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기호와 리얼리즘

 

일러스트레이터 정준호씨 작화집을 보다 읽은 얘기(를 기억에 의존해 내멋대로 옮김):
"해부학을 통한 인체 뎃생 능력은 중요함.
본인도 공부 멀리하고 있으면 무뎌져서 얼마만에 한번씩 막 다시 파서 그려보며 복습함.
'진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모른 채 (특히나 일본 만화의)관습적으로 안착된 '기호'로만 표현하는 것에 멈추면 스스로 발전을 멈추는 거고 표현도 얕아짐."
 
내 보기엔 이 사람 자신도 무시무시한 해부학적 지식을 체화화고 있는 사람인데, 그런데도 부족하다 하네..라고, 경각심에 조용히 고개 숙이는 기분이 들었던.
 
근데 엊그젠가, 웹상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 동인작가.
프로작가로 예를 들면 박설아님에다가 톰톰님을 좀 가미하면 딱 나올 거 같은 그림체를 지님.
즉, 2000년대 중반 이후 많이 배출된, 일본 쪽 만화 트렌드를 비교적 직접적으로 + 동시적으로 접했으며, 동인 생활을 거치는 10~20대 여성향 만화인들에게서 많이 보이는 딱 그 그림체.
특히, '딱 그 그림체'를 쓰는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입모양이네-라고 보면서 생각. 기본적으론 기쁘면서도 뭔가 겸연쩍거거나 난감할 때 나타나는 '찌글찌글 입' 말이다. 평상시일 때에도 살짝 벌린 상태임에도 치아가 가는 선으로 같이 들어가는 특유의 모양이 있고.
 
그런 익숙한 몇몇 특성들을 보면서.. 문득 우라사와 나오키님의 '인간이 초조할 때 정말 땀방울이 흘러내리나?'얘기가 포괄하는 지점이 같이 생각났고, 잠시 재고해봤지만 역시 저런 찌글찌글한 입모양은 실제 인체에선 나타날 수 없네, 역시 이것도 장르적 관습에 의한 표현이구나 생각하다가.
아, 내가 좋아하는 A작가의 늘 안타까운 '2% 부족한 점'의 적어도 일부는 어쩌면 그 때문인 것일지도..!란 생각에 도달했다.
 
A작가는 야오이로 출발했고 지금은 이른바 레이디스 코믹스 계열 작업을 많이 하는 일본 작가다. 야오이판에서든 순정판에서든 특유의 심리 묘사가 빛을 발하는 작업을 한다. 평균적이지 않다고 스스로 고민하는 유형의 내면을 지닌 캐릭터를 많이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대체로 쫓아가기 마련인 장르판의 일정 분위기에서 슬쩍 빗겨난 독특한 작품 세계를 이뤘다. 
 
그러나 소위 뎃생 실력이 탄탄한 작가는 아니다. 연출이나 표정의 많은 부분을 위에서 얘기한 '관습적 표현'에 의존하고 있는 수많은 작가들 중 하나고.
근데, 지향하고 있는 스토리나, 연출에서 독자들이 느끼기 바라는 어떤 분위기들은 불행히도 꽤 디테일하고 리얼한 현실계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관습적 표현들로도 독자들을 몰입하게 만들 수 있는, '장르'적 규칙 하에 전개되는 다른 일정 작품들과는 좀 다른 지향점이다.
 
관습에 의해 얻어진 기호적 표정들은, 좀 비약하자면 그 캐릭터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나를 표시해주는 표지판일 뿐이다. 표지판에 그려진 세모 네모로 이루어진 인간은 그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나, 비상구로 탈출하고 있나만 명확히 잘 표시해주면 된다. 게다가 장르적 규칙을 따르는 세계란 온 세상이 그렇게 상징적 픽토그램으로 꽉 찬 세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아이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너는 어떤 특정인의 인생과 기분까진 안 나타나도 상관이 없다. 그런 개별적 리얼리티가 나타나지 않아도 전혀 튀지 않는다, 온 세상이 다 픽토그램이니까.
장르는 그 안에서 자신의 규칙대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독자와 여행을 한다. 장르 독자들은 그렇게 관습적으로 기호가 정착될 정도로 쌓인 장르의 역사 전체와 함께 여행하는 셈이다. 물론 그 자체로 무궁무진한 세계이다.
 
헌데, 문제는 개별적 리얼리즘을 획득해야 할 작품의 작가가 관습적 기호로 표현할 때인 것이다.
인간 관계의 부조리, 인생의 부조리, 장르 관습이 커버하는 종류가 아닌 가슴 짓누르는 아픔, 혹은 반대로 장르 관습과 동떨어진 한적한 일상, 이런 것들은 기호적 일반성이 아닌 특정 캐릭터 누구누구라는 '존재감'이 수반되어야 한다. 세모네모로만 이루어진 인간이 아닌, 아이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그 특정 아줌마의 인생과 기분이 나타나야 할 필요성이 커진다.
 
왜냐, 안그러면 독서할 때 턱턱 걸리기 때문이다.
 
온세상이 픽토그램일 때엔 그 일부인 어떤 연출, 어떤 표정이 기호적이어도 그게 '기호'라는 것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모든 요소가 서로 밸런스가 잡혀 흘러가고 있으므로 보는 우리의 뇌가 알아서 그걸 대하드라마로, 액션 어드벤쳐물로, 순정 로맨스로 읽어주기 때문이다. 제대로 만들어진 환타지 블럭버스터 영화를 보면서는 우리가 물리법칙을 계산하고 앉았지 않게 되는 것과 같다. 그 세계 안에서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잘 짜여 있기만 하면 우리 뇌 속의 레코드 바늘은 '튀지' 않고 잘 돌아가며 훌륭히 음악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리얼리즘의 세계 중간중간에 픽토그램이 들어간다고 생각해봐라.
기호가 기호임이, 쉽게, 보인다. 바늘이 튄다. 바늘이 튀면 재생이 원활하지 못해지고, 결국 음악에 몰입할 수가 없어진다.
 
우리가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별 혼란 없이 극장에서 소비할 수 있는 것에서 보듯, 컨텐츠가 시작되고 초반 얼마간만 보면 수용자는 자신이 보고 있는 컨텐츠가 어떤 세계인지를 알아채고 거기에 채널을 맞춘다. 나무 작대기 끝에서 빛이 막 뿜어져 나와도 '마법 따윈 실존하지 않잖아'란 생각 때문에 2시간의 모험을 즐기지 못하진 않는단 얘기다.
그렇게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때문에, 만일 리얼리즘적 드라마 한가운데에서 좀비가 튀어나온다면 얼마나 튀겠나.
..뭐 사실 요샌 그런 종류의 컨텐츠도 따로 일가를 이룰 만큼 많긴 하다만. 여튼 주안점은 그런 장르적 이질감이 연출 의도가 아닌 경우라면 수용자를 컨텐츠로부터 확 이격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얘기지.
 
그런 식으로 기호가 기호임이 드러나는 경우 안타까운 중요한 점은, 작가가 ㉠을 의도하고 만든 장면이 ㉠으로 읽히는 게 아니라  .을. 의.도.하.고. 만.든. 장.면.으로 읽힌다는 점이다.
어린 아이의 그림을 보면서 '아.. 엄마를 그리려고 한 거구나'라거나 ' 이 장면은 소풍가서 재미있었단 걸 그리려고 했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A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늘 느끼는 게 바로 그거였다. '이러이러한 분위기를 의도한 거였겠군'이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ㅠㅠ그 분위기를 그냥 느끼는 게 아니라. 이야기 잡는 방식이나 캐릭터 운용, 주제의식 모두 좋아하는 작가인데 늘, 늘 보다보면 굉장히 안타깝게 뭔가가 부족하고 미진하고 그랬는데, 어쩌면 그 원인이 관습적 표현에 일부 빚지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 거였다.
 
더불어 떠오르는 게 B작가였다.
터부를 건드리는 소재 선택, 가차없이 인간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작품 세계.
하지만 캐릭터 그림체는 전형적 학원 명랑 로맨스물에 나올 거 같은 '커다란 눈에 동그란 얼굴'을 하고 있다.
천사같은 얼굴의 애들에게 악마같은 짓을 시키기 위해 그런 식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그냥 B작가의 세계 안에서 인간은 그렇게 생긴거다. 말 그대로 그림체가 그냥, 그런거다.
언젠가 에디터 일 하는 친구와 얘기하면서도 나는 '그림체와 스토리가 안어울린다'라고 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캐릭터의 표정 등에서 보이는 관습적 표현 쪽이 보다 더 원인인 거 아니었을까.
B작가 그림체의 기본 스트럭쳐가 리얼과는 거리가 있는 팬시 타입이긴 해도,  거기서도 굳이 다른 길을 가려면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장르적 그림체와 거기에 따른 표현양식'으로 입문한 뒤, 계속 그냥 '해오던 대로 '한 것이다. 발전도 오직 그 안에서만 이루어지고.
물론 이건 작가를 탓할 사안이라기엔 어렵다. 프로로서 제대로 일하려면 스타일을 확정해서 판 안에 자리잡는 게 대개의 경우 정석일 정도로 유리하다. 더군다나 자신의 방식이 먹히고 있다면,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는 건 효율 면에서 분명 현명한 짓은 아니다. 닥치는 일을 처리하기에만도 에너지가 모자라기 십상일 것이고.
 
두 작가 다.. 스토리빨과 그림빨이 바늘 튀는 불균형점을 갖고 있지만 남들과 다른 그 리얼리즘적인, 혹은 드라마틱한 스토리빨이 작가의 업계 독보성을 담보해주는 경우다. 음, B작가의 경우는 그림체 자체는 떼어놓고 보면 시장에서 먹히는 타입이므로 나와 같은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겠다. (나와 얘기를 나눴던 에디터 친구를 포함해서.)
어쨌건 밸런스 문제는 중요하다는 거..
작가가 밸런스를 잘 통제할 수만 있다면 '살인자ㅇ난감'의 경우처럼 2등신 개그체 캐릭터로 연쇄살인범 얘길 하고 있어도 독자들은 몰입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직까지 A작가는, 머릿속에선 만큼 표현하고 싶지만 딱 그렇게 그려낼 만큼의 능력은 살짜쿵 모자라서 '인갑다'까지밖엔 못하는 거 같다.. 이건 불균형이지. 진심 안타까운 일이다, 팬인 내 입장에서도..ㅠㅠ
 
하튼 그런 면에서.. 정준호씨가 얘기한 해부학적 기초란, 단지 통칭 '잘그린다'는 막연한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표현하고 싶은 걸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 실질적으로 유용한 무기겠구나-라는 게 결론이겠다. 기호가 파생되어 나오기 이전의 '원재료'를 손에 넣는 것일테니. 장르적 컨벤션 바깥의 뭔가를 하고 싶은 작가라면 더더욱이나 염두에 둬야 좋을 것이여..
트위터로 리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