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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8 풀죽은 식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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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놀러갔다왔다. 막상 많이 놀지는 못했지만 근 한달 만에 남자친구 만나고 정말 오랫만에 데이트 같은 데이트도 하고 늘어지게 늦잠도 자고 여러가지 많이 먹고 마셨다. 안타깝게도 가게 일도 많이 도왔지만. 에구 삭신이야...

그러고 집에 왔더니, 주차를 하고 내리는 순간 부터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울산은 대체로 흐리고 비도 간간히 뿌리면서 그리 덥지 않은 날씨였던 것 같은데, 익산은 계속 건조하고 더웠던 걸까?

집에 와보니 베란다에서 키우는 식물들이 완전히 풀이 죽어있는 것이 아닌가. 급히 물을 공급해주었지만, 유난히 물을 좋아하고 플라스틱 화분에 들어있던 큰 푸미라 한놈과 작은 트리안 한놈은 아예 유명을 달리한 것 같다. 일단 저면관수를 해주고 안되면 삭발을 해봐야겠지만 그런다고 살아날런지... 나머지 애들은 겨우 살린 듯 싶다. 특히 거의 데쳐진 꼴로 누워있던 바질들이 걱정이었는데, 어제 밤에 물을 주고 오늘 보니 다행히 다들 빳빳이 다시 살아났다. 다들 통통하고 귀엽게 잘 자라고 있었는데, 그대로 저세상으로 보냈다면 참 안타까울 뻔... 신기한 건, 같은 화분에서 크고 있던 이탈리안 파슬리는 별 영향 없이 그 동안도 잘 자랐더라는 것이다. 아무래도 그놈은 좀 더 건조한 환경을 좋아하는 것 같다.

 

요즘 집 문제가 씨끄러워서 곧 이사갈 생각을 하니 집에는 물론이고 화분들에도 정이 많이 떨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이사가려고 보니 다 짐으로 보이기도 하고, 얘네들하고 같이 오래오래 살겠거니 하고 공을 들여놓았던 집에서 난데없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 우울했었다. 그런데, 집은 팔리질 않고, 나의 주거지는 앞이 막막하고, 그냥 추석 이후를 기대할 수 밖에 없을 듯. 그렇다고 애들을 죽일 뻔 했으니 반성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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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이 다 떨어져서 퇴근길에 텃밭에 가봤다. 아, 날 저물 때 쯤의 텃밭은 참으로 처참한 모습. 2주 전 쯤, 빙빙 도는 머리를 끌어앉고 교훈언니와 빡센 노동을 했었건만, 그렇게 덩쿨을 정리하고 끈을 높여 세워놓은 오이와 호박이 다 말라죽어있었다. 그 밖에 가지와 토마토도 다 말라죽어 있었으니, 이게 무슨 조화인지... 지난주가 식물들에게 무슨 악재라도 있었던 걸까? (흠... 그렇게 보기엔 잡초들의 생명력은 아직도 여전한데...)

지금 우리 밭에는 수많은 잡풀들이 무성하고 벌레먹은 깻잎 역시 나날이 덩치를 불리고 있다. 고추들도 아직 살아남아있긴 하지만 이제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듯. 피망 몇 그루는 아직 좀 건재하다. 호박은 우리가 미쳐 정리하지 못한 줄기 하나만 생명을 유지하며 나에게 귀여운 먹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아마도 우리 밭은 이제 거의 죽은 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내년에도 텃밭을 하게 된다면... (희망연대가 더이상 텃밭 사업을 못할 수도 있고, 나와 교훈언니에게는 밭을 안줄 수도 있고, 교훈언니가 못하겠다고 발뻄을 할 수도 있겠지만... 암담...) 꼭 처음에 비닐 멀칭을 다 해두고, 호박은 미리 덩쿨이올라갈 길을 만들어서 시작할 것이며, 장마 전후에 풀들을 잘 뽑아야겠다. 이번 밭의 패인 중 하나는, 가장 바빠야 했던 시기에 개관 준비를 하느라 밭에 소홀했던 것. 그리고 때맞춰서 애들이 자랄 길을 만들어주지 못한 것이었던 것 같다.

텃밭이 집 바로 앞에 있다면 오죽이야 좋으련만 그래도 난 이렇게 뭔가를 가꾸고 따먹는 맛이 좋다. 내년에도, 어떻게 되겠지?

 

그나마 상황이 좋았을 때의 텃밭 사진이라도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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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재미있는 소식도, 희망적인 무언가도 없는 요즘이다.

계속 속도 메슥거리고 머리도 어질어질...

뭔가 쉽고도 재미있는 일이 있었으면 싶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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