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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폐렴 원인은? 희귀야생미식시장, 혹은 우한연구소서 개발중 유출실수

중국은 1980년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90년대에 산업화가 더욱 가시화되면서,
2000년대 이후 스모그인 대기오염이 심각해지고, 면연력도 떨어지게 됩니다.
또한 중국공산당이 경계하던 자본주의 유물론과 문명만능주의가 완화되면서,

자연보호 대상인 희귀야생동물에 대한 접촉도(포획) 암암리에 성행하게 됩니다.
대륙에는 별별 희안한 식단이 다있다고 하듯이,
자본주의 사회화일지라도 미식시장에 정상적인 웰빙 자연건강식이 보편화되야하는데,
한켠에서는 희귀야생동물 식단이라는 이상한 자양강장식이 성행한다고합니다.
또한 중국.동양인뿐이나라 유럽을 비롯 서양 관광객도 이것을 찾는 미식가들이 있습니다.
이들 특정 미식가를 위한 식단시장이 성행하면서, 최근 중국발 전염병은
무분별한 희귀 야생동물 접촉 증가로 전염병의 화를 초래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그리고 특이할만한 또 하나의 원인 분석이 있습니다.
최근 중국에 글로벌리스트들인 미국 대학들과(하버드) 비정부기구들이
(우환)중국으로 들어와 바이오시장에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글로벌리스트들을 끌어들인자는 친미 장쩌민파로 흑묘,백묘론의 꽌시, 전경유착등,
자본을 위해선 물불을 않가리는 이 계파 상하이방이, 바이오시장 선점을 위해서였습니다.
생화학연구소가 있는 우한은 친미 장쩌민파 상하이방의 뒷마당이며,
우한바이러스연구소 왕옌이소장은 장쪄민의 아늘 쟝멘헝 심복 수홍빈의 부인입니다.

 

2015년도 네이처 메디슨에 발표된 변종코로나바이러스에 관한 논문 보고서에,
백신및 치료제개발에 몰두하였으나 박쥐의 바이러스와 쥐의 바이러스를 유전자 조작하여 만든 바이러스가
강한전염과 페렴으로 실험쥐를 모두 사망에 이르게해 실패했다합니다.
이때 실험에 참가한 사람이 우한연구소 사람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수가 교신저자로 등재되어있습니다.
유튜브 참조 : https://youtu.be/ipUUcDeGegY

 

상하이방이 선의의 목적이 있었긴하나 무리한 바이오시장 선점 과정에서의 패착이 발생합니다.
연구과정에서 중국인 유전자 샘플을 불법 수집하고,
중국 정부의 분노를 살 정도로 불법적인 생물 실험을 하게됩니다.
그러했는데도 너무 빠른 변종이 발생되, 백신및 치료제 개발에 실패했으며,
더욱이 연구소에서 실험바이러스가 실수로 외부로 노출되 최근의 신종폐렴 확산을 유발시켰다고도합니다.
최근 음모론 동영상에서 ( https://youtu.be/LTERscE9DBg )
<중국내 시진핑정권 반대파인 장쩌민파와 글로벌리스트들이 짜고 퍼트렸을 가능성이 있다.>
<- 이것은 상하이방의 하는짓이 하수상해 화풀이식의 가설이 될지는모르겠지만,
엄연히 확인되지 않은 사실과는 다른점입니다.
시진핑 정권에서도 우한폐렴의 원인을 찝어서 상하이방에게 돌리지는 않고있으며,
그저 묵묵히 전염병을 막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COVID-19) 실시간 상황판 (2020.2.24)



한편 트럼프행정부도 장쩌민파가 친미이긴하나 거리를 둔다고합니다.
장쩌민파는 친미에 친홍콩파이지만, 대륙과 화교자본 네트워크의 주역이며,
지난 미중무역전쟁에서의 중국의 숨은 조력자이자 대중국자본 대항마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넷포털업체처럼 화훼이가 첨단제품에 빅데이터 기능을 탑제해,
고객의 무한만족을 하여 고객선점을 꾀하는것도 흥미로운점입니다.
화훼이가 통제병이 있다느니하는것은 냉전사고에 갖혀있거나.
자본주의를 모르는 무지한 생각입니다.

 

장사꾼9단인 트럼프가 장쩌민파보다 시진핑을 더 신뢰하는 뉘앙스가 이 때문입니다.
장쩌민파가 친미이고 더욱 자본시장개방에 찬성하기에, 미행정부가 이들을 밀어준들
본바탕이 천민자본주의이기 때문에(이미 미중무역전쟁에서 미국에 쓴맛을 보여줌)
미중 교역에 본전만 뽑을지는 몰라도 그 이상은 아닐거라는 관측입니다.

 

최근의 중국발 신종폐렴 사태를 보면서

차라리 중국이 이상일뿐 실현 불가능인 맹한 공산주의에서 늦게 탈피했더라면,
중국발 전염병이든 기상이후든 인류재앙의 시계는 늦춰졌을거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냉전에 서방의 개혁개방 시도로 촉발된 대륙의 자본주의화가
결국 인류멸망 가시화라는 판도라상자가 열리게 된 지경입니다..

 



전염병의 허실 - '신종 코로나'의 원인과 자연대처법
http://cafe.daum.net/10in10/1pRl/120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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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폐렴과 싸우는 중국보통사람들의 17가지 얘기 [번역]펌

 

(본 배경음악은 88서울올림픽 중계실황입니다.)



우한에 전염병이 발생한 지 12일, 여기 17개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울었다..


작가: 이월량(李月亮기자명 김정호 북경대 박사  승인 2020.02.15
출처 :
h ttp://www.minplu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059



[번역자주: 이글은 현재 중국 인터넷 선상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글이다.
한 여성작가의 섬세한 필치로 전염병과의 전투가 한창인 현지의 모습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중국에서는 요즘 유행하고 있는 말이 있다. 중지성성(衆志成城)이 그것이다.
“여러 사람의 뜻이 모이면, 성을 쌓을 수 있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이 글 속에는 정말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정성들이 하나씩 둘씩 모여 가는 소식들이 담겨져 있다.
2003년 사스 때 현지에서 직접 목격한 경험이 있기에, 필자는 그들의 얘기에 많은 공감이 간다.
이러한 소박한 영웅들이 이곳저곳 존재하기에 중국은 외부의 염려와는 달리 지금의 ‘국난’을 무난히 이겨낼 것으로 믿는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대다수 한국의 주류언론을 통해서는 부정적인 소식들은 많이 전해지면서도 현지인들의 이처럼 심금을 울리는 소박한 얘기들을 접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글 속에 묻어나는 보통사람들의 속내를 모르고서는 진정으로 지금의 중국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한은 최근 2주간 성을 봉쇄하였으며, 신종 폐염 확진수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집 밖에 나갈 엄두를 못 내는 사람들은 여전히 쉴 새 없이 날아드는 새로운 뉴스 속에서 날을 보내고 있다.
소식은 각양각색이다. 감동적인 것도 있고, 안타까운 것도 있으며, 화나게 하는 것도 있고, 놀라게 하는 것도 있다……
한 차례의 전염병은 마치 큰 바위가 원래 조용하고 질서 있던 우리 생활을 깨트리는 것처럼, 한순간에 가라앉아 있던 찌꺼기들을 끄집어 올리며 거센 파도를 일으켰다.
여러 길에 숨어있던 요괴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었으며, 갖가지 따뜻함과 선량함도 심심찮게 나타났다.
나는 복잡한 감정 속에서, 번쩍이며 빛나는 보통사람들의 얘기들을 하나하나 기록해 갔다.
그들이 한 행동은 경천동지할 만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기억할 가치가 있다.
하나하나가 모두 가치가 있다.

 

01
우한 주얼메리어트호텔에 베이징과 상하이의 의료진 400명 가까이가 투숙하였다.
1월27일 오후 한 농민이 왔다.
그는 농업용 삼륜차를 몰고 왔는데, 차 안에는 야채 24상자가 실려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의료팀이 여기에 산다고 해서 신선한 채소를 드릴려구요."

그는 한사코 돈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이 소박한 농민은 40킬로를 전동삼륜차를 몰고 왔다.
그는 네비게이션을 쓸 줄 몰라 줄곧 길을 물어 호텔을 찾았다. 얼굴과 손은 바람을 맞아 빨갛게 달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매우 즐거워 보였다. 호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게 가장 싱싱해요! 저는 이게 다예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울었다.
사실 우한이 봉쇄된 후 현지 농가의 채소는 매우 잘 팔릴 수 있었는데……
그를 기억하자. 진씨 아저씨(秦师傅), 45세, 우한의 한 야채농부.

진씨 아저씨, 당신의 채소는 영양이 좋을 뿐 아니라 마음도 따뜻합니다.
당신이 있어 감사합니다.

 

02
 1월 31일 난징의 한 공안 검문소.
흰색 승용차 한 대가 길가에 서며 마스크를 쓴 한 남자가 내렸다.
그는 차에서 상자를 옮기며 민경(民警, 경찰)에게 말했다. "물건 내리는 것 좀 도와줘요! 터키에서 등에 지고 왔어요".
민경이 보니 마스크가 가득 찬 큰 상자였다. 얼른 그에게 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남자는 말했다. "묻지 마세요. 그냥 중국인이에요!

"나는 내가 중국인임을 영원히 기억하겠지만, 당신들은 나를 기억하지 않아도 되요."

가장 다정한 말은 종종 입으로 내뱉지 못한다.
선생님, 당신이 말하지 않아도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있어 감사합니다.

 

03

우한이 봉쇄되면서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았다.
의료진의 식사가 문제 되었다.

그런데 아주 작은 가게 하나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매일 거의 1000개의 도시락을 만들어서, 금은담(金银潭) 등 병원 의료진에게 전문 공급하였다.
도시락 한 개에는 당근요리 소갈비찜, 감자요리 삼겹살, 야채 요리가 들어 있고, 계란 하나 혹은 옥수수 반개가 다시 곁들어져 요리는 매우 충분해 보였다. 가격은 16위안(한국 돈 2700원-주).
지금 물가로 보면 가게 주인은 손해를 보는 셈이다.

너무 바빠서 부모님과 남매들을 모두 불러 모았고, 가족들은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손 두 개가 네 개인 것처럼 사용했다.
가게 여주인은 더더욱 하루 4시간만 잤다.
다른 사람이 그녀에게 왜 그렇게 하는지 물었다.
그녀는 말이 나오지 않는지 머리를 한참 긁으며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의료진들을 보고 그냥 있을 수 없어, 이 일을 하고 싶었어요."

아가씨, 저는 당신이 무엇 때문인지 잘 알아요. 당신의 마음속에는 다른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죠.
당신이 있어 감사합니다.


04
우한으로 가는 물자 수송차 한 대가 톨게이트를 지났다.
교통경찰이 운전기사에게 검사카드를 건네주며 일어나 경례를 했다. 수고하십니다. 우한 힘내세요, 중국 힘내라!

차가 몇 미터 나아가자, 교통경찰이 따라붙으며 물 한 봉지를 건네주었다. 기사양반, 물 가져가 도중에 마셔요.

어떤 호언장담도 없었다.
하지만 이 장면은 눈물을 자아내게 합니다.。
왜냐하면 이 순간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죠.
당신들에게 감사합니다!


05

 1월 24일, 허난성 심구(沈丘).
42세의 마을 당서기 왕국휘는 채소 5톤을 싣고 우한 화선산(火神山)병원 공사장으로 달려갔다.
그는 일찍이 우한에서 17년간 군 복무한 적이 있으며, 부대에서는 보급을 맡았다.
전염병이 돈 뒤 그래서 그가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먹는 일을 어떻게 하지?"였다.
1월 24일 새벽 5시, 그는 일어나 문을 두드려 마을 사람들을 깨워서 채소를 챙기게 하였다.
20여 명의 사람들이 호응해 한나절 바쁘게 움직였다.
청채(青菜) 5000여 근(2500여kg), 4100근 동과(冬瓜)...마지막으로 5톤의 채소를 챙겼다.

왕국휘는 쉬지 않고 차를 몰아 24일 저녁 8시 우한에 도착했다.
그는 우한의 노병이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1998년 홍수에 맞서 일선에 있었어요. 2008년 한파 때도 일선에 있었죠. 이번 전염병 때도 당연히 가야죠." 
(※1998년 홍수, 2008년 한파 모두 양자강 중하류에 위치한 우한 일대에 큰 자연재해를 가져왔다.)

그는 일찍이 조국을 지키며 일생을 붉은 충성심으로 살았다.
영웅은 항상 영웅이어야 한다고 누구도 규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신은 뜨겁고 정성스러운 것을 택했습니다.
조국의 노병인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06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진설연(陈雪燕)은 네팔을 여행하고 있었다.
고향마을에 마스크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그녀는 즉시 근처 약국을 뛰어다니며 마스크 5,800개를 샀다.
너무 많아 들기가 힘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옷과 세면용품을 일부 버리고 트렁크를 비워 그 자리를 마스크로 채웠다.

결국 4개 트렁크에 가득 찬 마스크를 가지고 귀국해서 의료진과 필요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었다.
"나는 전염병이 돌았을 때 의료 물자가 내 소지품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보다 더욱 위력적인 사람이 있다.
허난성의 한 여성 가이드이다. 그녀는 ‘우한사수대’를 조직해 태국으로부터 방호복 40상자를 사서 국내로 나른 후 곧바로 우한으로 보냈다.

전 세계의 마스크와 방호복이 중국인에게 모두 팔렸다는 느낌입니다.
당신들에게 감사해요, 중화의 훌륭한 아들딸들이여!

 

07
 1월 29일 허난성 낙양의 한 가구공장이 20만 위안의 의료상자를 주문받았다.
사장인 원선생이 눈여겨보니 우한 화신산병원에서 쓰려는 것이었다.
그는 즉시 주문을 접수하고 답신을 보냈다. "사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공짜로 기부하겠습니다!"
자신의 공장에 비축한 것이 부족했기 때문에, 원선생은 이 소식을 현지 가구협회 웨이신(중국식 카톡-주)에 올렸다.
협회 사람들은 이 소식을 보고는 물자를 경쟁적으로 기증했다.
14개 업체가 밤샘 연장근무를 해 하룻밤 사이에 주문을 모두 채웠다.

주문받은 의료상자의 적재가 완료된 후, 물류회사는 화물이 우한에 지원된다는 사실을 알고 즉시 무료 운송을 제안하면서 그날 저녁 배달을 보장했다!

이들 영세 기업주들은 평소에 성실하게 작은 장사를 하며,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지만 결정적 순간에, 그들은 따뜻한 마음을 내비쳤다!
당신들에게 감사합니다!


08
호남성 상덕(常德).
1990년대 생 청년 하오진(郝进)은 마스크 1만8000개를 기부했다.
마스크의 출처에 대해 우리는 미처 알 수가 없다.
작년 그는 마스크 공장에서 일했었는데, 나중에 공장 사정이 안 좋아 사직을 했다.
공장은 돈이 없어 2만 위엔 상당의 마스크를 주며 급여를 대신했다.
설 전후 하오진은 전염병 상황이 급해 마스크가 부족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즉시 이 마스크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부할 생각이 들었다.
마을 서기가 그에게 돈을 주려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 푼도 필요 없어요. 나는 ‘국난’을 이용해 돈 벌 생각은 없어요.

마스크 공장에서 아르바이트 하고, 월급도 못 받았으니, 그 총각은 분명 부자는 아닐 것이다.
집 사고, 아내 얻고, 노후 준비하고, 이런 것들이 모두 돈을 필요로 한다.
생활이 쉽지는 않겠지만, 당신의 마음엔 큰 뜻이 있다.
그런 당신에게 반드시 밝은 미래가 있을 것이다.
당신이 있어 고마워요!

 

09
구호물자 수송차가 병원 근처에 도착했다.
한 의사가 달려와 길을 안내했는데, 그는 감히 차를 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 감염이 의심되는 상황이니, 차 밖에서 길을 인도하겠습니다."고 그는 말했다.
그런 후 그는 차 앞에서 달리면서 지정된 곳으로 안내했다.

이 뒷모습이 가슴을 찡하게 한다.
수고했어요, 의사선생님.
당신의 검은 옷을 입은 뒷모습은 좀 희미하지만, 우리 마음에 당신은 또렷하고 반짝거리네요.
건강하세요!
당신이 있어 고맙습니다!



10

 1월 31일, 제남(济南, 산동성 수도) 서부역.
한 열성적인 오빠가 큰 트럭을 몰고 와 소독액 원액 500근(250kg)을 기증했다.
차를 세우고 짐을 내린 후, 그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총총히 가버렸다.
전염병이 돌 때 역은 소독이 가장 중요하다.
이 500근의 소독액 원액이 있으니 이제 보름 동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 오빠는 속 깊게도 물뿌리개도 준비했다. 그는 오기 전에 분명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역원들은 고마워요, 고마워요 하면서 인사를 연발했다. 
그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요, 괜찮아요.

작은 오빠, 우리는 알아요, 당신이 이런 "고맙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우리는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해야만 해요.
이 500근의 소독액을 위해, 그리고 더욱 당신의 따뜻하고 착한 마음을 위해서죠.
당신이 있어 고마워요! 



11

어제 인터넷에서 사진 한 장을 보았다.
십여 명이 한 줄로 간단히 서 있는 모습이었다. 포즈도, 이쁜 얼굴도, 심지어는 각자의 얼굴도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얼마간 사람의 가슴을 찌르는 것이 있었다.

도시관리원(城管), 환경미화원(环卫), 교통경찰(交警), 의사(医生), 특수경찰(特警)……        
이것은 “서민의 안전을 지키는” 소대입니다.
전염병이 한창일 때 중화 대지 위에, 무수히 많은 이런 소대들이 묵묵히 분투하며 우리를 보호하고 조국을 지키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12
 1월 26일, 안칭(安庆)시 제1인민병원 부간호장 장민(张敏)은 전염병 발생지역으로 곧 달려갈 예정이었다.
가기 전에 딸이 그녀를 껴안고 울면서 엄마를 가지 못하게 했다.
간호장은 눈물을 참으며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몬스터를 잡으러 가는 거야, 곧 돌아올께……

그동안 이와 비슷한 광경이 조국의 수많은 곳에서 펼쳐졌다.
철모르는 많은 아이들이, 의사·간호사인 엄마를 안고 가슴이 터지도록 울면서 그녀들을 가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그 '독한 마음'의 엄마들은 남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사랑하는 아가야, 우리 울면 안 돼.
우리는 같이 후방에 있으면서, 엄마를 도와 몬스터를 사냥하는 거야!
일선의 전사들이여, 당신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13
 1월 24일 정오, 상하이시 제1인민병원 호흡기과 의사가 2인분의 음식을 배달 주문했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의사는 다음과 같이 자상한 메모를 남겼다.
택배기사님, 만약 병원 환경에 신경이 쓰이면, 제가 들고 갈 수 있으니 위층으로 올려 보내지 마시고 길가에 그냥 놓아두셔도 됩니다.

30분 후.
택배 청년은 음식을 2층에 올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식당 주인은 반찬 두 개를 공짜로 더 보내주며 다음과 같은 쪽지를 부쳐놓았다.
의사선생님: 수고하십니다. 고기와 채소 반찬 하나씩 더 보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의사는 순간 감동해서 사진을 찍어 친구들과의 웨이신(카톡방)에 올렸다.
기자가 가게를 찾았을 때 가게 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의사의 메모를 보았을 때 마음이 아팠어요.
“설을 쇠야 하는데, 그들은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이 도시를 위해 묵묵히 헌신하고 있어요. 하지만 일부는 그들의 업무 환경을 꺼림칙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뭔가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음……
이게 바로 그 옛날 얘기 속의 '양심상인'이라는 것이겠죠?
나중에 식사하러 당신 가게에 갈께요!
사업이 번창하길 빕니다!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14

전세기 한대가 곧 우한에 착륙하려 하였다.
비행기 승객은 모두 우한을 지원하려는 의료진이었다.
착륙 직전, 승무장은 관례적으로 방송을 시작했다. “우리 비행기는 곧 착륙을 시작합니다……지금, 당신들은 천사일 뿐 아니라 영웅들입니다. 수고하세요……"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승무장은 갑자기 목이 메었다. "여러분이 임무를 완수한 후에는, 우리가 모시고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이번에 울먹인 것은 업무 실수가 아닙니다.
진심으로 감사와 경의에서 우러나온 표현이죠.
의료진 여러분 감사합니다! 승무장님도 고맙습니다! 당신의 목메는 소리를 듣고, 수많은 사람들도 눈물을 흘렸답니다. 왜냐하면 우리 마음도 당신이랑 똑같기 때문이죠.

 

15
우한 화신산병원이 순조롭게 완공되었다.
건설의 전 과정에 참여한 노동자 한분이 임금을 받았는데, 
그는 모두 기부하고 싶어 했다.

생각해보자, 그들은 모두 어떤 사람인가?
이들은 가장 보통의 노동자이자, 외지 공사현장에서 일 년 동안 고생을 한 사람들이다. 이제 겨우 설을 쇠러 집에 가서 가족들과 며칠 상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1월24일 긴급 임무를 전달받은 후, 젓가락을 내려놓자마자 재해지역의 병원을 지으러 와야 했다.
제야음식(年夜饭)도 그들은 공사장에서 이렇게 서서 먹었다.

여러 차례, 너무 피곤해서, 그들은 이렇게 잠깐씩 눈을 부쳤다.

그들은 이렇듯 밤낮으로 바쁘게 일하면서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공사 기일을 맞추기 위해 심지어는 자기들끼리 한바탕 싸움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가까스로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였을 때, 그는 아무런 보답도 요구하지 않았다.
오빠 감사해요. 돈은 당신에게 남기시고, 마음은 우리가 가져 갈께요.
당신이 있어 고맙습니다!



16
 
이번 전염병은 이 같은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다.
내가 적은 것은 겨우 천만분의 일일지도 모른다.
만약 이 재난이 아니라면, 평범하고 밋밋한 사람들 속에 이렇듯 많은 빛나는 영혼들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기가 어렵다.
그들은 매우 평범하고 소박하지만, 또 특별나게 대단한 사람들이다!
이들 빛나는 보통사람들은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며, 안정을 주고, 마음속에 힘을 느끼게 하고, 눈앞에서 희망을 보게끔 한다.

요즘 나는 한 가지 질문을 제 자신에게 계속 하고 있는 중이다.
나라에 어려움이 생기면 우리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답은 매우 간단하다. 바로 각자 자기 몫을 다하는 것.
사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모두들 그렇게 하고 있다.
의사는 병 고치러 달려가고, 경찰은 나서서 당직을 서고, 요리사는 의사에게 밥을 해주고, 노동자는 급히 병원을 지었다.
채소가 있는 사람은 채소를 가져갔고, 마스크를 가진 사람은 그것을 기부했으며, 의료 물자를 만드는 사람은 연일 야간 연장근무를 했고, 건강지식을 가진 사람은 계속해서 그것을 선전했다……
우리가 합심하면 재난은 곧 이겨낼 것이다.
꼭 할 말은, 이 큰 싸움은 전 인민이 함께 한다는 점이다.
장차 승리하면, 이 역시 전 인민의 공로다.

• 분투하는 일선 전사의 공로다.
• 위의 얘기 속의 선량한 사람들의 공로다.
• 설을 쇠기 위해 집에 돌아가길 포기한 모든 이들의 공로다.
• 모임을 취소하고, 전염병 지식을 보급한 사람들의 공로다.
• 외출할 때 반드시 마스크를 쓰고, 또 다른 사람에게 마스크 쓰기를 권유한 사람들의 공로이다……

우리 모두 함께 바이러스를 쫓아내자.
대다수 국민의 지지와 협조가 없다면, 이 재앙은 얼마나 더 커질지 모른다.
묵묵히 애써 주신 모든 중국인들 당신들께 감사드립니다!
당신들이 있기에 우리 중국은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

-END-



* 전체글은 16번까지 있고,  06번에 두 개의 에피소드가 있습니다.(편집자 주)

 

<작가소개>
이월량(李月亮)은 인기 작가이며 신여성주의자이다. 기초가 탄탄한 글솜씨를 가졌으며, 이성과 지혜로 수많은 여성들과 성장을 동반하고 있다. 그녀의 신간 <너는 한 다발의 빛으로 살아라(你要活成一束光)>는 현재 중국의 가장 큰 인터넷서점인 당당왕(当当网)의 베스트셀러이다. 그녀의 ‘웨이신’ 계정은 李月亮이며. 인터넷포털사이트 sina가 운영하는 중국식 트위터 ‘웨이보’ 계정 역시 李月亮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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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신종 코로나'의 원인과 자연대처법

요즘 '신종 코로나' 공포가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다.
이 바이러스 원인이 처음엔 '박쥐'에서 옮겨 왔다고 했다가,
지금은 멸종 위기종인 '천산갑'이 원인일수(중간 숙주?) 있다고도 한다.

이런 연구들은 동물보호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면,
우리 건강을 지키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구별은 바이러스로 가득차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이러스는 자연의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기생체일 뿐이다.
연구하다보면 박쥐,천산갑뿐아니라 여타 여러동물들로부터,
바이러스가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지난 역사를 보면 알지만
전염병은 전쟁이나 기아로 인해
사람들이 면역력이 극도로 나빠질때 나타나는 사회질병이다.

요즘처럼 음식이 풍족한 사회에서 벌어지는 전염병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고 믿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인간 몸의 면연력이 정상이면,
바이러스는 아무런 활동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몸의 면연력이 떨어지면,
바이러스가 활동하여 고열,두통,기침 등을 일으킨다.
인간이나 동물이 면연력이 약해질때,
자연의학 처방등을 하면 자연은 그런데도 그저 관망만 하는게 아니다.
감기라는 증상에서 면연력을 회복시켜 생명력을 재충전시켜 준다.

현대의학은 감기증상 처방으로 항바이러스제,해열제,진통제등을 사용해,
감기증상을 억제해 치료케하지만, 면연력을 항상 더 증대케해주지는 못한다.
약품으로 증상이 억제되겠지만, 자칫 환자의 면역력 저하를 초래할수 있다.

환자의 면연력 증대가 아닌 평상점에서 또다시 병에 노출이 되고,
이는 병원의 수익창출로 연결 되고 있는게 오늘의 의료현실이다.


그리고 현대인은 주로 가공식과 인스던트를 주식으로 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농산물이라하더라도 살충제,제초제,항생제,첨가제까지 더해진것이다.

왜? 자연의 사는 야생동물은 질병이 없고,
인간들만 병마의 재앙을 겪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할것이다.
조류니, 박쥐니, 천산갑이니 하면서,
원인을 야생동물로 돌리는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내 면연력이 왜 무너지는지를 알고 자연의학으로 대처할때,
독감.바이러스의 공포는 사라지고 올바른 치유가 보일것이다.

여담이지만 중국인은 일본인처럼 우직하고 절약정신이 강하다.
중국이 아직 개발도상국이어서인지 대기오염이 심각하다.
또 한족의 경우 검소하고 식단이 채식보다는 기름진 육식으로 웰빙에는 이르다.
그나마 조선족이 기름진 식단이라지만,
대한민국처럼 자기 몸을 관리하고 발효음식과 웰빙식단에 조금 가까와지고 있다.
인도가 공중위생에 중국과 별 차이없지만, 중국인과는 다른점이 있다.
인접국 인도인은 주식에 강황과 울금 재료가 들어간 카레를 자주 먹는다.
인접국 동남아인 태국과 베트남도 카레식단에 익숙하기에,

이번의 동아시아 일본보다 전염병 비율이 적다.
아시아권은 인삼, 강황, 울금, 생강, 마늘, 매실, 십전대보탕, 쌍화차, 홍차, 김치 등
발효식품과 동의보감, 자연의학 식품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중국인은 돈있으면 기름진 식단을 먼저 선호하고 웰빙 자연건강식은 뒷전이다.

그리고 어떤 미식가는 정작 찾아야할 십전대보탕, 삼계탕(병 이후엔 닭죽)등,
일반 건강식은 찾지않고
이상한 자양강장식을 찾는다고한다.

또한 중국현지인 이상으로 유럽을 비롯 서양 관광객중 희귀 야생동물요리를 찾는 미식가들이 있어,

이들 시장에 의한 무분별한 희귀 야생동물 접촉으로 전염병의 화를 초래한다고도 한다.



아무튼 면연력은 동의보감처럼 자연의학의 올바른 한약과 음식으로 오는 것이다.
그리고 철저한 위생관리하에 휴식을 취하고, 몸을 따뜻하게 하며,
위장을 쉬게하면 자연스럽게 낫는다.









최초 원문글 : '신종 코로나'가 천산갑에서 오나?   글쓴이 : 생태농부

http://cafe.daum.net/sisa-1/eCkW/933 



국내 17번째 확진자 극한 치료제 아닌 일반 대증요법으로 치료후 완치해 퇴원.
17번째 확진자 2월 12일 퇴원 "겪어 보니 심한 병 아닌 것 같다"  출처 :연합뉴스
<= 평소에 면연력이 좀 갖춰져 있다면 이렇게 가벼운 치료로 완치가능함을 알수있음.

https://news.v.daum.net/v/20200212163807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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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고난을 희망으로 승화한 명작 휴먼 드라마

 


 마초의 본능이 있는듯한 영국의 스티븐 달드리 감독이,
격동의 영국 노동자의 아픔과 한소년의 꿈을 묘사한 작품, '빌리 엘리어트'를
2001년경 영화로 첫선을 보이고, 호응에 힘입어 이후 뮤지컬로 선보입니다.
이 작품은 80년대 영국 북부 탄광촌을 배경으로 가난한 광부의 어린소년 ‘빌리’가, 
다목적체육관에서 우연히 보게 된 발레 동작을 따라하다 자신의 예술재능을 발견하고,
발레리노의 꿈을 이뤄가는 과정을 그린 휴먼 드라마입니다.


옥의 티; 작품의 스토리는 좋지만 연출이 다소 거칠어 아쉬움이..
다만 연출의 장면중 저속한 언어와 행동이 좀 거슬려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옥의 티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예술적 연출이 뛰어나,
전세계에
감동적인 휴먼 뮤지컬로 각광을 받게 됩니다..

 

글 원문 => http://cafe.daum.net/sisa-1/n4nj/435 

'빌리 엘리어트', 고난을 희망으로 승화한 명작 휴먼 드라마 (시사평론 정론직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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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오종렬의장 마지막 광주 노제 모습입니다.

2014년경 건강악화로 입원중이시던 한국진보연대 오종렬 총회의장이,
2019년 12월 7일 밤 광주 전남대병원에서 별세하셨습니다. (향년82세)

 

 출처: [부고] 故오종렬선생 민족통일장으로 치른다.
-신문고뉴스 - http://www.shinmoongo.net/sub_read.html?uid=132595§ion=sc5§ion2=민족/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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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장마 2019 초가을 귀촌수기- 제철 텃밭 수확 마무리..

안녕하세요.
수도권 객지인은 이맘쯤 명절 귀향을 준비중일것입니다.
한편 어떤 시골사람은 바뻐 못오는 도시 가족을 위해 역귀성을 준비중이지요.
저도 일찍이 귀촌해서 수도권에 사는 친지와 지인단체(NGO)에 선물전달하려 종종 상경합니다.
택배로 하지않고 굳이 상경의 또다른 목적은 서울에서만이 손쉽게 살수있는 물품이 있거나,
혹은 서울 특정지역에서 장보면 더 싸게 살수있는 물품과 먹거리가 많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당일치기 말고 차박과 함께 잠시 여행도 결들이면서 말이지요.
참고로 다마스 차박 모기장 자작후기입니다 =>http://cafe.daum.net/push21/JAtR/1415

 

그런데 올해 긴 늦장마로 일단 성산벌초를 앞당겨 8월말에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일단 서울 친지에게도 미리 택배로 선물을 보냈습니다.
교통대란지에 위치한 낙성대,남성역인근에 사시는지라,
서울갈일이 있어도 택배로 보내는게 신간편하니 말입니다.



 

1#

∇ 전남 나주시 노안면 양천리 (금성산줄기의) 산에서 바라본 내고향 산하

 



∇ 시골집 텃밭과 빌려쓰고 있는 종손친지 야산텃밭 모습니다.


 

 ∇ 2019 올해 수확한 과일 일부와 매실을 따서 만든 매실장아찌입니다.

 


 

∇ 서울 친지와 NGO에 선물줄겸 수박을 심었는데, 운송문제가 있었습니다.

하여 (7월하순) 수박은 몇개만 안전포장을 하여 NGO에(꿀잠) 선물택배하였습니다.


 

∇ 수박은 대부분 광주시내에 사는 종손친지와 동네사람에게 나눔하였습니다.



 

∇ 올해는 여느때보다 날씨가 변덕스러워 나주 배밭의 봉황배 비품이 40% 이상이었습니다.

배밭에서 일하고 일당외에 비품배를 거져 10가마니나 받아서 햇배 나눔하였습니다.

제고향에 3마을이 옹기종기 모여있는데, 대타로 배없는 시골집 곳곳에 큰양파망 1개씩하니,

리어카로 한가득으로 졸지에 시골사람들 배터지게 먹게되는 행운이 생긴것이지요.
(비품배가 많아도 보통 일꾼에게 몇박스량만 거져줍니다만,
 배밭사장과는 사둔집안인지라 엄청난량을 챙겨 받을수 있었습니다.)

먼친지중 배즙을 짠다하여 그집에만 4가마니주니, 배즙으로 3박스 나왔습니다.

아래사진은 200여포(1박스) 대신 짜달라 부탁한 비용(3만원선)을 주고 받은 일부입니다.

 

 
 

∇ 역상경을 늦추고 9월초 서울 친지에게 배즙과 농산물을 택배선물하였습니다.




 

2#

올해 긴 늦장마로 일단 종손성산 벌초를 앞당겨 8월말에 마무리했습니다.

저는 비문명 환경이 더좋아보이며, 벌초한 야산이 더흉하게 보여서 벌초엔 신경을 않썻습니다만,

큰집댁이 매년 애써서 벌초를 하시니, 시골에 있는 제가 대타로 벌초를 하기로 했습니다.

 

 



∇ 참고로 저희 평산신씨 사간공파 신종식공의 후대 신진식(고조 장계) 후손의 족보입니다.

객지의 큰집댁에 족보책이 있느나 바뻐서 아직 아래처럼 계보목록을 못만들어서,
이번에 어렵게 원거리 연락을 하며 간략히 종합한 계보입니다.

 



 

∇ 9월8일에 객지에 계시는 나주 금동마을의 큰집종손댁이 성묘하러 방문하셨습니다.(저희는 작은1종손)

큰집이 벌초비로 10만원을, 작은2종손댁도 통장으로 벌초비 10만원을 송금해 주셨습니다.

 

 

벌초하여 용돈이라도 생기니 약간의 보람이라도 있는것이지요.

그것도아니라면 벌초할 이유가 없음은 왜 힘들게 벌초하고 사시는지 깝깝이 보는 1인입니다.

그것은 문명의 가공된 착시 현상이지, 결코 태고의 자연 모습이 아님입니다.

 

 



∇ 평산신씨 사간공파 신종식공의 후손 신진식(고조 장계) 후손의 공동 문중야산 한입구입니다.
(전남 나주시 노안면 양천리 산8-1, 임야 약4000여평)

벌초라면 이정도만 족하다 생각하며, 귀촌후 인도만(밭두럭이나 오솔길) 가끔 신경쓰곤합니다.

 

공동문중야산내에 조상묘가 무려60여개로 저거 다 벌초하려면 문중사람 다동원해야 가능합니다.
벌초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점점 우거지는 잡목문제가 있어 시골에 남아있는 문중들과,
작년가을 큰맘먹고 잡목제거와 벌초를 마무리한 문중야산 중간 모습입니다.

(이것을 용역을 부른다면 인건비가 무려 1천만원 상당할 정도로, 자체로 몇주나 걸렸습니다.)

보라색 반원표시는 신종식공의 후손중 조선후기쯤의 대표묘입니다.

잡목문제를 위한 고육지책으로 최근 먼친척이 야산텃밭을 만들어 사용중입니다.

 

 


 

∇ 어제 성묘 방문하신 큰집댁에게 귀가시 사진의 호박 2개를 선물했습니다.

그리고 배즙과 발효액등, 선물도 있을때 주기도 편하고 많이 줄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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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에세이-한국전쟁 당시 실화극

  자서전 서막 - 한국전쟁과 당시 나의 고향에 있었다던 이야기

 

( 아래의 이야기는 당시의 풍문과 목격담을 각색해 구상한 실화입니다.

귀촌후 틈틈히 나의 인생이야기를 기록중이며, 그중 공유의 글을 올리는바입니다. )

 

 

때는 한국전쟁 당시 1950년 10월경 유엔군과 군경이 전남지역을 수복하면서,
좌익들은(인민군 일부와 빨치산) 다시 산으로 들어갔다.

빨치산 인민유격대 조직은 전남도당 유격사령부 예하에 6개 지구 체제로 재개편한 무장조직이었다.
약 6만여명이었던 이들은 남조선노동당 박헌영대장 휘하로,
전남도당 위원장은 박영팔, 부위원장 겸 빨치산 총사령관은 김선우이다.

이중 제5지구당 (불갑산)불갑지구는 함평, 영광, 무안, 목포가 활동무대로 약 2,500명이었다.
(위원장; 김용우, 빨치산사령관; 박정현, 모두 구빨치산 출신)


한편 1951년 2월 20일경 새벽 대대적인 불갑산 토벌작전인 남한 군경합동 '대보름작전'이 전개된다.
이 불갑산 토벌작전에 11사단 20연대와 영광과 함평경찰, 청년방위대와 지역우익단체가 동원됐다.  
이 불갑산 토벌작전을 당한 빨치산중 일부는 나주 금성산으로 후퇴하여, 나중에는 영산강을 건너 장흥으로 향했다.
그중 금성산으로 퇴각하다 흩어진 몇몇 빨치산은 나주야산에 머물다,
봄에 피난주민 행색으로 위장한체 노안면 양천리 계량재에 이르게 된다.

이들은 계량재 아래에 인가를 발견하고 내려가 왠 불탄 성당이 있어 내려가다 멈짓하고 산으로 다시 올라 숨는다.

 

  ∇  나주시 노안면 양천리 망산,뿔바위 인근 전경


∇ 나주시 노안면 양천리 계량마을 노안성당 (현제모습)

 

 

 

왜냐면 그 성당은 붉은색 성당으로 멀쩡했기에, 반공대가 유인책으로 그리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순간 선듯하다.
이들은 계량재를 지나 망산 인근에서 하산하여 인근마을(국룡)을 우회해 들판을 지나 산에서 발견한 방죽으로 향한다.
방죽(장등제) 들판으로 진입해 은신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며 주변을 바라보다,
원거리에 있는 기이한 풍경인 고인돌 유적지를 발견하게 된다.

이 빨치산은 순간 저 고인돌 유적지 주인은 아마 이지역의 지주일거라 판단하고,
야산길을 따라 고인돌이 있는 인근 마을로 향했다.

가면서 야산밭에서 일하던 지역 농민에게 고인돌 야산주인집을 수소문하여 그 마을로 향한다.

 

  ∇ 양천리 장등방죽으로 사진위 중간 남색둥근표시가 고인돌 유적지이다.

 

빨치산 : "수고하십니다. 전쟁 난리통을 격다 길을 잃어 배회중이외다.. 참, 저 신기한 고인돌 야산주인이 누구요?"
지역주민 : "아이고, 어쩌다 여기까지 피난 행렬이요?.. 그 야산주인은 저기 금동마을의 신철수아들네이지라~"

 


즉, 위 고인돌과 관련된 마을은 지금의 나주시 노안면 양천리 금동마을이며, 나의 할아버지의 본가였던 집성촌 마을이다.
또한 나의 평산신씨인 할아버지 본가는 소유 야산중에 조상이 오랬동안 관리했던 위 고인돌 야산이 있으며,
집성촌 당시때부터 지주에 속하는 부유한 가문이었다고한다.
이 빨치산은 그날 늦은오후 짐에 숨겨둔 노획한 국군총을 꺼내들고 나의 금동 할아버지집을 급습하였다.
댁이 대가족이었으나 당시 집안엔 방금 밭에서 온 할머니와(중년여성) 한 작은아들만 있었고,
나머지는 다들 밖에 나와 있는 상황이었다.

댁에 총을 들이밀고 먼저 요구한것이 요기거리로 중년여성이 먹거리를 내오자, 좀 희안한 광경이 펼쳐졌다.
빨치산 간부가 자신은 망을 보는데 주념하며,
부하에게 먼저 식사하라하고 먹거리를 거의 양보한체 자신은 대충 먹는것이다.

그리고 있다 조용히갈터이니, 자금과 식량을 내주라면서 다는 줄필요없고 알아서 주라는것이다.
그러자 이 큰집터의 아들이 앞뒤다짜르고 아니꼬아하며  한마디 거든다.

 

 

 

작은아들 ; "앰병~ 그럴거면 머하러 총을 겨누고 지랄이요? 차라리 좀 달라고 구걸하지.."
빨치산 간부 ; "이런 삭아지하고는.. 이보시오 동무, 총알받이로 있다 저 버르장머리없는 녀석이나 대리고 나오시오."
하고는 나의 큰할머니인 중년여성이 챙겨주는것을 받고, 먼저 엄호하며 길을 나설 준비를 한다.
그럴즈음 집안의 가장 할아버지가(중년남성) 바깥일을 마치고 귀가중,
누가 뭐라하는 소리를 듣고 살피자 집안서 총을 든 괴한과 맞닥뜨린다.

집안의 중년남성은 만류하며 내아들 말고 나를 잡아가라 자처했고, 부하는 이내 중년남성을 인질로 하여 길을 나섰다.
왜냐면 총알받이로 소년은 불필요했으며, 간부도 이에 이유를 묻지 않았다.

 

   ∇ 나의 할아버지 본가집터 옛모습

 


이 빨치산은 초저녁 인적이 드문 계림리를 거처 서광산(평동 남서쪽)을 지나
지금의 공항 남서쪽 천변을 끼고 서창동으로 향했다.

아마 무등산과 화순야산의 거점지 근황이 궁금해서인듯하다.
이 두명의 빨치산에게 인질이 처음엔 나의 할아버지 혼자였지만,
평동끝을 지나다 길에서 마주친 주민 두명을 생포해 인질이 셋이 된다.

인질 손을 묶은체 끌고가면서, 가다 주민이 물으면 빨치산 내통자를 끌고 가는거라 둘러댔으며,
주민은 낮선 반공대원이긴 하지만 국군총을 소지하고 있어 긴갑다했고,
그래도 의심하는듯 보이는 행인을 잡아가는것이다.

이들은 늦은밤 인적이 드문 지금의 광주시 서구 서창동(회재로) 인근 (백마산)큰야산에서 잠시 여장을 풀었다.
그러는 사이 송정리 인근 지역주민이 밤에 왠 수상한 사람들이 지나는것을 보고,
급히 지역 파출소 같은 반공치안대에 알렸다.

당시 반공치안대엔 이북에서 내려온 서북청년단이 규합해 반공조직을 관리감독하거나, 독거다이 왕초가 종종 있었다.
치안대에 당직을 서다 지역주민의 급보를 받은 서북청년단출신 대원은 전공을 독차지하고자
지역출신 대장에 따로 보고하지 않고,
총 몇개와 전쟁중에 노획해 숨겨둔 수류탄 한개를 챙기고,
급히 (반공청년단)반공대원을 소집하여 빨치산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독거다이 왕초인 서북청년단출신 반공대원은 지리에 밝은 지역반공대원들을 앞세워 단독으로 빨치산을 추격해,
서창동 인근야산 아래 능선들판에서 애워싸며 매복한체(5명이상), 빨치산을 기다리며 급습을 준비하고 있었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쾅~"
때이른 새벽 빨치산이 야산에서 내려와 신작로 같은 탁트인 농로를 걸을즈음,
대각선방향에서 폭탄이 날아와 이들 앞에 떨어진다.

폭탄이 날아오기 몇초전 한 일질이(나의 할아버지) 대각선방향에서 누가 숨어 공격직전임을 감지하고,
위험하다 외치며, 손이 묶인체로 농로옆 도랑으로 몸을 내던지어 피신한다.
그 말에 순간 빨치산들은 총으로 엄호하며 두리번 거리는 순간, 이내 폭탄이 인근에 날아와 터진것이다.
이렇게 갑작스런 폭탄과 함께, 미처 피하지못한 총알받이 인질 둘은 사지가 찢기어 그자리에서 죽고,
빨치산간부는 중상, 좀 뒤에서 걸어온 부하는 반사적으로 엎드리며 짐으로 몸을 엄호해 가벼운 부상을 당한다.
그간부는 위기의 순간에서 자신은 틀렸으니 후일을 도모하라며 부하에게 도망치라며 손타레친다.
빨치산부하는 급히 몸을 은폐하고 자신의 총이 멀쩡한지 확인후,
급히 무기를 챙기고 간부에게 경례를 신속히 한후 현장을 피한다.

그러는 사이 도랑으로 몸을 날려 몸을 피한 인질(나의 할아버니)은 폭탄은 피했으나, 그렇다고 몸이 건사한게 아니었다.
도랑에 처박힌듯 되어 허리,옆구리 부상등 크고 작은 전신 찰과상이 생겨 거의 중상자 처지가 되버린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아군도 재수없는자들이라 판단하고, 아무도 없는 쪽으로 무조건 도망을 쳤다.

 

한편 매복해 30M인근에서 수류탄을 막무가내로 까낸 사람은 서북청년단출신으로,
이런 막무가내 공격으로 나중엔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폭탄소리와 함께 주변이 아수라장이 된 현장을 확인하고 이후 덮치러 달려갔는데,
위기의 순간에도 빨치산 부하는 총을 쏘며 저항을 하였다.

그 바람에 지역반공대원 한명이 총상을 당하자, 순간 잠시 대원이 몸을 숨기는 사이, 그 빨치산은 서둘러 줄행랑을 쳤다.
부상당한 빨치산이 도망치는것을 보고, 대원 몇명은 그를 추격하기 시작했고, 나머지는 폭탄이 터진 현장으로 향했다.
빨치산을 추격한 지역반공대원중 한명이 총을 들고 있었으나 총을 잘 쏘지못하여 총알이 헛나갔고,
빨치산은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폭탄현장에 있다 답답한 서북청년단출신은 뒤늦게 희미해보이는 적을 향해 격발했으나, 이내 사라진 뒤였다.

그리고 한 반공대원은 도망치는 인질을 향해 아군이니 안심하라, 쉬었다가라 소리치지만 일없다며 시야에서 사라진다.

 

추격을 포기하고 폭탄현장에 와보니, 반공대에 심각한 난관이 봉착하게 된다.
사망자가 적군 1명이지만 양민 2명으로, 아군이 양민까지 죽인처사가 된것이다.

갑자기 당황해진 치안인솔자는 무과실전공으로 위장하고자 지역반공대원에게 삽하고 응급약을 챙겨오라 지시한다.
이후 인가에서 약과 삽들을 챙겨오자, 한명은 부상대원을 치료하고 나머지들은 음침한곳에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한편 그곳 인가에서는 앞면있는 먼 지역주민(반공대원)이 왠 약과 삽을 달라해서 줬기는 줬으나 무슨일인가 궁금하여,
폭탄,총소리에 놀란 주민과 함께(몇명이) 그 대원을 미행했다.

가다 어떤 인질로 보이는 사람이 대각선쪽으로 힘겹게 지나길래,
지역주민중 한명은 일단 도와주러 그쪽으로 조심히 서둘러 이동했다.

그리고 다가와 묶인 손을 풀어주었고, 나의 할아버지는 잠시 휴식만 취한체 이곳을 벋어났다.


폭탄현장으로 간 주민은 멀찍이 숨어서 그 현장과 그들의 현장조치를 보고 이내 놀랄수밖에 없었다.
암매장하려던 사람이 빨치산이 아니라 어디서 본적이 있는듯한 주민으로 둘다 양민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무등산,화순야산 인근에 임시주둔지로 두고 지역정찰을 하고 있던 몇명의 빨치산이,
5KM인근 고지대에서 폭탄 소리를 듣게된다.

이 인민유격대는 남조선노동당 박헌영대장의 이현상 남부군 총사령관(지리산지구 제2병단) 조직부대중 하나였다.
본능적 직감이었는지 빨치산 동지와 직결된 상황이라 판단하고 그 빨치산은 서창동방향으로 향한다.
가다 매월동(회재로)에 다다르자 서창동에서 폭탄부상을 당한 대원 한명을 만나게 되고,
그대원 동지가 알려준대로 사건현장으로 찾아갔다.

서창동 언덕들판 인근에 도착하니 멀찍이서 반공치안대들이 시신을 암매장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탕, 탕, 탕.."
합세해온 빨치산이 현장으로 숨어와 사격하자, 서북청년단대원은 현장에서 즉사,
지역반공대원 한명은 총상을(총상 총 두명)맞고 쓰러진다.

그러자 나머지 반공대원들은 가져온 총만 챙긴체 뒤도 돌아보지않고 삼십육계 줄행랑을 친다.
사건현장에 도착한 빨치산은 총상으로 미처 현장을 빠져나오지못한 반공대원 두명에게,
지금 무슨일을 벌이려고한거냐고 추궁한다.

그래서 시인하길 "서북청년단출신 사람이 전공에 눈이 멀어 신중한 작전을 뒤로하고 막무가내로 폭탄을 던졌어라.
그바람에 주민인 인질이 죽었지라, 그래서 이걸 숨기려 암매장하고, 폭탄으로 빨치산만 죽인걸로 위장하려고 했지라~..."

 

이렇듯 이북출신 반공대원이 단독으로 치안대를 인솔하며 막무가내 작전을 펼치는 바람에, 
치안대 폭탄을 맞아 인질인 무고한 양민이 죽어있었다.

하여 무과실 전공으로 위장하고자 인질인 지역양민을 암매장하다, 결국 이렇게 발각된것이다

합세해온 빨치산은 조금전 운명한 불갑산 인민간부를 인근에 임시 매장하고 잠시 애도하였다.
그리고 총상자 반공대원에게 "인민에 총부리나 겨누지 말고 농사에나 전념하시오." 충고를 하고 이내 자리를 떴다.


 

빨치산이 폭탄현장에서 짐을 챙기고 자리를 완전히 뜨자,
멀찍이 숨어 남아서 지켜보던 주민 몇이 그 현장으로 나온다.

폭탄현장에 와 아직도 아수라장 흔적이 생생함을 보고,
허탈하여 한주민이 총상당한 반공대원에게 말을 건넨다.

 

마을주민; "아이고, 꼴이 말이 아니구만이랴~..
그건그렇고, 삽가지고 뭔 난리요~ 빨갱이하면 우리도 싫어하니까, 삽달라해서 줬는데, 이건 아니지않소?"


반공대원 "죽것소. 묻지 마시요~"


마을주민 ; "애고 모르것다. 우리 주민도 오늘 못본걸로할테니, 젊은양반 어디 나서지말고 농사나 전념하게요 들~."
 
반공대원 ; "아이고, 알았당께~ 아주마이~ 나좀 부추켜주시요~"

 

그러했다. 당시 전쟁이라는 엄혹한 시기였기에 아군이든 적군이든 주민이든 서로 묻지말아야할 일이 많았다.
 "묻지를마세요." 트로트는 현대에 김성환 아티스트가 애정을 담은 가요이다.
만일 격동기때 이곡이 시판됐다면 애환곡으로 널리 불리었을지 싶다.

아무튼 졸지에 패잔병이 된 반공대원은 지역주민의 부축하에 이 현장에서 터벅터벅 빠져나왔다.
한편 해는 천연덕스럽게 슈퍼선이 되어 동쪽 무등산 위로 높게 드리우고 있었다..

 

한편 서창동 폭탄현장을 수습하고 나온 빨치산(남부군)은
다시 무등산 방향으로 발길을 잡고, 광주에 당분간만 은신하게 된다.

군경토벌대의 무등산 포위작전이 개시된 상태여서, 이들은 이후 화순방향으로 선회하였다.
화순 야산에 은신하여, 한동안 화순 토벌대의 후방을 교란하다, 이후 또다시 방랑자가 된다..

당시 군경은 무등산 빨치산 토벌작전을 개시하고, 작전 수행을 위해 경찰이 주민들을 동원하여 신작로를 개설했다.
1950년 12월부터 다음해까지 계림동에서 원효 계곡에 이르는 12㎞ 구간에 도로를 개설한것이다.
그 후 이 도로를 확장하고 포장한 것이 현재의 관광도로이며,
지금의 산수동~원효사 간 구간은 6.25 전쟁이 낳은 산물이라 하겟다.

또한 1951년 초가을때 무등산 중봉자락 규봉암(영평리)일대에 전투기로 화학무기를 살포하며, 포위작전을 펼쳤다.
빨치산에 점점 은신에 취약해지자, 이들은 산발적으로 탈출해 화순으로 도피하거나 지리산 본거지로 향했다.

 

PS (추신; 덪붙임)


이사건의 진위는 당시도 그렇고 지금이라도 지역주민에 수소문하려한들 잘 알길이 없다.
왜냐면 당시 반공파 목격 주민 스스로도 누구에게 말하기 민망할만큼,
위처럼 그 광경이 너무나 어처구니없고 황망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광주지역 반공치안대 스스로도 쪽팔려서 이사건을 입다물고 있었기에 더욱이 알수가 없다.
다만 알수있는것은 이처럼 빨치산에 비해 반공치안대에 의한 양민의 이러저러한 피해가 더 많았고(예; 누명),
그 행태 또한 치졸했다는것이다.

(1951년 봄 국군 11사단은 불갑산 토벌작전을 개시하며,
일대 주민들에게 소개령을 내리고 마을에 불을 질러 주민 터전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주민들은 국군의 소개 작전, 지시로 인근 월야, 해보, 나산면 마을로 피난을 했지만, 되려 인명피해가 더컸다고한다.
해보면 성대마을로 피난 간 주민 대다수는 국군 5중대('5중대 사건)에 의해 무참히 희생되는 일이 발생했다고한다.)


그리고 격전지가 이 백마산 인근인지는 확실치는 않다.
다만 지금은 고인이된 동네 문중큰어른이 당시 수소문한 바에 의하면,

당시 광산군 어떤주민이 목격하길, 양천리사람 한명이 어떤자에게 끌려가는듯했다한다.(나의 할아버지로 추정)
그리고 풍문에 그다음날 무등산 못가 광주 남서쪽 변두리의 크고작은 야산이 많은곳에서,
왠 폭탄소리와 총싸움이 좀 있었다는것이다.

그때 즈음 반공대원이 빨치산에 깨진적이 있고, 그럼에도 무슨 모의를 하려 했다는것 등등이다.
 이를 증명하듯 인근에 양민 몇이 암매장되있다 사라졌다고한다.
한편 나의 할아버지는 당시 잠시 실종되었다 며칠후 나타났는데, 거의 반병신 상태였다는것이다.
그리고 문중어른이 이르길 그것은 전쟁 후유증이라며, 그후 오래 못살다 결국 운명하였다고 한다.
또한 전쟁 당시 양천리내 행방불명자였던 사람은 나의 할아버지만으로, 이러저러한 기억의 조각들이 퍼즐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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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린고비 생활수기 전격공개- 박봉 자수성가기

 

 

 

하늘자산;5천만원이상, 땅자산;1억원이상 달성; 짠돌이카페 베스트선정

 

 

 


1# 하늘자산 : 약5천만원이상 달성.

안녕하세요. 
생활수기에 붙여 저의 소개를 잠시 할까해요.
고향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동이며, 1971년생에 가난한 농가의 전쟁고아 집안입니다.
2013년에 개봉된 '마이리틀히어로'에서 저와 닮은 주인공 김영광의 스토리처럼
환경은 다르지만
집안이 여의치않고 화목치 않아 순탄치 않은 유년시기를 보내었어요.
원래 본 고향은 격동기때까지만해도 뒷마을 나주시 노안면 금동마을로
성산에 조상때부터 관리했던 고인돌이 있으며, 집성촌 당시부터 동네 토우에 속하는

 

좀 부유한가문이었다고합니다. http://cafe.daum.net/sdsms/2R8A/12

 

집안형편이 어려워 중학생때부터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했으나, 유년기시절에 불미스러운일로
갑자기 머리를 다쳐 후에도
후유증(편두통,기억상실증)이 있어 사회생활이 원만치않았어요.
회사에서 일이 서툴다고 종종 짤리기도 해서, 기술과 자산을 모으는게 더디었지요.

그래서 절망과 고독의 삶이 연속이었지만, 분발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노력했어요.
(마이리틀히어로, 김영광을 보면 나의 삶이 오버랩.. http://blog.daum.net/chmanho/16883715
현대판 생계형 이산가족상봉기-꿈에본 내고향 방문..http://cafe.daum.net/mmnix/FDjK/125416)


 

1993년 군복무이후부터 ~ 2006년까지 직장을 다니면서 모은 푼돈으로
기독교(교회) 신앙활동을 하며 헌금도 꾸준히 하였어요.

1993 ~1995(광주에서 서울로 정착시기) 매월5만원선 = 헌금 약200만원,

서울정착시기 ~ 2001년까지 일반교회 다니면서 매월10만원선 ; (약6년) = 헌금 약1000만원

2001년~2006년까지 동포.이주노동자선교교회 및 단체 (약5년) 후원금; 약1천5백만원
활동내역
2001년 여름부터 2002년 11월까지 서울조선족교회에서 주일날 자원봉사를 시작,
2004년 ~ 2005년 '조선족의친구들'(동북아신문 내조 및 동포후원단체)에서 사무국장으로 활동을 함,
또한 서울조선족교회 후원언론 '동북아신문'에서 객원기자로 활동을 겸함.
2003년 ~ 2004년까지 가리봉중국동포타운에서 사이버팀장으로 자원활동 참여함.

 

 

2006년 ~ 2009년 이주인권단체 및 지역신문시민기자 활동; 후원금; 약1천200만원
예)2009년 한해; 후원금 약400만원 (비공식통계까지합산함)
(2009년 MY사회기부 통계- http://blog.daum.net/chmanho/16883623)
주요 활동내역
2006년 ~ 2007년 서울경인이주노조에 연대활동차 이주노조미디어활동가로 참여함(이후 후원회원)

이후 네띠(NTM)뉴스, 커널뉴스(팩트티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등으로 자원취재 활동.

(http://www.ntmnews.co.kr/, http://facttv.kr/facttvnews/, http://www.ohmynews.com/)

 

 

 

 2010년 ~ 2015년 ; 후원금 약1천200만원



 ∇ 최근 후원내역 관련 이미지동영상


 

 2# 땅(바닥)자산 : 약 1억원이상 달성
(부동산보증금+생활저축;약9천만원 + 자동차 및 생필품,생활가전품등;1천만원이상)

 

가사난으로 중퇴후 직장생활을 하며 틈틈히 검정고시 공부를 하여, 대입검정까지(고졸) 마치었습니다.

저의 경제활동 주수입은 금속가공업에 1998년까지 한동안 종사하였고(당시 월급70~90만원선), 
2015년 11월까지 매일경제.구로보급소에서 신문보급업 일을 했어요.
수입: 2004년까지 100만원선, 2013년까지 125~135만원선,
불황으로(구독자 900부에서 600부이하로 급격히 감소) 2013년 7월부터 110만원으로 삭감.

 

그리고 신문일을 하며 (2013년 이후)부업으로 잠시 빌딩건물 관리 등을 겸했어요.(수입 25~35만원선)

 

   ∇ 월급통장

 

  ∇ 각종저축통장들 (청약저축은 이자표기가 없으나 150만원이상 이자적립됨)




 각종저축통장들중에서 주저축통장 저축내역일부



혹자는 제가 수입이 잘해야 140만원선인데 매월 후원금 10만원 이상 하고,
생계용 차(다마스) 유지비까지 있는데도 어찌 100만원까지 저축이 가능할지 의아해할것입니다.
물론 일반인에게는 택도없는 소리로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알뜰히 살려한다면 80만원까지 저축을 문안하게 할수있습니다.
일단 자동차 유지비에 대해 예기해보겠습니다.
자동차 유지비를 최대한 아끼는 방법이 첫째는 연비이며,

또한가지는 사고않나게, 차 고장않나게 잘타는것입니다.
 안전운전을 하다보면 종합보험까지는 필요가 없으며 책임보험만으로도 충분하게됩니다.
 설령 사고가 나더라도 상대편이 냈으면 냈지 내편이 아니고,

부득히 과실로 냈더라도 경미한 사고가 일반인바
책임보험으로도 충분히 다 물어주고, 할증 또한 낮습니다.
연비에 있어서 출발은 차분히 하고 과속을 않내게 하여 타는거지만,

실업무에 있어서 바쁘다보니 그게 쉽게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이리하시면 됩니다. 바쁠대 출발은 약간만 빠르게 하고

과속은 무리하지않게 적당한선(속도제한 상한선)으로 하고,
가다 신호가 바뀌면 유독 신호가 더디 바뀌는 큰 교차로가 있을시

시동을 끄고 기다리다 다시켜서 차분히 진행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것이 차를 놓고 최대한 걸을수 있다면

한쪽에 놔두고 가까운거리는 걸어서 움직이는것입니다.
(예로 저의경우 다마스로 밤12시에 출근하여 오전 6시경에 배달일이 끝나고,
바로 빌딩건물관리 장소로 이동해 잠시 일한후 퇴근하며(9시경),

주말에는 청계천까지 다마스로 장을 보고도 LPG값이 한달에 8만원 안팍밖에 않나옵니다.

그 이유는 배달일할때 걸을수있는 단거리는;총30% 최대한 걷기 때문입니다.
만일 저처럼 뚜벅이 정신이 없다면 이또한 연비 절감은 택도없는 소리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생활비를 알뜰히 사용하며 절감하고 살기에 가능합니다.

지금의 난방비 절약법은 '초절전 난방법 전격 공개, 자린고비 체험수기'를 참조하세요.
http://blog.daum.net/chmanho/14400528

 

아래 사진을 보시면 청계천벼룩시장에 군바리용품을 파는곳에서 전투식량 3봉을 천원에 샀습니다.

(요세는 전투식량은 잘 내놓지 않고 깡통류나 식품류 등이 보이니, 갈때 참고하세요.)
그리고 전자랜지용(210g) 즉석공기밥을 시중보다 싸게 2팩에 1천원에 있기도합니다.

그리고 청계천벼룩시장에는 각종식품 및 물품등이 저렴히 판매합니다.

 

 

 

 위 사진은 주로 라면해먹을때 사는 라면사리이며 대형마트나 식품할인점에 보면,

5봉에 1500원에 지금도 판매하는곳이 있습니다.

라면스프는 청계천에서 조미료(다시마)를 싸게 사시거나, 혹은 진라면 5봉에 2천원하는데요,

 

라면1봉지당 나오는 스프를 다 사용하지마시고 많아야 70%정도 사용하고 나머지는,

따로 조미료통을 준비하여 그곳에 담아놓거나 아니면 남은 스프봉지를 묶어놓습니다.

그리고 또 라면을 개봉할때도 스프를 좀 남겨놓으면 다음에 라면사리만 넣고 끌여도 충분한 스프량이 확보됩니다. 어차피 라면을 드실때 라면만 달랑 드시는게아니라 김치나 반찬을 곁들여먹기에

그리하게되면 나트륨(소금)량이 초과되니, 스프는 적당히 넣고 라면에 김치나 양념류를 끌인 1분후

넣으면 맛도 일품이고, 이만한 저염분 웰빙라면이 없는것이지요.


 그리고 위 사진은 초당두부가 아니라 제가 즐겨먹는 400~500원하는 판두부입니다.

솔직히 두부 사드실때 1천원부터하는 초당두부를 사먹는등, 먹고싶은거 괜찬은거 다사다먹노라면,

생활비 절감은 고사하고, 무슨 후원은 염두도 안나옵니다.

또한 식비절약 예로 가끔 편의점중에서 본사밀어내기로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이나 도시락을 반품시키지 못하고 떠않고 폐기하는곳이 간혹 있습니다. 그러한 편의점을 유심히 봐뒀다가 점주나 종업원에게 조심히 가서 유통기한 지난 도시락을 반값에 챙겨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면 대부분 반값이하로 쳐줍니다. 이리하여 2~3일에 한번꼴로 염가로 사서 전자랜지에 돌려 해먹으면 됩니다.
유통기한은 도시락의 경우 여름이면 며칠안에도 괜찮으며,
겨울이면 3~5일이 되도 되는것이 있습니다.
(참 자주오면 종업원 입장에서도 귀차니즘이고 하니 며칠 간격을 두고 찾아가거나 ,
점주가 상주를 잘않하는곳이면 종업원에게 부탁하여 비용을 종업원 용돈하라고 몰래 주는게 나음)

이렇듯 좀 짠한삶을 감수하고 인내하고 하면 못해도 생활비 절감은 됩니다.

저의 경우 박봉이지만 저렴한 식품 및 외식이나 문화생활등 이리 절감하고 저리 절감하여

월90만원안팎 저축과 함께 10만원 이상 불우이웃후원도 가능하였습니다.

저의 생활 신조는 '진리와 의로서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자'입니다.

 이만 줄이오며, 긴 수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생활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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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논단]물리적 흡수통일이 아닌 단계적통일로 빗장을 겆어야

단기간 물리적으로 남북합치는 흡수통일은 망상이다, 장차 연방제만 가능할 것.
 

한반도(코리아) 통일하면 독일처럼 체제가 합치어 비자 없이 자유로이 왕래하고 교역.교류하는 것을 생각하는 분도 있는데, 이것은 수십년쯤에나 가능한 것으로, 당장 몇년에는 전혀 실현 불가능한 망상입니다.
한편 몇년이후로도 가능한 통일안이 있는데, 오래전 진보정치인 권영길이 제시한 고려연방제입니다.
고려연방제란 상호 체제를 인정한 상태로 조건부비자를 통해(부작용이 없으면 비자조건 완화) 남북을 왕래하며 교역.교류하는 것을 말합니다.
 

참, 여기서 왜 남북이 체제를 허무는 완전한 통일이 단기간 몇년이후로는 불가능할까요?
이는 남북 모두 싯지못할 실수와 앙금이 있어서이죠.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하는등 경제적으로 어렵게 된 이유가 한.미 공조로 추진된 경제제재인데, 이것은 북한 기득권뿐이나라 인민대중까지 원망이 높다 못해(수만은 아사자 대부분이 인민임) 미국에 원한이 된 지경입니다.
남한의 기득.수구권이 친미를 통해 북한을 경제제재를 하고 무역 봉쇄정책을 펴 압박하는 외교를 꾀했는데, 이것은 한반도 장래를 생각할때 잘못된 행위입니다.
 

한편 북한은 남파간첩사건 및 연평해전 등 국지적 도발을 일삼았기에 대한민국 서민에게도 북한이 좀 불편한 존재이긴 사실이죠.
(다만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인혁당사건, 천안함사건, 국정원의 왕모 사업가.유우성 간첩조작 사건, 최근 비무장지대(dmz)지뢰폭발사건 등은 한.미가 원인을 제공했거나 조작극)
연평해전의 경우 대한민국 월드컵축제 당시 진보계의 노무현 참여정부시절때 일어난 사태라 더욱 충격이 큰 것으로, 진보정부 상태에서도 북한이 도발을 했으니, 북한을 흡수해 통일한다는것 자체가 얼마나 망상인지 알수있습니다.
지금처럼 수구정권이라면 더더욱 택도없거나 추진된다해도 이념점쟁이 심화돼 국론분열이 더욱 격화되고, 사회양극화로 폭동.소요사태도 발생돼 거의 도루묵 통일이 예상됩니다.
즉 남한의 가진자들이 무엇을 나누는 사회환원정신이 모잘라 북한인민을 저임금에 일을 부려먹겠고, 상대적으로 극빈층인 북한인민들이 반발심으로 부자들 사업체를 약탈.방화, 이에 기득권과 수구보수가 합작해 관재대모를 하게되고, 이에질세라 쇠파이프 등을 동원해 보수를 아작 내는등, 여지껏 보지 못한 환상의 시추레이션이 펼쳐지겠죠.
이렇듯 설령 가능하더라도 후폭풍이 큰것으로 현제 남남갈등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소요사태가 발생되 도루묵 통일인 것입니다.
다만 다음 정권이 민주인사인 정부로 바뀌면 가능성이 있겠습니다만, 민주참여정부시절에도 격한 연평도발이 발생했으니, 평화의 남북화합일지라도 단기간의 흡수통일은 이 또한 망상입니다.
 

최근 한반도 비무장지대(DMZ) 지뢰폭발사건이후 한반도 주변정세가 급변하는등 아이러니가 생기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방부에선 북한군이 DMZ에 침입하여 지뢰를 매설해 벌여진 사건이라 단정하고,
휴전선에 대형 확성기를 설치해 북한당국을 비방하고 대내외적인 공세를 펴며 압박했습니다.
이에 북한은 비열한 모략극과 공세를 중단하라며 이런 식으로 물리력을 동원해 북진까지하려든다면 무자비한 응징만이 있을것이라며, 마치 쐬기라도박듯이 준전시 비상사태를 발동하고 휴전선 인근.후방에 단.장거리포를 대거포진하고 핵잠까지 포함한 50여척 잠수함도 포진, 비상대기를 하는등, 이로 인해 한반도 전시위험 사태를 방불케 했습니다.

 

한편 중국은 북한군의 비상.군사행동을 앞두고, 중국군을 북한 접경지역에 탱크-장갑차를 집결하고,
외교당국자 5명을 극비로 한국靑 방문해 물밑 접촉하는등, 한반도 정세에 관여했습니다.
이미 중국군은 작년 10월 동북 3성에서 한반도 유사시 투입하는 기동주력 부대를 동원해 북한의 급변에 대비한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했습니다.
당시 '연합행동-2014E'라는 작전명을 붙인 훈련은 선양(瀋陽) 군구 주관으로 제39집단군과 공군을 주력으로 각종 군종과 병종 부대 2만명이 참가했으며,
앞서 39집단군은 2013년 12월 백두산 인근에서 동계훈련을 했고, 작년 4월에는 실전 능력과 신속배치 기동력을 강화하려는 훈련도 했습니다.
(참고글 ; http://cafe.daum.net/sisa-1/mvOx/746 , http://media.daum.net/foreign/others/newsview?newsid=20150823172208694)

 

이렇듯 전쟁으로 북을 얻을 수 있다 생각한다면 천하바보입니다. 급변사태로 한반도에 전쟁이 나고, 북이 전쟁에 승산이 없고 불리하다 싶으면 공산당은 조선을(북한땅) 중국에 받치겠다는 각오까지 하고 중국개입을 긴급히 요청할 것이며, 중국은 이미 준비한대로 남한 역공과 전후 수습에 전격 나설 것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북한은 중국의 막대한 무상원조 외 많은 차관이 있습니다.(중국의 대북무상원조만 보더라도 대한민국 대북원조는 애들 껌값에 불과하다 합니다.)
경제특구만하더라도 중국사업체에 많은 부동산.땅(자원이 매설돼있는 막대한 토지도) 자체를 내주어 돈과 맞바꾼지 오래인 실정입니다.
하여 유사시 중국은 북한에 투자한 경제 및 차관회수 명분으로 재산권 행사 차 반드시 진군을 합니다.

 

그러면서 중국이 한편으론 외교당국자 5명을 극비로 한국靑 방문해 물밑 접촉을 하고, 2015년 8월 30일 미 백악관 라이스보좌관과 북한문제를 논의하며, 미국이 확전을 피하기 위해 북한을 중국과 분할 통치하는 방안에 응대한 것은 흥미로운 일이며, 중국의 복잡 다난한 속내를 엿볼수있습니다.
(참고글 ; 푸틴.. "미국이 시베리아를 빼앗으려 해"  http://cafe.daum.net/revelation1/ImMq/4114
미국의 한반도 플렌 http://cafe.daum.net/revelation1/ImMq/4115 )
작년에 한중 정상회담서 “북한 동북4성 편입 생각있나” 朴대통령 질문에 中시진핑 부인 “南주도 통일 지지” 했습니다만, 이러한 환담을 이제 중국이 지킬 필요가 없음은, 朴대통령 스스로 이질적인 대내외 행보로 파톤이 났기 때문입니다.
최근 중국의 오래간만의 열병식에 대한민국 박대통령이 중국의 초대에 응하고 박통이 중수석에 한반도 평화통일을 예기했습니다.
그러다 이후 한미외교 행보에서는 유사시 전쟁도 구사할수있는 흡수통일을 예기하고 다닙니다.
즉 보수층을 위시하며 전쟁도 불사하는 흡수통일 구상하다 중국에 평화를 예기했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빈말임은 그 이후 다시 보수적 흡수통일 구상인 것입니다.
그럼 그렇지 하며 주변 열강은 한반도에 어떤 부담감을 갖을 필요 없이 그들의 이로운대로 판도를 판단할 수도 있게 됐으니,
장차 제3차대전 아마겟돈의 서막이 IS에 의하여뿐아니라 미국의 야욕 혹은 한반도 급변사태로 일어날수도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전쟁시 설령 대한민국이 유엔연합군의 도움으로 어찌어찌해서 전쟁승리를 한다해도 돌아오는 것은 6.25때보다 더 처절한 공멸같은 폐허 속의 헛된 승리이며, 그로 인해 이익을 보는 것은 미.중.일.러 등 주변 강국으로서 이들에게 전쟁패해복구에 막대한 차관과 지원품을 받아야할것이며 남는 것은 빚더미입니다.
북한정권에 핵포기만 시킬수있다면 북한체제를 붕괴시킬수있다는 생각이 한국 지성인에게도 있습니다만, 이 또한 모를 가변성이 있습니다.
북한이 핵포기를 하되 태국과 버마처럼 경제는 개방하되 군사독재 장기집권을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리하게되면 한국 또한 신유신독재가 도사리는 마당에 한.미는 북한에 더이상 외교간섭을 할수없게되며,
중국도 미국에게 한반도 정세에 더이상 신경을 끄라고 종용할것입니다.

 

현제 미국은 암암리에 동북아경제권을 확보하기 위해 시베리아와 만주를 러시아로 분리독립 시키려고 계획 중이며, 중국의 개입을 무마하기 위해 북한땅을 중국에 내주는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만 속내는 따로 있습니다.
그리한 후 중국에 편입된 북한지역을 중심으로 북한자치구(조선인이라 불리는 북한인민) + 간도(조선족과 중국에 이미 넘어온 조선인) 독립운동을 자극하고 그와 연대하여 소수민족 독립운동을 지원해 중국을 흔들겠다는 속셈입니다.
중국이 북한에 긴밀한 외교 외에 다변화적 외교를 하고 있음은 조선인은 신장.위구르족보다 더 골치 아픈 소수민족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0년전 유엔이 북한에 안보리 경제제재 조치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비공식으로 북한과 교역을 대폭 확대하며 무상원조까지 해주었고, 북한에 나진선봉 등 경제특구를 세워 주었지만, 중국기업인이 노무(급료)를 밀리면 장비를 압류하기도 한다 합니다.
그리고 중국 첩보원이 발각되면 가차없이 처단하며, 최근 친중 고위간부 장성택 숙청으로 북중관계가 약간 서먹해지기도 했습니다.
조선인 성격만 봐도 다소 호전적이니 대한민국 민족주의자의 간도회복 염원은 현제 구상만 있을뿐 실천.실현성은 부족하여 공염불에 불과하겠지만,
조선인이(북한) 한다면 기회를 엿봐 할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중국사람의 뇌리에 존재하기도한다합니다.

 

마무리하며, 서두의 남북통일 논단에서, 통일은 단계적으로 하여,
우선 상호 체제를 인정한 상태로 조건부 왕래하며 교역.교류하는 '연방제' 통일을 구상해야할것이며,
이것이라도 실현 가능하다면 한민족의 큰 과업 달성이라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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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을 보니, 김근태선생님이 그립습니다.

민주당이 살려면 고노무현을 넘어 김근태정신을 이어받아야..
 

간만에 게시글을 쓰면서, 영화 변호인에 대한 잔잔한 소회를 적어봅니다.
고노무현선생이 한때 속물 변호사였다가, 개념 변호사로 변모했다는데, 거기까지는 정말 치하할만하며 자랑거리입니다.
그리고 그 후 대통령이 되기전 NGO활동 및 정치초선 때의 행보도 대략 무난히 잘했다고 할수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일엔 절차와 순서가 있듯이 정치판에서 절차탁마해 나가야 하는데
정치판에서 자신의 정치.대선순서를 좀 미리 앞서 확보함으로써, 기어이는 다음 17대 대선에서 수구에게 정권을 뺏기는 참극이 이어졌습니다.
당시 국민 중에 정치변화라는 열망이 있음은, 야권인 김대중정부가 먼가 크게 변혁할 줄 알았는데 좀 그런듯.아닌듯했음이었는데,
그것을 노무현 선본은 오판하여 젊은 지도자가 필요한 것으로 착각해, 어찌어찌하여 정치판도를 바꾸었으며, 그러면 정말 젊은 정치모습을 보여줘야 했는데, 김대중정부와 마찬가지로 변혁한듯 안한듯 하였습니다.
 

16대 대선정국 당시 김근태선생이 자신을 산화하듯 대권을 노무현선생에게 양보함으로써, 노무현바람이 일어 노무현이 대권을 이어 받았는데,
만일 정치선배인 김근태선생의 호의를 고사하고 대권주자를 김근태선생으로 통일해 밀어주었다면, 더욱 아름다운 야권의 정치 모습이었을 것이며, 야권이 춘추정국 속의 승자이니 이런 식의 보수층의 빙정거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15대 김대중선생 다음으로, 16대 대선에는 김근태선생이 대통령의 대를 이어나감으로, 다음 17대 대선에는 노무현선생이 압도적인 당선, 그 다음 현18대 대선에는 문재인의원 무난히 당선 등으로, 모르긴 몰라도 지난 과거처럼 17대 대선에 수구정권인 이명박이 당선된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김근태선생은 계속 제야에서 대통령이 되는 모습을 본 상태에서 편히 눈을 감았을 것이며, 김대중선생도 그리하였을 것이고,
더욱이 노무현선생은 지금처럼 고인이 아닌 정계에 은퇴했다 해도 NGO 등에 남아 후학을 양성, 오래 살며 편한 노년을 맞았을 것입니다.
 

이제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니 과거는 그렇다 치고, 18대 대선에는 정치야권이 더욱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영화 변호인에서 송강호 주연은 영화를 통해, 노무현의 모습뿐만이 아니라
당시 사회상과 부림사건이라는 공안정국 속에서 한변호사의 사투와 민초의 고초를 보여주며, 언젠가는 정의는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했듯이, 노짱.노짱하려 영화를 만든것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지난 17대 지방총선에서 친노인사들이 정치계에 대거 입문은 고사하고 고전을 면치 못했듯이, 민심은 냉정하였으며, 허면 18대 대선에는 대권주자가 리틀노무현이라는 문재인보다 정치9단에 민주당의 정치노장격인 이해찬, 박지원 등을 전면에 내세워 대선을 치렀더라면 좀 승산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사회경륜은 있으나 정치경륜은 초선을 막 지난듯한 문재인을 내세움으로써, 야권 정치판에서 춘추정국시대를 또다시 야기하는 미숙함을 비추었습니다.
정치에서도 정치전문가가 나서야한다는것이, 사회의 순리요 진리일진대,
이러한 순리를 역행하니 민초들의 표심도 사분오열 분산되었으며, 결국 정치모레배에 기득권층으로 단결된? 수구보수층이 어부지리로 정권을 획득하기에 이릅니다.
 

여기서 잠깐, 왜 친노프레임이 정치판의 만능통치약이 아닌지 살펴보지요.
고노무현선생이 어느덧 대통령이 되고난 이후 지난 구태 수구정권에 비해 고김대중선생을 이어 정치.경제.민생 민주화 및 선진화를 이끌었으나
한편으론 딱히 그렇지 않은 안타까운 행보도 보였습니다.
경제민주화냐 경제발달가속화냐에 대해 지난 이명박정권에서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 하듯 그리 정치했습니다.
때론 공감은 안가면서도 이해는 되나, 공안정치의 한 축에 여전히 함께했다는것은 용서할수없는 민주정부의 안타까운 단면입니다.
한미에프티에이의 민중의 반대투쟁에 경찰이 강경진압으로 대처해, 몇 명의 농민이 맞아 죽었고(전용철 열사, 홍덕표 열사)
2006년경 하중근 포항건설노조원이 포항 형산강 로터리 집회에서 경찰폭력으로 뇌 손상 당해 운명하셨고, 2007년경 이근재 노점노동자가 고양시의 노점상 폭력단속에 항거하다 시신이 되어 돌아오는 등,
이외에 투쟁하다 투신, 음독, 분신으로 자결한 사람이 수십 명이 넘습니다.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서해안 새만금갯벌을 죽이어 해민의 생업에 타격을 입히었고, 해민의 생업대안을 찾지못한체 민초를 방치한점.
세종시개발과 한미에프티에이, 이라크파병 문제에 대해 국민과 대화를 통해 해결했어야하는데, 그들만의 잣대를 미리 그어놓고, 소통부제로 고압통치적인 리그를 행세하다, 종국에는 한나라당과의 정치연정까지 하는 막장에 이릅니다.
 

한편 당시 열린우리당 김근태의원은 한미에프티에이 반대를 하여, 여의도 국회 점거 농성을 하고 단식도 하며 투쟁을 이끌면서, 당지도부가 옳은 정책은 적극 지지했고, 틀린 정책은 비판해 거부하며, 아닌 것은 아님을 보여주면서 정의를 선도하셨습니다.
(2007년 범제야 FTA 전선; 불가피론-강기정.김부겸.문재인.박영선.이해찬.유시민.전병헌.정세균.정동영.한명숙.  신중론-정운찬.문국현
  FTA반대-김근태.김두관.박원순.이인영.이종걸.임종인.정봉주.정청래.천정배.최재천.최문순.홍미영../ 이후 반성하고 FTA 반대에 합류; 김정길.문재인.박영선.박지원.유시민.정세균.정동영 등 총 60여명)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1769901

 

그럼 지금의 친노 리틀노무현인 문재인과 친문재인파는
과거 노무현의 과오를 뛰어넘는 자세를 갖추었는지가 관건인데, 안타깝게도 딱히 그리 못하고 있습니다.
친문이 김한길파의 문재인 비난공세로 민주당 대표에서 문재인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는 등 하던데, 이러한 패배주의는 참 한심하지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 민주당 이인영의원이 아프리카 정치수다방 망치부인과의 인터뷰 때(2013년 11월 4일)
문재인이 한길이에게 밀려 딱히 그리된건아니고 민주당내 변화의 한 시도로 그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한길파의 구태연함을 질타하는 것은 좋은데, 그 이상을 할수있는 대안을 보여주면서 해야 하는데, 18대 대선부정선거에 있어 처음에는 총체적 부정선거라기보다 국정원 대선개입을 집중 언급하며 좀 문제가 있다고 본다 했다가, 요즘에는 총체적 부정선거라고 본다고 하면서도, 18대 대선이 선관위 중앙서버 조작을 하는 등의 개표조작.개표부정이 있었음은 애써 부정하면서, 국정원, 군.경 대선개입만을 파해 치며 언급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18대 대선부정선거 규탄 시국대회의 조직력이 그리 크지도 않는 등, 김한길파와 마찬가지로 행동은 별무신통입니다.
 

개인적인 사례지만 작년 가을에 친문재인이 주류를 이루는 팩트티브 생방시 제가 개표부정 등 총체적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친문들도 정신차려야한다고 주장을 하니, 아예 방송시청 못하게 블랙을 걸어버리더군요.
그리고 개표부정을 주장하는 민주시민들을 수개표쟁이라 매도하며 강퇴를 자행하면서
자기 방송은 민주적인 범민주진보방송이라 하고 참 어처구니가 아닐수없습니다. (http://cafe.daum.net/facttv/GUlg/1665)

 

민주당원내에서 현 민주당 지도부 사퇴 및 비대위 구성하자는 목소리도 있던데,
혹여 김한길 사퇴하여 비대위 지도부가 문재인의원이 아니길 바랍니다.
문의원이 김한길만큼은 아니겠지만 지난 한명숙.정세균 체제를 통해, 그들 또한 한계가 있는 지도층임이 확인됐습니다.
현 친문들은 전부는 아니지만 패배주의에서 벋어나야 할것이며, 이제 민주당은
일신우일신해 김근태선생 같은 진정성 있는 행보와 강단을 좀 갖추어야할것입니다.

감사합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517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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