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과 구두

비 너 나에게 오늘 새롭게 다른 것이니? 비오는 날엔 발이 젖을까봐 은근히 걱정된다. 머릿속에는 이런 걱정이 이미 들어 있다. 구두가 부실한 사람이라서 그런가보다. 자연히 나의 발걸음은 V네로 향했다.

 

오전 일정이 끝나고 공릉동 v네 집으로 직행했다. 내가 V의 구두를 신고 있기 때문에 은근 걱정되기도 하고 지난 주 간다고 약속을 한 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성북팀원들과 칼국수를 먹은 뒤 포만감에 더위를 뚫고서까지 거기 갈 생각이 발동하지 않는 것이어서 약속 취소를 했던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오늘은 아무래도 좀 들려야할 것 같았다. "오늘 점심 같이 안해요?"하는 물음을 뒤로 하며 4호선을 타기위해 전철에 몸을 실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V는 왜 몇중으로 다른 얼굴을 보이는 사람이 된 걸까. 어느 한순간도 어느 한 시절도 일관된 모습과 안정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보자기전'에 나갈 작품을 하는데 거기에 홍이도 참여하는 모양이다. 홍이의 경력을 쌓아주는 일이라면 어느 한 번 놓칠소냐? 하는 입장에서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으려 한다. 작품전시회 건이 생기면 어떤 수단을 부려서라도 꼭 참여시키는 것이다. 이번 일도 자발적인 것인지 의문이다. 억지 춘향격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일을 통해서 한걸음한걸음 나아가다보면 게으름이 고쳐지고 인간적으로 더 성숙해지질 바라는 마음인 것은 안다. 이렇게 하며 모든 것을 에미가 나서서 끌고나간 연수가 오래전부터다.

 

V의 가슴엔 결핍이 있는 것 같다. 이중적이기도 하고, 추하기까지 한 사람을 본다는 것은 고역이다. 자녀의 단점이나 못마땅한 점을 끝없이 반복하는 것을 제 3자인 내가 새도때도 없이 듣기 좋을리는 없다. 인내심을 갖고 들어야할 의무도 없다. 근래에 들어서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시작할라치면 "됐다. 그만 듣고 싶다!" 말하기를 자주 반복한다. 별로 기분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너줄하게 썼다. 이런 V라서 그런지 홍, 진, 성과 같이 있을 때는 옆에 있는 사람은 투명인간처럼 취급하며 서로에게만 집중하는 티를 최대한 내는 것이어서 늘 가식적으로 그러는 것 같아 어색하다. 자주 돌변하는 이런 모습을 빨리 알아채고 반응하고 싶지는 않다. 반응하지 말아야 한다.

구두 얘기를 깜빡 잊어버렸다. 세상에서 제일 편한 구두라서 사지 않으면 평생 후회한다면서 14만원 짜리 구두를 자기도 사고 나도 사라고 부추겨서 산 적이 있다. 그러나 V는 이 구두를 신지 않는다. 나도 신지 않는다. V는 이거 신고 익산지방에서 전시회 갔다가 다리 아파 죽는 줄 알았다면서 다시는 신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이 구두를 신지 않는 이유는 V와는 다른 이유다.

 

난 사시사철 앞이 막힌 구두를 신는다. 아주 오래전부터 샌달 형 신발은 신은 적이 거의 없다. 여름이라 할지라도 맨발로 다닌 적이 거의 없어서다. 면 양말을 신고 살아버릇해서 그렇다. 그러니 어떤 종류의 구두든 맨발로 신었다가는 발이 까져서 사철 그냥 버릇대로 발이 막힌 구두를 양말을 신고 외출을 한다. 이런 이유로 샌들을 신을 이유도 없고 기회도 없게 됐다. 그냥 주구장창 사철 신던 거 신은 것뿐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그런데 근자에 와서 한 3년 신던 구두가 망가지고 구멍이 뜷렸다.

 

내가 신는 구두 종류는 구두쟁이들이 하는 말로 '가보시가 있는 구두'라고 한다. 앞굽 두깨가 1m쯤 이상은 되는 구두인 것이다.  원래 이 구두를 V한테서 선물을 받았다. 홈쇼핑에서 샀는데 세상에서 자기만 유일하게 약고 똑똑하고 야무져서 값싸고 편한 구두를 발견하고, 그래서 결단을 내렸고 이 결단의 결과 살 수 있었던 것처럼 말했다. 그게 어언 한 3년 된 일이다. 헌데 근자에 두켤레를 샀더라. 배달해온 책자를 보고서 앞에 리본이 달린 검정색 구두와는 달리 옆구리에 리본이 달린 구두까지 자기 원피스에 맞춰 샀노라고 뻐기면서 언니도 주문해서 신으라고 말을 했다.

 

내 구두는 사실 닳고 달았다. 아이들이 백화점 가서 한컬레 사자고 했지만 비싼 구두를 대나무때나 샀다가 잘 신으라는 보장도 없고 편한 신발이라는 보장도 없어서 사양했다. 책자를 받아서 주영이가 주문을 대신했다. 시간이 좀 지나 겨울 구두라서 절품됐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둔내에서 검정구두를 신고 왔다면서 검정 것을 날 신으라고 했다.

 

​부탁할 일이 생기면서 그 시점을 기해서 녹색구두를 내게 신도록 권하는 것이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 구두를 신고 다녔는데 아주 신으란 말이 없었는데 한 번 가서 걔 의사를 들어보고 내 신발을 도로 찾아 신고 오던지 말든지 해야하는 것이어서 공릉동에 갔다. 그만 일어서는데 검정구두 있다면서 신기더라.

 

확실히 부드러워진 것은 내게 00에 대해 부탁해올 때부터다. 나름대로 부드럽게 일처리를 하기위해서 인가? 그건 잘 모르겠다. 오늘 검정구두 하나가 생겼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6/07/17 09:07 2016/07/17 09:07
태그 : ,
트랙백 주소 : https://blog.jinbo.net/8434pjr/trackback/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