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보육노조 출범 3개월을 지나며,

노조 설립신고 시점부터 따지면 근 5개월이 되었지만 사무처가 노조명의로 공문을 발송하고 정상 가동되기 시작한 게 금년부터니 이제 3개월이 막 지난 셈이다. 그동안 부당해고 철회, 체불임금 지급, 시설비리 고발 등 개별 시설 차원의 투쟁과 보육노동자들의 기본적인 노동권 보장을 위한 요구안 작성, 노동조합 홍보활동, 조합원 교육 등이 진행되었지만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본격적인 싸움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는 것만으로도 보육현장에 많은 변화의 기운들이 느껴진다.


이 말은 근로기준법에 있는 연월차휴가등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에서 어느 조합원이 한 말이다. 최저기준이라는 근기법이 지켜지는 것조차 꿈같은 이야기로 생각되는 보육현실이 한편으로 안타깝고 분노도 생기지만 어떤 면에서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육노동자는 아이들을 돌보는 고귀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헌신과 봉사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근기법 적용을 받는 것은 고사하고 취직할때 월급이 얼마인지 물어보는 것조차 금기시 되던 보육현장이었기에 노동조합에 대해, 근기법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것이 바로 보육현장의 새로운 희망이고 변화의 시작인 것이다. 무엇보다 최근 해고통보를 받은 보육노동자들의 대응하는 모습이 내게는 인상적이다. 이전에는 나가라는 한마디에 아무 소리 못하고 그만두었던 보육노동자들이 이제는 부당함을 항의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원장의 지시에 감히 항의 한번 못하던 사람들이 내용증명을 보내고 출근투쟁을 하면서 자신의 권리를 지켜나가는 모습은 참 아름답다. 부당한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시작했다는 것은 노조가 만들어지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이다. 아직은 노조에 가입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들이 더 많지만 최소한 부당한 문제에 대해 찾아와 상담하고 도움을 요청할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 보육노동자들의 숨통을 조금이나마 트이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다른 측면에서, 최저임금에 하루 평균 10시간이상 노동을 강요받던 사람들이 이제는 초과근무수당이라는 것도 알게 되고 정부도 초과근무시 수당을 지급하라고(아주 당연한 이야기를 선심쓰듯이) 이야기 하기 시작한 것도 큰 변화이다. 물론 걱정스러운 변화도 있기는 하다. 원장모임마다 노무사를 불러 교육받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가고 없던 취업규칙을 새로 만들면서 교묘하게 보육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내용을 넣는 것은 앞으로 보육노조가 해결해야 될 과제이다. 그러나 노조가 만들어지면서 그전에는 법조차 무시하며 무턱대고 지시와 명령으로 통제하던 것이, 그래도 법에는 걸리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연구해서 규정도 만들고 근로계약서도 쓰게 하면서 체계를 갖춰가고 있는 것이다. 10년 동안 어린이집에서 근무 했지만 근로계약서 라는 걸 처음 써보는 보육노동자들에겐 그 문구 하나 하나를 해석하는 것이 교육이고 훈련이며 노동자로써의 자기 위치를 각성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원장들은 알까?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지만 노조가 만들어졌다는 것만으로도 변화는 시작되었고 이 희망의 씨앗이 제대로 자랄 수 있도록 땅을 다지고 잡초를 뽑는 일, 그것이 처음 씨앗을 뿌렸던 사람들의 몫.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