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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6/08/24

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8/24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pug
  2. 2006/08/24
    곤충
    pug
  3. 2006/08/24
    원하는 대로 살기
    pug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사랑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 것이다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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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

내가 너무나도 쓰레기같아서 잠이 안 오는 그런 밤이 있다. 그런 밤에는 다리가 여럿 달린 흉측한 그리마 한 마리가 벽을 가로질러 달아나고, 나는 굳이 휴지를 둘둘 뭉쳐 꾹 눌러 죽이고서는 누가 누구를 죽였는지 누가 죽었어야만 했는지 궁금해한다. 선풍기 소리가 머리를 꽉 채워서 시끄러운 여름밤.

 

요즈음 나는 아무래도 내 안의 곤충들과 싸우고 있나 보다.

 

흉측하지만, 존재하기를 그만둘 이유는 없는 것들. 끊임없이 출몰하는 것들. 이 공간의 주인이지만, 헤드폰을 쓰고 입바른 소리를 하는 별 것도 아닌 동물에게 쫓겨다닐 뿐이다. 항상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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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대로 살기

어떤 사람들은 원하는 대로 산다. 사방을 둘러싼 의무의 벽 속에서도, 그나마 하고 싶은 걸 한다. 밥값을 아껴서 딸애 학원비로 쓰기도 하지만, 원해서 그리 하는 것이다. 밥값을 아끼는 것보단 딸애 학원을 못 보내는 게 더 괴로운 것이다. 괴로움을 피하고자, 그렇게 한다. 그들은 괴로움을 피하고자 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진짜로 원하는 걸 찾아 나선다. 그들이 보기에는, 원하는 대로 사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사실 그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로 원하는 걸 찾는 사람들은 원하는 대로 사는 사람들을 비웃는다.

 

원하는 대로 사는 사람은 항상 원하는 대로만 산다. 주어진 조건 아래서는 원하는 대로만 산다. 그러나 진짜로 원하는 걸 찾는 사람들은 결코 진짜로 원하는 것을 찾아내지 못한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것을 하고 살 뿐이다.

 

물론 조건이란 건 변화한다. 그러나 변화의 원인은 절대로 예측할 수 없다. 여기에 매달리는 것은 미신이다. 대신에, 우리에겐 학문-종교가 필요하다.

 

진짜로 원하는 것을 찾는 사람들은 일상을 견뎌내지 못한다. '의미 있는' 어떤 일의 발견은 그 일 이외의 모든 일의 의미를 삭제한다.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는 말은, 예외적인 능력 없이는 공허한 말이다. 의미를 겹겹으로 쌓아 두텁게 만드는 화려한 수사들에 속고만 살 수는 없다. 이점에서, 책은 꼭 읽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쉽게 속이기 때문에.

 

악세사리라고, 이 모든 게. 나는 치장하는 중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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