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선주인이 사람잡는다

어제 술을 먹고 종로에서 너구리와 헤어졌다.

나는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버스 창밖에서 나를 바라보는 너구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우훗..... 사랑스러운 너구리 녀석.

집에 들어와 전화를 했더니 너구리는 그제서야 택시를 탔다고 했다.

 

"아니, 왜 이제서야 택시를 탄거야?"

"아으, 너무 황당한 일이 있었어."

 

그 황당한 일이란......

 

광화문을 거쳐야 집에 갈 수 있는 너구리는 택시를 타기위해 걸어서 광화문으로 향했다.

광화문 사거리에 도착했는데 전경들이 건널목을 막고 있었다.

너구리가 전경에게 길을 건너야 하니 비키라고 이야기를 하자마자 의료봉사 완장을 찬 사람이 다가와서 오히려 너구리를 말리더란다. 전경을 자극하지 마시라면서, 시민과 전경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면서. 그리고는 너구리 앞을 가로막으면서 마치 전경을 보호하는 공무원처럼 행동하더란다. 너구리가 자신은 오늘 시위에 참가한 것도 아니었고, 길을 건너야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데 전경이 막고 있어서 비켜달라고 한거라고 이야기 했더니 비슷한 말만 되풀이 하면서 무시했단다. 심지어 옆에 있던 어떤 아저씨, 너구리에게 군대 나왔냐는 질문을 던졌다. 주변에는 예비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그  의료봉사 완장을 찬 사람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너구리는 그들과 30분이 넘도록 실갱이를 하다가 겨우 빠져나와서 길을 건넜다.

 

그렇지 않아도 술자리에서 다른 친구 한명과 과연 이 촛불시위에 '거리의 정치' 또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과 같은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해 논쟁을 했었다.  나는 그런 수식어가 촛불시위를 지나치게 과장하고 미화시킨 것으로 보았고, 친구는 촛불시위에서 보여지는 현상들의 긍정적인 부분들을 강조했다.

 

나는, 언젠가 우리가 또는 지금보다 진보적인 정권이

사회의 진보를 위해 일시적인 불편과 약간의 불이익을 가져올 수도 있는 모험을 제안했을 때,

만약 촛불에 참여했던 그들이 이 모험적인 제안을 자신들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하게 된다면

촛불의 화살이 우리를 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지지율과 미국산 수입 소고기에 대한 지지율이 20% 이하인데 비해

FTA에 대한 지지율은 여전히 70%를 넘는다는 사실이 촛불을 들고 모여있는 이들의 정체성이다.

 

촛불에 나가서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다보면 촛불시위를 이끌고 있는 사람들이

황우석 논쟁과 디워 논쟁에서 큰 소리를 냈던 사람들과 같은 이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든다.

 

물론, 이번 촛불에 참여하면서 새로이 다른 세상과 다른 이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기대한 것 보다 적은 숫자일지 모른다. 집시법 개정에 줄을 서서 서명한 사람들이 이주노동자나 성소수자, 비정규직노동자의 이슈로 내미는 서명에 흔쾌히 동의하여 서명할 수 있을까? 나는 촛불 시위를 '새로운 변화'라고 칭찬하는 것이 공감되지 않는다.

 

정치와 사회에 담을 쌓고 살았던 사람들이 주인의식을 갖게 된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자신의 식탁까지 문제가 닥쳐야  민감하게 반응하고, 준법과 애국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는 그들이 앞으로 어떤 주인 행세를 할런지 걱정되고 두렵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