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돌을놓다

분류없음 2016/10/14 23:43

 

제목: 새로운 돌을 놓았다.

 

 

드디어 이 긴 여행을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지, 그 길눈을 잡을 모퉁잇돌 (cornerstone) 을 놓았다. 지금까지 함께 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 여행길 (journey) 에 함께 할 나의 파트너, 그이에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감사하고 고맙다. 이 여행의 진정한 동반자 (cornerstone). 함께 하지 않았다면 제대로 서 있지조차 못했을 이 자갈밭 투성이의 여행길. 보통사람처럼 서글서글하고 무던하지 못한 데다가 괴상한 나를 믿고 묵묵히 지지해준 파트너가 없었다면 이 여행은 시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돌뿌리에 채여 넘어질 때마다 가만히 손을 내밀어 나를 일으켜준 사람. 고맙다. 그리고 그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 특히 K에게 감사하다. 그녀의 격려와 도움이 없었다면 이 글은 아마도 다른 방식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이제 다른 장을 여는 이 여행길에서 그들과 함께 계속 걸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달라질 것은 없다. 하던대로 하면 되겠지만, 살았던대로 살아가면 되겠지만 무엇보다 구체적인 여행의 방향, 내용을 미리 생각하고 발을 내딛을 수 있다는 차이? 지나간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처음에 밴쿠버에 1년을 예상하고 갔을 때만해도 인생의 책장이 이렇게 후르륵 넘어갈 것이라곤 예상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오롯이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것만으로도 평화로웠다. 잘 되겠지, 잘 될거야. 의지적 낙관은 오래 지속되는 법이 없다. 누구 탓을 할 수도 없고 그래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엄마는 아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시겠지. 모든 것을 니 멋대로 하는 니가 알아서 니 인생을 개척해라. 틀린 말씀은 아닌데 여전히 섭섭하기는 하다. 크리스마스, 국내선 비행기 삯이 가장 저렴한 그날 4시간 30분이 걸려 도착한 토론토의 첫 밤. 그렇게 시작되었다.

 

 

학교는 아무래도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 (comfort zone) 이다. 그리고 사회복지 분야를 공부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직업윤리 (ethic), 사람을 대하는 방식, 소통하는 법, 듣는 법... 이른바 가장 근본이 되는 내용을 체득했다. 한국에서 배웠던 - 지금까지 배웠던 모든 것은 지워버린다 (deactivating) 는 각오로 백지상태에서 시작했기에 흡수가 빨랐다. 하지만 지금까지 배웠던 것들이 있었기에 이해 또한 빨랐다. 이상적인 것 (ideality), 그것이 나의 가치 (value) 에 위배하지 않는 선에서 동의하지 않을 내용이 없었다. 하지만 현실적인 것 (reality), 그것은 달랐다. 그 둘은 끊임없이 마주보고 있으면서도 결코 만나지 못하는 평행선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와 나의 관계처럼. 아마 컬리지 생활에 앞서 돈을 벌어야 하는 생활전선에서 이 삶을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견디지 못했을 것 같다. 그래서 더더욱 파트너에게 감사하다.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진창에서 살고 있을 거예요.

 

 

2011년부터 일하던 회사에서 끊임없이 도전했던 일은 어렵게 되었다. 올해가 가장 좋은 기회였지만 그래서 여러번 두드렸지만 결과는 나와 무관한 일로 되어버렸다. 마지막에 가장 유력해보였던 그 그회조차 가장 늦게 들어온, 어머니가 회사 내 다른 프로그램의 매니저인 백인 남성에게 돌아갔다. 오만정이 다 떨어졌다고 해야 하나. 그래봤자 나만 손해다. 정을 붙이든 떼든 그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지 매니저도 회사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래, 경계를 더 멀리 분명히 설정하자. 내가 취득할 수 있는 이익에 집중하자. 그리고 작년 11월부터 일하던 회사 내 다른 프로그램의 매니저에게 그만 두겠다는 인사를 전했다. 이곳엔 나름대로 정이 들어서인지 사임 이메일을 쓴 뒤로 계속 마음이 아프다. 일종의 분리불안 (separation anxiety) 인 것 같다. 심장 저편 구석에 돌덩이가 들어있는 것처럼 묵직하고 아팠다. 어제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내내 마음이 무거워 견디기 힘들었다. 뭔가를 더 비워야하는 것 같다. 비울 것들이 아직도 많이 남은 모양이다.

 

 

10월 31일부터 정규직 노동자가 되어 새로운 직장에 출근한다. 새로운 직장은 신문에서 소셜미디어에서 간접적으로 접한 적은 있어도 인터뷰를 하기 전까지는 직접 컨택했던 적이 전혀 없는 곳이다. 그냥 다시 또 백지 (blank paper) 가 되는 게 낫다. 아무 것도 없는 백지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작은 돌을 살짝 올려놓았다. 

 

2016/10/14 23:43 2016/10/14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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