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다는것

분류없음 2015/03/17 04:24

제목: "다르다"는 것 

 

어제 간만에 교회 일요일 저녁 서비스에 들렀다. 그간 토요일 이브닝 근무 때문에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었다. 자정이 넘어 집에 들어와 간단히 요기를 하고 소화를 시킨 뒤 잠자리에 들면 두 시 혹은 세 시. 이브닝 근무를 하면서 경찰을 상대하거나 클라이언트들, 동료들과 약간의 소요를 겪어 신경을 많이 쓴다거나 하면 집에 와도 그 긴장을 푸는 데 시간이 한참 걸린다. 

일요일 저녁이 되어도 대부분 피로를 회복하지 못한다. 그런저런 이유로 그간 교회에 가는 일이 곤란했다. 어제는 큰 맘 먹고 짝과 함께 저녁 서비스에 참석. 저녁 서비스는 오전과 달리 매우 캐주얼하게 진행된다. 

 

일요일 저녁 서비스에서 기타와 피아노를 치는 S라는 남자가 있는데 외양은 완전 히피다. 그가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을 데리고 왔다. 딸은 가느다란 끈만 달린 속옷같은 겉옷을 입고 노래를 불렀다. 특별찬송. 나는 옷을 켜켜이 입어도 추운데 역시 젊음은 좋다. 그 젊음(?)이 부럽다. 부담임 목사인 케빈이 니덜의 고민이나 나누고 싶은 기쁜 일은 무엇이냐 하면서 회중을 돌아다녔다. 그 고등학생 아이가 고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graduating [from] high-school"이라는 말을 했다. 나는 속으로 정규직이 되는 거, 라고 읊조렸는데... 

 

한국의 고등학생들에게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일"이 기도를 해야 할 만큼 힘들고 고민되는 일이냐고 물을 때 그들은 어떻게 대답할까. 글쎄, 잘 모르겠다. 힘들고 고민스럽고 걱정이다, 라고 대답하는 학생들도 있겠지만 아마 대부분은 "대학에 가는 것"이 더 걱정이다, 라고 말하지 않을까 싶다. 

 

북미 대륙 대부분 고등학생들은 학교 수업과 시험 외에 커뮤니티 성원으로서 어떻게 사회에 복무하고 있는지, 자신의 특기와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 어떻게 여가시간을 쓰고 있는지 입증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졸업가능한 크레딧"으로 환원해 받는다. 학생들은 대부분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의 사회서비스 영역에서 자원활동 (volunteer) 을 한다. 일정 시간 이상을 채우면 증명서 (certificates) 같은 걸 받을 수 있고 이 증명서가 있으면 크레딧을 받는다. '음, 너는 네가 살고 있는 커뮤니티를 위해 이만큼 네 자원을 쏟아부었구나. 너는 네 커뮤니티를 위한 한 사람의 어른이 되어도 괜찮겠다' 이 정도의 의미랄까? 고등학교 졸업장 (secondary school diploma) 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의미이다. "커뮤니티를 이끌 어른이 되었다"는 의미. 

 

물론 자원활동 개념이 많이 변질되기도 했다. 집에 돈이 많거나 이용할 빽이 많은 부모를 둔 학생들은 그 부모의 인적-돈적-시간적 자원을 활용해 크레딧을 축적한다. 돈도 빽도 없는 이민자들 가운데 일부 열혈 부모들은 자식들 대신 자원활동을 한다. 누구보다 열심히 자원활동을 다니시는 한국인이민자 가운데 몇몇 아주머니들의 사연. 아들이 공부하느라 바빠 자원활동할 시간이 없어 엄마가 대신 그 크레딧을 따주고 있었다. 물론 전체가 다 그러는 건 아니다. 일부 소수다. 

 

자원활동만 하면 괜찮은데 자신의 적성과 특기를 활용하여 미래의 비전을 찾아가는 활동도 해야 한다. 교외-수업 외 취미 프로그램이나 경연대회 같은 데에서 입상하면 더 좋다. 물론 크레딧을 인정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경연대회여야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담당자에게 추천서를 받으면 된다. 방학이라고 예외는 없다. 만약 외국에 나가 가난하고 비루한 제3세계 아이들을 돕는 일 같은 거라도 하면 아주 좋다. 크레딧도 받고 추천서도 받고 나중에 이력서에도 쓸 수 있다. 바쁘다. 

 

이것만이 아니다. 열다섯 살부터는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으니 맥도날드 같은 데서 알바라도 해야 스마트폰 이용료라도 낼 수 있다. 열여섯 살부터는 운전도 할 수 있으니 운전면허증도 따야 한다. 다 돈이다. 금은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는 한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바쁘다. 

 

이러니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일이 근심거리일 수밖에. 대학에 모두 다 가는 것도 아닌데, 그런데도 고등학생은 바쁘다.  

 

물론 이런 패턴도 많이 바뀌고 있다. 특히 중국, 인도, 한국에서 이민온 이민 1.5세대, 2세대들은 대부분 고등학교 졸업 뒤 대학에 진학한다. 위의 세 나라는 직접 보고 경험한 것들이 있으니 이야기할 수 있겠다. 이 나라에서 이민온 1.5세대 혹은 2세대 고등학생들은 대부분 대학 (Post-Secondary Schools)에 진학한다. 정말 "빡씨게" 공부한다. 대학에 가서도 공부만 "빡씨게" 하는 젊은이들도 있다. 공부 외의 대부분 일들은 부모님들이 해결해 준다. 언젠가 커뮤니티 인컴텍스 파일링 자원활동을 할 때였다. 엄마들이 자기 자식들 인컴텍스 자료까지 들고 오셔서 파일링 해달라고 하셨다. 이 나라에서는 어떤 사람이 18세가 넘으면 무조건 성인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인컴텍스 파일링도 독자파일로 제출해야 한다. 즉, 18세 넘은 자식이 두 명이면 나는 그 아주머니의 것과 자식 두 명, 도합 세 명 (혹은 아주머니가 남편 것까지 들고 왔을 경우 4명) 의 파일을 입력해야 한다. 문제는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일종의 개인정보 공유 동의서 같은 consent form 을 받아야 하는데 부모들이 자식들의 의사도 묻지 않고 마음대로 싸인을 한다.

"본인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요"

"괜찮아요. 제 자식이에요"

"18세가 넘으면 성인이라서 본인이 동의를 직접 해야 하는데...요"

"작년에는 그냥 했는데... 다른 선생님들은 그냥 해주는데..." 

 

어쩔 수 없이 파일을 열고 자료를 입력하면서 봤더니 자식분들이 21세, 23세에 게다가 모두 대학에 다닌다. 그리고 이들의 소득자료를 봤더니 "소득이 없다". 알바같은 것도 하지 않고 대학을 다닌다. 이 나라에서 보기 드문 경우 아니냐고, 주변에 물어봤더니 보기 "흔한" 케이스란다. 패턴이 정말 많이 바뀌고 있다. 

 

 

히피처럼 생긴 S의 그 딸은 노래를 썩 잘했다. 아마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음악 쪽으로 재능을 떨치지 않을까 그런 추측을 하게 된다. 일요일 종일을 특별찬송을 위해 할애한 그 친구는 고등학교 졸업을 위한 크레딧을 0.3점 정도는 받아가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2015/03/17 04:24 2015/03/17 04:24
Trackback 0 : Comment 0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ys1917/trackback/1043

Writ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