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대중의 행동

  • 등록일
    2008/09/29 13:56
  • 수정일
    2008/09/29 13:56

누구든지 그런 경험을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산티아고 도심을 완전히 뒤덮는  그런 대규모의 군중 시위에 참가하여 그 일부가 되는게 어떤 기분인지 상상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시위들은 칠레 정치의 앞날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어쩌면 너무나 큰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생각된다. 모든 사람들이 그곳에 모인 군중들 숫자에 스스로 압도되었다. 사람들은 그 숫자를 제각기 끊임없이 계산하고 있었다. 모든 직장, 동네, 대학 그리고 크고 작은 집들 속에서 그런일들이 계속 되었다. 인민연합의 지지자들이 집권당인 기독교민주당보다 더 많은 군중을 모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우리의 사기를 크게 고무시키는 일이었다. 우익 측은 집단적으로 결코 거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의 진정한 힘은 다른 쪽에 있었는데, 우리는 순진하게도 그 점에 대해서는 계산을 하지 못했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들이 거리에 나올 때면, 폭력 사태를 유발하거나 직접폭력을 행사하는 작은 집단을 만들어 나오곤 했다.

그러나 단순히 사람들 머릿수를 헤아리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일은, 우리가 서로 보고 만지고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의 동지라는 것을 온몸으로 직접 확인하는 경험이었다. 우리는 함께 함성을 울릴 수 있었으며, 함께 알라메다 대로나 우아한 프로비덴시아 거리를 행진해 갈 때면, 모미오들에게 우리 쪽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를 과시하는 만족감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무척이나 신나는 일이었고 원초적인 기쁨까지 느낄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하루의 힘든 일과가 끝난 뒤에도 시위가 있으면 우리는 명예롭게 참가해서 군중의 숫자를 불리는 일에 한 덩어리가 되어 기여했던 것이다.

- 빅토르 하라, '아름다운 삶, 끝나지 않은 노래(조안 하라지음, 차미례 옮김) 중에서

 

지난 20년, 87년과 96,7년 투쟁, 그리고 우리는 2008년을 관통하고 있는 촛불을 기억한다.

세계자본주의 경제의 축인 미국 금융자본의 허상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 

거리엔 공권력의 미명하에 폭력과 그 폭력의 공포로 촛불이 흔들리는 상황,

우린 원초적인 기쁨에 스스로의 명예을 채우고자 했던 것은 아닌지,

역사의 경험과 가르침을 가슴만으로 다가서고 있던 것은 아닌지,

 

- (우익의 도발에 의해) 18살의 청년이 사복경찰의 총에 쓰러지고, 사람들은 거리로 몰려나온다. 대통령 선거가 코앞에 다가오고 투쟁은 더욱확산된다. 공식적으로 국가내 권력의 이동이 합법적으로 가능한 시기, 그리고 당선.

 

그러나 몇달도 되지 않아서 "3개월 동안 야당은 2명의 아옌데 측 행정관과 7명의  장관을 제거했다. ~10일에 한명 꼴로 탄핵되었다는 것~", "(법이) 인민의 의사와 다르게 사용되는 것,~  그러나 이때 우리가 합법적인 정부와 노동자들의 진보를 수호하기 위해 법을 집행할 때, " 합법이냐, 불법이냐, 누구의 주장인지 모를 주장"이 사회전면에 펼쳐지지만, 투쟁은 좌절~~ 역사의 암흑기가 다가온다.

 

고민스럽다. 그냥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가을이 왔나보다.

  • 등록일
    2008/09/29 09:59
  • 수정일
    2008/09/29 09:59

한여름의 무더위가 아직도 생생하지만,

어느새 가을이 왔나보다.

 

새벽녘 이불을 끌어올리게 만드는 새벽바람처럼

꿈꾸듯이 가을이 왔다.

 

세월의 잔인함인가,

세상은 여전히 돌고 돌기만 할뿐이지,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우리네 삶

 

그래도 가슴이 설렐정도로

짓푸른 하늘과 물들어가는 논두렁의 노란 벼들

 

세월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흐른다.

너의 아름다움조차 슬픔이 가득하다.

 

- 강원도 평창

 

- 언덕위에서 바라본 작은 마을 평창, 저 앞으로 작은 냇가가 있다. 물은 맑게 쉼없이 흐른다.

 

- 가을, 따사로운 햇살만큼, 시원한 바람이 몸을 감싸안는다.

 

- 터미널 옆 작은 시장, 시장의 가게가 텅텅비었다. 그래도 강원도인가, 그래서인가 온통 메밀국수, 메밀전, 메밀, 메밀~~

 

 

일때문에 평창을 들렸다가 엉뚱한 곳에서 가을만 만나고 왔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 시간을 놓쳐서 장평(사실 태어나 첨 들어봤다.)을 들렸다가 가는 길, 버스안에서 보았던 가을이 평창에서 직접 만났다.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의 벼와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그리고 가을을 만나러 달리는 자전거, 세상은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장평에 가는 버스안에서 해양입양되었다가 부모를 만나러 간다는 아이(20대여성)를 만났다.그의 서투른 한국말과 나의 몸짓발짓으로 몇가지 궁금한 사항들을 확인하고, 설레임과 슬픔이 담긴 고향(?)가는 처자의 앳띤모습이 새롭기만 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과천, 자전거를 버리고 집으로

  • 등록일
    2008/09/21 22:14
  • 수정일
    2008/09/21 22:14

12시경 대충 채비를 끝내고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매번 틀리는 거지만,

그래도 항상 당하는 일기예보

날은 덥고 맑기만했다.

 

안양천변을 따라 안양천 합수부를 지나 여의도에 도착하여,

과천으로 향하기로 했다.

 

뭐 대충 청담교지나 양재천 길을 다라가면 되지 않겠냐는 생각만으로

얼린 물통하나 딸랑 들고서 열심히 달린 결과

과천 중앙공원까지 총 40.3km, 2시간20분만에 도착하였다.

중간에 대충 3번정도 쉬었고,

열심히 밣은 덕분에 평균19.6km 정도의 속도로 과천까지 달렸다.

 

중간에 들어선 양재,탄천의 길은

역시나 강남을 끼고 있는 것들의 동네여서인가,

억울하다는 기분까지 들게 할 정도로

이쁘게 꾸며져 있다.

애인생기면 산보라도 가고싶은 심정이 들정도로 좋기만 했다.

 

달리는 도중 역시나 신경질을 나게 만든

타워팰리스인가가 눈앞에 거대하게 나타나고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저게 그거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한참을 달려 서울을 벗어나 과천시에 들어서면서

박계천(?맞나)과 양재천의 갈림길로 인해

지나는 사람에게 물어보기 위해 약간의 시간을 지체한 것외에는

아주 가볍고 즐거운 여행이 되었다.

 

과천 중앙공원에 도착하여

만난 형과 막걸리에 삼합을...

 

결국 담에 찾기로 하고 놓고 왔다...

 

따가운 햇볕을 이기면 달리는 자전거길 만큼이나,

좋은 사람과 마시는 술도 참 좋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