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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청춘엔진 후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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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상+끄적이기에 들어가야 하는데 귀찮아서 그냥 여기다 주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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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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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9/11/19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최선이라지만(3)
    아즈

무한청춘엔진 후기

아 졸려

이따 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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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일기

지금까지 고기 하나도 안 먹고 잘 버텼다 장하다

 

닭고기도 안 먹고 소고기도 안 먹고 돼지고기도 안 먹고 생선도 안 먹고

 

만두도 안 먹고 치킨도 안 먹고 백숙도 안 먹고 육개장도 안 먹고 고등어구이도 안 먹고 클럽샌드위치도 안 먹고

 

비싼 체인레스토랑도 안 가고

 

근데 라면은 먹었다 그래도 라면은 예외니까 ㅋㅋㅋㅋ

 

오늘, 아니 어제 오후에는 귀차니즘으로 식욕이 떨어지는 게 짜증나서 분노의 부추전과 분노의 묵무침을 처덕처덕 만들었다.

 

그래 죄다 존내 쉽고 간편하고 맛있는 그런 자취생 요리다. 근데 난 잉여다 잉여는 모든 것의 면죄부다.

 

내친김에 콩나물국하려고 콩나물까지 씻어놨는데 그건 싱크대에 놓고 까먹었다. 아무튼 엄마한테 칭찬 먹고 점수 땄다.

 

발제문 30분 쓰고 있으면 쓸데없이 노는 거고 콩나물 사오는 데 10분 씻는 데 2분 하여 12분 동안 이쁜 짓 했으면 하루종일 수고한 거다.

 

이런 반전영화가 다 있나.

 

앞으로 가계부 계산을 엄마한테 맡기면 안되겠다.

 

으악 근데 이건 채식일기가 아니잖아 back to the subject ㄱㄱㄱ

 

저녁에는 동생들 고등어 구워 주고 나는 간지나는 비빔밥 먹었다.

 

고기가 안 땡기는 나는 채식입문계의 위ㅋ너ㅋ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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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음

*

요즘 들어 칭찬을 많이 듣는다. 착하단 얘기도 듣고 웃기단 얘기도 듣고 다소 포괄적이지만 좋은 사람이란 얘기도 듣고

편하단 얘기엔 으악 기분이 흐뭇해졌고 평생 같이 살아도 안 질릴 거 같단 얘기는 새로운 충격이었다ㅋㅋ정말 그렇단 말이지...

소금인형 싸이어리에 만세 써져있을 땐 솔직히 오그라들었다. 그래도 고맙긴 진짜 고맙다 그런 인정을 받을 줄 몰랐음ㅇㅇ

그런데 좋은 얘기를 들을 때마다 항상 드는 생각은 '진짜?', '날 제대로 알고서 하는 얘길까?'

 

내가 볼 때 나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다.

복합성이란 게 좋은 말이 아니다.

나는 복합적이므로 언제 어디로 어떻게 튈 지 나 자신조차 모른다.

두 가지 사상이 내 안에 공존할 수 있고, 여러 가지가 얽히다 보면 정말 이상한 특성이 고개를 들 때도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굳게 믿는 동시에 그 사람이 하룻밤만에 죽어도 개의치 않고 살아갈 수도 있다.

솔직하려고 하지만 그 솔직함이 가져오는 피해에 대해선 그저 당연하다는 생각뿐이다.

가족 구성원 하나하나를 내 목숨보다 더 사랑하지만 웬걸, 나는 나의 가치를 0으로 평가하잖아?

100까지의 스칼라 상에서 끽해봤자 한 자릿수다.

엄마가 내 그릇이 감당 안될만큼 커서 미치겠다고 목놓아 엉엉 울 때 나는 아무런 무엇도 느끼지 못했다.

아빠가 너와는 앞으로 얘기하면 안 되겠다고 한숨쉬며 등 돌릴 때 나는 웃었다.

사람이 죽는 것에 대해 끔찍한 공포증이 있지만 역으로 그 트라우마가 나를 죽음과 슬픔에 대해 무감각해지게 만들었다.

아무리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 아무리 기가 막힌 일을 겪고 보고 들어도 감정이 욱 할 수가 없다.

깊숙이 억눌린 무언가를 시원하게 매듭풀어 끄집어내고 싶어서 미치겠는데 그냥 안 된다.

어떤 식으로든 싸우는 걸 오지게도 싫어한다. 군대야 가겠지만 반전주의자이며 평화주의자다.

하지만 그건 한 번 싸우게 되면 이기든 지든 그저 최대한 효율적으로, 철저하게 짓밟고 찢어발기는 데에서 쾌감을 느끼는

그런 나 자신이 혐오스러워서 그렇다. 이 또한 이기적인 이유에서의 사상 전환이다.

중학교 1학년 때 4월의 어느 점심시간, 같은 반 여자아이와 말싸움이 붙었던 적이 있다. 그날따라 열이 좀 심했는데

인신공격 한 방에 인내심이고 뭐고 그냥 다 벗어던지고 붙었다. 점심시간이 끝나자 그 애는 가방도 안 싼 채로 집에 갔고,

이틀 동안 학교에 못 나왔으며 결국은 선생님이 나를 끌고 가서 사과시켰다.

2년 반 후 한창 외고준비하느라 늦게 들어가던 8월 중순의 밤 3시 10분,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옆 건물 정전이나 시키고

문 닫은 시청 안으로 감시카메라 피해 들어가는 걸 함께 즐기던 친구와 열심히 문제풀다 늦는 양 알리바이 짜서 집에 가다 삥뜯겼다.

덩치 큰 고릴라 한 마리와 나만치 작은 키지만 날선 과도로 위협하던 그 두 명은 고1이랬다.

일 년 차이다. 몰래 따라가서 주머니와 가방에 든 지갑들 내용물을 죄다 뺏으려고 덮쳤다.

두 명이라서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아 뒤를 밟은 우리는 철없었지만, 뜯긴 놈들이 곧장 추적까지 해 올 줄 몰랐던 그들에겐 잘 먹혔다.

그 후로 여러 경험을 보고 들은 바에 의하면 내가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로 쉽게 끝났다. 지금 돌이켜봐도 사기극 같다.

킥복싱을 아버지로부터 수년 간 배운 친구는 타고난 힘을 믿었던 길거리아가리파이터 고릴라를 눕히는 데 별 힘을 들이지 않았다.

고릴라에게 복부를 허용했을 때보다 체육관 사범하고 연습경기 할 때가 훨씬 아프다고 했다. 하긴 지금도 정말 괴물같은 놈이다.

그에 비해 나는 태권도 1품이 전부인데 돌려차기로 과도를 떨어뜨릴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벽돌로 찍었다.

딴에는 소리없이 달려가서 납작한 면으로 옆통수를 후려갈겼는데 발소리가 들렸는지 팔을 올려 첫타를 막았다.

그래도 제대로 맞았는지 팔을 순간적으로 감쌌는데 그 때 거짓말 안 보태고 팔을 270도는 돌려서 때렸을 것이다. 있는 힘껏.

거짓말같이 손 한 번 못 올리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최초의 극단적 폭력이 가져온 우월함은 더한 우월함에 대한 확신을 불러왔다.

올라탄 다음 어디서 본 건 있어 라이터를 말아쥔 왼손으로 오른쪽 광대뼈를 때리고 때리고 또 때렸다.

세 번째부터 빨간 색으로 변하더니 스물댓번째부터는 얼굴 한 쪽이 시퍼렇다 못해 시커매지기 시작했다.

코를 때려서 코피가 샜고 열몇번째부턴 때리는 자리의 피부가 터졌다.

내 손도 벌겋게 부어올랐지만 골절상을 입었지만 그 땐 그런 걸 몰랐다. 그저 아래에 깔린 이 새끼 머리에 내 손이 닿는 게

그 생것의 느낌이 좋았다. 친구가 떼어놓지 않았으면 진짜 큰일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3년 전 그때만 해도 감시카메라가 곳곳에 있는 정도가 아니었고

cctv 사각 정도야 지금도 대강 기억날 정도로 잘 알고 있었으니 벽돌이라던지 하는 증거인멸하고 우리 것만 챙겨서 슬슬 빠져나왔다.

그렇게 떡이 되도록 때려 놨는데 신기하게도 신고가 들어가지는 않았는지 그 후로 아무 일도 없었다.

마음 한켠은 그 날의 그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반면, 한편으론 또 그 일에 대해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국방부 소속 아버지 밑에서 자란 사람이 평화주의 반전주의를 주장하는 이유다. 알량하지만 부분적으론 자기구속을 위해서다.

내키는 대로 하게 냅뒀다가는 다음 번에는 누가 알까, 그러다 사람을 죽일 지. 난 감옥에 갈 마음이 없다.

 

그들은, 나와 친하다 일컫는 많은 이들은, 이러한 내 모습에 대해선 아는 게 없다.

알고도 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적절한 선에서 제어를 하고 있다. 제어하지 못할 부분은 아예 막아버린다.

그렇지만 그걸로 내가 저렇다는 게, 사실은 이기적이고 폭력적이고 메마르고 끔찍하다는 게

그런 게 사라지지는 않는다.

언젠가는 수면 위로 떠오르겠지. 그 때, 내 주위의 여러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를 따지는 건 사실 무의미하다. 예전에 어쨌건 지금은 이 꼴이니까.

나는 내 숨겨놓은 본성을 바꿀 수 있을까? 슬플 때 울어볼 수 있을까? 비폭력을 진정으로 실현할 수 있을까?

현재로썬 전망이 어둡기만 하다.

 

좋은 의도에서라도 가식에는 질려가는 중이니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이 나를 재평가해줬으면 좋겠다.

지금의 모든 관계가 사상의 누각같아서 불안해 죽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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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상+끄적이기에 들어가야 하는데 귀찮아서 그냥 여기다 주저리

*

너는 누구냐 누군데 이렇게 친숙하게 다가오는 거냐

or am I just a bit too careful with people

안심하고 끌어안아도 되려나? 

9월의 경험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어디 머리가 알려주는 대로 움직인 적이 있어야지.

 

 

 

*

뭔가 공기와 웰빙 파트너쉽을 결성하는 삘 ㅋㅋㅋㅋㅋㅋ 채식에 이어 윗몸일으키기까지 ㅎㄷ

귀찮아서 운동 한 가지만 하면 알아서 골고루 빠지겠지 싶었는데 푸쉬업만 하니까 팔-어깨-등 모양잡히고 나머지 시망ㅋㅋㅋㅋ

허리가 한 사이즈 준 건 인정이지만 허리야 3km씩 뛰기만 해도 빠지는 거니까-_-

피곤할테지만 복싱 다시 시작해볼까. 한 두 달 주5일 돌고 나면 예전 모습은 대강 나올텐데 ㅇㅇ

근데 또 아침잠이 좋아서 시망이네............ 그냥 밤에 줄넘기 하고 기본기나 연습하는 그거시 일단은 정답일듯 ㅋㅋ

태껸 배우고 싶음 커~ 이크 에크 쓰아 하체유연성 절실 ㅇㅇㅇㅇ

 

 

 

*

요즘 고대철학을 프로타고라스부터 디오게네스까지 구획지정하고 다시 보는데 무명과 잠깐 했던 배틀이 인상깊었나

객관적으로 봐야 되는데 자꾸 비판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무명 빡치면 아마 이길 수 있는 사람 없을 듯 ㅋㅋㅋ

인구론 읽으면서 아 씨발 하고 구역질 나는 건 좋은 현상인데 국가 요약본 읽으면서 아 씨발 하고 구역질 나는 건 별로 안 좋다.

아무튼 좌든 우든 편향은 싫다.

치우치게 되면 논리의 탄탄함과 지식보유량에 상관없이 상대방 의견을 수용 안 한 채로 죽이려고만 들게 된다.

좌익이 죄다 빨갱이에 이기주의가 아니듯이 우익 또한 죄다 개수꼴에 씨발놈들은 아닐텐데

한 번에 엎어버리는 게 필요한 안건이 있는 반면에 점진적으로 천천히 꾸준히 개선해야 하는 것도 있잖아

왜들 그렇게 남이 했던 거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냐고-_-

우리나라는 왤케 흑백에 영향을 많이 받는 분위기인가여 스산하게시리.

예아 써놓고 보니까 역시 중구난방의 첨단을 달리는군

 

 

 

*

혼자 한자도 하기로 했다. 안 하면 제대로 된 글을 쓸 수가 없을 듯 어휘력이 후달리고 있어 ㄷㄷㄷ

근데 엄마는 이걸 또 확장시켜서 중국어 하라는데 날보고 과로사하라는 주문인지 ㅋㅋㅋㅋㅋ

 

 

 

*

민우 긍정적으로 개조하기 프로젝트 돌입 ㅋㅋㅋㅋ

일단 인간불평등기원론과 자유론을 읽혀야겠군

 

 

 

*

유흥거리후기에 글 쓰려고 했는데 그러려면 표든 씨디든 책표지든 사진을 찍어야 만족스러울텐데

근데근데 귀찮다 카메라 꺼내기도 귀찮고 폰카 찍기도 귀찮고

아 그냥 이미지 펌이나 해야겠음 귀찮은 잉여는 어떻게든 대안을 찾는다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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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3

*귀가

 

자존심 따위 오래 전에 으드득 씹어먹고 소화시켜 싸 버린 굽신계의 거성 아즈, 아프기도 하고 춥기도 하고

그래서 아까만 해도 잡아먹을 듯 자웅을 겨루던 적수 마덜에게 굽신굽신 전화를 해서 피씨방픽업을 당했다 ㅋㅋ

노트북은 아직 못 받은 간지나는 시츄지만 환한 얼굴의 집컴은 돌아온 탕아를 반겼고 나는 누가 볼 세라 대기모드 전환을 시켰다.

여기에 이 시간에 글을 지를 수 있는 이유의 레죵 대기모드 ㅋㅋㅋ

 

 

 

*집안일

 

주중에는 빨래를 널고 동생 숙제를 봐주고 솥에 밥 안 떨어지게 제때제때 쌀 씻고

주말에는 설거지하고 쓰레기 버리고 집안 정리하고.

나한테는 그냥 당연한 일이다. 중학교 다닐 때도 집안 걸레질과 쓰레기 버리는 일은 내가 맡아놨었고, 초등학교 시절에도

뭔가 끝내야 할 집안일이 있으면 헬퍼로 자동지원했다.

사실 재수학원에서의 4달을 제외하고 2월 말 귀국해서 지금까지 나는 가사분담이란 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아빠가 엄마한테 일 다 시키는 게 아빠가 이상한 사람이라서 그러는 줄 알았다.

한국에서 10여년을 살았음에도 그렇게 생각했다.

아빠가 비정상이 아니라 대한건남 반수 이상의 남성들이 비정상이란 걸 왜 이제서야 알았을까-_-

또 이 정도로 도와주는 거면 주위 사람들 얘기 들어봤을 때 웬만한 집 아들들보다 훨씬 효도하는 건데

엄마는 왜또또 그렇게 날 옥죄려 하는 건지;;;;  아 그거하고 이건 별로 상관이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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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까놓고 허세없이 고해성사

*

걸을수록 아프다. 사고 당시에는 별로 안 아프다더니 진짜다-_-

어제는

공기하고 정말 정상적으로 통화하면서 약간 절뚝거릴 뿐이었는데

뼈가 놀랐고 근육이 놀랐고 단순타박상이고 외상후스트레스 있고

아무튼설명하는 증상이 빈약해보여서 얕잡아봤다가 훅갔다.

지금 피씨방인데 허벅지에만 오던 아픔이 무릎하고 정강이까지 내려와서 집에 갈 수 있을 지조차 모르겠다.

이대로 죽돌이 되는 건가염 ㅋㅋㅋ

부은 건 멍든 자리만 부었는데 아픈 건 오른다리 뚝 잘라놓고 보면 대강 절반 정도가 시큰시큰 화끈화끈.

아 씨바 왜 아까 공들여서 밥 해놓고 정작 나는 먹지도 않았을까 그래서 또 왜 약도 안 먹었을까 진통제있는데 거기

앞으로 의사 말이라면 꼬박꼬박 들어야겠다 돈드는거 빼고

 

 

 

 

*

언급했듯이 지금 피씨방. 성명서 보내려고 노트북 달라니까 엄마가 안 주셔서 으르릉 와우웅 왈왈 컹컹 깨갱깨갱

열뻗치는데 집에 계속 있어봤자 나만 불편하니까 일단 나와서 어디갈까염 생각해봤는데

일산에는 겨울에 딱히 놀거나 쉴 공간이 없는거다. 열라 추운데.

그래서 주변에 뭐 투썸이라도 있나 봤더니 또 생각해보니까 투썸 가려면 반대쪽으로 20분은 걸어야겠는거다.

츄리닝에 후드여서 추운데 마땅히 갈 곳도 없고 다리도 점점 이상하고 그래서 그냥 거리에 보이는 피씨방 아무데나 들어갔다.

근데 또 엘리베이터가 없는거다. 3층인데.

그래서 올라가는데 2층도 못 가서 아 다리에 불붙었구나 싶었는데 쓸데없는 오기가 생겨서 결국 3층까지 올라갔다.

난 정말 진짜로 내 몸 신경 안 쓰는 거 같다-_- 오래 살고 싶은데 무의식 중에 막 굴린다.

저질러놓고 나중에 힘들 건 생각 안 한다. 나쁜 습관이다=_=

역시 솔로라서 자기 몸 소중한 줄 모르는 게 된 건가 ㅋㅋ 깨진 지 얼마나 됐다고 자포자기냐 

아무튼 살려줘

 

 

 

*

아까 리얼 허세 부려놔서 애들 지금쯤 나 열라 잉여에 한개도 안 아픈데 괜히 부탁 씹고 그러는 줄 알겠다.

앞으로 정직하게 살게 나 진심 존내 아프단다 선처좀 따이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요일까지만 나아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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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뒤틀림.

1.

어렸을 때 초등학교 5학년이 되도록 야뇨증에 시달렸었다.

 

원래 틱 장애나 ADHD나 자폐 증세가 나타나야 하는 환경이었지만 그간 키워놓은 나의 공상과 엄마의 필사적인 자식보호로

 

거진 이틀 걸러 하룻밤마다 이불에 침대에 방바닥에 지리는 것으로 액땜할 수 있었다.

 

물론 위의 세 방해꾼들이 내게 찾아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고, 지금도 그들의 잔재에 조금씩은 영향을 받는 중이다.

 

그래도 정말 엄청난 문제로까지 심화될 수 있었던 증상들이 약간의 말 꼬임과 가끔씩 나타나는 '준'자폐?? 로 끝난 건 정말 다행이다.

 

 

 

2.

나름 가까웠던 지인들 중 중학교 1학년 때 한 명, 2학년 때 한 명, 3학년 때 두 명이 죽었다.

 

슬픈 것에 눈물을 흘릴 수 없게 된 트라우마는 2학년 때 찾아왔고, 현재 통합실조증이라 불리는, 더 대중적인 용어로는

 

정신분열증이 될 나의 제일 큰 문제는 1학년 여름방학의 초입부터 내게 굴레를 씌웠다.

 

정신분열이라 하면 영화 아이덴티티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텐데, 사실 schizo.의 범위는 진짜진짜 넓다.

 

존 내쉬처럼 사람이 보이는 경우가 흔하지만, 내 증상은 내가 쓰레기같은 현실 상황에서 도피하고자 불려놓은 상상력에서 기인했다.

 

초기엔 사촌 형의 환청이 들리고 꿈에 자꾸만 나타났다. 무섭고 다급해진 기분의 내 마음은 돌파구를 찾았고,

 

어린 시절부터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 만들어진 내 세계는 점점 커지고 커져 거울 너머의 다른 세계마저도 잠식하기 시작했다.

 

적절한 멘토와 일련의 긍정적인 사건들 덕분에 눈길 닿는 모든 곳에서 글자가 피어나고 상이 일그러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본인이 죄다 환상임을 인식하고 있다 뿐이지, 이게 완치될 증상은 아닌 걸 나 자신이 가장 잘 안다.

 

약간 융화되었다 뿐이지, 내 Fantasie는 그대로 주변을 맴돈다.

 

 

 

1번이든 2번이든, 피할 수 없는 것들은 끌어안고 가는 게 상책이다. 걷다 보면 대안이 생각나겠지.

유일한 불만은 이제 점점 외로움의 쓸쓸한 온도를 체감하는 11월인데 무게를 덜어줄 사람 하나 없다는 거.

아니, 사람이 없다기보다는 내가 남한테 짐 싣기가 미안하고 또 두려워서 손을 못 뻗치겠다.

이 사람이 안 해도 되는 일인데 쓸데없이 맡긴 건 아닌가?

내 또 다른 면을 봐 버린 저 사람이 나와 떨떠름한 관계가 되어버리면 어떻하지?

무관심한 척 귀찮은 척 하지만, 그나마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마저 떠나가버리면 난 아마 주저 않고 뛰어내릴 거 같다.

그래, 애정결핍 또는 과도한 스트레스에 의한 부작용 발생도 추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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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

공기와 이것저것 얘기하면서 기나긴 귀갓길을 견디다가 채식을 하기로 느닷없이 득달같이 약속을 해 버렸다 ㅋㅋ

 

Bio-제품(환경친화적/유기.무기농 제품) 광팬들의 나라라서 그런지 독일엔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심지어 학교 급식에까지 채식하는 사람들을 위한 메뉴가 따로 두세 종류는 준비되어 있을 정도였다,

 

같은 학교의 한국인 누나가 채식하는 걸 보고 신기해서 따라한 적이 있었다.

 

결국은 원석이 형의 지속적 꼬드김에 다시 불판을 잡게 되었지만 ㅋㅋㅋ 두 달에서 두 달 반 정도?? 내게도 채식의 경험은 있었다.

 

고기를 안 먹는다는 게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단백질 섭취에는 콩과 달걀과 유제품이 있었고,

 

굳이 고기에만 매달리는 골수 육식도 아니었으니까 안 먹는다고 해서 냄새만 맡아도 침을 질질 흘리지는 않았다.

 

근데 아무리 채식을 계속해봐도 신진대사에 유리한 점이나 밥 먹는 시간이 줄어드는 따위의 소소한 이점들 빼고는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짜증났다.

 

그래서 때려쳤다.  목적 없는 행동만큼 지속가능성 희박한 것도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요즘은 생각이 또 다르다. 뭐든 내게 득이 되었으면 되었지 해가 될 일이 없는 것이면

 

기분이 어떻든 일단 계에속 쭉 하다 보면 목적이 생기지 않을까? 꼭 멍석이 깔리고 조건이 주어져야 뭔가를 해낼 수 있다는 건

 

그건 단지 변명일 뿐이다.

 

무언가의 지속성을 단순히 기분에 따라 규정짓고 선을 긋는 건 또 하나의 가능성을, 기회를 포기하는 일이다.

 

아 뭐래.

 

아무튼 오늘 아침부터는 채식 시작이네요 ㅋㅋㅋ 더도 덜도 말고 일단 작심 삼 년만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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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창 죽돌이 블로그들

내 노트북의 주소창에는 언제나 남아있는 블로그 주소가 딱 세 개 있다.

내 진보넷은 애초에 도피처를 찾아 온 거니까 당당하게 띄워놓을 리가 없고;;

하나는 현재 부모님과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각종 매체를 금지당해 급다운된 ㅊㅇㅅ 티스토리,

하나는 그저 만화가/만화작가 를 넘어서 '참 괜찮은 사람이구나.'를 느낀 네이버 웹툰작가 무적핑크 님 블로그,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언제부터 이어온 인연인지 애매하지만 볼 때마다 동경하게 되는 여러가지를 가진 사람의 블로그.

 

첫번째 dev. 는 그냥 봤을 때는 공통점이 그닥 없어보이기에 가끔 이 놈이 나와 어쩌다 이렇게 가까워지고 낄낄거리면서 어울려노는걸까-_- 머리굴리기도 하지만 어찌되었든 이제 와선 내가 그에게 나를, 그가 나에게 그를 믿고 맡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dev.의 여친님 ssue는 나와 남매의 맹약??을 맺은 사이니까 그러고보니 셋이서 이상하게 엮였네ㅋㅋㅋ 

무조건적 신뢰의 대상이라는 게 여간해선 찾아오지 않는다는 걸 생각해봤을 때 나는 정말 복 받은 것 같지만 이건 사족이고;;

아무튼 이 놈은 나와 묘하게도 엄청나게 친한 사이인 걸 제외하더라도 대단한 개념인이기 때문에 가끔 들어가서 새 글을 확인해보면 '역시 dev.' 라는 생각을 하면서 어느 새 반복하며 읽게 된다. 근데 이유를 굳이 달자면 개념인이기 때문이고 사실은 그냥 절친한 애들 중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이 얼마 없어서 그런 걸 텐데 또 친구 옹호하느라고 무의식 중에 쉴드 치고 있다 ㅋㅋ

 

두번째 무적핑크 님은..............할 말이 별로 없다 ㅋㅋ 내가 그 분을 개인적으로 아는 것도 아니고 하니 내 평가(평가당하는 게 싫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지만 기실 우리 모두는 우리만의 잣대로 누군가를 평가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평가당하며 살지 않던가?)는 그 분의 만화와 블로그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 주어진 정보라곤 고등학교 때 서울시 영재교육프로그램 미술 분야 1회에서 수석 입학 하였고, 고려대 미대를 갔다가 그냥 맘에 안 들어서(솔직히 거품과 연기를 걷어내고 보면 이거다.) 약 100일 동안 실기를 준비한 후 흔치 않은 미대 독학반수를 통해 서울대 미대를 들어갔으며, 진솔한 성격에 한국어구사능력이 뛰어나고 실생활에선 소심한 면이 있는 듯 하며 사회를 왼쪽으로든 오른쪽으로든 치우치지 않은 인간 기준의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자라는 것 밖에 없다.

근데 이거 다 뻘소리다. 난 이 사람을 모르거든. 얘기라도 한 번 해보면 분석이라도 할 텐데 reach out 하기도 귀찮고 뭐...

아무튼 위와 마찬가지로 가끔 들어가서 이 사람 뭐하나... 들춰보면 절대 내 기대치보다 낮은 무엇을 선사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저 블로그는 항상 주소창에 죽치고 산다.

 

세번째 C는... 아마 내가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대전에서는 나름 영어영재 소리를 듣던 애들이 모인 학원에서 특강반을 들어가면서부터 알았던 것 같다. 당시에는 서로 이름도 모르는 서먹서먹한 사이였는데,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계속 같은 학원 같은 반을 다니면서 점점 익숙해지다가 대원 합격발표 나고 분당으로 학원 따라 자취하러 갔을 때부터 본격 친해졌다. 요즘도 그런지는 정말 의심스럽지만서도 몇 년 전만 해도 우리 엄마는 완벽한 자유방임주의자여서 아들을 보정역 5분거리 투룸에 휙 던져놓고 가버렸지만, C네 아주머니는 딸사랑이 지극하신지라 (근데 이게 왜 아직까지도 안 부러운지 모르겠다 ㅋㅋㅋ) 학원에 가까운 정자역 3분거리에 오피스텔을 잡아 방학 내내 C와 같이 사셨다. 대전에서 올라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는 건 둘의 공통점이 되었고, 둘 다 심각한 음덕후였기에 우리는 서로의 새벽을 심심하지 않게 지켜주는 조, 좋은 문자가디언이 되었다. 이 인연은 고등학교 진학 후에도,  내가 독일로 떠난 후에도 계속되었는데, 자칫 삐끗하면 훅 하고 끊어질 수 있는 아슬아슬한 끈을 이어준 게 C의 블로그였다.

진심을 담아 쓰는 건데 C는 정말 글을 잘 쓴다. 기술이나 서사적 측면 등 객관적 잣대로 재어 보았을 때는 무슨 말이 나올 지 모르겠다. 하지만 C가 쓴 글을 읽고 있자면 그녀가 정말로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묘사하며('그대로'라는 말은 누군가가 글을 쓰면서 제일 실현하기 어려운 단어 중 하나라 생각한다.), 느낀 점과 들었던 생각을 머릿속에서 또 '그대로' 사진처럼 옮겨온 듯한 느낌이 든다. 글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그녀의 글쓰기가 그녀의 말투를 닮은 건 아니지만, 한 자 한 자 차분히 받아들이다 보면 자연스레 따뜻한, 편안한, 그러면서도 맺을 때는 단호한 저음의 목소리가 귓바퀴 주위를 메아리친다. 아직 그리 규정하기는 이른 단계다. 그래도 C의 글은 이미 그녀 자신의 색깔을 띄고 있으며, 쉽게 읽히면서도 읽는 사람을 한 번쯤은 더 생각하게 만든다. 아 졸려 점점 횡설수설이네ㅜㅜ

한 때 C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랑했다가 헤어졌다가 하면서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C를 인간으로써, 글쟁이로써 동경했던 거였지 이성으로써 좋아한 건 아니었다. 그 동경은 아직 건재하다.

 

 

내 글도 C처럼 누군가에게 달갑게 읽혀지고 있을까?

내 싸이어리를 정기적으로 읽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도 왠지 마음이 턱-하니 뭔가 해낸 것처럼 뿌듯했다.

하지만 끝내 칭찬을 목구멍으로 넘기면서 혀 뒷부분으로 느끼던 씁쓸함을 잊지 못한 건

싸이어리에 쓴 글은 '나'의 일부만을 보여줄 뿐이지, 내 글을 보여주는 예시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었으리라.

내 블로그의 고정 독자의 여부라던지, 그런 걸 알 수 있다면 굉장히 흐뭇해질 것 같다.

진보넷 시작한 지 며칠 되도 않았는데 이런 망상이나 품다니 ㅋㅋㅋ

헛될 수도 있는 기대를 안고 오늘도 습작 단편이나 두드려야겠다.

그나저나 요즘 취침시간 왜 이러지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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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최선이라지만

*

그 순간 다른 무언가에 매여 있었다 하더라도

할 수 없었던 것 때문에 씁쓸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팔연대를 금지당하고 (그런다고 안할 거냐 그건 또 아니지만 ㅋㅋㅋ)

진청모를 금지당하고

그나마 살린 아수나로에도 이것저것 제약 걸리고

명동 집회 나가는 걸 금지당하고

십수 명 연행되었단 얘기에 그것 봐라 엄마 말 듣길 잘하지 않았느냐 깔깔 웃고

왜 라고 묻자

 

경찰에 안 잡혀갔으니까 잘 됐잖아?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지들이 노력해서 돈과 힘을 가져야지 그런 식으로 백날 해도 안 돼 ㅉㅉ

 

내가 아직 순진한 걸까 엄마가 잘못 생각하는 걸까?

여행도, 자취도, 연애도, 음주도, 마약도 허락해 주면서 이건 왜 안 되는지 진짜 모르겠다.

내 자신을 운동권으로 규정하지 않는다는데 뭐가 그렇게 무섭냐고.

정말로 권리를 위해 몸에 칼을 대는 날이 올 지도 모르겠다.

 

half a pound of flesh. this time with bones n blood.

그때가선 아프긴 진짜 아프겠다-_- 회복하는 데 몇주 걸릴 듯ㅅ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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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어떻게 쓰냐고 ㅋㅋㅋㅋ 정보좀줘 정보좀

...아맞다 내부겟판을 아직 안봤구나 빙신-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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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사람이 생긴건가? 전화할 때 번호를 잘못 누르는 일은 거의 없는데;

뭐지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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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하고 과외... 거리 문제 어쩔 ㅋㅋㅋㅋ 남양주까지 뭐 직통 이런 거 없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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