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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8/14
    사랑방(2)
    pug
  2. 2006/08/12
    sweet is the melody
    pug
  3. 2006/08/08
    감사
    pug
  4. 2006/08/05
    2006년 8월
    pug
  5. 2006/08/03
    알바
    pug

사랑방

음악을 모아두는 곳을 마련했어요.

 

너무 좋아서 (누군가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생길 때마다, 그저 혼자라도 듣고 또 들으면서 끙끙대기만 했었는데, 이런 방법이 있었네요. 네이버에 새로 블로그를 만들어서 열심히 노래들을 수집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심심하면 들러주세요.

 

요 옆의 <놀러오세요~>를 클릭하시고, "뮤직뮤직사랑방"을 또 한 번 클릭하시면 됩니다.^^

 

이게 다, 아래 애슬린 데비슨의 노래 덕분이에요. 이렇게 새 집까지 장만할 줄이야. 하지만 자꾸 이렇게 말하면 기대가 너무 커져서 노래가 그다지 좋게 들리지 않을 수도 있으니... 음, 노래가 사실 별로 좋지는 않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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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 is the melody


 

aselin debison - sweet is the melody(2002)

 

쥬얼 이후로 이런 느낌은 처음인 듯.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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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어찌어찌하다가 생각났는데, 예전에(대학에 오기 전에) 끄적거렸던 것들을 폴더 하나에 모아서 그걸 숨김 파일과 같은 형식으로 속성을 변경해서 "내 문서" 폴더 아래에 쳐박아 두었었다. 물론, 끄적거렸던 것들 중에서도 숨겨야만 했던 것들, 그러니까 은밀한 고민이나 비밀, 개똥철학 같은 것들이 여기에 들어있다. 그런 게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다가, 최근에 발견했다.

 

어제는 인터넷이 안 돼서 하릴없이 쭉 읽었는데, (예상대로) 매우 재미있었다. 과거의 나를 간접적으로나마 다시 보는 일은 참 간질간질하면서도 스릴있다. 부끄러우면서도 대견하다. 이런 글쪼가리들도 나중에 보면 그런 느낌을 줄까? 언제까지 그럴까. 나는 언제까지 변할까. 이런 변화도 성장일까.

 

이런 글이 있다. 2000년 9월 12일에 썼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1 가을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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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이 복잡해 졌다. 당연한 일이지만...... 무엇을 해도 머리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없으니 살아서 더 오래 숨쉬는 만큼 머리속이 복잡해지는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는 다르겠지. 모든 일을 머리를 쓰며 하려고 하는 사람은 그만큼 더 복잡해 질 수밖에. 타고난 성격이라 고칠 수는 없어도 숨길 수는 있다. 남을 의식하며 숨기려고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복잡한 사고 과정중의 하나가 아닐까? 이렇게 따지면 난 머리속이 복잡해지기 위해 태어났나보다. 남들은 '이중인격'이라 말하지만 난 나만의 신조가 있다. 'Grin and Bear it' - 웃으며 참자는 말이다. 내 본마음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 남들에게 알려지지만 않는다면 난 평생 '다듬어진 나'로 살아 갈 수 있는 것이다. 이미 반년 동안은 잘 버텨왔던 일이고 앞으로도 자신이 있다. 이미 밝혔듯이 난 머리속이 복잡해지기 위해 태어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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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는 특히 '이중인격'이라는 말에 집착했던 것 같다. 나 자신을 이중인격자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그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여기기도 했다. 조금은 낙관적인 갈등이었나보다. 다음은 같은 해 11월 22일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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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나의 행동기술의 범위와 수준은 중학교 3학년 1학기 말 때를 절정으로 하고 있다. 나는 유머있어 보였으며 친근해 보였고 카리스마있어 보였으며 지적인 듯이 보였고 사려깊은 것처럼 보였고 남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는 것처럼 보였으며 남이 힘들어 할 때 같이 힘들어 해 주는 것처럼 보였고 자존심있어 보였고 인정할 것은 인정할 줄 아는 듯이 보였다. 나는 나와 관계있는 모든 사람에게 잘 대해 주었고 그 모든 사람들이 나에 대해 나쁜 감정이 없으리라는 것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는 한 편과 다른 편의 중재적 역할을 하였고 그 어느 쪽에 속하든지 어색하지 않았으며 나와 너무도 다른 사람들을 잘 이해했고 나와 뜻이 맞는 사람들을 앞장서서 잘 이끌어 나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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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부분은 너무 재수없어서 생략. ㅎㅎ

 

아, 나는 이렇게 살았구나.

 

똑같은 것 같다. 지금이랑. 저게 다 해당된다는 건 아니고, 그냥 생각하는 방식이라든지, 어떤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이라든지. 혹은 어떤 기질이나 성향이.

 

그냥 이렇게 멍하니 서서, 어디로부터 왔나, 어디로 가고 있나, 한 번쯤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이 짓을 너무 많이 해서 문제인 것 같기도 하지만.

 

 

이건 고2 여름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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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목적과 장래 희망…… 삶의 목적을 정해 놓고 삶을 시작한다는 것도 참 우스운 이야기다. 삶을 사는 과정에서 느끼고 깨닫는 것이리라. 바로 지금, 난 장래희망이 불분명하다. 내가 커서 무엇을 해야겠다는 확고한 개념이 세워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런 것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물론 지금도 하고 싶어하는 것도 있고, 되고 싶은 것도 있다. 하지만 어느 때 부턴가 높다랗기만 한 현실의 장벽을 실감하게 되고, 어쩌면 나 자신이 결국 현실과 타협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만큼 무엇인가가 꼭 되어야 하겠다는 욕심이라든가 야망이 없어졌다는 말이다. 욕심은 꼭 필요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자신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가치를 지향하려는 욕심을 야망이라 한다. 아집이나 독선 따위와는 다른 것이다. 야망이 없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성취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성취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청소년기에 이런 욕심이 없다는 것은 자신이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눈부신 가능성을 썩혀버릴 수 있는 위험한 행위인 것이다. 청소년기는 그것이 불가능함을 먼저 생각하기 보다는 일단 그것에 도전해 보는, 가장 용기있고, 또 아름다운 인생의 시기이기에…… 하지만 나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이런 생각을 한번 쯤 해 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즉, 이것이 나를 잠시 거쳐가는 생각일 뿐인 것을 나 역시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참 재미있다. 거쳐가는 생각인 줄 알면서도 그것에 신경을 쓰고. 그만큼 인간은 무기력한 존재일 것이다. 다행히 나는 왜 내가 청소년기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이런 생각이 거쳐가는 과정에서 그것이 나에게 무엇을 남기고 가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성공 ― 나는 이 단어에 처음으로 회의를 느낀 것이다. 그것이 아무 의미없는 물질적 충족만을 구하는 행위임을 - 그리고 그것의 종점임을 - 어렴풋이 알아챈 것이다. 겨우 이따위 물질적 풍요를 나의 생의 목적으로 세우기에는 마음 한 구석이 너무나 아쉽기 때문이다. 나의 생의 목적은 '성공'이 아니다. '인격의 완성'이다. 아니, 그보다는 평생을 두고 인격의 완성을 위해 자신을 도야하는 한 인간의 평온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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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좀 슬프다. 이건 겉으로만 단호할 뿐, 체념의 정서가 그득하다. 이런 생각은, 그 때의 내 감정을 아직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까. 아릿한 기억.

 

그 시절에 난 왜 그리도 많은 것에 치이면서도 끊임없이 뭔가를 갈구하고 받아들이려 했을까. 그러면서도 왜 나를 둘러싼 악조건보다도 그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나의 무기력을 더 미워했을까. 미워하면서도 그걸 끝끝내 감싸안고 어쩔 줄 몰라했을까. 내가 아무런 힘이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라도 분명하게 만들어 놓음으로써 얻었던 그 만족감, 그런 만족감이 내가 하루 하루를 버텨내는 유일한 원동력이었다니. 이 고민들은 이제와 모두 부질없는 것이 되었기에 돌아갈 곳을 잃고 허둥대는 작은 짐승처럼, 보기에 못내 안쓰럽지만, 그보다 더 견딜 수 없는 것은 이들이 나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내 몸집보다도 더 커다란 짐을 등에 지고 낑낑대는 나의 모습... 작은 방에서 허리를 굽히고 뭔가를 끄적이며 한숨을 내쉬던 그 시절의 내가 한없이 못나 보이고 바보같고 철없고... 가끔은 사랑스럽다.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선사해준 것은 누구일까. 누구인지 모르지만 감사드린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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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의 내 글을 기억하는지. / 너무나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있고, 내가 그 일을 해야 할 의무도, 할 수 있는 권리도 가지고 있지만, 나는 그것을 하지 않겠다는.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나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라는. …… 이제 자명한 것은, 나의 한계는 '태생적' 한계가 아니라, '종교적', 또는 '신앙적' 한계라는 것이다. 굳이 한계라는 말을 사용한 이유는, 정말 나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선택할 수 없는 기로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 한없이 무지하고, 나약한 자신을 발견했다.  …… 빛이 닿지 않는 어두컴컴한 곳에서, 나는 조그만 희망을 아껴서 먹고 사는 한 마리의 작은 짐승이다. 나를 이 세상에 보내주신 분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하고, 그 뜻을 따르고 싶어 하지만, 너무나 무지해서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그래서 좌절하지만,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의 사랑을 먹고 연명하는, 언젠가는 빛을 보게 되리라는 마음 속 깊은 소망을 안고 사는, 한마리의 작고 순한 짐승이다. […] (2003년 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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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bjork - debut(1993)

"비트와 현", 그리고 목소리.

 

tortoise - tnt(1998)

멜로디 없는 장난감나라. 장난감들은 용도를 알 수 없다.

 

mahavishnu orchestra - birds of fire(1972)

진정한 자유. 'one word'

 

the velvet underground - white light / white heat(1967)

뭐지? 이 의외의 편안함은...

 

radiohead - pablo honey(1993)

평범한 밴드의 괜찮은 작품. 혹은, 라디오헤드는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the clash - london calling(1979)

딱히. 가사와 함께 다시 들어야 할 듯.

 

radiohead - the bends(1995)

결코 독특하다고 할 수는 없는 밴드의 아주 뛰어난 작품. 절정의 균형감각.

 

the doors - the doors(1967)

그의 목소리는 다른 선택지를 제시하지 않는다.

 

skunk anansie - paranoid & sunburnt(1995)

견디기 힘든 불쾌한 목소리를 가진, 두말할 필요 없는 최고의 보컬. 메탈도 듣고 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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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알바가 모두 끝나는 바로 그 순간에 내 블로그에는 3,000번째 손님이 다녀간 것이다... 이런 기가 막힌 우연의 일치에다 알바로부터의 해방감까지 더해지면서 내 심장은 불이라도 붙은 듯 쿵쾅거리며 머리카락이나 손톱 끝 모세혈관까지 들뜬 감정을 배달하고, 이럴 때일수록 더욱 침착하게 마음을 가다듬다보면 어느새 몸서리쳐지게 배가 고픈 나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덧) 디카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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