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개인 블러그에 공부한 내용들을 올리고 있다.

그렇게 책과의 인연을 가지고 나름 허접하게라도 잊지 않으려고 올리다가

아무래도 이 번 고민 ...?....정리는 공룡식구들과 함께 이야기 해볼 필요가 있을 듯 해서

다소 무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공룡에 올린다.

다들 읽어 보시고 약간의 코멘트라도 ....^^;;...ㅎㅎ

 

글은 지난 나의 활동들에 대한 반성과 당시에 가졌던 고민들을 다시 다잡아 보는 의미가 있다.

당시에 많은 고민들을 했었다 하더라도

이후 딱히 나의 입장과 조건들이 그 고민들을 밀고나갈 만한 상황이 아니어서

마음속에 묻어 두었던 것인데

이제 다시 공간과 장소 혹은 그 속에서의 우리들의 활동들을 고민하면서

스멀스멀 되살아나고 있다.

다만 이번에는 당시처럼 길을 잃고 헤매지는 않으리라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가져본다.

아니 전망이 아니라 공룡들이 있기에

나름 자신을 가져 본다는 의미에서......ㅎㅎ

 

그냥 지금 드는 고민들을 정리하고'우리들 활동들에 대한 충분한 검토들을 하기 위한

수다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리라 생각한다...ㅎㅎ

 

서두가 길면 글은 별볼일 없다.

아마도 이 글은 별볼일 없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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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하나의 시선 

 

1. 시작....사창동으로의 이전

 

내가 일하는 사람들 사무국장을 막 시작하였을때는

사무실이 복대시장에 있었다.

 

당시는 지역사업으로 어머님들을 위한 성인한글학교(..문해교육..)가 있었지만

핵심은 청년회 활동이었다.

 

청주지역의 청년들의 모임..?...이라는 타이틀이 떡하니 단체 이름 앞에 붙어 있던 당시라서

여러모로 사무국장의 임무 자체가 청년회 회원행사 위주로 생각되었을 때다.

 

그렇게 한 일년을 보내다가

청년회라는 것의 한계들을 자각하면서

새로운 탈바꿈들을 궁리하였을때

이0희 선배의 제안과 사무실이 새로운 곳으로 이전하여야 하는 상황으로 인하여

다른 형식의 지역운동들을 고민하였고

그결과 사창동으로의 이전과 빈곤 아동/청소년들을 대상으로하는 공부방을 진행하는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던 듯 싶다.

그렇게 우리는 사창동으로 찾아들어갔고

그곳에서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2. 아이들을 만나다.

 

우선 사무실을 이전한 후에 공부방을 만들고 아 !! 이제 시작이군 했지만

아이들은 없었다....ㅎㅎ

그래서 사창동 주변을 돌아다니며 포스터도 붙이고

주변 상가의 아주머니들도 만나고...뭐 그렇게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아이들을 만나고 수업을 시작했다.

당시에 우리 지역에서는 공부방이라는 것이 없었던 시절이라서 다소 막막하기만 했지만

나름 회원들을 중심으로 가슴벅차게 공부방을 시작했고

그렇게 아이들과 나의 질긴 인연...?...

나의 운동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들이 이루어질 단초들이 생기기 시작한 듯 싶다.

 

당시까지만 해도 나는 얼치기 운동권이었다.

변변이 아니 제대로 학생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노동운동 판에 뛰어들어가는 것도 아닌

아니 당시 막 꽃피기 시작한 근사한(?) 시민단체에 발을 들이는 것도 아닌

아직도 맑스, 반자본주의, 일종의 레닌주의(?), 진보정당운동등에 걸쳐져 있는 상태였던 것 같다.

여튼 얼치기 운동권으로써 살아가던 내가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면서 나름 고민들도 많이 들고 생각할 것들

특히, 교육이라는 낯선 틀거리에 대한 고민들을 하면서

점차로 운동이라는 것을 삶의 살아가는 것과 함께 고민했었다(?)고 말하기 쑥스럽지만

그랬었던 것 같다.

 

3. 마을을 돌아다니다.

아이들과 근 1-2년을 싸움반 놀이반 지내다가

점차로 자각하게 된것이 아이들이 살아가는 마을이라는 것에 관심들이 생겼던 것 같다.

아무리 애걸복걸해도 잘 변하지 않는 아이들의 상황들이

단순히 공부방이 잘된다고 해서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발전하면서

아이들이 살아가는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마을에 대한 근본적인 나만의

아니 우리 공부방의 시각들이 있어야 하고

그런 마을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이 들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저 혼자만이 아닌 당시 교육에 함게 했던 회원들의 다수가...ㅎㅎ)

 

그래서

우리는 마을로 나가기로 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학습발표회도 마을 놀이터에서 진행하고

학부모님들도 공부방으로 초대하기 보다는 집으로 찾아가서 만나고 이야기하는 것

마을의 작은 놀이터에서

야외영화제도 진행하면서 마을을 시끄럽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시큰둥하고 아니 왠지 불량청소년들을 대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시던 주민들에게

나름 우리들의 활동들이 유의미하다는 것을 마을에 알리고

마을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서의 교육/운동을 실현하고자 하는 욕망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4. 마을에서 놀기

당시에 우리들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아이들과 교사회원들

그리고 무엇인가 놀꺼리를 분주히 찾던 마음들(?)...정도

 

처음에는 막막했었습니다.

놀이터를 빌려서 야외영화제를 하려고 해도

철딱서니 없게도 시청 녹지과 찾아가서 사용승인을 받는 것 정도가 우리가 아는 것의

전부였던 듯 싶습니다.

사용 승인이야 그렇게 받더라도

그 놀이터를 점유하고 있는 마을 어르신들, 특히 노인회장님과의 관계가 우선이라는 사실도 몰랐고

또 그렇게 노인화장님과 문제가 발생하였을때 옳고 그름이 아닌

그저 사람의 도리로써 문제를 풀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던 시절이랄까 ?...ㅎㅎ

 

 (...^^;;....이게 뭔 그림이냐 싶군...크크크...^^;;...그림연습해야겠궁...ㅎㅎ)

 

여튼 이리저리 사고치고 다니더라도

마을을 돌아다니면 무엇인가가 이루어 질거라는 단순한 믿음과 열정(?) 만으로

그야말로 왕성하게 돌아다녔던 것 갔습니다.

 

 단체 총회는 무조건 동사무소  빌려서 진행하고

매달 놀이터에서 야외영화제도 하고

동네의 작은 식당들은 우리의 식당 겸 뒷풀이 장소겸 아지트 처럼 이용하고

더 나아가서는 단체의 후원회원으로 만들기도 하고

아이들과 동네 돌아다니며 정기적으로 마을 대청소도 진행하고

건물옥상에서 진행하던 텃밭가꾸기도 마을 공터를 찾아서 진행하기도 하고

 

동네의 초등학교 운동장은 주민들과의 운동회..?...마을잔치의 장소로 이용하고

그렇게 점차로 주민들에게 인정받아 감에 따라서 사창동 그 작은 지역이

마치 우리들의 오래된 고향이라도 된듯 돌아다녔던 것 같습니다.

 

5. 마을에서 헤매다.

그렇게 몇년동안 즐겁게 힘들게 어떻하든 동네에서 살아가고자 노력했고

'또 그런 활동들이 일상적인 활동들로 자리잡아 가면서

우리들은 헤매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서로에게는 일의 과부하가 걸린듯 반성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한 듯 싶습니다.

 

이런 활동들이 궁극적으로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지를 찾지 못했었다고나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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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3 16:54 2009/09/03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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