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조우

분류없음 2016/09/29 00:42

 

어제 이브닝 출근길. 지하철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 커피가 뜨거워 쩔쩔매고 있는데 맞은편의 산타클로스처럼 생긴 할아버지가 꽃개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한다. 아이고 깜짝이야. 누구지? Do I know you? 수염 때문에 몰라보는구나. 나야 나. 녹색과 회색이 섞인 눈동자와 쳐진 눈매를 찬찬히 살피니 그제서야 누군지 알겠다. 클라이언트 G. 어, 안녕. 잘 지냈어? 응, 너는? 나도 잘 지내. 일하러 가는 길이야? 응. 반갑다. 수염이 아주 근사한데. 그래, 고마워.

 

 

꽃개가 일하는 곳에 처음 왔을 때 그는 만성우울증 진단을 받아 약을 항상 복용해야하는 홈리스였다. 홈리스로 살아온지 십 년이 넘었고 인생의 사연이 길고 길다. 예의도 바르고 아는 것도 많고 성격이 좋아 사람들이 좋아했다. 팍스아메리카나, 미국의 문제점에 대한 관심사 등 서로 통하는 데가 많아 종종 대화를 나눴다. 크리스마스 쿠키를 잘 구웠다. 이이에게 꽃개도 쿠키 굽는 것을 배웠다. 처음 이이의 목표는 퍼머넌트하우징, 우리말로 하면 영구임대주택을 얻어 따뜻하고 안전한 곳에서 사는 거였다. 워낙 성실했고 의욕이 많았으므로 회사 내 다른 프로그램에 연동해 클라이언트들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를 얻었다. 하우징프로그램에 어플라이했고 운이 좋았는지 꽃개가 일하는 곳에 두번째로 들어왔을 땐 곧 입주를 앞둔 상태였다. 어느날 그이가 폰카메라로 찍어 보여준 새로운 아파트는 참으로 멋져 보였다. 호숫가에 지은 지 얼마안 된 새집이었고 그이는 모든 것이 맘에 든다고 했다. 굉장히 흥분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아파트에 입주하는 날 꽃개가 일하는 프로그램을 떠났다. 그이의 앞날에 꽃길만 있으리라 그 때는 그렇게 믿었다.

 

 

몇 달 뒤 어느 날. G의 어플리케이션이 사무실에 보인다. 뭐지? G는 하우징을 구했잖아. 왜 다시 돌아온대? 사연은 이랬다. 새로운 집을 얻어 새생활을 시작한 G. 일터와 집, 통근거리와 시간이 너무 길었고 무엇보다 혼자 살아가는 것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홈리스 시절엔 거리에서 친구들과 자유롭게 지냈고 사는 데 필요한 것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새로운 인생을 위해 시작한 직장생활과 아파트 독거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무엇보다 외로웠고 월세로 빠져나가는 월급, 그에 더해 유틸리티 (전기세 등), 그로서리 (식료품) 등 아파트 독거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들여야하는 시간과 품, 계획적인 삶이 버거웠다. 그 가운데 최고로 견디기 어려운 것은 외로움이었다. 결국 G는 새로운 아파트에서 자살을 기도했다. 병원에서 깨어난 G. 케이스워커와 면담한 그는 그가 과거에 두 번이나 머물렀던 곳. 그 곳이 가장 집 같다고 (like a home) 그 곳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꽃개가 일하는 곳으로 다시 오게 되었다. 세번째 어드미션이었다.

 

 

약속시간보다 두어 시간 늦게 꽃개가 일하는 곳에 도착했다. 문을 열어 그를 맞이하고 악수를 청했다. 네가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G는 고개를 돌려 약간 울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약을 픽업하러 가야하니 두시간만 더 기다려줄 수 있냐고 물었다. 가방을 두고 다시 떠났다. 동료들에게 인테이크를 홀딩해달라고 부탁하고 케이스노트에 입력했다. 꽃개의 프로그램에 그렇게 세번째로 돌아온 G. 직장도 구하고 아파트도 구하고 일반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게 된 G. 하지만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인 것 같았다. 상황이 이렇게 변하면, 관계도 변하기 마련이고 무엇보다 케이스메니징에 빨간불이 들어온다. 이이는 꽃개의 프로그램에 건강하지 못한 애착관계를 형성한 셈이다. 이른바 "건강한 자립" 이 어려워졌다. 이제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를 대할 수가 없다. 나는 아마도 그때부터 이이와 거리를 뒀던 것 같다. 나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스탭들도 마찬가지였다. 딱히 케이스컨퍼런스를 한 것까지는 아니었는데도 그렇게 되어 버렸다. 

 

 

한 달 뒤 G는 꽃개의 프로그램을 세번째로 떠났다. 떠난 뒤 G는 다시 꽃개의 프로그램에 전화를 해 어플라이하고 싶다고 했으며 거절당했다. 이 속시끄러운 상황이 몇 번이고 반복됐고 G의 네번째 어드미션은 끝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났다. 나는 G를 잊어버렸다. 그런 G를 어제 지하철에서 그렇게 대면한 거다. 마음이 당연히 좋지 않았고 그이가 내리는 역에서 일어났을 때 다시 악수를 청했다. 건강해 (Take care). 마지막 인사였다. 다시 G를 만날 때엔 마음이 한결 편안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삶에 끼어든다는 게 이렇게 어렵다. 나는 더 냉정해져야겠다. 쓸데없는 연민, 나도 어쩌지 못하는 연민은 허공에 울리는 징소리마냥 흔적도 없이 흩어질 뿐이다. 다만 그 여파에 휩쓸린다. 

 

 

 

2016/09/29 00:42 2016/09/29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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