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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9/12
    2007/09/12-NK SOC
    슈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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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7/09/02
    2007/09/02(2)
    슈웅

2007/09/12-NK SOC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평화체제 의제가 본격적으로 나오고 있다.

정치적 결단 뒤에는 항상 경제가 따라 가는 것이 자본주의 상식이다 보니

평화라는 표상과 상징성 밑에는 경제교류에 대한 기대가 더욱 크게 포진해있다.

 

정부차원의 경제 교류는 사회간접자본(SOC:Social Overhead Capital)이란 카테고리로

북측과의 교류를 시작하려한다.

 

=============================

 

남북 정부차원의 경제공동체 형성에 1순위 비중으로 SOC 설정하고 있음.

제조업은 민간기업 중심으로 맡겨둘 생각인 듯.

 

1. 에너지 : 남측 무상지원+6자회담 참가국 공동 개발

- 현황 : 석탄69%, 수력 19%, 유류 7%, 기타5%,

 

2. 교통 : 남한 차관으로 원자재 재공+북측 노동력

- TSR, TCR과 TKR

- 한반도 간선도로 네트워크 :AH(아시아 하이웨이), 1 평양-신의주, 2 원산-하산

- 남포, 나진항 개보수

- 순안공항, 백두산 삼지연공항 개보수

 

3. 통신

 - 북한은 정보통신 관련 관심이 높음. 소프트웨어 개발 등에 성과있음.

 

==> 경공업 등 산업연관효과 고려한 부문 우선 추진

==> 평양, 남포 지역과 개성 우선

==> 북한경제력 자생력 회복에 기여

  

(정형곤(2007), "남북경제공동체 형성을 위한 북한 SOC 개발 및 기대효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본격적인 정부차원의 경제 교류를 위한 제도 점검도 슬슬 시작될 듯 한데,

기존 남북경협이나 개성공단 관련 파편적인 제도를 넘어서 본격적인 틀을 갖출 듯 하다.

 

남북정상회담에서 평화체제 선언의 수준에 따라 이 제도의 수준도 결정될 것 같긴하다.

이런 계획들을  어떻게 봐야할까? 그리고 아무리 NGO 스러운 법제도 개입이라 해도 한반도의 새로운 전환기를 예감하면서는 이들 법이 제정되는 초기에 어떤 입장과 대안을 만들어야 할 듯하다.

그저 드는 생각은 남북 인민들이 모든 것의 중심에 있어야 하고 이들을 위한 교류와 정책들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 밖에 없다.

그렇지만 대안을 제시하고 새로운 사회 구상에 대해 특히 남북문제와 교류에 있어서는 한 발 앞서야될 것이란 생각이다. 그래도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는 하나의 기회로 삼기에는 너무 버거운 주제인가?

 

KIEP에서 제시한 위 보고서에도 보면 모든 교류가 자본 집약, 효율성을 근거로 하고 있다.

보고서에는 인민들을 위한 사회기반시설의 복원을 주장하고 있지만서도 사실상 이런 기반시설을 가장 필요하는 것은 특권층으로 분류되는 평양 시민이 아니라 지방의 그야말로 깡촌 주민들이다.

결국 북한 내 빈부 격차를 더욱 확대하는 꼴 밖에는 안될텐데,

그리고 이런 정부차원의 개발계획이 인민에게는 꼴랑 한국의 10/1 수준의 임금 받으면서 노동력 제공하는 것 정도일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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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2

0.

집에 있는 아이 털을 몽땅 깎아버렸더니, 병원에 찾으러 갔을 때 알아보지도 못했다. 모발이란게 사람에게든 짐승에게든 중요하긴 한가보다. 그렇게도 짓어대더니 털 깎고 부터는 좀 덜하다. 더웠던 게다. 언어로 의사소통하지 못하는 개체와의 소통은 어떤 형태로든 가능하지만 시간의 지연은 어쩔 수 없다. 

 

0.

가을들어서면서 식욕이 없다가 갑자기 오늘은 먹을 것만 생각난다. 뭔가 허한게다.

뭔가 단계적으로 쌓아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 잊어버린 것 같다.

하루벌어 먹고사는 세상이라지만, 스키마도 그렇게 만들어져가는건지.

정신적 스트레스, 환경적 스트레스와 긴장...내가 설정하지 않은 긴장은 피해오면서 살았다.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인가.

지금 문제의 핵심은 계기를 만들 수 있냐는 거다.

헉...정말 어렵다.

 

0.

태왕사신기...언론에서 떠드는 만큼 슬쩍 관심이 쏠린다.

사극 판타지를 무쟈게 좋아하는지라 이끌림을 거부하지 못했다.

확실히...CG는 죽이더라. 스토리 라인이야 더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것 같고,

문소리...액션 연기는 약간 어설퍼도 그나마 가장 카리스마 있는 캐스팅인듯.

근데, 왠 7일간 홍수....ㅡㅡ;;; 아무리 신화의 모티브와 전개가 세계적으로 비슷하다해도 너무한다 싶더라.

하늘로 돌아간 환웅, 그리고 그의 환생으로 광개토...커억....예수 재림을 한반도 땅에서는 진즉에 했다는 말인지.. 그래도 제작비 부족한 티 팍팍났던 주몽보다는 눈이 즐겁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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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0

............오히려 보는 사람이 자신의 슬픔의 메아리를 목격하게 함으로써

그 슬픔으로 인한 괴로움과 중압감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게 해준다.

어쩌면 우리가 슬플 때 우리를 가장 잘 위로해주는 것은 슬픈 책이고,

우리가 끌어안거나 사랑할 사람이 없을 때 차를 몰고 가야 할 곳은

외로운 휴게소인지도 모른다...................<여행의 기술> p.72

 

 

<에드워드 호퍼, morning-sun,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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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4

술 한잔 걸치고 함께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 맘이 관대해진다.

 

정당한가 그리고 그것이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는 접어두고

그냥 그 사람의 삶의 맥락에서 그리고 그 사람의 생각 흐름에 따라

관대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거다.

 

그러면 굳이 칼날 세워서 따질 필요성도 없어지고

문제제기도하는 방식도 훨씬 부드러워진다.

 

"있지, 좀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어."

 

대화의 기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적대는 만사를 그르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적대를 생산해내는 지점을 드러내 보는 것도 이런 훈련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면 절대 바뀔 것 같지 않은 것들도 변하기 마련이고

서로에 대한 믿음은 희망으로 발전한다.

 

아싸~~희망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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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3

겨울철쭉님의 [[SMF3일차]노동운동,정의의 무기로 부활하라] 에 관련된 글.

 

사회운동으로서 노동운동을 위치지우는 과정은 지난 역사적 프로젝트의 성패를 다시 재구성하는 현재적 노력의 결과다. 이것이 현실 운동에서 하나의 전망으로 자리잡기까지 10년이라는 정리의 과정을 거친듯 하다. 나열되는 다양한 운동들 속에 노동운동의 중심성이 이론적/현실적으로 유효한가라는 질문들, 그리고 노동운동이 나열된 다양한 운동 중 하나인가라는 도식적인 10년 전의 그 물음들도 떠오른다.

 

사회운동포럼은 사회운동으로서의 노동운동에 대한 한 단락의 정리의 자리였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겨울철쭉님이 정리를 잘 해주셨다. 핵심정리 요약본이다. 이 정리를 따라가면서 한결 더 정리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첫번째로 열린 사회운동포럼은 그 자체로 새로운 운동 방식을 구체화하기위한 초석을 다지는 자리였다. 그런 의미로 200%의 목마름으로 사람들은 모였고 120%의 만족과 희망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에게서 희망을 느끼는 것이 정말 얼마만인가. 

 

그동안 활동가들은 무너져가는 지붕의 끝자락을 밀어올리느라 다른 것은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고 무너질까 무서워 섵불리 손을 떼지도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강요당해왔다. 그 속에서 지쳐가고 떨어져나가면 그걸로 부채의식만 잔뜩 가진 찌질이가 되거나, 애초부터 그 지붕을 밀어올릴 생각이 없었던 이에겐 배재와 상처만 준 터였다. 사실 지붕은 허물어도 주춧돌과 그 토대는 아직 튼튼하게 살아있다. 이제 그 위에 새로운 지붕을 만드는 것이 현재 이 사회를 살아가는 자들이 할 일이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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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2

삐약~

새 둥지 틀다.

 

시원한 바람이 불더니 홀짝, 마음이 그 바람을 먹고서 변덕이 생겼나보다.

온 종일 비 핑계로 이불보에 등짝을 붙이고 있었다.

어느새 비는 그쳐버렸지만 게으른 관성은 등짝에 그대로 남아있네.

그냥 하루를 흘려보내는 것 같지만, 이렇듯 생산적인 뭔가를 만드는 걸로 위안을 삼아보련다.

 

손에 쥔 리모콘이 바빠지고 머리 속에 슬슬 짜증이 올라올 때 EIDF 편성표가 문뜩 떠올랐다. EBS가 나름 노림수로 배치한 듯한 마이클 무어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한참 방영중이다.



<로저와 나>로 이자를 처음 접했을때는 그냥 똘아이 기질이 있는 발랄한 감독이라 생각했다. 당시 국내 독립 다큐멘터리가 메시지의 진보성에서 한 걸음 더 나가지 못하고 있을 때라 오랜만에 시원하게 가슴이 뚫리는 느낌도 주고 말이지. 책 [멍청한 백인들]과 영화 <볼링 포 컬럼바인> <화씨 911>까지 그 신선함은 줄었지만 관객으로써 느끼는 희열은 여전했다. 현상적 사실관계만 놓고 보면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대중적 흥행과 영화제 수상을 한 독보적인 인물임에는 분명하다.

 

EIDF 방영한 <마이클 무어에 뒤집어 보기> 다큐멘터리는 그간 마이클 무어에 대한 비판과 의문들을 쏟아냈다. <로저와 나>가 국내 소개될 때 이미 팩트 왜곡과 제작 윤리 문제도 함께 전달이 되면서 국제적으로 <로저와 나> 배급 중단 성명과 호소 글들이 활동가들 사이에 흘러다녔었다. 당시에는 그저 보수진영에서 가하는 음해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더듬어서 마이클 무어가 그 이후 보여준 행적들을 보면 실망스런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마이클 무어 뒤집어 보기>의 감독이 전개하는 재조명의 각도가 다층적이긴 하지만 핵심을 가로지르지 못하고 있고, 전반적으로 마이클 무어스러운 형식의 차용이 계속 눈에 거슬렸다. 이와 유사한 마이클 무어 다시보기 류의 다큐멘터리가 적지 않다는 걸 고려해보면 특별하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그저 우익들이 마이클 무어에 자극받아서 만든 노골적인 다큐멘터리가 아니라는 것 뿐이다.  

 

그러나 여기 나온 것들 중에 유난히 눈길을 끈건 대선에 적극 개입한 마이클 무어의 모습이다. 주류 엔터테인먼트계로 편입해서 그야말로 "스타"가 되어버린 그 사람은 녹색당을 지지하다가 배신(녹색당 사람들은 이렇게 불렀다)하고 민주당으로 흘러가게된다. 이자 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민주당을 지지해온 많은 연예계 스타들이 지난 미국 대선에서 큰 발언을 하기도 했었다. 당시 핵심 쟁점은 부시 재당선을 어떻게든 막아보자는 것이었는데, 이런 측면에서 녹색당에서 민주당으로 버스를 갈아탄 마이클 무어의 변명도 정치공학적으로는 일리가 있어보이는 말이다.

 

왜? 이 자는 스스로 좌파라고 선언한 적도 없었고, 당시 대안이 될 만한 좌파 세력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정치적 행보에 그다지 책임을 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대박터뜨린 스타가 대중을 대하듯 그 정도의 쇼맨십만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번 들여다보면 지금 반한나라당 전선을 두고 술렁이는 범여권과 진보진영의 모습이 당시 미국 대선의 모습을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다. 범여권은 그렇다쳐도 얼마나 많은 진보진영의 우파들이 반한나라 전선이라는 정치공학적 이유로 버젓히 버스를 갈아타겠냐 말이다. 이미 그 조짐은 보이고 있고 12월이 가까워 질수록 본색이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하지만 진보진영이 마이클 무어와 다른 점은 대중과의 관계 문제다. 스타가 대중과 관계맺는 피상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관계가 명확하게 뭔지 이론적으로 역사적으로 규정된 것은 없지만 달라야 하는 것은 스스로의 존재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그 존재의 이유를 망각하는 순간이 곧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만으로도 소름끼치는 일이다.

 

영화에서 한 평론가는 이렇게 얘기한다.

"마이클 무어가 전국적으로 투표 참여 강연을 하고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좌파!!가 무능하기 때문입니다. 제대로된 좌파가 있었다면 마이클 무어의 영화는 그저 웃음거리가 되었을 겁니다."

 

대선을 앞둔 국내 상황도 비슷하단 생각이다. 진보진영이 반한나라당 전선을 이유로 버스를 갈아탈 준비를 하는 것은 좌파가 그만큼 무능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스믈스믈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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