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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6/13
    로크, 그리고 막스 베버
    미스치루
  2. 2006/06/11
    3. 칼 맑스 '경제학 - 철학 수고'
    미스치루
  3. 2006/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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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스치루

로크, 그리고 막스 베버

사회철학의 이해 기말 고사는 그동안 열심히 공부한(?) 맑스의 경철수고 대신에 로크의 통치론과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정신에 대하여 쓰고 나왔다. 시험은 물론 상대 평가로 결과를 내지만 시험문제 자체에서 나는 맑스가 비교열위에 있기 때문이다. 내 앞자리엔 p.t. 뒷 자리엔 sy, 옆에는 99학번 선배님들;;;

 

자신이 발제한 것 중 하나와 타인이 발제한 것 중 하나를 골라 쓰라는 시험 요구에 위의 네 사람들은 맑스, 루소 이외에 어떠한 선택을 했겠는가?

 

결국 나는 발표한 베버와 하버마스 중에 상대적으로 쉬운 베버를, 타인이 발표한 것 중 로크를 찾아 써야만 했다. 이거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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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칼 맑스 '경제학 - 철학 수고'

3. 칼 맑스 '경제학 - 철학 수고'

 

1. 소외된 노동

: 맑스의 소외이론은 자본주의 사회의 소외 현상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데서 출발하여 그 사회경제적 구조를 파헤쳐 그 원인을 추출하고 나아가 이러한 소외의 양상으로부터 인간을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가 목적이다.

 

맑스는 사적 소유라는 국민경제학적 사실로부터, 국민경제학에서 해명하지 못하고 은폐하고 있는, '사적 소유의 비밀'로서의 '소외된 노동'을 분석해낸다. 그는 소외된 노동을 1) 노동 생산물로부터의 소외, 2) 생산 활동, 즉 노동 그 자체로부터의 소외, 3) 유적 존재로부터의 소외, 그리고 4) 인간으로부터 인간의 소외의 형태로서 설명한다.

 

[수고]에서는 소외의 근본 원인을 형성하는 것을 사적 소유로 지목한다. 분업이나 화폐의 물신성이라는 것도 궁극적으로 사적 소유에 근거해서 논의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외된 노동의 지양이란 단적으로 사적 소유의 철폐라는 말과 사실상 같은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맑스는 "노동을 사적 소유의 주체적 본질로서, 그리고 자본을 객체적 노동"으로 파악할 때 이들 양자의 발전된 모순관계로서의 사적 소유는 해소되지 않으면 안 될 역동적인 관계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맑스는 사적 소유가 자본주의의 모든 측면에서 근원적 출발점이 되는 것이고 모든 소외 형태의 근원이 되는 것이기에 "사적 소유의 실제적 지양은 모든 소유의 실제적 지양"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가 그가 말하는바 '공산주의' 사회이다.

 

 



: 맑스는 첫째, 헤겔이 노동을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본질을 실현하게 만드는 행위로 파악한다는 점을 높게 평가한다. 헤겔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노동은 "자신을 입증하는 인간의 본질"이자 "인간이 대자적 존재로 되는 과정", 혹은 자기 자신이 되는 과정이다. 그리고 맑스는 둘째, 이런 식으로 자기가 되는 과정은 외화 가운데, 즉 "소외의 형식으로서만 가능하다"는 헤겔ㅇ적 관점을 받아들인다. 맑스는 헤겔의 변증법이 지닌 긍정적인 측면인, 비록 사변적이고 추상적인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기는 하지만, '역사의 운동방식'을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맑스는 헤겔의 변증법이 현실의 '변증법적 운동'을 사변적이고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사변적이고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사변적 설명체계였기 때문에 비판적으로 원용하고자 했으며, 이때 포이어바흐의 자연주의적 인간주의적 유물론이 헤겔의 철학체계에 대한 훌륭한 비판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따. 맑스는 그를 따라 인간을 감성적이고 대상적 존재로서 파악한다.

 

맑스에 있어서 대상은 헤겔에서와는 달리 의식에 부딪혀 소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갓 '대상의 가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 외부에 대상성을 갖는 어떤 것'이다. 맑스에 있어서 '대상'은 한 마디로 '사유에서 독립해 있는 대상'을 의미하기 때문에 관념론적으로 해석된 대상은 오직 대상의 가상에 불과할 뿐인 것이다. 맑스에서 '대상적'이란 '물질적'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이며, 그러기에 그는 "비대상적 존재는 비존재"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맑스는 헤겔 [정신현상학]에서 전개된 변증법의 주체가 근본적으로 유한한 자아, 즉 현실적 인간이 아니라 신이고 절대정신이라는 점에서 헤겔의 철학을 '신비주의'라고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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