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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 일기] 8월 29일 농성장 일기

- 농성장 강제철거 이전 농성장 일기입니다 -

이 글은 피해자와 함께 여성가족부 앞 농성을 진행하고 계시는 권수정 피해자 대리인께서 작성하셨습니다

 

 

 

8월 29일 월요일 농성 89일

 

1. 최근에 부쩍 여러 언론사에서 연락이 온다. 인터넷 언론 뿐 아니라 한겨레, 경향등의 일간지들, 중앙방송의 KBS, MBC 등에서 연락이 오고 CBS 라디오에 생방송으로 인터뷰 요청이 오기도 한다. 기자들이 온다고 당장 기사자 작성되는것도 아니고 모두 방송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경험으로 보건데 인터넷 기사를 보고 메이저 언론이 오더라. 그리하여 진지한 작은 언론이 메이저를 움직이기도 한다는, 자본만 거대 언론을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확인도 재밌다. 이렇게 말했더니 어떤 기자가 말했다. “맞아요. 언론바닥은 먹이사슬이예요.” 저런, 그렇군. ^^

 

요즘은 메이저와 다르게 바닥의 여론을 주도하는 개미들의 트위터도 있다. 트위터는 다른 세상같다.

 

언니와 둘이 서울로 상경하며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은 다하자 했는데, 우리는 조직동원을 못하니까 사실 우리가 할수 있는것이란 사람들에게 많이 알리고 함께 분노할수 있도록 해보자는 것인데, 우리는 농성장에 앉아 지키는 것도 벅찬대 언제 얼려지나 했는데, 그래도 그동안의 농성이 헛되지 않아 이리저리 알만한 사람들에게는 알려진 모양이다.

 

아직 복직을 할수 있을 만큼 여론이 형성된 것은 아니지만, 첫술에 배부르지 않은 법이다. 최선을 다해 버티고 알려야지. 힘을 내야지.

 

2.

‘작은꽃 아픔으로 피다’ 라는 제목으로 김홍춘 동지의 시에 김성만동지가 곡을 붙여 노래를 만들어 주셨다. 우와! 멋지다. 김성만 동지가 악보를 보내주셨는데, 나는 봐도 모른다. 하얀건 종이고 까만건 음표일뿐. 그래도 멋지다. 넘넘 좋다. 빨리 들어봤으면 좋겠다.

 

3.

내일이 민주노총 여성위원회에서 하는 직장내 성희롱문제 정책대안에 대한 토론회인데, 토론자로 토론문을 미리 제출해야 하는데, 밤 10시 현재 아무 준비도 못했다. 자료를 대충 봤는데, 토론문을 쓰기가 어렵다. 이일을 우찌하면 좋노.

 

 

8월 30일 화요일 농성 90일

 

1.

점심시간에 진보신당 김홍춘동지가 도시락을 싸왔다. 삶은 양배추, 강된장, 새우젓으로 맛을 낸 호박나물, 둘이먹다 하나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있다. 특히 홍춘언니네 음식은 된장이 맛있는데, 시골에서 어머님이 직접 만들어서 보내주신 것이라고 자랑을 한다. 동지의 마음이 달다.

 

2.

민주노총이 주최하는 ‘여성노동자 직장내 성희롱 실태조사 및 대안연구’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여했다. 끝내 어제밤에 토론문을 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아침에 허겁지겁 후다닥 간신히 만들었다.

 

벌써 몇주 전부터 꼭 참석해야 한다고 박승희 여성위원장님과 송은정여성부장님이 당부를 하셨고, 미리 보라고 자료도 보내주셨는데, 우와! 어찌나 지루하고 어렵던지. 하!하!

잘 아시는 전문가분들이 하는 토론회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 참석하는것 같아 부담스러웠으나, 현장에서 격는 사람의 의견이 필요하다는 강력한 요청에 의하여, 아니 실은 자기일처럼 우리 농성장 잘 연대해 주시는 두 동지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워서, 보은의 차원에서 참석했다. ^^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 위계와 권력에 의해 발생하는 직장내 성희롱 문제의 심각함과 제도적 미비함에 대한 문제의식들이 충분히 있는 동지들이 모여 더욱 진지하고 적극적인 논의들이 진행되었다.

 

좋은 토론회 였으나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현장에 있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에게 오늘 우리가 논의한 정책 대안이 가서 닿으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더 필요한걸까. 그리고 그 시간동안 얼마나 더 많은 여성들이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걸까. 갈길이 너무 아득하게 멀다.

 

3.

저녁에는 우리 농성장에 자주 오는 나위와 이화여대 동지들이 떡볶이랑 김밥을 사들고 오셨다. 늘 씩씩하고 발랄한 동지들인데, 음식 나누어 먹으며 이런저런 얘길 하다 트위터 확인하더니 나위가 말한다.

“어, 언니 여성가족부 장관이 바뀐대요.”

“뭐야? 이번에는 누가 되는데?”

“김금래 라는데요. 한나라당 국회의원이래요.”

“뭐니, 우리나라는 국회의원이 동시에 장관도 되니?”

“그런가봐요.”

“뭐 하던 사람이니?”

그 자리에서 신임 여성가족부 장관될 사람의 프로필을 인터넷으로 검색한다. 참 좋은세상이다. ^^

“어머, 왠일이야. 이 사람 이화여대 사회학과 나왔네. 우리과 선배쟎아.”

“정말요? 나위언니, 그럼 우리 나중에 여기다가 대자보 하나 붙여요. 이대 후배들이 선배님에게, 똑바로 잘하라고, 뭐 이런거요.”

그러더니 깔깔대며 뒤집어진다.

음---, 이대 나온 여자들이군!

 

하버드 식품영양학과 나온 여가부 장관에게 실망한 터라 이대 사회학과는 좀 나으려나, 어디를 나왔든 여성가족부 장관이면 최소한 성희롱 당하고 억울하게 해고된 여성노동자의고통을 좀 알아 나서서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해 주려나. 아니지. 기왕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으나 장관이 바뀐다면 이 기회에 어떻게든 여가부가 나서서 언니의 성희롱 문제 해결에 나서도록 뭔가 준비를 해봐야 겠다.

농성시작한 지 90일, 무심한 여가부 건물 앞에서 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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