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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기억속의 사람들

  • 등록일
    2010/01/31 02:31
  • 수정일
    2010/01/31 02:31

2010. 1. 30

 

늦은 시간,

동생과 집에 들어가는 길, 간단한 요기를 하고 들어가고자 했다.

이미 하루를 넘긴 시간, 실제로 31일이 되어 있는 그곳에는

오래전 친구가 앉아 있다.

 

조금은 멋적은 얼굴로 인사를 하고 바로 옆에 앉아 자리를 잡을 즈음.

그 옛날의 또다른 친구를 소개한다.

기억마저도 가물거리는 이름을 소개하는데,

나도, 그 본인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잠시 반가운 듯한 얼굴로 자릴 잡고 나서야 이름이 기억나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여러 이름 속에 구분되지 않는 이름

이미 너무도 변한 모습, 얼굴은 아예 그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그의 얼굴을 기억하기에는 30년에 가까운 시간이 가로막고 있다.

 

국민학교 6학년때부터 학교와 멀어지기 시작한 녀석,

변변치 못한 가정형편으로 인해 실내화조차 마련할 수 없었던 녀석,

진학을 한다는 꿈을 버린지 오래,

자본주의 현실이 그를 잡아먹었고,

그나마 옆에 앉은 친구녀석도 고등학교를 진학하자마자, 다가올 진학을 포기하고 현실의 삶을 온몸으로 부딪힐 수 밖에 없던 녀석이였다.

 

내가 기억하는 녀석들은  나의 방어막이였다.

어린 시절, 70~80여명이 한반에서 공부를 했던, 그때 난 작기만했다.

매번 젤 앞줄에 앉아서 수업을 들었던 그때,

정말 작고 여리고 세상물정 모르던 나에게 그들은 한편의 보호막이였다.

 

그렇게 작고 여리고, 용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나였지만,

학교에서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세상에 버림 받은 듯한 친구들, 세상과 엇나갔던 그들은 한편의 작은 나에게 마치 형처럼, 또는 친구처럼, 가족처럼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였다.

그리고 난 그들에게 어쩌면 세상의 또다른 면을 보여주었던 순진한 친구였던 것 같다.

세상물정 모르고 사는 ...

 

오늘 그런 녀석을 만났다.

거의 30년이나 지나 만난 녀석을, 나를 기억한다는 것은 거짓말일 것만 같은 정도로 세상은, 삶은, 시간은 무섭게 흘러갔다.

중학교를 채 졸업하지 못하고 방황의 시절을 보내고 나서야 뛰어든 삶의 몸부림으로 이제는 그럭저럭 살수 있는 녀석이 되었는 가보다.

사라진 아버지, 죽어라고 고생만하는 어머니, 외갓집에서 컸던 그 녀석이,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녀석이,

그리고 나였지만,

서로를 기억하는데는 오래걸리지 않았다.

 

한참을 얘기할때, 터져나오는 어린시절 갖었던 세상에 대한 불만, 그리고 돈으로 해결되었던 학교에 대한 불만을 쏟아진다.

학교에 대해서는 얘기도 하지 말라는 그 녀석의 분노가 다시 눈에 아른거린다.

없는 사람들을 믿지도 않는 세상에 대한 울분,

그렇지만, 또 그 세상에 적응해 살아가는 그들

갑자기 30년을 건너뛰어 달려간 기억 속의 사람들이 다시금 떠오른다.

또 한편에서는 부와 권력을 주체하지 못해 망가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세상 그 어디에 밭붙일 곳조차 잃어버렸던 사람들이 다시 떠오르고, 

오늘도 여전히 자본주의는 여분처럼 쫓아낸 사람들로 유지하는 고통을 끝없이 재생산하는 삶이 지속된다.

 

기억하고 있을까,

그런 삶이 우리안에 존재했던 걸,

아직도 가끔은그 삶의 기억이 생생하게 나에게 다가온다.

 

그래도 반갑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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