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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 - K . Marx

장정 세미나를 위해 간단하게 정리 해보고 싶어서.

일단 이번에 중요한 테제는 3번, 4번 테제이다.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근거하고 있는 것이 변증법과 유물론, 그리고 인간과 역사의 상호 작용이기 때문이다. 만일 '문화산업'을 단순하게 이해하고 거기에 집중한다면, 아마 세미나는 어설픈 정치경제학과 어설픈 '지배 이데올로기 어쩌구 저쩌구'가 될 것이다. 공부 좀 열심히 해서 세미나 좀 잘 해보자...

 

 

지금까지 모든 유물론 -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을 포함하여 -의 주된 결함은 사물, 현실, 감성을 대상 또는 관조의 형식으로만 생각했을 뿐 인간적인 감성적 활동, 실천으로, 주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 감성 = 反 사변, 관념론 / 실천 - 헤겔적인 개념이었음 / 인간적인 감성적 활동(=실천) = 주체

 

그렇기 때문에 능동적 측면은 유물론과 대비되어 관념론에 의해 발전되었지만, 관념론은 현실적, 감성적 활동 자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발전은 단지 추상적일 뿐이었다. 포이에르바하는 사유된 대상들과는 현실적으로 분리된 감성적 대상을 추구하짐나 인간적 활동 자체를 대상적[객관적] 활동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 관념론의 ['능동적 측면'에의] 발전은 단지 추상적일 뿐이었다. - 주관, 객관의 이분법이었다. / 인간적 활동 = 주관과 객관의 통일(?) / 대상적 활동 = 인간이 개입된 혹은 외화된 활동

 

그러므로 그는 <기독교의 본질>에서 이론적 태도만을 진정으로 인간적인 태도로 간주하는 반면 실천은 더러운 유태인적 현상형태로만 생각하고 그렇게 고정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혁명적' 활동, '실천적, 비판적' 활동의 의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대상적 진리가 인간사유로 귀착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적인 문제이다. 실천상에서 인간은 자기 사유의 진리성, 즉 현실성과 힘, 차안성을 증명해야 한다. 실천으로부터 유리된 사유가 현실적인가 비현실적인가를 논하는 것은 순수히 스콜라적인 문제이다.

 

 

- 인간과 환경의 관계

 

인간이 환경과 교육의 산물이며, 따라서 변화된 인간은 다른 환경과 변화된 교육의 산물이라는 유물론적 학설은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이 바로 인간이며 교육자 자신도 교육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학설은 필연적으로 사회를 두 가지 부분 - 이 가운데 어느 한 부분은 사회를 초월해 있다 -으로 나눌 수밖에 없게 된다.

 

: 인간이 환경과 교육의 산물~뮤물론적 학설 = 계몽사상 다수, 공상적 사회주의 ,포이에르바하...  -> 인간이 수동적, 비주체적이게 되는 것

 

환경의 변화와 인간적 활동의 변화와의 일치성은 오직 혁명적 실천으로서만 파악될 수 있으며 또 합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 진리의 기준은 실천이다.

 

 

 

포이에르바하는 종교적 자기소외, 즉 세계가 종교적, 상상적 세계와 현실세계로 이중화되어있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그의 작업은 종교적 세계를 그 세속적 토대로 용해하는 데 있다. 그러나 그는 이 작업을 마친 후에도 중요한 일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따. 왜냐하면 세속적 토대가 자기자신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여 스스로 구름 속에서 하나의 독립적 왕국으로 자리잡는다는 사실은 오직 이 세속적 토대의 자기분열과 자기모순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세속적 토대 자체는 먼저 모순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그 다음은 모순을 제거함으로써 실천적으로 변혁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한 예로, 세속의 가족이 신성한 가족의 비밀임이 밝혀진 다음에는 세속의 가족 자체는 이론적으로 비판되고 실천적으로 변혁되어야 한다.

 

 

 

포이에르바하는 추상적 사유에 만족하지 못하여 감성적 직관에 호소한다. 그러나 그는 감성을 실천적인, 즉 인간적, 감성적인 활동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 인간적, 감성적인 활동 = 노동

 

 

 

포이에르바하는 종교적 본질을 인간적 본질로 용해한다. 그러나 인간적 본질은 각 개인에 내재된 추상물이 결코 아니다. 현실적으로 그것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인 것이다.

 

: 인간적 본질~사회적 관계의 총체 = 본질도 변한다 - 역사를 통해 형성되고 변형되는 것이 인간의 본질

 

포이에르바하는 이 진정한 본질의 비판에는 손을 대지 않으므로,

1. 역사적 과정을 추상하고, 종교적 감정을 따로 떨어진 것으로 고정하며, 추상적인 - 고립된 - 인간 개인을 전제할 수밖에 없다.

2. 그러므로 그에게 인간적 본질은 오직 유(類)로, 많은 개인들을 자연스럽게 결합시키는 무언의 내적인 보편성으로 이해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포이에르바하는 '종교적 감정'이 그 자체로 사회적 산물이라는 점, 그가 분석하는 추상적 개인이 현실에서는 특수한 사회형태에 속한다는 점을 알지 못한다.

 

 

 

사회생활은 본질적으로 실천적이다. 이론을 신비주의로 오도하는 온갖 수수께끼는 인간 실천과 이 실천의 파악 속에서 합리적인 해결을 찾을 수 있다.

 

 

 

관조적 유물론, 즉 감성을 실천적 활동으로 이해하지 않는 유물론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점은 '시민사회' 속의 개개인의 관조이다.

 

 

 

낡은 유물론의 입장은 '시민'사회이며, 새로운 유물론의 입장은 인간사회 또는 사회화된 인간이다.

 

 

ⅩⅠ

 

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기만 해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 차후에 포테제를 풀어서 정리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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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법적 상상력 - 미학이론과 대중문화 비판

<맑스주의 미학 비평의 두 갈래>

1. 비타협적인 정치적 경향성에 방점(예술가의 정치적 의도)

: 레닌 이후 스탈린적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의 근간

2. 작품에 내재한 사회적 의미에 방점(작품의 객관적인 사회적 내용은 예술가가 표명한 소망이나 계급적 성분을 넘을 수 있다)

: 엥겔스 이후 루카치를 거쳐 파라 맑시스트 para-marxist들의 견해

[예술적 주제는 개인적일 뿐 아니라 사회적. 따라서 예술작품은 비단 그 창조자가 원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객관적인 사회경향을 표현한다. 즉 작품은 순수 '존재'가 아니고 차라리 주체와 객체 사이의 '힘의 장'이다.]

 

<엥겔스의 리얼리즘과 자연주의의 구분>

리얼리즘 : 객관적 세계와 주관적 상상력을 유기적으로 화해

자연주의 : 예술가 자신이 동화되어 있지 않은 현상적 환경을 기계적으로 반영

 

<아도르노와 벤야민의 문체/스타일>

에세이의 짜임새와 산문 스타일의 독특함 = 모든 문장은 그것이 완전히 이해되기 위해서는 에세이 전체를 통해 '중재'되어야 한다.

[장 자크 고다르 : "당신 영화 시작, 중간, 종말 있는가?" "물론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순서로만은 아니다.]

-> "사회에 대한 거부는 그 사회의 언어에 대한 거부도 포함한다." : 독자에게도 작자 못지 않은 충분한 심각성을 가지고 반응하라는 도전.

 

 



 

경제나 정치의 물신화 하는 것을 거부했다면, 마찬가지로 문화를 사회 속에서 따로 떨어진 영역으로서 취급하는 것도 탐탁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예술을 사회 속에서 발생하는 과정들에 대한 일종의 암호언어로 해석하며, 그 암호는 비평적 분석을 통해 해독되어야 한다."

- 사회와 문화와의 관계 = 사회의 온당치 못한 점을 문화가 완전히 초월 할 수는 없는 관계. "문명의 기록 치고 야만의 기록이 아닌 것이 없다."

- 예술적 창조성이 사회적 요인들에 의해 제한된다면, 주관적인 예술 감상도 마찬가지로 제한된다. 개인적 '취미'라는 자유주의적 개념은 현대 사회에서 자율적 주체가 점진적으로 해체됨에 따라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 대중문화에서는 거의 완전하게 선호의 조작이 가능했던 것이다.

-> "비평의 과제는 문화현상을 야기시키는 특정 이해집단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문화 현상에 표현된 일반적 사회 경향 - 이를 통해 가장 강력한 집단의 이익이 실현된다. -을 판독하는 일이어야 한다. 즉 문화 비평은 사회를 판독하는 인상학이 되어야 한다." - [단, '변증법'과 '부정'의 강조]

-진정한 예술은 현재의 사회를 넘어선 '다른' 사회에 대한 인간의 갈망을 마지막까지 간직한 영역.('문화가 사회를 초월한다'의 진실적 측면)

-"이데올로기 그 자체가 진실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현실에 상응한다는 주장이 옳지 못하다." -> 모순의 구현 - 사회적 모순이 현실에서 화해하기까지.

=> 미적 영역은 필연적으로 정치적인 영역

 

<베블런의 '과시소비'개념에 대해>

"사람이 현실적으로 발견하는 행복은 과시적 소비와 분리될 수 없다. 사회적으로 형성되어진 욕망의 성취를 약속하지 않는 행복은 없다. 그렇지만 또, 이러한 성취 속에서 질적으로 다른 어떤 것을 약속하지 않는 행복도 없다."

-프랑크푸르트 연구소의 대중문화 비판의 핵심에는 '행복의 약속', 즉 다른 사회에의 비전이 점점 '긍정적 문화'에 의하여 조직적으로 뿌리뽑혀진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환원주의에 대한 비판>

현상을 비실질적인 것이라 하여 무시한 것에 대해, "현상은 진리의 반영으로서, 변증법적이다. 모든 현상을 거부하는 것은 그 현상 밑에 완전히 항복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가 겉으로 나타날 수 있는 잡다한 현상을 폐기하면 진리도 폐기되기 때문이다.'"

 

"그릇된 것은 방법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방법이 마치 본질인 듯 생각하는 것이다."

 

<민중 문화에 대하여>

민속 음악은 더 이상 살아있지 못하다. 왜냐하면 대중음악이 다른 모든 대중문화와 마찬가지로 위로부터 조직되고 강요되는 과정 속에서 자생적인 민중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파악한 대중문화의 기본 특징 중 하나>

역사발전을 신화로 대치. 시간성의 붕괴는 자율적 개인의 해체와 은밀히 연관.

 

<대중문화의 부정적 영향>

문화규범의 순응주의, 색채주의적 효과, 정서환기력 동원을 위한 복고풍, 스타, 악기 숭배, 품위있는 음악회 등 - "맛있게 먹어본 음식만을 요구하는 어린아이들 처럼 청음능력이 퇴화된 사람은 전에 들었떤 것이 되풀이 될 때에만 반응할 수 있다."

- 현대사회의 상품적 성격, 통신기관을 포함한 사회 모든 분야의 독점화 경향, 기존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어떤 종류의 위협에도 그 순응주의적 요소를 강화함으로써 대응하려는 사회의 반작용. 그리고 문화적 영역에 존재하는 사회적 적대관계.

'기분전환' - [실질적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고 또 다시 순응]

 

<바그너 비판>

판타즈마고리아 = 자신의 음악이 마치 '자연적' 기원을 갖는 양 보이게 함으로써 자기 작품의 사회심리학적 유래를 숨기려는 바그너의 경향.

 

<벤야민>

Aura = 예술품의 원작을 둘러싸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 "예술작품의 일회적인 독특성은 그것이 전통 속에 뿌리박고 있다는 사실과 분리할 수 없다. 따라서 대량복제 시대에 예술의 aura의 종말은 예술적 '교감'의 ㅅ상실일 뿐만 아니라 진정한 경험(전통에 뿌리박은 경험)의 종말을 의미한다." "진정성이라는 기준이 예술 생산에 적용되지 못하는 순간 예술의 전체적 기능은 더이상 의식(儀式)에 기초하지 않고, 정치에 기반을 두기 시작한다. 기술복제의 출현과 더불어 예술의 의식적 가치는 전시적 가치에 의해 대치되었다."

-> 벤야민은 Aura의 상실(전통적 예술의 '부정적' 기능의 상실도 포함)을 애석해 했지만 정치화, 집단화된 예술의 진보적 가능성 희망.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대중문화 비판>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대중문화를 혐오한 것은, 그것이 민주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비민주적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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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회계고(百回稽考) 일부 발췌 - 아이켄도에서

심(心)
마지막 수련이라 생각하고 기도(合掌)하는 마음으로 임할 것


◎ 검도는 우선 기가 충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덤벙거려서는 안 된다. 그것을 위해서는 발 끝에 기를 넣을 것. 그럼으로써 몸 전체에 기가 들어가게 되고 헛된 행동을 하지 않게 된다.
지금 하나의 요점은 깔 끝에 기가 들어가 있어야 한다. 칼 끝에 기가 들어가 있지 않으면 죽는 칼이 된다. 즉 검도는 발끝에서 칼끝까지 기합이 충실히 들어 있을 것. 이두가지가 충실해 진다면 삼각구(三角矩)가 이루어진다.

◎ 하수(下手)와 수련하는 것은 어렵다. 상대는 이쪽의 칼끝이나 기세 등에는 상관없이 마구 덤벼 오기 때문에 여차하면 상대에게 휘말려 버려 본래 의도인 수련(稽古)은 무산이 되어 버리고 진지한 분위기는 사라진다.
상수를 상대하든 하수를 상대하든 항상 같은 자세로 임해야 한다. 일관된 자세를 취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맞는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일족 일도의 거리에서 이치에 맞는 수련(稽古)을 해 가는 수 밖에 없다.
일족 일도를 근본으로 하고 상대에 따라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하수가 어렵다는 것은 가벼운 죽도를 쓰기가 어렵다는 것과 같다. 가벼운 죽도를 무겁게 쓰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
하수를 만만하게 보지말고 시합하는 마음으로 임하라.
처세의 근본 마음가짐은 자비심이다. 자비심만 있다면, 어떠한 사람이라도 대응할 수 있다.

◎ 승패의 분기점은 정념(正念)이 없어진 때이다. 즉 기가 상승했을 때, 숨이 멈추었을 때, 이때는 맞지 않아도 진 것이다. 정념이 없어진 곳을 틈이라고 하는 것이다.
검도는 상대를 기다리고 있어도 안되고, 그래? 하면서 덤벼드는 것만으로도 안 된다. (중략) 설령 때렸다 하더라도 엉터리로 한 것이다. 기다려도 안되고 덤벼도 안되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요는 상대를 무너뜨려 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가 하나가 되어야 하고 삼매경에 들어야 하는 것이다. 고양이가 쥐를 노리는 것과 같다. 이것을 심기력(心氣力)일치, 공수일치라고도 한다. 이것을 보보청풍(步步淸風)이라 할 수 있겠다.  
필경검도(畢竟劍道)의 근본적 수행은 항상, 기(氣)를 기르는 데 전력을 다하여야 한다.
맹자호연지기(孟子浩然之氣)

◎ 이 수련(稽古)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할 것과 또 한가지는 스승을 공경할 것. 즉 기도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된다면 검도는 극의에 도달할 수 있다. 검은 기술이 아니다.
◎ 검도는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벌써 타락하는 시작한 것이다. 되었다고 생각하는 바를 바로 버리고 또다시 새로운 수행을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이 비결이다. 석가모니도 항상 수행중이었다.

◎ 지금 수행하고 있는 것도(연습량이) 남들보다 많다는 자만심을 버리고 더욱 수련에 매진하는 것이야말로 어렵고도 중요하다. 수행은 죽을 때까지 한다는 원리를 잊지 말라.
서두르지 말고, 게으름피우지도 말고



말(言)
하수와 겨룰 때도 처음 한판은 반드시 따라.

◎ 모찌다 선생이 말하기를
검도는 같은 상대와 몇 번을 겨루든 간에 항상 똑같은 방식으로 임해서는 안 된다. 칼끝, 거리, 기합 등을 항상 잘 연구해야만 실력향상을 이룰 수 있다. 아무 생각없이 해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예 부터 널리 알려진 말이지만, 상대에게 맞을 경우 제대로 맞았으면 가볍더라도 맞았다고 하고 자신은 충분히 때렸다고 할지라도 불충분하다고 생각하라. 이러한 겸허한 자세로 한다면 실력향상으로 이어진다. 또 이것은 무언의 교육이 된다.
상대에게 맞는 것은 자신의 약점을 가르쳐 주는 고마운 것이다.

◎ 선생이 말하기를
검도는 뼈를 깍는 수련(稽古)를 하지 않으면 하더라도 실력이 늘지 않는다. 일족 일도의 거리에서 기로서 상대를 공격하고 선의 기술로 쳐 보라. 그러면 상대의 숨도 빨리 가빠 올 것이다.
검도는 하수와 겨루더라도 첫 한판은 반드시 딴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면 중요한 것을 놓치는 일이 없다.(후략)

◎ 모찌다(持田)선생의 말
검도시합은 힘든 상대가 있기 때문에 좋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은 머리치기가 특기인데 상대는 나오는 손목치기가 특기일 경우, 공격적인 상대를 만날 때는 참으로 어려워진다. 이러한 시합의 경우 우선 기와 거리 싸움하면서 은연중에 내 특기를 상대가 알게 한다.(중략) 그런 식으로 상대에게 내 특기를 알게 함으로써 만만하게 덤벼들지 못하게 하면 시합은 별게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

◎ 모찌다(持田)선생의 말
심판은 정말 어렵다. 그래서 좋은 공부가 된다. 자신 스스로가 깜짝 놀랄 정도로 알게 모르게 심판을 통해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검도의 심판은 생각을 하면서 진행해야한다.
묘의 도장(모찌다 선생의 수련도장)에서 30분간 아침수련을 하고 심신이 상쾌해진다. 이런 심신으로 심판을 하면 좋다. 그래서 나는 묘의 도장에서 수련을 열심히 하려고 하고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도 있고 건강에도 좋으며 정신상으로도 좋다. 심판은 인간이 인간을 재판하는 것이므로 신중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심판은 시합자와 일체가 되어 자신이 시합하고 있다고 생각해야한다.

검(劍)
검도의 궁극은 진검 승부이다. 세상의 궁극도 진검 승부다.

◎ 검도는 누구와 붙더라도 어디까지나 진지한 것은 기본이다. 그러한 진지한 가운데에서도 여유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을 { 화평의 기운을 분노 속에서 본다}거나 {망중한(忙中閑) 일월(日月)이 있으니}라 고도 한다.  
인생도 이와 같다. 아침부터 바쁘다 바빠 하고 일하는 가운데서도 이러한 여유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 검도수행은 도장 내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도장이 기본이기는 하지만 진정한 수련은 일상생활에 있다. 항상 이것을 지속하는 것이 비결이다.

◎ 기술은 중요하지만 이(理)(이치)에 맞지 않는 기술은 안 된다. 형과 일치하는 기술을 써라. 이것이 의미있는 수련(稽古)이다.

 

{검도의 궁극은 진검 승부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결국은 진검 승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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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4.30 청년학생 문화제 - 랩듀오

 

0.Intro.

<상욱>
430. may-day 에 오신 수많은 동지들이여~
당신에게 수많은 존경을 보내며.
다~시금 또~/ 폭발하는 우리의 투쟁으로~
나 와 너와 우리를 함께 노래합시다.


<쟁쟁>
툭- 탁!
너무나 오랜만이었어, 우리의 둔탁한
입술을 열기까지는 말이야.
반가운 살가운 동지와
뜨거운 만남은
사랑과 투쟁을 언제나 영원하게 만드는 것!


오래 기다린 당신과 나와의 해후.
그 마주침은 내게는 너무큰 행운
우리 투쟁과 반역의 해후는
인간의 꿈을 인간에게로 돌려주는 주문

오래 기다린 당신과 나와의 해후.
그 마주침은 내게는 너무큰 행운.
부탁이니 귀를 잘 기울여 주세요.
이제는 다음 노래로 곧바로 달려갈테니.





[Verse 1 : 상욱]
여섯시가
좀 넘어서 늦은 시간
거리엔 어느 순간엔가부턴가 뭔가 싸늘한.
바람이 내게 부딛쳐.
손끝에 남은 아스팔트의 검은 흔적.
흔들리는 나의 정신을 다시 추스리며 일어서.
we, stand up for life 우리의 삶은 더 이상은 물러 설 곳 조차 없다.
이제는 내두다리조차, 절뚝거리지만, 그래도 난
입술을 꽉 다물고.
신발끈을 고쳐 묵고.
눈을 떠 휘날리는 깃~발 과 함께 다시금 거리로 나선다.
지쳤지만, 또 언제나, 막히지만 늘 정당한. 외침이다.
일몰뒤라서 불법이고, 도롤 막아서 불법이고,
허가없이 길에서 음식을 팔았다 다 때려 부시고 압류해도.
진실은 오직 거리에서만. 그곳이 우리의 법이란다.
또 누군 우리를 폭도라고, / 머리가 나쁜 또라이라고.
인터넷으로 수 많은 쌍욕, 악플을 달지만,
있잖아, 여기가 진짜 real이야.
잊지마, 이건 변치 않아.

0
두귀가 잘리고, 눈감기고, 입막혀도
우리는 길거리에서 깨져가면서 몸뚱이로 말한다.
그것이 당신에게도 절실하다면 함께 외치세
- say 신자유주의 분쇄하자!!
나의 해방이 당신과 맞닿아 있다면 또 한번 외치세
- say 불안정 노동 철폐하라!!
동지와, 사랑과, 해방을 믿는다면
- say 사회적 빈곤 해결하라!

[Verse 2 : 쟁쟁]
아직 취기가 돌고 있는 시간은 새벽 여섯시 반.
방금 전 일어나서 뭐가 먼지 모르지만
졸음 오지만 오직 한 잔의 소주에 소중한 동지와의 우정을 담아서
인생의 기록으로 뱉어내네.
내 주변엔 왜, 언제나 그렇듯 항상
소외된 네 영혼들만을 보게 되는지....
목숨만을 부지한 지, 벌써 몇해가 되는지,
왜 항상 노력을 해도 내일을 예비하는 또 힘드는지!!
알수가 없어 결국엔 치켜 올린 깃발,
언제부터 찾을 수 없는 우리의 희망.
난 매일 밤 거리로 나서 날 기만한 적과
전선을 긋고서 정당한 구호를 외친다!
우리의 행진을 전경이 막지만,
거기 까지만, 우리의 경계를 명확히 하려 하지만,
하지만, 조금만 힘내고 동지를 보며 참아.
아마, 내일의 날씨는 변혁을 향한 바람~


두귀가 잘리고, 눈감기고, 입막혀도
우리는 길거리에서 깨져가면서 몸뚱이로 말한다.
그것이 당신에게도 절실하다면 함께 외치세
- say 신자유주의 분쇄하자!!
나의 해방이 당신과 맞닿아 있다면 또 한번 외치세
- say 교육투쟁 승리하자!!
동지와, 사랑과, 해방을 믿는다면
- say 비정규직 철폐하라!!

[Verse 3 : 같이]
[상욱]
A-yo 강철은 따로 없어라
오늘도 이땅에 난 살기 위해서 애쓰니 나 맞설힘은 영원하리
싸우지 않고, 얻게되는건 타인의 것을 빼았는 것.
나의 권리를 찾는것? 그건 함께 싸우는것.
so 우리는 저기저 진보의 요람에서부터 무덤까지
멈출수 없는 변혁의 심장으로
살아있다는것은 싸우는것임을 증거하며 살것을 맹세하네.
이 주먹에 대고 다짐하네.
그대 철의 전사들이여
민중해방의 불꽃이여.

[쟁쟁]
Yo! 민중의 아들 딸, 진실한 벗들과, 그/녀들과
투쟁하며 즐거워 하는 너를 봐.
니 목을 조르는 자본의 저들과, 그 적들과
대치하며 당당히 선 너를 봐.
아래로부터 쓰여진 민중의 역사,
거리로부터 창출된 새로운 문화.
누구나 이 외침에 동의할 수 있다면
주변의 동지들과 다같이 sing it~!!


두귀가 잘리고, 눈감기고, 입막혀도
우리는 길거리에서 깨져가면서 몸뚱이로 말한다.
그것이 당신에게도 절실하다면 함께 외치세
- say 신자유주의 분쇄하자!!
나의 해방이 당신과 맞닿아 있다면 또 한번 외치세
- say 여성노동권 쟁취하자!!
동지와, 사랑과, 해방을 믿는다면
- say 모든 차별을 철폐하라!!

우리가 외치는 목소리가 절실하다면 다시 한 번 외쳐죠
- say 신자유주의 분쇄하자!!
동지와 투쟁과 승리를 믿는다면
- say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2. 청년동지가

[verse 1 : 상욱]
내가 존경하는 후배이자 동지인 너에게.
자주 보긴 하는데, 편지는 처음인거 같네.
무슨 말부터 해야할지, 솔직히 엄두가 잘 안난다.
아무튼 이제 너한테도 티셔츠 한장이 느는건데
그래 그 얘기부터 해보자.
매년 해왔던 거지만 넌, 매번 벅차다고 했잖아.
그래 나도 이해하지 하긴 나도 그랬으니깐.
그래서 너와 그날 술약속을 잡았을때말야
나 진짜로 오래 맘졸였었어.

서점에들러 책도 사고, 첫장에다가 편지도 쓰고.
널만나면 무슨 말을 할지 한참을 고민했지 하지만.
책은 몰래 니 가방에 넣고, 술만 몇잔 마시다가
결국 한마디 꺼낸게 우리 힘내자 그게 다야.

그때 니가 물었었지 나는 확신이 있느냐고?
아니야, 나도 그런거 없어. 그리고 매번 말하지만,
우리에게 승리가 멀지 않았다는 말. 거짓말인거/ 맞어~.
아무런 대체도 없지만, 그렇게 난 또 널 잡았지.

일년만더 버텨보자. 이거 안하면 너 뭐할껀데?
대충 웃어보는데 니가 같이 웃어서. 나 진짜로 조금은 울었다.
점점 도와줄 수 있는건 줄어드는데,
너에게 짐을 더 떠넘기는거 같아 좀 미안하기도 해.

오 그러다,

[hook 1]
니가 다치면 안될텐데, 망가지면 안되는데,
너무 지치면 안되는데, 포기하면 안되는데
니가 다치면.안될텐데. 오 그럼 너무 슬플텐데,
니가 그러면 나도 아마, 한참은 무너질텐데.




Dear 누나, 아 맞아 그때구나.
이제 막 추워질 무렵 찬 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그때구나.
그땐 누구나, 전부 모두가,
색색의 옷을 입고 관악의 여기 저길 바쁘게 누비곤 하지.
누나의 한 마디, "피곤하지?"
"아뇨, 아뇨 절대 아니.."
너무나 재밌어서 미칠 것 같애.
이건 마치 god damm, 전쟁이지. 나태하면 안돼.
그럴 때 마다 매번 거는 주문은 take it easy.

당신을 첨으로 봤던 장소는 해방터.
아직도 기억이나, 누나 눈은 해맑어.
자신감으로 꽉차있는 누나를 속으로 좋아한지,
날짜를 세알리면 하--- 말로 다 못하죠.
그런데 요즘, 누나 표정을 보면은
너무나 힘들어, 안쓰러, 내 속이 다 문드러 질 것만 같애...
깃털과도 같애, 날아갈 것 같은 당신의 손을 나는 잡네.

나는 가끔 힘들 때 마다 당신을 생각해.
우리 조금만 힘내서 내일을 기약해.
나는 가끔 힘들 때 마다 누나를 생각해.
우리 고개를 들고서 내일을 기약해.

[hook 2]
누나가 다치면 안될텐데, 망가지면 안되는데,
너무 지치면 안되는데, 포기하면 안되는데
누나가 다치면.안될텐데. 오 그럼 너무 슬플텐데,
누나가 그러면 나도 아마, 한참은 무너질텐데.



[Verse 3 : 같이]
[상욱]
오 사랑하는 친구야. 있잖아 지금 내가 생각하는건 너야.
니 몸짓, 혹은 니가 던지는 말 하나,
그런것들에 나 혼자 수없이 많은 일기를 써 알아?
좀 민망한 말이긴 하지만, 날 살아있게 하는 건 너야.
너에 질문들에 답하기, 그 대답에 책임지기.
십년이 지나도 이 맘은 절대로 변치않기.
밤공기 가르며 집으로 가는 가파른 골목에서,
내가 다짐할수 있는 이유는..
있잖아 결국엔 또 너야.

[쟁쟁]
당신이 있어 내가 싸울 수가 있어.
당신은 영원한 내 영혼의 안식처.
우리는 함께 드리워져 연대의 가지를 쳐.
서로가 그리워서 하나의 목소릴 외쳐.
뭐가 그렇게 힘든일이 많은지,
시간은 왜 이리, 매일이, 이리도 계속해 빠른지....
가늘디 가느다란 가능성이란 한 마디,
우리는 두텁게 그 단어를 "성공"으로 만들지.

[Bridge : 같이]
그대가 나와 길을 함께 걷는다면. 우린 영원할 수 있어.
그대가 나와 길을 함께 걷는다면. 우린 승리할 수 있어.

우리가 만약 같은 길을 걷는다면. 우린 영원할 수 있어.
우리가 만약 같을 길을 걷는다면. 우린 승리할 수 있어.

[rap : 동지가]
휘몰아 치는 거센 바람에도 부딪쳐오는 거센 억압에도
우리는 반드시 모이었고 우리는 반드시 마주보았었고..
살을에는 밤 고통받는 밤 차디찬 새벽서리 맞으며 우린 맞서리
영원한 사랑이여 변치 않을 동지여
사랑은 영원하리, 그대 나의 동지여

세상살아가는 동안에도 우리가 먼저 죽는다 해도
그 뜻은 반드시 이루리라 우리는 반드시 꼭 승리 하리라.
통일되는 날 해방되는 날 희망찬 내일 위해 싸우며 우린 맞서리
영원한 투쟁이여. 변치않을 동지여
투쟁은 영원하리, 그대 나의 동지여

동지들과 함께 한다면 우린 힘차게 전진할수 있으리.
이젠 절망 두려움은 버렸으니,
나가자. 이제는 해방. 우리는 영원한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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