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곳이 명동이다. 자연히 명동에 자주 드나드는 사람이다. 그러나 명동에서 쇼핑을 하긴 오랜만이다. B가 열흘 예정으로 러시아에 가는데 일부 쇼핑을 명동에서 하고 싶다고 한 때문이었다. 내가 추천한 곳은 터미널 근처에 있는, 지금은 상가 이름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전에 '뉴코아' 라고 부르던 쇼핑상가다. 그곳은 중산층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라서 그런지 물건들이 수준급이다.
그런데 쇼핑을 하는 과정에서 결국 여러 군데를 들리게 됐다. 명동은 일본의 저가 메이커인 유니클로가 있는 곳이고, 반바지나 가볍게 입을 수 있는 옷을 사기 위해서는 유니클로에 꼭 가고 싶다고 했다. 그날 유니클로에 가면서 신선한 장면을 보게 됐다.
일본 도쿠시마라는 곳에서 온 소년소녀 합창단을 맞닦뜨렸다. 우린 2호선 을지로 1가 역에서 나와 명동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유니클로는 명동에서도 퇴계로와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곳으로 부지런히 가고 있는데 세일러 원피스를 입은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이 여름에 웬 단체복을 입은 학생들이구나!" 싶었다.
그러나 유난을 떨면서 교복 혹은 단체복을 입은 얘들은 웬지 일본 얘들이라는 느낌이 온다. 어떤 사람들인지는 모르지만 양복 차림의 미끈한 청년들이 에스코트 하는 장면도 보였다. 그런가 보다. 핸드폰 케이스 집으로 들어갔다. ㅂ로일을 보다가 한참만에 나와서 발길을 옮겼다. 그런데 합창단 얘들이 유니클로 건물의 계단에 열을 짓고 서서 합창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지나던 사람들도 발길을 멈추고 보기 시작했다. B와 나도 그중 하나였다. 앗, 합창단을 지휘하는 사람은 노신사가 아닌가. 정말 그랬다. 아이들은 참새처럼 입을 벌려서 화음을 맞춰 가락을 흘려보내고 노신사는 그 얘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얘들이 부르는 노애는 '아리랑'이었다. 아리랑! 어느 누가 아리랑을 싫어할까? 들으면 편하고 친숙하다. 크게 어려울 것도 없고 거슬리는 부분도 없다. 이래서 아리랑인가 보다.
관중들의 호기심과 반응이 크자 합창단은 신이 난 모습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가이드가 있었다. 여행가이드 아줌마들은 어딘지 표가 난다. 안내 깃발을 든 아줌마 가 둘이나 됐다.
"아줌마 쟤네들 어디서 왔어요?"
"도쿠시마라는 곳이에요"
"아~ 일본, 근데 학교 학생들이에요 뭐예요?"
"도쿠시마 시립 합창단 쯤 될겁니다."
저 장면 남겨야 하잖아? 어서 찍어봐! B가 재촉을 하는 바람에 폰카를 열어서 사진을 찍었다. 노랫가락은 어느 덧 '사랑해!'로 넘어가고 있었다. 앵콜곡을 여러 곡 준비한 모양이었다. 아리랑이 끝나자 사람들이 앵콜을 외쳐줬고, 합창단은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아~랑 해'로 응답을 한 것이다. 아! 이 노래도 정말로 좋은 노래로구나.그렇다. 라나에 로스포 라는 듀엣이 부른 '사랑해'는 가락도 쉽고 멜로디도 무리없이 유연하게 흘러가는 노래다. 노랫말도 사랑해 당신을 사랑해 정말로 사랑해라는 뜻을 담고 있어서 누구에게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정말로 참말로 오랜 기간 계속해서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특히 어린 학생들이 부르는 합창을 통해서, 게다가 자음을 발음하는 부분에서는 상대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발음 보다는 부정확하고도 부드럽게 처리를 하는 소리를 들으니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대중을 상대로 것도 합창으로 부르는 노래이니 만치 이에 합당한 보편성을 획득했느냐의 여부가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여러 면에서 보편성을 불러일으킬 만한 노래였다.
'와 잘한다. 앵콜!" 소리를 외칠 때 마다 지휘자는 관중들을 바라보면서 한껏 고무된 표정이었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자신의 인생 중에서 빛나는 한 순간이라도 되는 양 말할 수 없는 긍지와 자긍심이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사실 그러겠지. 저 노인네가 예술이 아니면 어디가서 이런 환호와 박수를 받으랴. 예술행위는 인간의 행위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도 우아한 해위가 아닌가. 더구나 노래로서 지금 바로 여기서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주인공이 자신들이라는 것을 눈으로 보는 순간이야말로 그 무엇과 바꿀 수 있는 순간일 것인가.
한낮 거리 공연을 맞닥뜨린 소감은 두어가지로 요약됐다. 예술의 감동을 공유하는 것은 아름답다. 평소 갈고 닦은 소질을 기부하는 것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다. 이게 어찌 듣는 사람들만의 기쁨이겠는가.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나섰고 합창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남과 교류하기 위해서 공연을 하는 게 아닌가. 일본 역시나 여학생들이 많은 점이다. 어디, 남자 대원은 몇명이나 되지? 하고 일부러 챙겨서 찾아봤다. 에그, 단 한명이다.
일본 얘들의 특성이 있었다. 아이들이 대체로 순진하게 보였다. 우리나라 얘들 같으면 외국에 공연하러 나갈 껀수가 있다 하면 저렇게 순진하게 하고 왔겠는가. 무슨 말이냐면 갖은 멋과 갖은 똥째를 다 냈을 거란 얘기다. 도쿠시마 합창단 얘들은 합창복도 헐렁하고 넉넉하게 입었을 뿐 아니라 치마 길이도 무릎 밑 발목 가까운 곳이었다. 거리에서 잠시 바라 본 광경치고는 상당히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