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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자, 세기말

칠십년대는 공포였고
팔십년대는 치욕이었다.
이제 이 세기말은 내게 무슨 낙인을 찍어줄 것인가.

한계가 낭떠러지를 부른다.
낭떠러지가 바다를 부여잡는다.

내가 화가 나면
나를 개 패듯 패줄
진구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오 맞아 죽은 개가 되고 싶다.
맞아 죽은 개의 가죽으로 만든 양탄자가 되고 싶다.
그리하여 이십일세기 동안
당신들의 발밑에 밟히며 넝마가 되어가고 싶다.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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