 기형도, <위험한 家系 ·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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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망아지 토끼

  오리치를 놓으려 아배는 논으로 내려간 지 오래다

  오리는 동비탈에 그림자를 떨어트리며 날어가고 나는 동말랭이에서 강아지처럼 아배를 부르며 울다가

  시악이 나서는 등뒤 개울물에 아배의 신짝과 버선목과 대님오리를 모두 던져버린다

 

  장날 아침에 앞 행길로 엄지 따라 지나가는 망아지를 내라고 나는 조르면

  아배는 행길을 향해서 큰 소리로

  ─ 매지야 오나라

  ─ 매지야 오나라

 

  새하려 가는 아배의 지게에 지워 나는 山으로 가며 토끼를 잡으리라고 생각한다

  맞구멍난 토끼굴을 아배와 내가 막어서면 언제나 토끼새끼는 내 다리 아래로 달어났다

  나는 서글퍼서 서글퍼서 울상을 한다

 

- 백석, <오리 망아지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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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사랑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 것이다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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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

내가 너무나도 쓰레기같아서 잠이 안 오는 그런 밤이 있다. 그런 밤에는 다리가 여럿 달린 흉측한 그리마 한 마리가 벽을 가로질러 달아나고, 나는 굳이 휴지를 둘둘 뭉쳐 꾹 눌러 죽이고서는 누가 누구를 죽였는지 누가 죽었어야만 했는지 궁금해한다. 선풍기 소리가 머리를 꽉 채워서 시끄러운 여름밤.

 

요즈음 나는 아무래도 내 안의 곤충들과 싸우고 있나 보다.

 

흉측하지만, 존재하기를 그만둘 이유는 없는 것들. 끊임없이 출몰하는 것들. 이 공간의 주인이지만, 헤드폰을 쓰고 입바른 소리를 하는 별 것도 아닌 동물에게 쫓겨다닐 뿐이다. 항상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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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대로 살기

어떤 사람들은 원하는 대로 산다. 사방을 둘러싼 의무의 벽 속에서도, 그나마 하고 싶은 걸 한다. 밥값을 아껴서 딸애 학원비로 쓰기도 하지만, 원해서 그리 하는 것이다. 밥값을 아끼는 것보단 딸애 학원을 못 보내는 게 더 괴로운 것이다. 괴로움을 피하고자, 그렇게 한다. 그들은 괴로움을 피하고자 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진짜로 원하는 걸 찾아 나선다. 그들이 보기에는, 원하는 대로 사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사실 그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로 원하는 걸 찾는 사람들은 원하는 대로 사는 사람들을 비웃는다.

 

원하는 대로 사는 사람은 항상 원하는 대로만 산다. 주어진 조건 아래서는 원하는 대로만 산다. 그러나 진짜로 원하는 걸 찾는 사람들은 결코 진짜로 원하는 것을 찾아내지 못한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것을 하고 살 뿐이다.

 

물론 조건이란 건 변화한다. 그러나 변화의 원인은 절대로 예측할 수 없다. 여기에 매달리는 것은 미신이다. 대신에, 우리에겐 학문-종교가 필요하다.

 

진짜로 원하는 것을 찾는 사람들은 일상을 견뎌내지 못한다. '의미 있는' 어떤 일의 발견은 그 일 이외의 모든 일의 의미를 삭제한다.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는 말은, 예외적인 능력 없이는 공허한 말이다. 의미를 겹겹으로 쌓아 두텁게 만드는 화려한 수사들에 속고만 살 수는 없다. 이점에서, 책은 꼭 읽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쉽게 속이기 때문에.

 

악세사리라고, 이 모든 게. 나는 치장하는 중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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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

 

이 문장의 의미는 명확하지 않다.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신이 없다면"이라는 조건절로 은근슬쩍 가리고 있는 신의 존재여부에 대한 작가(도스토예프스키)의 생각이고, 또 하나를 들자면, 만약 다른 텍스트를 활용해서 신에 관한 작가의 입장을 밝힌다 하더라도 이를 저 문장에 적용시켰을 때 도출되는 직설적 결론이 저 문장의 의미를 온전히 보존하고 있는가의 여부이다. 다시 말하면, 도스토예프스키가 저 명제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신은 없으므로 모든 것이 허용된다", 또는 "신이 있으므로 모든 것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두 개의 문장 중 어느 것과도 정확히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이 명제를 제시한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이반에게 가 보자. 물론 이 말을 하면서 이반이 가졌던 생각과 작가의 생각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 불일치 자체가 곧 작가의 생각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도 있다. 이반은 일단 무신론자다. 그러나 신을 부정하지는 않는 무신론자라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반은 신이 꼭 필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반이 볼 때 우리 인간들은 본성적인 기질상 우리의 자유를 견뎌내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중요한 어떤 일을 오로지 우리의 판단에 의거해 결정해야 한다는 중압감(그리고 아마도 그에 따르는 책임감)을 이겨내지 못한다. 인간은 단순히 자유로운 존재라기 보다 자유를 선고받은 존재다. 우리의 자유는 우리의 짐이다.

 

따라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마땅한 전능한 신의 존재는 인간의 보다 나은 삶에 필수적이다. 신은 인간에게서 자유를 빼앗고 복종을 강요하지만, 사실 인간은 기꺼이 자신의 자유를 헌납하고 신 앞에 바짝 엎드릴 준비가 되어 있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여야 더욱 해방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인간에게는 자유로부터의 해방이 가장 절실한 과제다. 요컨대, 이반은 신이 없다고 믿지만 동시에 신이 필요하다고 믿으며, 신의 필요성에 대한 그의 믿음이 신의 존재여부에 대한 그의 판단을 압도한다. 신은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신은 존재해야만 한다.

 

따라서 이반에게서 위의 명제는 다음과 같은 보충적인(동시에 중심적인) 의미를 갖는다. 만약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되므로, 인간은 그와 같은 절대적 자유를 견뎌내지 못하고 자멸할 것이다. 그러므로 신은 인간의 보존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

 

이와 같은 제안은 다소 기만적이다. 왜냐하면 사실은 ①신이 존재하지 않지만, 일반 사람들은 이를 알 필요가 없고 그저 ②신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를 견디지 못하는 일반 사람들에게 이를 적용할 때 전자(①)는 후자(②)의 아래에 억압되어 있지만, '신의 부재'를 알고 있는 이반 자신에게 이 모순적 명제를 들이밀면, 억압되었던 '신의 부재'는 결코 완전히 소멸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반드시 남아서 이반의 자의식(우월감)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부터 이 기만적 명제의 의미는 삐걱거리게 된다.

 

이 명제의 의미가 결국 파열하게 되는 지점은, 의미화될 수 없는 어떤 것, 곧 '실재'가 이반의 명제에 틈입하게 되는 바로 그 순간이다. 상징계 안에서 신의 부재는 엄연한 사실이며, 이 사실과 윤리적 강령이 가까스로 봉합되어 있는 것이 이반의 명제였다면, 작가는 이 봉합의 끝 매듭을 살짝 건드리므로써 '사실'이란 상징계 안의 어떤 것에 불과하다는 점, 그리고 그 사실은 실재의 어떤 것이 불가피하게 누락되었기 때문에(의미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사실로써 존재할 수 있었다는 점을 폭로한 것이다. 끝 매듭이 풀린 봉합은 단번에 해체되었다.

 

그 실재는 곧 스메르쟈코프의 범죄이다. 이반의 '사상적 아들'인 스메르쟈코프는 "모든 것이 허용되어 있으므로" 그냥 한 번 표도르 카라마조프(이반의 아버지)를 죽여 본다. 이반은 자신의 이론이 '실제로' 아버지의 몸 위에서 시연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조차 (상징계 안에서는) 할 수 없었으므로,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미쳐버리고 만다(상징계로부터 벗어남). 작가인 도스토예프스키는 바로 여기에서 이렇게 이반을 단죄하므로써 이반의 명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반의 단죄는 '신의 부재'라는 사실의 거부를 의미한다(①의 소거). 또한 상징계의 한계와, 상징계는 실재의 배제를 통해 구조화되어 있다는 것, 따라서 그렇게 배제된 부분이 사실은 상징계 전체의 의미를 좌우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볼 수도 있다. 이반은 자신의 아버지의 육체가 '모든 것이 허용된' 인간의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실재)을 의도적으로 배제함으로써 자신의 이론(상징계)을 구성했다.

 

'신의 부재'가 부정됨으로써 도스토예프스키의 저 명제는 분명하게 유신론으로 읽힌다. 또한 이론이 아닌 실재의 신앙, 실재의 윤리학으로도 읽힌다. 우리의 삶(과 신앙)에는 가타부타를 따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삶에 대한 이론은 그러한 것들의 배제를 매개로 해서 구성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바로 이론화할 수 없는 것들, 이론의 찌꺼기, 곧 순수한 삶 그 자체이다. 윤리는 직접적으로 삶에 적용되는 것이다.

 

덧) 스메르쟈코프도 (확실히 밝혀지지는 않지만) 아마 표도르의 아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반의 이론으로 침입한 실재, 곧 그의 이론을 지탱하면서 결코 이론화되지는 않았던 가장 근본적인 사실은 바로 '부친살해'가 된다. (스메르쟈코프가 표도르의 아들이 아니더라도, 결과적으로 이반의 사상에 의해 살해된 것이므로 부친살해가 맞다고 볼 수도 있다) 따라서 프로이트가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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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인간

1. 전에 미당에 관한 고종석의 글을 인용했었다. 정치적으로(혹은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못했던 미당의 삶과, 문학적으로 최고 수준의 성취를 보여주는 그의 시를, 모순 없이 일관되게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 혹은 그렇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 혹은 일관된 설명을 위해 사실을 훼손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요지로 하는 글이었다.

 

2.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 도스토예프스키를 넘어선다'는 말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머리와 손으로 위대한 언어를 쏟아내지만, 그것이 인간으로서의 자기 자신의 작품은 아닐 수 있다는 것. 즉, 자기가 썼되 그 결과물에는 자신이 표현/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죄와 벌>>은 누구의 사상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손을 빌어 세상에 외출한 것일까. 그 누구가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라면, 그는 '인간 도스토예프스키'보다 깊고 풍부하며 복잡하게 사고할 줄 아는, 그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일까?

 

3. 텍스트에서 작가의 무의식의 징후를 발견할 수 있는가? 그 작가는 인간으로서의 자신과 구별되는가? 징후는 작가에게만 적용되는가? 작가는 이 세상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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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

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 | 원제 Hegel (2000) 

 

 

정   가 : 48,000원

출간일 : 2006-07-31 | ISBN : 8956440832
양장본 | 1088쪽 | 233*162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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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되기 전에 사 놓아야 할 텐데, 가격과 분량이 너무 무겁다. '이제이북스'는 (아주 약간 과장해서) 숭배받아 마땅한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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