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더위에 쫓기다가 지쳐서 집에 들어와

다시 밤 출근 준비를 한다.

 

그러다가 아까 쓴 블러그를 보면서 몇가지 생각을 더 해보았다.

 

제가 어렸을때

아버지는 언제나 농사일을 무슨 비법 전수하듯이 나에게 시켰더랬다.

누나는 여자라서 열외고 남동생은 막내라서 열외고

그러다 보니 남는 건 언제나 나....

 

여튼 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그 수많은 농사짓는 법은

이미 대다수는 잃어버렸다...ㅎㅎ

 

내가 전문농사꾼도 아닌 다음에야 부득불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가 하는 생각과

하기 싫은 일들을 억지로 하다보면 나타나는 일시적 건망증때문이리라.....ㅎㅎ

 

여튼

그 모든 기억들 중에서

영원히 남는 것들 중에 한가지가

바로 땅을 갈아엎는 법이다.

 

우선 가을 농사가 끝나면 한차례 깊게 갈아엎어두기는 하지만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되는 초봄에는

그동안 모아둔 두엄(거름)을 땅에다 흩뿌리고는

그 땅을 깊게 갈아주면 되는 것이다...

 

이리 쉬운 일을 아버지는 마치 무슨 비장의 한수가 있는 무사처럼

나름 진지하게 말씀하셨었다.

당시가 아마 내가 초등학교 5학년때일테고

당시 막 경운기를 배울때였던 것 같다,

 

아버지왈

"땅을 갈아 엎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우선 삽으로 갈아 엎는 방법은 온 몸을 충분히 써야 한단다.

지난 농사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도록

그리고 땅이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릴 정도로 깊게 갈아엎어야 올해 농사가 잘된단다.

그 요령은 온 몸에 힘을 주고 삽을 깊게 땅에 박고 온 몸으로 뒤짚는 건데

잘 뒤짚어졌는지는 

일이 다 끝나고 알 수 있단다.

 

뭐냐면

뼈꼴이 빠지는 것 같이 아파야 제대로 일한거란다.

단순히 어깨가 걸린다거나 손발이 저린 것은 힘을 잘 못쓴 거고

그러면 땅도 금새 그 티를 내서 농사를 망친단다.

그러니 일끝나고 온몸의 뼈들이 빠질 듯 아파올 정도는 되어야 제대로 일한 거란다..."

 

"...?..."

 

난 솔직히 속으로 아버지 욕을 무지막지하게 했다.

이젠 일 시켜먹는 것도 도사급이라고

별에별 이유를 다 가져다가 붙인다고 속으로 엄청 씹었던 기억이 난다...푸하하하

 

 솔직히 그 날밤

초등5년생이던 나는 아파서 엄마 붙들고 마구마구 울었었다.

삽질이 그렇게 힘든 거란 걸 처음 알았던 날이다.

 

다음 날에는 아버지가 경운기를 가르쳐 주셨다.

그날 한 낮동안 모든 욕을 다 먹어가며 경운기를 배우고

바로 땅 갈아엎는 일을 했다.

아버지에게 무쟈게 혼나서 기운은 없었지만

그래도 경운기로 수월하게 갈아엎어지는 땅을 보면서 우와...하며 신나라 했다.

 

이렇게 쉬운 방법도 있는대

왜 어제는 무식하게 하루종일 삽질을 시켰는지

경운기를 몰며 신나라 하는 내내 아버지 욕도 신나라하며 했었다.....ㅎㅎ

 

여튼

그래서 잊지 않고 있나보다

땅갈아엎는 법을....ㅎㅎ

 

땅을 갈아 엎을때는 갈아 엎기전에 거름을 충분히 흩부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거름들이 땅속 깊숙히 들어가도록 갈아 엎어주어야 한다.

또한 너무 낮게 갈아엎으면

언제나 지표면의 흙만 혹사를 당해서 땅이 겉도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어서

언제나 깊게 갈아야 하는 것이다.

 

삽질로 땅을 갈아엎는 것은 그야말로 중노동이다

따라서 경운기나 요즘은 트랙터로 갈아 엎는 것이 현실적인 듯 싶다.

다만 요즘 농촌에 많이 보급되고 있는 만능기(?)는 너무 가볍다

그래서 깊게 갈아엎어주기 힘들다.

만능이라는 것이 언제나 그렇듯 실없이 기능만 많은 측면이 있고

모든 기능이 조금씩 부족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조금 구식처럼 느껴지지만

우리 시골집은 여전히 한국형 파워레인져 경운기를 애용한다....물론 나두...크크크

 

굳이

땅갈아 엎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아버지의 말처럼

 

무엇인가를 바꿀때

그것도 그 터전을 밑바탕 삼아 새로운 것들로 거듭나고자 할때는

단순한 몸의 불편함이 아니라

뼈가 빠지는 고통들이 필요한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자꾸 자신의 것....자신의 스타일들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어느새 너무 얕은 방식들로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싶기 때문이다.

 

다음을 위해서

뼈꼴빠지도록 전체를 뒤짚어 보는 일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들을 걸고 재구성해 보는 일이

어쩜 우리들이 준비하는 새로운 삶의 농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에 보태어서

지난 과거의 흔적을 가지고서는

실제 앞으로 나아가기 보다는

뒤로 향해지는 향수 혹은 머뭇거림에

우리들의 시공간들이 저당잡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반성들도 든다는 것이다...

 

여튼

땅을 제대로 갈아보자.....

(아버지 왈 

"너같은 놈 철들려면 수백년은 흘러야 할거야...^^;;................"

 

그래서 그런가 아직도 철이라고는 전혀 없는 듯 이리저리 튕겨지면서 지낸다.

아버지에겐 언제나 그렇지만 미안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고

속 마음은 이놈의 노인네 또 어떤 걸 가지고 나를 괴롭히려나 기대도 된다....ㅎ

뭐 아버진 여전히 나를 괴롭히는 재미로 사시는 듯 하다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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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0 18:34 2009/07/10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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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pe7  | 2009/07/11 02:34
만능기ㅋㅋ 우리집에선 관리기라고 부르는데, 아세아 제품ㅋㅋ 우리아버지가 저한테 삽질, 낫질 가르쳐주시면서, 느그 할아버지가 동네에서 삽, 낫 잘 쓰기로 유명했다, 며 은근히 압박하셨는데ㅎㅎ 뼈꼴빠지는 아픔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말...여전히 머리로만, 마음으로만 바라고 있는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