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에대해

분류없음 2015/10/15 01:33

 

내성 (tolerance) 을 네이버 창에 치면 친절하게 심리학사전 내용을 소개해준다. 맞는 말이다. "tolerance" 는 참으로 넓은 영역에서 좋은 의미로, 나쁜 의미로, 다양한 의미로 쓰인다. 맥락을 봐야 한다. 컬리지에서 약물 (마약) 에 대해 배울 때 "tolerance" 에 대해 내린 정의 가운데 "people become less sensitive to the substance (adaptation)" 가 있다. 자극에 대한 반응이 떨어진다는 것, 즉 그 자극에 이미 적응했다는 말이다.

 

 

어제 도서관에 책을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 동네 도서관 앞 횡단보도엔 이른바 반감음 보행자 신호 (pedestrian semi-actuated signal)가 설치되어 있다. 이미 한국에서도 보편화된 이 신호장치는 보행량이 일정치 않거나 드물 때 차량통행을 돕는 효과를 낸다고 알려져 있다. 길을 건널 때 횡단보도 앞에 있는 버튼을 누른다. 보행자가 버튼을 누르면 차량 신호기에 "정지" 신호가 뜬다. 차량은 횡단보도 앞에서 무조건 멈춰야 한다. 어제도 도서관 앞 횡단보도에서 버튼을 누르고 양 옆을 살핀 뒤 건너기 시작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승용차가 거의 무릎 앞까지 와서 끼익- 멈췄다. "fucking Chinese, go back to China!" 애써 창문 밖으로 고개를 끄집어내어놓고 소리를 지른다. 이미 나는 반쯤 건넜고 돌아볼 이유도, 관심도 없다. 더구나 "Chinese"는 나를 올바르게 설명하는 단어가 아니며 개인적으로 아직까지는 China에 갈 일도 가야할 필요도 없다. "I'm not a Chinese." 듣든 말든 상관않고 대꾸를 한 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길을 마저 건넜다. 

 

 

놀랐겠지. 갑자기 보행자가 나타났으니 놀랐겠지. 어디서 감히 보행자가 나타나, 그것도 냄새나는 차이니스가 나타나 앞길을 막는 것이냐. 힐끗 본 바로는 운전자, 조수석에 앉은 이의 외관과 영어 억양에서 남아시아에서 온 티가 난다. 아마도 그 쪽 문화에서는 차량에 우선권을 주는 모양이다. 옛날 한국사회처럼 말이다. 차가 오면 사람이 알아서 피해야 하는 문화. 놀라서 식겁해서 소리를 질렀겠지. 암, 내가 그 맘 이해한다. --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그 행동을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처음에는 "fucking Chinese, go back to China!" 따위의 말을 들으면 화가 많이 났다. 한 번은 전차에서 백인 운전자가 늙은 중국인을 저런 식으로 모욕하는 것을 보고 차량 번호를 적어 회사에 리포트한 적도 있었다. 차차 띄엄띄엄 화를 내다가 이제는 뭐랄까, 화도 안난다. 일종의 "내성"이 생긴 셈이다. 민감도가 많이 떨어진 셈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긍정적인 방향의 내성은 아니다.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다) 마치 이명박귾혜 정부가 괴상망측한 정책들을 마구 입안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기함을 토하고 분노하게 하다가 세월호라는 현실에 맞닥뜨린 뒤 절망하고 "적응하여" 사는 것처럼, 따라서 이제는 그 어떠한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게 (혹은 "못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박귾혜정부는 내성을 빠르게 돋구면서 강력한 의존성을 일궈 결국엔 사람을 사람으로서 기능하지 못하게 만드는 - 후과가 가장 지저분한 "헤로인" 같은 정부다. Heroin not Heroine.

 

2015/10/15 01:33 2015/10/15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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