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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함은 느림에서 온다. 느림은 관조에서 온다. 관조란 곧 감상이다. 그리하여 생활감상문.'에 해당하는 글들

  1. 2008/08/30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2. 2008/08/28  하고 싶은 요리 (3)
  3. 2008/08/20  하룻밤 자면서 생각해 보니.
  4. 2008/08/19  내가 정말 바라는 변화
  5. 2008/08/17  올림픽 효과: 춘천행 기차의 맛을 알다
  6. 2008/08/13  두서라곤 없는 여름밤의 일기
  7. 2008/08/09  휴가가 끝났다.
  8. 2008/07/30  휴가 계획 그리고 까먹지 않기 위하여. (4)
  9. 2008/07/15  화끈화끈 여름의 불꽃 (3)
  10. 2008/07/09  폭염성 휘발에 반하여.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2008/08/30 08:16 생활감상문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내일은 가려고 했는데...... 바쁜 일 다 보고서, 어쩌면 오늘 밤 영화 한 편도 보고서.  내일, 내일이나, 내일까진 가려고 했는데. 그런데 새벽에 돌아가셨다. 마침 요즘 들어 가장 늦게 잔 날, 그 시각쯤. 할머니가 위독하신 걸 들었으면서도 나는 새벽 다섯시 반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고 전화를 끄고 다시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따로 연락을 받은 동생 문자가 와 있다.

나는 땅에서 솟아나온 돌아이처럼, 천지상간 그리 태어난 아이처럼, 그리 살다가 결국엔 꼭 이런 소식을 듣는다. 삼촌이 돌아가셨을 때도, 이모가 돌아가셨을 때도, 고모부가 돌아가셨을 때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편안하니 사람 만나고, 술 마시고, 바깥일로 바쁘고 집에 연락 안 하고 그러고 돌아다니다가, 자다가, 술 마시다가, 밥을 먹다가 연락을 받는다. 

아니다. 이번엔 알고 있었다. 목요일부터 알고 있었다. 작년부터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내-일 가려 했다. 언제나 내-일. 이모가 돌아가실 때도 엄마는 내-일 가자고 하려 했단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나는 지-금 가지 않는다. '일'이 있는 것이다. 누구도 대치할 수 없는 '내 일이라고 주장한다. 지방에 사는 필자와 만나기 힘든 필자와 임신한 필자를, 개강 전에, 만나려고 몇 주나 애써서 잡은 약속인데, 담당자인 내가 빠질 수는 없지. 저녁에 가면 되겠지. 몸도 안 좋은데, 사흘이나 초상을 치를 수 있을까. 월요일 하루쯤은 휴가를 낼 수 있을까. 아니다. 월요일 오후에도 까다로운 필자와 예측 안 되는 디자이너와의 미팅이 있었지, 내가 자리를 비울 순 없지라고 생각해 낸다. 아, 그러면 발인도 못하고 회사에 잠깐 들러야 할까? 이러고 있다.

 

입고 갈 옷이 없다. 아니 한 벌쯤은 있다. 아는 사람의 누군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몇 시간쯤 들러서 조문할 때 입을 만한 옷. 날은 아직 여름인데,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입고 갈 옷이 없다. 여벌의 옷을 사야 할까? 아니면 상복을 입으라고 할까?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

빨래를 한다. 중성세제로 란제리 한 코스 돌리고, 이어 수건이랑 삶은 속옷 등을 빨아야지. 주말 내내 집에 없을 텐데... 다음주에 출근하려면 오늘은 빨래를 해야 해. 다 널어놔야지. 된장찌개 끓이려고 두부 사다 놓은지가 이틀인데... 상하면 안 돼. 된장찌개를 끓인다. 냉동실에서 밥을 꺼내 밥을 먹는다. 남은 찌개는 냉장고에 넣어놔야지.

 

이러고 있다. 이러고 있다. 이러고 있다. 이번에도 또 이러고 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우리 엄마는 이제 고아가 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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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30 08:16 2008/08/30 08:16

하고 싶은 요리

2008/08/28 00:25 생활감상문

두부 양배추 찜

버섯과 야채를 다져서 두부와 달걀에 버무려 만두속처럼 치댄 다음, 찐 양배추잎에 한입 크기로 돌돌 말아 토마스소스에 조린 음식. 서양식 양배추찜을 채식자를 위한 두부 요리로 변신시킨 요리.

 

녹차 모닝롤

지난 달에 두 번인가 구워서 나름 히트친 것에 고무받아 밀가루를 잔뜩 사들였는데, 뭔가 에너지 부족으로 적극적인 베이킹을 못하고 있다. 제빵기에 밀가루, 달걀, 우유, 유기농설탕, 구운소금, 이스트, 녹차가루를 넣고 반죽 코스 돌린 다음에 1차 발효시켜 꺼낸 다음 모양 만들어 2차 발효해서 구워 주면.... 냠냠... 

 

시나몬롤

<카모메식당> 이후 시나몬롤이 홈베이킹계의 떠오르는 샛별이 되었다지? 나도 굽고 싶다.

 

땅콩 찹쌀떡

봄에 쌀빵 레시피 연구한다고 현미가루 5kg, 찹쌀현미가루 5kg 사들였는데... 제빵만으로는 소비 속도가 너무 느리다. 떡집에서 파는 검은콩찰떡 스타일로다 땅콩 넣고 쪄서 한번 돌릴까 보다.

 

꽁치 김치찌개

냉장고에 쉰김치가 많다. 김치찌개 끊여 먹으려고 꽁치캔 사온 지가 벌써 두 달인데, 못 끓이고 있다. 하기는... 꽁치김치찌개는 11월쯤이 최고지. 찬바람이 코끝을 쓰칠 땐.. 따스했던 삼*호빵만큼이나 소주에 꽁치찌개, 꽁치김치라면이 최고인기라....(라고 말하지만, 이건 학생 때 석유곤로에나 하던 짓. 켁)

 

그 밖에도 많다. 새로 산 요리책에서 새로 고른 요리법들.

그러나 요새 너무 기운이 없다. 에너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충실하게 써버려서 그렇다.

쓰고 충전하고, 또 쓰고 충전하고. 흐름은 좋은데, 요리할 기운이 없다. 아니 시간이 없는 건가?

그럼 전에는 무슨 기운과 시간으로 빵 굽고 반찬 만들어 도시락 싸가지고 다녔던가.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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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8 00:25 2008/08/28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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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자면서 생각해 보니.

2008/08/20 09:00 생활감상문

하룻밤 자면서 생각해 봤다. 자면서 하는 생각이 제일 복잡하지만 자고 나면 제일 단순해지니까. 꿈에서라도 계시가 내려질 줄 알고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더 침대에서 빈둥거려 봤지만 잠도 얕고, 꿈은 오지도 않더라.

 

그런데 상황이 나빠진 데 데해서... 이상하게도 속은 상하지만, 실망은 안 한다.

처음부터 큰 기대가 없었다 이건가?

 

근본적인 슬픔과 근본적인 기쁨이란 애시당초 불가해하며 또한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순례길을 떠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 일이지만, 그 일이 내 삶에 확실한 대안을 주지도 않을 뿐더러, 내가 현실에 발 붙이고 있는 한은, 오랜 시간 준비해서 떠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랬다가는 하루하루 그 순간에 충실하겠다는 내 다짐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그냥 떠날 수 있을 때 떠나는 거다. 슬픔이나 기쁨이라는 감정과 무관하게.

 

언제부터인가 삶이...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어찌 할 줄 모르다가 어느 날 문득 실행"하는 방식이 되어 간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게 적합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오래 생각하고 계획한 것일수록 꼭 틀어지더라고.

 

오래 계획한 일이 있고, 실행을 앞두고 결과에 대해서뿐 아니라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에 떨면서 (사실 별 일도 아닌데) 차일피일 미루고, 갑갑해하고... 그런데.... 역시 삶은 내 계획이랑은 상관이 없더라는 거. 별 일도 아니라 생각한 일이 상황 속에서 참 하기 난감하게 되어 버렸더라고.  '하필이면, 좀더 빨리도 아니고, 좀더 늦게도 아니고... 왜 지금일까. 젠장'이라고 생각을 해봤지만, 사실 나만 몰랐던 것이든, 내가 내 편의로 너무 낙관했던 것이든 이 상황이란 다만 처음부터 존재했던 거다. 이제 와서 딱히 나빠진 게 아니라. 

 

어쨌든 내가 개입해서 상황을 바꿀 여지도 없는 일인 데다가, 더 기다렸다가는 결국 아무것도 못하게 될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 적당한 타이밍을 다시 기다린다.... 뭐 이러는 게 결과를 얻는 데 도움이 될지 어쩔지도 불확실한 데다가 내 삶에서는 꽤 중요한 시점에서 중요한 시간을 낭비하는 게 더 싫다는 거... 뭐 그런 식으로 정리가 된 듯싶다.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 내가 하려는 일을 바꿀 수는 없는 듯싶다. 결국 이건 계획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더라고. 그러니 크게 숨 한번 뱉고 또 들이쉬는 수밖에. 하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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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0 09:00 2008/08/20 09:00

내가 정말 바라는 변화

2008/08/19 01:09 생활감상문

주말에 즉흥으로 떠난 춘천 여행 즐거웠다고 갑자기 너무 즉흥 모드.

낮에는 멍하고, 밤에는 술 마시자고 낄낄거리며 친구 불러내고... 완전 일탈 추구 모드다.

이유는 현실 도피적인데, 이제 그만 정신 차려야겠다.

몸도 웬만한데 괜히 그런다.

 

갑자기 갈현동 집 작은 방이 생각난다. 깊이 잠들던 작은 방.

책상이 있었지만, 그 자리에서 공부한 적 별로 없고,

옷장도 있었지만 패션쇼할 거울은 안방에 있었다.

오직 낮에는 책 읽고 밤에는 잠자기 위해서만 쓰이던 작고 아늑한 방.

그런 방에서 그런 잠을 매일 잘 수 있다면 이 모냥을 탈피할 수 있을까?

 

그 방에서 살던 때가 열 살 때인데, 그 방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퇴행이로구나.

왜 일케 변화를 두려워하는지.... 왜 또 딴짓인지.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닌데.

 

장난 삼아 점성술 사이트에 정보를 등록한 나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메일을 보내는 미국의 점성술사 아줌마가 있다.

어제 아침에 온 메일로는... 어제부터 48시간이 중요하단다.

내 인생에 거대한 변화가 불어닥칠 거고, 잘못 넘기면 위험하다나?

이 아줌마가 그동안 꾸준히 보낸 편지가... 굿을 해서...

엄청난 행운을 가지고 태어난 내가 뭔가 어릴 적의 트라우마를 버리고

내 운대로 살게 해주겠다는 거다... 그래서 굿을 하도록 나한테 승인을 하라는 거다.

재미 삼아 할까 하다가.... 그냥 내비두었다.

 

거대한 변화, 큰돈, 위대한 사랑은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내게 주어진 현실을 담담하게, 직시하면서, 뭐라도 하나하나 해가면서

살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된다. 내게 일어나는 변화가 그런 변화라면 좋겠다.

그러면 나머지는 내가 어케든 해볼 텐데. 정말 그럴 텐데. 그러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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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9 01:09 2008/08/19 01:09

올림픽 효과: 춘천행 기차의 맛을 알다

2008/08/17 20:05 생활감상문

올림픽 효과로다 1박 2일 춘천 여행을 다녀왔다.

정확히 말하면 여행을 했다기보다는 춘천에 사는 M언니에게 놀러 간 셈이지만.

 

요사이 3/4분기 일드 보고 싶은 것도 없고, 또 어찌어찌 해서 한국 드라마들 보고 있었는데...

올림픽으로 인한 계속된 결방으로,,, 스트레스 받다가...

(정확하게 말하면 드라마 결방으로 스트레스 받았다기보다는

뜻하지 않은 철야근무로 인한 스트레스... 외출로 풀고 싶었는데,

골골해서 한의원 갔더니 휴가 가버리고...

짝꿍 H양은 혼자 여행 가버리고, 되는 일 없다며 후배 HN양에게 전화했더니

일욜에 간만에 다른 후배들과 함께 보기로 했는데...약속 미뤄졌다 하고...

그 밖에 한두 명 접촉 시도한 친구들은 연락 안 되고...

하루 종일 잠이나 자려 했더니 그것도 3시간 자고는 잠 안 오고)

그 상황에 드라마마저 안 하더라...는 스트레스다.)
3년 만에 춘천으로 놀러갔다.

 

몸이 안 좋으니까 찜질방과 지압 생각이 났는데,

찜질방 하면 곧장 떠오르는 사람이 (한동안 찜질방 마니아였던) M언니....

그런데 불현듯 생각해 보니 한 달간 필리핀 여행 갔던 언니가 광복절에 돌아온다는 예정.

그래서 잘 갔다 오셨냐 안부 전화해서... 되는 일이 없다 했더니... 할 일 없으면 춘천 놀러오란다.

(본인도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이라 피곤한 데다

여행 때 노트북 망가져서 밀린 원고 때문에 데따 바쁘신데...

욕구불만 후배 불러주시다닛... 감사할 따름이지.)

M언니가 매번 놀러오라고 했는데, 바쁘기도 하고,

또 지난 번에 갔을 때 돌아오는 길에 길 막혀서 고생도 하고,

늦게 왔다가 오후에 있던 약속 심하게 늦어서 기다리던 사람들한테 욕먹은 기억도 나고...

교통사고 이후엔 장거리 여행 피하게 된 것도 있고, 그래서 늘 쭈볏쭈볏 안 가게 되었는데....

그냥 이럴 때 한번 가야겠다 싶어서 곧장 기차표 끊어서 청량리역으로 갔다.

(하지만 정말 드라마만 했어도... 귀찮아서 안 갔을 터이다)

 

심야영화로 (서울에선 별로 볼 생각 없던) <월E> 나름 재미있게 보고,

언니의 새집 구경도 하고(집안에 암벽등반용 암장 설치해 놓은 거 보고 감탄),

새벽까지 와인 마시며 언니 필리핀 여행한 이야기도 듣고,

뭔가 예민해진 신경 풀리면서 잠도 푹 잘 자고...

 

아침엔 좋아하는 휴가 메뉴인

커피에, 토스트, 크림치즈와 완전 맛있는 복숭아 먹어주시고...

날은 맑고, 산은 이쁘고, 높은 건물도 별로 없는 춘천 시내에 드라이브하여

도립화목원 가서 소소하니 나무 구경도 하고...

(서울에도 도심 평지에 이렇게 작은 수목원이나 동물원 있으면 좋겠다)

가끔 생각나던 T막국수 집 가서 빈대떡이랑 막국수도 먹어주고...

간만에 장거리 기차 여행 하는 덕분에 오며가며 진도 안 나가던 책도 꽤 많이 읽어 주고...

제법 뿌듯하다.

 

이참에... 춘천 여행에 관한 안 좋은 추억을 모두 씻어 버리고...

종종 바람 쐬러 싶은 장소가 하나 더 늘어나서 기쁘다.

 

 

 

아아~ 그러나 올림픽 빨리 끝나면 좋겠다. 4년마다 스트레스 너무 심하다.

야구나 축구처럼 세계대회 있는 종목 없애고...

고대 올림픽에 있던 종목만 하던지 해서....

1주일만 했으면 좋겠다. 차마 없애라곤 못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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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7 20:05 2008/08/17 20:05

두서라곤 없는 여름밤의 일기

2008/08/13 00:14 생활감상문

날이 더워 통 음식 만들기를 못하고 있다. 주말에 야채카레 한 냄비 만들어 먹은 게 전부. 더위에 다들 얼굴이 까칠하다. 채식자들과 뭐 맛난 거라도 만들어 보신을 하고 싶어도 사무실에서건, 집에서건, 매일매일 해결해 갈 일이나 읽어 치우다시피 해야 할 책이 너무 많다. 일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읽어야지 하고 침대 맡에 쌓인 책이 드디어 열 권을 넘었는데... 오늘 아침에 또 몇 권을 주문해 오후에 사무실로 배달 받았다. 어쩌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소유하려고 책을 사는 것은 아닌데, 사기 전에는 읽고 싶은데... 사서 일단 방에 들어오면... 늘 밀린 책들 사이에서 안 읽게 되는 게 문제인가. 그렇다고 해서 이 여름에 빨래나 청소를 등한시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 열심히 치우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쾌적함을 누릴 수 있도록 이 공간을 돌보는 일이 나를 돌보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스스로 나를 돌볼 능력을 유지할 뿐 아니라 언제든 기분 좋게 가까운 이들과 함께할 만한 공간을 마련하는 마음을 유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그런데 친구들 불러서 맛있는 거 해먹은 게 언제더라?). 머리를 쓰는 일에 우선 순위를 두기 시작하면, 대충 사는 거 순식간이다. 아직도 무덥고 몸도 지치기는 하지만, 아침저녁의 열기는 예전만 못하다. 살갗을 태우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 어제는 야근까지 하며 여러 통의 메일과 엽서를 썼는데, 아직도 보낼 데가 여러 곳 남았다. 소식 전하지 못해서, 보고 싶어서, 앞에 두고 말하기가 그래서, 기록을 남겨야 해서.... 어째 원고 보려고 출판사 다니는 게 아니라 편지 쓰러 다니는 듯싶다(뭐 편지 쓰기야 대학 내내 좋아하던 일이라 괴롭지는 않다만...). 하이데거 예술철학 원고를 보다가 블랑쇼 선집 역자 모임 약속을 잡다가 도시디자인 디자이너랑 전화를 하다가... 거 참 바쁘다. 눈으로, 머리로만 읽고 쓰다가는 또 다 휘발되고 까먹지 싶어서... 노트를 꺼내놓고 메모를 하기도 하고, 집에 와서도... 책 읽다 졸리니... 예전 현상학 노트 꺼내놓고 괜히 타이핑하고 있다. 전부터 하고 싶어하긴 했지만, 결국 할 수 있으려나? 책도 찾아서 번역도 해서 끼워 넣어야 하는데. K스승님도 작년에 노트 보시더니 좋아하시면서, 나중에 책 쓰신다며 복사해 가셨는데... 쓰시려나? 그때는 뭐가 뭔지 정말 몰랐는데.. 편집자의 눈으로 노트를 보니까, 선생님 강의 자체가 이미 꼼꼼한 각주로 채워진 책과 같구나. C사장님 말대로 울 선생님 진짜 천재인가 보다. 스승님한테 배운 대로 일상을 열심히 챙기다 보니... 기력이 부족한 이 제자는 자러 갑니다. 선생님... 전화 드린 대로... 좀 서늘해지면.. 개강하고 뵈어요. 그때까지 어케든 조금쯤은 더 똑똑해져서 찾아 뵙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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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3 00:14 2008/08/13 00:14

휴가가 끝났다.

2008/08/09 11:30 생활감상문

어젯밤으로 업무일 기준 5일의 여름휴가가 끝났다. 지금은 그냥 주말이다. 또 한 주의 일상을 준비해야 하는 주말. 하지만 사실은 올해 하반기 전체를 조망해야 하는 주말이기도 하다.

 

어젯밤, 아니 오늘 새벽 놀다 들어오면서... 아, 이걸로 휴가 끝이구나 했을 때도... 섭섭한 기분보다는 올해도 뭔가 큰 거 하나 넘겼구나 하는 안도감 같은 게 들었다. 휴가 기간에 어케든 나를 리셋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그랬나?

 

처음 휴가 계획을 세워놓곤... 참 발전이 없다 싶었다. 무주 갔다가 서울 와서 영화 보고, 사람 만나고, 부모님 댁 가고, 집 대청소하고. 매년 반복되는 패턴. 그래도 뭐 가고 싶었다. 아니, 가야 했다.

 

그런데 이번 휴가는 뭔가 달랐던 것 같다. 같은데 또 다른 것. 매번 동일한 형식을 반복해도 변화는 있는 법이지만, 올해는 그 이상으로 기대하지 않았던 즐거움이 있었다. 예를 들면, 큰 방향의 계획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타임 스케줄 같은 건 없었는데... 그때그때 무언가 일어나서 잘 놀았다는 것. 어찌 생각하면 운이 좋은 거지만, 사실은 좋은 사람들과 있어서 그랬겠지?

 

내 여름 휴가의 시작은 언제나 공간 이동이다. 일단 서울을 떠나야 한다. 공간이 달라져야 행동도 달라진다. 무주에 혼자 갈 줄 알다가 임박해서 시간을 맞춘 Y군, M군 들이랑 가게 되었다. 또 처음 같이 놀러간 거라 서울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모습들을 보니까 신선하고, 즐거웠다. 각자 편안하니 하고 싶은 일 하면서도 2박 3일 참 잘도 가더라.

 

올라온 다음날인 수요일엔.... 날은 덥고, 몸은 골골하고, 놀겠다는 의지보단 쉬겠다는 욕구가 더 강했다. (장거리 여행으로 무리한 교통사고 부위 치료하러) 한의원 갔다 와서.... '을밀대' 냉면 먹으러 가자니까 그 사이 혼자 이사를 한 Y양이 힘들어서 운전 못하겠단다. 그런데 실망한 채 한의원 가서 눕자마자 H군이 회사 차로 홍대 쪽 나왔다며 점심 먹자고 전화를 한다. 덕분에 Y양까지 불러내서 맛나게 냉면 먹고, 집에 와 커피까지 나눠 마신 다음... 여행 빨래랑 이불 빨래나 하면서 집에서 그냥 가만히 쉬어 버렸다. 인생 뭐 있어? 땡기는 대로 하는 거지. 휴간데. 밤중에 옥상에 올라가 한낮의 열기에 바짝 마른 따뜻한 이불을 끌어앉고 냄새를 들이마시며 여름 바람을 쐬었다. 느긋하고, 따스했다. 내가 좋아하는 삶의 느낌.

 

그러나 목요일 아침... 쉰 건 좋았지만, 휴가 후반 스케줄을 하나도 안 세웠잖아?  K선생님께 전화를 드리니, 다시 고향 가셨단다. 아~~~ 선생님은 뵙고 싶지만, 이 더위에 삼성역까지 어케 가나 했는데... 개강해서나 올라오신다는 말씀에, 그럼 9월에 신촌에서 뵙기로 했다. 휴우~

 

그 전화를 하는 사이 S언니가 메신저에서 말을 건다. "그래서... 휴가 기간에 놀러온다더니 언제 놀러올 거냐?"고. 그리하여 곧바로 매그넘코리아 전시 갔다가 아예 분당의 언니네 새집까지 놀러갔다. 보고 싶은 전시를 만나고 싶은 사람과 함께 간 것도 좋았지만... 언니네 집에 가서 세살배기 회다메(언니 딸) 뛰어다니고, 같이 동요 씨디 듣는 와중에.... 이런저런 사람들 소식 나누고, 6년차 편집자, 7년차 번역자로... 생활인으로 꾸려가는 고단함 등 학교 다닐 때는 편하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까지 강도 높게 나누고, 휴가 기간에 한번도 먹지 못한 한식 생선구이 밥상까지 언니 친정 어머니께서 차려주셔서 맛있게 먹고 언니가 새로 번역한 소설책까지 선물 받고 정말 부족함 없는 기분으로 돌아왔다.

 

행복했다. 뭔가 자동문이 연달아 열리듯이 그렇게 앞으로 나가는 기분. 그리고 그 속에서 기분 좋은 선물이 들어 있는 상자를 하나하나 여는 기분. 그 순간 남은 휴가 잘 보내고 있냐는 M군의 문자가 왔을 때, 어이없을 만큼 신나서 자랑할 만큼. "마법처럼. 만나고 싶은 사람과 가고 싶은 곳에서"라고.

 

금요일 오전도 순조로웠다. 적당한 시간에 일어나 헬스장 가서 운동도 해주고... 아침도 맛있게 먹고, 한의원 갔다가 H양 만나서 근대 라틴아메리카 거장전을 봤다. 전시는 나무랄 데가 하나도 없었다. 이국적이지도, 지나치게 강렬하지도 않았다. 충분히 표현적이면서도, 오히려 좀 주지主志적인 기분이 들었다. 한 번 더 보러 가고 싶을 만큼 좋았다. (뭐 추상화를 잘 몰라서, 그 섹션을 대충 본 것은 전시 탓이 아니라 내 탓이니까).

 

돌아오는 길에 약간 더위를 먹고 집에 와 쓰러져 두어 시간 쉬다가... 이른바 '정동 멤버'들 만나러 간다. 출판 선후배의 모임이지만... 업계 정보를 나눈다거나... 뭐 그런 게 아니라... 직장 이야기, 연애 상담, 온갓 소문과 괴담, 신앙 생활 등 편하게 나누면서 가족같이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잔소리도 듣고, 뭐 그런 자리. 만나기만 하면 12시를 넘겨서 만나기 전엔 두렵지만, 그냥저냥 만나는 사람들보단 확실히 심리적 보상(?)이 있는 모임이다. 하고 싶은 말도 많아 자리가 길어지기도 하지만, 이 자리에 나가면 확실히.... 조금쯤 더 겸손해지고, 경청하는 법을 재교육받고 오게 된달까. 구체적이진 않지만, 편집자로 내가 살아가면서 내게 무엇이 부족하고, 좀더 노력해야 하는지 늘 체크하도록 하는 (청정 지역의 지표인)  "이끼" 같은 모임.

 

그렇게 휴가가 끝났다. 할 일이 잔뜩이다. 널부러진 책, 빨아야 할 옷, 빨아서 개놓지 않은 옷, 영수증들, 티켓들, 욕실의 곰팡이, 싱크대의 설겆이거리, 가스렌지의 음식 얼룩. 끓여만 놓고 먹질 않아서 쉬어버린 된장찌개. 고쳐야 할 시계. 버려야 할 쓰레기. 더워서 선풍기 바람 바깥으로 한발짝도 못 나갈 것 같건만...

 

그래도 뭐 좋다. 잘 놀았으니까. 까짓꺼, 뭐 청소 좀 해주지 뭐. 나 좋다고 하는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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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9 11:30 2008/08/09 11:30

휴가 계획 그리고 까먹지 않기 위하여.

2008/07/30 16:19 생활감상문
휴가 계획

6월 말부터 지난 주까지 3번의 마감을 지난 후(내 담당 2번, 후배 담당 1번) 이번 주에도 보도자료 한 편 쓰고 언론사 신간 배포 준비하고, 블로그 연재글 한 편 쓰고, 휴가 다녀와 진행할 책 본문 디자인 맡기기 등이라는 만만치 않은 숙제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그나마 영어학원이 이번 주 방학이어 얼마나 다행인지)..., 한편으론 다음주인 여름 휴가 스케줄 짜기와 추석 연휴 상하이 여행 준비(여권 만들기, 비행기표 결제, 여권 케이스 사기)로도 바쁘다.

 

-- 금요일 점심: 오클라 샘께 무주 열쇠 받기.

-- 틈틈이 : 휴가용 쇼핑(이 진정 필요한지 고민?)

-- 2~5 or 6일: 무주(혼자 or 친구들과) 가서 산기운 실컷 받기. 많이 움직이기.

-- 상경 후 S언니 집들이 + K스승님 뵙기.

-- 가족과 함께할 이벤트 하나(간단 영화와 외식?)

-- 전시 보기(라틴아메리카 거장전, 매그넘코리아)

-- 영화 한두 편 더 보기 (<놈놈놈>, <마을에 불어오는 산들바람> etc.)

-- 봄부터 밀린 책 읽기(<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카를 융 평전>,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 4권, <만들어진 나라>,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중 최소 2권)

-- 오코노믹스 잘하기: 집 청소+안 입는 옷 정리 + 오래된 식재료 버리기.

-- 몽골 딸네미(월드비전 결연)에게 답장(네가 예쁜 뺨과 반짝이는 눈을 가진 아이로 자라고 있어 기쁘구나) + 사진(그녀와 닮아 보이는 내 어릴 적 사진?) + 선물(그림책?) 보내기.

-- 서울에 있는 동안엔 촛불집회 가기(앞으로 어쩔 건지, 잠깐이라도 곰곰히 생각하기)

-- K편집장님 출판 입문 20주년 기념 겸 생신 축하 모임 조직해서 잘 놀기

-- 휴가 뒤 곧장 들어올 블랑쇼 선집 원고맞이용으로다 레비나스의 <블랑쇼에 대하여> 들여다보기

 

그리고 까먹지 않기 위하여..

어제는 보도자료 쓰다가... 갑자기 에쓰노메쏘돌로지Ethnomethodology를 찾았다. 왜더라? 들뢰즈 예술철학을 논하는 책의 보도자료 때문은 아니고... 아마 점심 먹다가 임쿤과 '커밍아웃 경험 인터뷰집' 이야기를 하다가 훈련된 인터뷰어의 필요성 이야기를 하다가... 또 혼자서 내 생각을 해서 그런가 보다. 에쓰노메쏘돌로지, 즉 민속방법론이 나오는 수업을 들을 때(이해사회학이던가?) 성전환한 사람이, 본래 그 젠더를 가진 사람보다 더 매뉴얼적으로 완벽한 젠더를 구현하려 한다(가핑클)고 할 때, 나는 젠더보다는 한국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뭔지 영 몰라서 맨날 그걸 구현하려고 매뉴얼을 찾는 사람 같다(나는 꼭 무대 뒤편이 없이 몇 개의 무대만 있는 극장 안을 계속 순환하는 배우 같다 싶기도 했다는 고프만 때문에 한 거던가?)는 생각을 한 바 있는데(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느 정도는 매뉴얼을 습득한 듯도 싶고, 결국 "삶에는 매뉴얼에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근대적 사회 관계에는 정말 유효하다는 것을 절절히 체감할 때도 있고 뭐 그렇다)...... 거기에서 생각이 비약했는지, 갑자기 오후에 네이버에 에쓰노메쏘돌로지를 쳐서 검색하고 있었다.

사전적 정의도 잠깐 읽어보고 했지만, 역시 그 공부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인지, 가르치는 사람이 없는 것인지, 유행이 지난 것인지, 아니면 유행한 적도 없는 것인지... 논문이나 한국어로 읽어 볼 만한 자료는 별로 없더군. 뭐 하기는 나도 수업시간에 들은 내용이 전부이지, 제대로 뭔가를 읽은 기억은 없다.

 

여튼, 덕분에 약간 검색하다가 간만에 벤야민 세미나 같이했던 KDI선배의 강의용 카페 발견, 가핑클에 관한 발제문 하나(<가핑클은 변태스럽다>) 발견. 여하튼 읽다 보니까 와 닿는 데가 약간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와 닿는다기보다는 나한테 의미 있는 층위란 사실 여기서 나왔군, 하고 환기한 셈이지만.

인간의 행위를 하나의 의미체계로 보고 그 진리값을 판단하기 보다 그 의미가 형성되는 주변의 경계와 상황들에 관심을 돌리라는 것이다. 행위-기호-의미의 내용 보다 그것이 만들어지는 절차와 방법이 선행한다. 왜냐하면 내용은 결국 방법에 의해 결정되고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속방법론자들은 의미 그 자체의 내용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가치판단을 유보하며, 이점이 이른바 '민속방법론적 무관심'(Ethnomethodological indifference)라는 복잡한 개념의 일부분을 형성한다.   

그래서 앞으로 이것에 대해 공부를 찾아서 조금 할지 어쩔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주부터 새로 시작되는 사내 강의에서 현상학을 배우게 될 터인지라... (에쓰노메쏘돌로지도 사실 후설을 사회학에 갖다붙인 거라서) 까먹지 말고 있다가 '이해사회학' 노트라도 다시 들여다 보던가, 몇 편 안 되는 논문이나마 찾아보던가... 아님 그마저도 또 까먹었다가 이 글을 읽고 아, 그랬지라도 하거나 하자고 메모 겸 써놓는다.

 

그리고 하나 더... 라흐마니노프 간만에 듣다가, 갑자기 파토스 균형론, 즉 평소 로고스가 (내 기준으로는 부담스럽게) 강한 인간들이 예술에서는 유달리 파토스가 짙은 작품들을 좋아한다는 경험적 깨달음(누가 섣부른 일반화라 지적할까 봐, 일반화는 아니라고 주장만 하고 싶다만... 사실 그게 그거겠지?)이 떠올라... 그거 가지고 몇 마디 주절거릴까 하다가... 그건 됐고, 괜히 에피쿠로스의 <쾌락>만 YES24 카트에 넣어 두었다. 남한테 뭐라 할 것 없고, 나나 균형 잡히고, 항상적인 쾌락주의자로 한번 잘살아 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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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30 16:19 2008/07/30 16:19

화끈화끈 여름의 불꽃

2008/07/15 22:58 생활감상문

출근하자마자 30분을 못 견디고 에어컨을 틀었다. 평소 에어컨 바로 앞자리라.... 틀면 춥다고 온도 올리고, 바람 줄이고 하던 나였다. 어제는 영화+떡볶이+음주+노래방 풀코스 간만에 즐겨 주고... 선풍기 소리 견뎌 가며 다섯 시간쯤 푹 자고... 아침엔 모처럼 기운 난다며 헬스장 새로 등록해서 유산소 운동도 40분 땀 뻘뻘 해주신 터였다. 운동하고 땀 냈으면 시원해야 할 터인데... 회사 걸어가는 20분 동안 다시 몸에 열이 쌓인 것이다.

 

어릴 적부터 햇볕 받으면 순환이 잘 안 되고, 그대로 충전되는 현상 빈번, 말하자면 '인간 배터리'인 셈이다. 5월에 갑자기 강해진 햇빛 20분 받았다고 일사병 나서 토사곽란한 게 중1 때(더 어릴 적엔 말할 것도 없고). 이후에도 그런 일은 반복이라 여름이면 긴급 해열제로 아스피린을 준비해 둘 정도(그러고 보니 올해는 안 샀군). 요사이 계속된 열대야에 소화 잘 못 시키고, 골골거려.... 다음주에 또 한약을 짓네 마네... 그러고 있던 터였다. 아침에 잠깐 태양 아래 걸어간 그 열기 때문에... 오전부터 머리가 내내 아프고 계속되는 하품. 지난주에 워낙 잠이 부족했던지라... 모처럼 푹 잔 다섯 시간이지만 부족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중간 중간 필자들에게 메일 쓰고, 전화하고, 교정지 들여다 보고, 한창 뜨거울 때 길 건너 디자인 사무실에 교정지 갖다 맡기고 하는 과정과정마다.... 정말 숨이 목까지 턱턱 막혀 왔다.

 

이 더위에 누군들 그렇게 일하지 않으랴만은 오늘은 정말 차곡차곡 몸에 열이 쌓이는 기분이었다. 에어컨을 틀어놓고는 정작 춥다고 마케팅부 응접테이블에 가서 교정을 봤다. 괜히 열심히 일하는 정쿤에게 서양 고대철학 공부할 생각 없느냐, 책장에 꽂혀만 있는 고대철학사 책 한 권 주마....말 시키며 집적집적... 4시까지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수면 부족과 두통 그 가운데 불현듯 치밀어 오른.... 일과는 상관 없는 어떤 감정.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어떤 메뉴얼에도 담겨 있지 않은, 혹은 어떤 메뉴얼도 믿을 수 없이, 하지만 결국엔 목이 졸릴 듯한 이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풀어내야 할... 두려움과 뒤섞인 감정. 그게 또 나를 태우고 있었다.  

 

내일 저녁에 세종체임버홀에서 하는 음악회 표가 당첨되었으나, 이번주에 회사 상반기 워크샵이 있는지라... 오늘내일은 집중해서 교정지 들여다보기로 계획.... 아쉽지만 HN양에게 가라고 전화. 그 덕분에... 영어회화 수업 시작하기 전에 오늘 잠깐 만나 저녁을 먹었다. 뭔가 좀 표현하고 싶어 털어 놔봤자... 그녀의 현실적인 이야기들은 내게 와 닿기도 전에 뜨거운 대기에 흐물거린다. 결국 정념과 사념은 또한 고스란히 내 몫. 또 하나의 무진기행이라고 쓰디쓴 자조.

 

지난 학기에 학생들을 엄청 웃겨준 D. S. 선생은 강의를 너무 잘한 나머지... 영어교사들을 위한 특별반 강의하러 가고... 20대 후반의 J선생이 새로운 영어 선생이다. 지난 주엔 면도도 안 하고, 어깨는 넙대대, 좀 산적 같다 싶더니... 오늘은 머리도 빡빡, 수염도 깔끔... 나름 귀엽게 하고 왔다. 그러나 정신 맑음에도, 미안스러울 정도로 계속되는 하품, 하품, 하품. 수업 참여도 열심히 했건만... 밖에서 들어온 열과 내 안에서 타오르는 불꽃 때문에... 신체 전체에 산소가 부족했던 것이다.

 

땀을 좀더 내려고 30여 분 걸려 걸어왔건만.... 땀은 안 나고, 열만 더 축적되었는지, 허벅지며 손바닥이 화상 입은 듯 화끈거린다. 샤워를 하고 선풍기를 쐬도, 좀처럼 식질 않는군. 결국 스스로 사그러들 때까지 잠만이 해결책인가. 그리하여... 나는 스스로 약속한 대로.... 11시 이후 인터넷 사용 금지 다짐을 지키기 위하야... 지금 자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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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5 22:58 2008/07/15 22:58

폭염성 휘발에 반하여.

2008/07/09 08:02 생활감상문

날이 덥다. 유난히 짙은 생활의 농도가 폭염 속에 다 휘발되는 듯한 느낌이다.

일도 많고, 사건도 많고, 순간순간 열이 오르는 일도 많다.

생각 나는 대로 두서 없이 몇 가지 메모.

 

근대 중국사상사 책 마감하고, 보도자료 쓰고, 신문사에 보내고...

그 와중에 블랑쇼 선집 역자모임 준비하고, 또 모임하고,...

7월 5일엔 촛불집회 가서는 1차로 H양과 철학아카데미 선생님들 만나 행진하고

2차로 춘천에서 밤 8시에 출발에 10시에 도착한 M언니 만나 문화제 보고,

3차로 새벽 1시부터 M군과 그의 친구들이랑 공연 보다가 아예 난장까지 하니까 날이 밝더라.

 

그날.... 빗길에 운동화 젖는 거 싫다고 샌들 신고 광화문 갔다가

광화문 지하도 경사면에서 미끄러져 허벅지 근육이 다쳤다.

근육이 놀라기도 했고, 미세근육도 몇 군데 파열되었단다.

그 다리를 해갖고는 밤새 길바닥에서 술을 마셨으니....

피가 더 많이 났을 것 같다. ㅎㅎㅎㅎ

이틀째 피도 뽑고, 침 맞고 물리치료 중. 이번 주엔 내내 한의원 가야 할 듯하다.

다 나았던 엉치의 통증도 다리 부상으로 자세가 불량해서 그런지... 조금 안 좋다.

 

김연수 선생의 <여행할 권리>를 2주째인가 읽고 있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컴퓨터 부팅하거나 자기 전의 몇 분 동안 한 꼭지씩 읽는다.

그의 소설을 읽은 적은 없지만, 그는 약간 구도자의 길에 매력을 느끼는 데가 있는 듯도 하다.

 

5월의 마음으로 사들인 6월의 책들이 침대맡에서 먼지를 받고 있다.

회사 일을 생각하면... 여름엔 좀 덜 바쁘면 좋은데...

오히려 필자들의 방학으로 더 바빠진 감이 있다.

생각하는 건.... 겁 먹고 4월처럼 아프지 말자, 하루하루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정도.

 

그래도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다.

토요일엔 두 달 동안 그린피스 배 타고 와서 배멀미 두통에 시달렸더니

인생 시들하다는 J옹을 위문공연 차 만나기로 했다. 봐서 후배 S양도 부를까 싶다.

 

몇 달째 가끔 말만 하고 못 만나는 언연 동기 G양과  B군도 만나야 하는데... 엄두를 못 내고 있다.

과 여학우 모임에도... 그간 바쁘다고 늦게 가서 얼굴만 15분 내밀거나, 아예 못 가거나 했는데...

학교 선생하는 친구 방학하면... 모임 한 번 해야겠지?

 

부모님 댁에도 못 간 지 한참 되었다.

얼마간은 바빠서, 얼마간은 귀찮아서, 얼마간은 아파서,

얼마간은 촛불집회 나간다고 빨갱이란 소리 듣는 게 불편해서.

 

이번 주부터는 다시 영어회화 과정에 다닌다. 한 달새 많이 까먹기도 했지만..

그래도 아주 처음 시작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어제 회사에서 "촛불 시대에 다시 생각하는 레닌과 혁명"이란 대담을 했는데...

끝날 무렵에 <승리의 충격>으로 진보넷에서도 꽤 유명해진 그레이버 교수가 왔다.

나름 담당 편집자라고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한 달 사이 (영어에 대한) 용기도 줄었고, 피곤하기도 했고, 너무 나서는 듯하기도 하고...

뭐 그래서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기도 했는데... 그냥 식당 안내만 했다. 부끄부끄~~

 

작년에 전에 다니던 회사 사표 내는 것을 한참이나 망설이게 하던....

(웬만하면 내고 그만두고 싶어서) 은사님과 선배의 인터뷰집이 드디어 나왔다.

정말 내고 그만두려 했다면... 아직까지 다니고 있겠군. 아이고~~~ 징하다.

책 한 권 달라고 A팀장님한테 전화하고, 은사님께도 간만에 연락 좀 드려야겠다.

앞으로 철학이 갈 길은 "섬김의 철학"에 있다 하셨는데...

(그리고 보니 철학자 대회에 마리옹이 온다던데... 그도 놓치고 있군)

선생님 찾아뵙기라도 하면... "섬김" 너무 어렵다고 응석이라도 부릴까 보다.

 

지난 주에도 배탈이 한 번 났지만... 날이 더우니까 확실히 위가 기운이 없는지...

조금만 찬바람이나 찬 음식이 들어가면... 위가 배탈까지는 아니어도 살짝 불편하다.

더운데... 배탈 나 밥까지 굶으면 더 힘들다. 배탈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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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9 08:02 2008/07/09 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