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라면

분류없음 2016/10/07 00:05

 

지난 밤에 최민수 씨 아내되는 강주은 여사의 포스를 볼 수 있다는 클립을 찾아보다가 세식구가 라면끓여먹는 씬을 보는데 갑자기 라면이 먹고 싶었다. 강력한 크레이빙. 그러나 집에 라면이 없다. 다 떨어진 지 꽤 됐는데 일전에 파트너가 아팠던 뒤로 라면을 다시 사지 않았다.

 

 

신라면 따위의 라면은 중국인 가게에 가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살 수 있는데 라벨에 디렉션이 중국어로 씌여 있어서 아무래도 잘 사지 않게 된다. 반면 한국인 가게에 있거나 캐나디언 그로셔리 샵에 간혹 있는 한국라면은 영어와 불어 버전으로 출시된다. 아무래도 중국산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강한지라 중국인 가게에서는 잘 사지 않게 된다. 가격 뿐만이 아니라 사실 맛에도 차이가 있었고 중국어 버전 상품에서는 나트륨 함량 표시를 비롯해 영양안내서를 싣지 않아 더더욱 신뢰하기 어렵다.

 

 

한국산 라면 (인스탄트 누들) 을 비롯해 중국산, 타이완산 누들에 대한 이나라 사람들의 인식은 뭐랄까. 그냥 정크푸드라고 해야 하나. 피자나 고기파우치 같은 인식이 강하다. 사실 소득수준이 낮은 마을에 가면 로컬 피자가게가 많다. 십미터마다 자리한 로컬 피자 가게에서 피자 한 쪽, 코크나 진저엘 같은 팝 하나를 끼워 2-3달러 가격으로 판다. 도미노, 피자헛, 피자피자 같은 프랜차이즈라고 해서 다를 게 없다. 마찬가지다. 한 끼라기보다는 간단히 요기할 수 있는 정도. 북미의 피자, 한국식으로는 떡볶기나 오뎅, 김밥땡국의 김밥 정도 되려나.

 

 

어쨌든 이 나라 사람들, 특히 백인들은 한국산 라면을 "소금덩어리"로 취급하는지라 잘 먹지 않는다고 한다. 집에서 몰래 먹는지 그것까지는 모르겠다. 겉으로 표현할 때의 품평은 별로 좋지 아니하다. 그러나 아프리카 출신, 서인도제도 출신, 남아시아 출신 등 강한 향신료를 바탕으로 요리를 하는 - 주로 더운 지역에서 온 - 사람들은 한국산 라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직장에서도 그쪽 지역 출신들이 간혹 육개장사발면을 가져와 간식으로 먹는데 어쩌다가 오, 그거 한국라면이네 하면 깜짝 놀라면서 이거 일본라면 아니었어? 이거 중국라면 아니었어? 라고 반응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꽃개는 직장 앞의 편의점에서 1달러 50센트에 파는 김치사발면/ 튀김우동을 애용하는 편.

 

 

라면 이야기가 나와 생각난 한 친구. 방글라데시에서 아주 어릴 적에 이민온 이십대 초반 여성. 엄마는 남아시아 출신 여성들을 돕는 사회복지사. 아빠는 수니파 이맘 정도 지위를 갖는 무슬림학 강사. 수니파 본토, 사우디아라비아 국가에서 제공한 장학금으로 박사 학위까지 받으셨는데 정작 이 나라에서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어려우셨는지 여전히 무슬림 국가들을 돌아다니시면서 종교학을 가르치신단다. 어쨌든 그 친구는 여동생, 엄마와 함께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보는데 그래서인지 한국연예인들을 꽃개보다 더 많이 안다. 일전엔 장근석 사진을 보곤 (사진을 봤을 땐 누군지 몰랐다. 한국 남자라고 하기엔 너무 이뻤으므로) 너무 이쁜 이 남자 누구지, 했는데 이름이며 출연한 작품이며 줄줄줄 외워서 꽃개를 깜짝 놀라게 했다는.

 

 

어쨌든 이 친구가 한국 드라마를 보는데 주인공들이 밤에 라면을 끓여먹는 씬을 몇차례 본 뒤 대체 저게 무엇인지 몹시 궁금해졌다고. 동생과 의논을 하고 구글링을 했다. 한국인 가게에 가면 구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 이 친구. 당당히 한국인 마트에 들러 라면 구입, 집에 도착하자마자 디렉션대로 끓였는데 글쎄, 새까맣게 나왔단다. 너 태운 거 아니야? 했더니 짜고 이상한 냄새만 나고 드라마에 나온 것과는 영판 달랐다고. 아, 그거 짜장라면이야. 그게 뭐야? 짜장이라고 있어. 역시 구글링을 해서 설명해줬다. 이 친구는 드라마에 나온 그 "라면"을 먹고 싶다고 했다. 짜장은 싫다고 했다.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이 친구가 집에 처음으로 놀러온 날. 꽃단장을 하고 나타났다. 뭐야? 알고보니 알버타 주에 살고 있는 먼 친척 가문에 보낼 사진을 찍기 위해 스튜디오에 들렀다가 온 것. 무슬림 가족들은 가문의 역사가 깊을수록 (????) 여전히 정략 결혼 (arranged marriage) 을 진행한단다. 상대 남자는 캐나다에서 태어났고 아직 나이가 어린지라 둘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알고 지내자는 취지로 사진을 교환한다는 것. 정략 결혼 그 자체도 의아하지만 젊은 친구가 아무렇지도 않게 정략결혼의 장점에 대해 설파하는 것을 한참 들으면서 거듭 거듭 의아했다. 그러나 그냥 듣고 말았다. 친구의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방글라데시 전통 케잌을 들고 왔고 꽃개와 꽃개 파트너가 준비한 떡볶이와 잡채를 같이 먹었다. 잘 먹더라. 까불고 떠들며 놀다가 친구는 집에 돌아가야할 시간. 팬트리에 있는 진라면 다섯 개짜리 묶음을 꺼내 선물로 주었다. 이 라면은 까맣지 않아. 디렉션대로 잘 끓여먹어본 뒤 피드백을 줘. 너랑 동생이랑 부디 좋아하길 바라. 친구는 고맙다고 나중에 꼭 결과를 알려준다고 하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 뒤로 학교에서, 지하철 승강장에서 종종 마주쳤는데 해가 지날수록 미모가 남다르게 발전한다. 젊은 여성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아름다움이 배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여성은 외모로는 절대 그 사람의 가치를 알 수 없다) 이에 반해 남성들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어떤 이는 신사가 되고 어떤 이는 바야바가 되고 어떤 이는 눈빛이 그야말로 몹쓸 약을 은밀히 파는 약장사의 그것과 흡사하게 변한다. (따라서 남성도 외모로는 절대 그 사람의 가치를 알 수 없기는 한데 대략 알 수 있기도 하다. 결론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좆된다는 것) 신사도 바야바도 약장사도 모두 소라넷에 올라오는 것 같은 야동을 보긴 볼텐데 유희와 일상을 구별해내는 능력,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려는 본인의 의지 정도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2016/10/07 00:05 2016/10/0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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