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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주택, 공간에 대한 변혁적 상상력의 시작?

 

한양주택, 공간에 대한 변혁적 상상력의 시작?

_최준영 / 문화연대 문화개혁센터 chobari@gmail.com



뒤르켐은 “공간이 사회마다 다르며 또 이질적”이라고 했다. 공간이 사회적 관계에 의해 파생된 것이라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는 ‘주니족’이라는 인디언 부족의 예를 든다. 뒤르켐에 따르면, ‘주니족’은 공간을 동서남북과 천정, 천저, 중앙 등 7개 지역으로 나누고 그들의 사회적 관계와 관련한 모든 것들을 7개 공간에 포함시키고 있다. 바람과 공기는 북쪽, 물과 봄은 서쪽과 같은 식으로. 여기에는 새나 식물, 혹은 생명의 에너지도 포함되는데, 즉 북쪽은 펠리컨과 두루미, 파괴의 지역이라는 식이다. ‘주니족’에게 공간은 현실의 경계와 상관없이 무한하게 확장 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뒤르켐이 말한 공간에 대한 사회적 관계의 우위가 ‘2006년 서울’이라는 도시공간에서는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가. 서울은 공간에 대한 미학적 상상력이 발휘되는 공간이 아니다. 서울이라는 도시공간은 한국 사회의 자본주의적 관계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특히 ‘토건자본주의’라고도 말해지는, 개발자본과 관의 결탁을 통한 이윤창출의 메커니즘은 이명박 시장의 뉴타운 사업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 박정희식 개발주의의 재현으로서의 ‘신개발주의’로. 그렇다면 ‘자본주의적 도시공간’ 속에서 그 구조적 모순에 대한 각성 혹은 계급실천은 불가능한 것인가. 우리는 한양주택이라는 공간과 이를 둘러싼 싸움을 통해 공간에 대한 미학적, 대안적 상상력이 가능함을 발견할 수 있다.


한양주택은 어떠한 곳인가. 은평구 진관내동 440번지 도심자락의 끝 통일로 입구, 북한의 탱크를 저지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방호벽’보다도 북쪽에 한양주택 220여 가구가 들어서 있다. 똑같은 모양으로 생긴 단층 양옥단지인 한양주택은 1978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만들어졌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이후 남북관계 속에서, 남한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주기 위해 북의 대표단이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경로에다 ‘보여주기식’ 주택단지를 조성한 것이다. 정치적 목적으로 탄생하게 된 한양주택단지를 정작 지금과 같이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주거단지로 조성한 것은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한양주택으로 강제이주된 주민들은, 박정희식 근대화의 상징이라고도 말해지는 똑같은 지붕의 양옥집들에 개성을 불어넣어 ‘사람이 사는 동네’로 꾸몄다. 그리고 그 결과 1996년에는 서울시가 선정한 제1호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덩그러니 존재하던 시멘트 건물이 부족하나마 많은 사람들이 ‘생태주거단지’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 정도의 공간으로 변모하였다.


그런데 2003년, 서울시와 SH공사가 한양주택 지역을 포함하는 은평뉴타운 개발계획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그 이후로 한양주택 주민들은 재개발에 반대하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서울시와 SH공사에 대한 진정과 항의, 100일이 넘게 계속되고 있는 1인 시위와 집회 등. 이명박식 ‘신개발주의’에 맞서 주민들은 자신들의 삶의 공간을 지켜내기 위해 지속적으로 싸우고 있다. 중요한 점은 이 과정에서 주민들 간의 커뮤니티가 강화되고 있으며, 또한 주민들이 개발을 통한 자본의 이윤창출 메커니즘을 자발적으로 체득하고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생산관계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시민사회의 다양한 성격과 잠재력이 한양주택 재개발반대 싸움으로 점차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양주택 싸움에 동참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들 간의 네트워크를 통해 한양주택 자체의 문제를 넘어 확장된 시민사회 이슈에 대해 고민하고 발언하는 등 정치적으로 그 관심과 외연을 확장하고 있기도 하다.


자본주의 하 도시공간은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모순을 반영하는 형태로 조직된다. 그리고 그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의식 또한 ‘자본주의적으로’ 조직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도시공간에 대한 문제제기를 통해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적, 미학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는 없을까? 한양주택 싸움은 단순히 재개발과 연관된 싸움을 넘어서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한양주택에서 새로운 방식의 비자본주의적 삶을 상상해내는 것이다. 새로운 사회적 연대를 실천하고, 한국 사회에서의 민주적인 사회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회운동 차원의 기획이 요구된다.

 

* 노동자의 힘 기관지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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