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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23
    2008/06/23
    슈웅
  2. 2008/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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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생불멸의 노래> 윌리엄 워즈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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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7/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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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7/10/01
    2007/10/01 추석 성묘가는 길 : 꽃
    슈웅

2008/06/23

날씨는 많이 더워졌지만,

머리는 처갑기만 하다.

 

나이들어 뭔가 시작한다는게

조심스럽기만 하고 순수해지기 힘든 일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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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0

집에 있는 아이가 오늘따라 살갑게 군다.

화내고 떼쓰기만 하다가

 

오늘은 가만히 안겨서 머리까지 기대고 체온을 나눠준다.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기분이 안 좋은건지...

 

의기소침 해진건 아닌지

걱정된다.

 

좀 더 신경써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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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7-Delphi

 

Delphi......그리스 지명이라니 델포이(Delphoe)라고 읽어야한단다.

평온하다..그리고 따뜻하다..

그렇지만 그 손에 들고 있는 쪽지에는 뭐가 적혀있을지 모르겠다.

평온한 여인의 얼굴을 보니까 심각한 일은 아닌듯 하다.

정말 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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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7- Nonchaloir

 

John Singer Sargent, Nonchaloir (Repose), 1911

무관심, 냉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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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2

역시 생활이 달라지고 시간이 3~4년 지나면 공유할 수 있는 건 과거뿐이다.

친구의 종류도 여러가지고,

시간과 생활에 따라 재구성되는 게 정답이다.

 

풉^^, 그래도 아직은 함께 즐거울 수 있다. 조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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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보다 이쁜 사과꽃

 

봄에 피는 꽃들이야

뭔들 이쁘지 않겠냐만은

사과꽃 만큼 이쁜게 없다.

 

어릴적에 즐겨본 만화영화 시리즈  <빨간머리 앤>(요즘 EBS에서 <톰 소오여의 모험>에 이어 방영 중)의 오프닝과 1편"초록색 지붕집의 앤" 편에서도 사과꽃을 칭송하고 있다.

새하얀 사과꽃 길(벚꽃이 늘어선 도로처럼)을 마차타고 지나가던 앤의 환상은

늘상 이 사과꽃 무리를 보면 오버랩 되어 나의 눈앞에 펼쳐진다.

 

그 영향 때문인지, 아니면 봄마다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사과꽃 순 치던 그 순간이  생각 나선지,

새하얀 사과꽃 속에 서 있으면 꿈처럼 몽롱한 느낌이다.

더 압권인건 이 꽃이 지면 사과!!가 열린다는 거다.

얼마나 멋진가...지구가 멸망해도 사과나무 한그루를 심는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은 아니다.

하필 그 많은 나무 중에 사과겠는가? 소박한듯 화려한 꽃을 피우고 그 다음에는 과실을 열어주니 말이다.

 

질 좋은 사과를 만들기 위해서 들어가는 품은

모든 농사가 그렇듯 고되고 힘든 일이 많다.

 

이 과정을 전부 수행해보진 못했지만,

어린 아이들도 할 수 있는 몇몇 과정은 어릴쩍 부터 익숙하게 해왔다.

특히 꽃 순을 치는 일은 흥미로우면서도 안타까운 순간이다.

 

사과꽃은 한 곳에 여러 송이가 피기 때문에 질 좋은 과실을 얻으려면

하나의 송이만 남기고 나머지는 잘라줘야 한다.

또 이 과정에서 꽃가루를 묻여줘야 과일이 열린다. 물론 벌과 나비를 못 믿어서 하는 일은 아니지만..^^

 

5월은 이 사과꽃도 모두 떨어지고 열매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올해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떤 열매를 맺게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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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불멸의 노래> 윌리엄 워즈워스

한때 그렇게 빛나던 광채가
지금 내 눈에서 영원히 사라진들 어떠랴.
풀의 광휘의 시간, 꽃의 영광의 시간
다시 불러오지 못한들 어떠랴.
우리는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뒤에 남은 것에서 힘을 찾으리라.

 <영생불멸의 노래 Ode, intimations of immortality> 윌리엄 워즈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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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5

o.

햐. 오늘은 생각보다 더운 날이었다.

 

0.

요즘 의문은 블로그 방문자 카운팅이 계속 올라간다는 거다.

겨우 한 달가량 되었는데,

방문자가 있다는건 묘!!한 느낌이랄까.

감정 토로 말고

생각도 토로해얄 텐데.

 

0.

남북정상회담은 언론 잔치로 끝이나고 말았다.

기업 CEO도 아닌 사람에게는

제도적 변화가 가장 먼저 다가올 것 같다.

중심을 잡지 않으면 흔들릴 것이다.

한반도 특수성을 고려한 변혁적, 국제주의적 시각을 확보해야할 것.

 

0.

시덥잖은 이메일로 주고받은 얘기는

서로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만 형성한다.

면 대 면도 이 이상을 하지는 못한다.

진솔한 대화, 소통은 어떤 것인가?

사적 소통의 과정에도 정치란 통하는 건가?

 

0.

정치적 관계가 아니면 사교적 관계라는 현재 인적 관계들.

그 경계는 무엇이고

선택에 따라 무엇이 달라지는가?

사생활의 영역이란 것은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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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1

0.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물었다. " 나 기가 팍 죽은 것 같지? 응?"

그 친구 대답한다. "어, 기가 죽은 것 같어"

 

0.

이 친구가 제안한다. "해외로 이주하는게 어때? 충분히 먹고 살수도 있어"

이 말에 흔들리는 나를 자각한 섬뜩함이 느껴졌다.

"나 정말 여기서 아무 것도 안하고 있는 건가봐...."

 

0.

느슨해진 일상을 죄여줄 내적 동력도....외적 동력도 없다.

왜 이토록 스스로 버려진 걸까?

 

0.

과장이 아니라 난,

무능력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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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1 추석 성묘가는 길 : 꽃

 

 

 

 



엄마 산소 가는 길은 7촌 할아버지 댁을 거쳐야 갈 수 있다.

 

엄마 산소 가는 길이라고 명하기 전의 7촌 할아버지 댁은

번잡스런 명절의 한 코스였다.

 

불과 몇년 전까지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지낸

설, 추석, 기제사때면

제일 먼저 시골 우리 할아버지 댁에서 첫 제사를 지내고

두번째로 가는 집이 이 할아버지 댁이다.

그리고 나서도 두 집을 더 찾아가 제사를 지내야

비로소 성묘길에 나선다.

 

예전만해도

첫 제사를 지내는 우리 집은 항상 해 뜨기 전에 제사를 지냈다.

우리 집 뒤로 세 집을 더 들러야 하기 때문이다.

새벽 제사인 관계로 모두들 아침을 우리 집에서 먹었다.

제관만 25명......

 

왜 네 집의 사람들이 이렇게 하냐면....

우리 증조할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어른 항렬을 맞추어 제사를 지내기 때문이다.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사형제 중 세째셨고,

이 사형제 내외 중 유일한 생존자가 우리 증조할머니였기 때문에

고조, 고고조 할아버지, 할머니제사까지 지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존자가 계신 집에서 가장 먼저 제사를 지내는 것이라

첫 제사도 우리집 몫이었다.

 

정말 이렇게 써놓고 보니 눈물겹다.

이 번거로운 제사와 명절이 매달 한번씩 꼭 있었는데,

이때 마다 반복하는 일을 나는 20년을 봤다.

내가 대학 갈 무렵 증조할머니 초상을 치뤘다. 

 

울 엄마는 꼬박 시골집에서 매달 20년을 이렇게 보냈던 거다.

 

네 집, 각 집의 며느리는 각 집의 제사 준비를 한다.

우리 집은 명절날 늦잠 잘 수 있는 구조가 절대 나오질 않았다.

사랑에 가서 몰래 누워있으면 반드시!! 잡혀나온다.

 

가마솥 2개를 부엌 밖에 걸어두고 국을 끓이고

며느리 4명과 손녀 하나, 그리고 시어머니는 정신없이 제사 음식을 담는다.

그리고 바로 돌아서면 아침 밥을 마당에 차려낸다.

 

항상 시골집에는 식당만큼 많은 그릇들이 있었다.

제관 25명이 다음 집으로 사라지면 설겆이를 마친 뒤에나

여자들은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제관이 25명 정도로 그친건

할아버지가 외동이시기 때문이다.

그래도 촌수를 따져보면 10촌이 훌쩍 넘는다.

예전에는 이 정도 세대가 함께 모이는건 다반사였단다.

 

이제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나이 드셔서 정말 가실 날만 기다리신다.

어릴적 함께 컸던 9촌 아저씨들은 이제 다들 장가가서 10촌 동생들을 데리고 온다.

9촌 아저씨..이 자들 중에는 함께 대학 다니던 자, 동갑내기인 자들이 있다.

(이상하게 아버지 쪽으로는 아들이 많다. 딸은 한 집에 하나 있을까 말까다..이상한 일이지...)

 

이 자들 어릴 적,

나랑 같은 초딩이었던 이 자들이 울 아버지 한테 "형님"이라고 부르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꼭 따로 불러내서 면박주고 괴롭혔었다.

할아버지한테 제대로 걸리면 야단은 내가 다 맞았다.

주먹다짐에 짱돌 던져가면서 싸우던 '아저씨'들이

이제는 장가가서 어른행세하고 나타난다.

 

이들과 함께 온 새파란 새댁들은

내가 아주머니라고 불러야 할 여인들이다.

이 중에 고등학교 동창도 있다.

 

예전 심술이 다시 살아나서 살짝 괴롭혀보기도 했다.^^;;;

울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봤으면

조카가 어디 아주머니한테 그러냐고 한소리 하셨겠지만,

다른 어른들은 이런 상황이 재미난지 그냥 보고 웃으신다.

 

엄마 돌아가시기 3년 전부터 모든 제사를

아버지가 모시고 왔다.

명절도 우리 집에서 지냈다.

거의 30년을 엄마는 그렇게 고생하다가 갑자기 가셨다.

 

편하게 제사 지내보는게 소원이라더니

이제 소원대로 편해졌는데

뭔가 더 불만이 있었던지 더 편한대로 혼자 가셨다.

 

내년 봄에 엄마 산소 근처에는 꽃나무를 많이 심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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