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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22호>분노를 저항으로, 저항을 전복으로

노동자민중의 비명 vs 자본의 환호성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15년에 거쳐 빼앗기고 짓밟힌 노동자민중이여 총궐기하자. 세 명의 대통령이 지나간 자본주의사회는 20 대 80의 사회에서 10 대 90의 사회로, 1 대 99의 극단의 양극화된 사회로 성장했다. 자본의 곳간은 차서 넘치지만 노동자민중의 삶은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15년간 이 사회에는 정리해고가 만연했고, 비정규직은 차고 넘쳤으며, 실질실업은 20%에 육박하는 백수의 사회가 되었다. 대학생은 천만 원에 달하는 등록금에 학업을 포기한 채 죽음을 떠올려야 하며, 노동자민중은 전세 값 폭등에 전전긍긍해야 한다. 일자리가 부족하고 수입이 줄어들면 물가라도 안정되어야 하는데 고물가로 고통은 배가 됐다. 노동자민중의 삶이 총체적 난국에 빠진 것이다.
노동자민중의 삶이 난국에 빠질 때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은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는 동희오토, 현대모비스, 현대중공업 군산공장 등 생산직 100%가 비정규직인 절망 공장이 늘어났기 때문이며, 정리해고의 고용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장통제를 수용해 노동 강도를 강화시킨 결과이다. 물론 사상 최대치의 사내유보금은 자본주의의 고질병인 장기적인 이윤율 저하의 또 다른 표현이다.
은행을 필두로 한 금융사들의 이윤도 노동자민중의 절망을 먹고 자라났다. 부동산 하락, 전월세 값 폭등, 등록금의 폭등으로 가계부채가 폭등했고, 금리마저 오르면서 노동자민중은 비명을 지르지만 금융사들은 이윤대박에 환호성 친다. 자본주의 자체가 노동자민중의 비명소리가 높아질수록 자본의 부가 축적되는 사회체제이기에 그들의 비명소리가 분노로, 분노가 행동으로 이어질 때 자본의 곡소리가 높아질 것이다. 지금 노동자민중의 삶이 절벽으로 내몰려 지고 있는 상황에서 분노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분노를 넘어 반자본주의 투쟁으로
 

경제위기에 따른 삶의 파괴로 분노에 찬 전 세계 노동자민중은 자본주의와 계급전쟁 중이다. 그리스 총파업, 월가점령시위 등 모든 파업과 시위에서 “자본주의는 악”이며 “자본주의를 중단”하라는 요구가 넘쳐난다. 월가점령으로 상징되는 금융자본에 대한 문제제기가 오클랜드항 봉쇄등으로 자본주의 전체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이라크 참전 병사들이 “적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있다”며 월가점령운동에 대거 동참해 분노를 터뜨렸다. 이라크보다 더 큰 적이 미국자본주의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황한 자본가계급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경제위기를 낳았고, 자본주의의 문제가 아니라고 변명하기 급급하다. 포브스지 최고경영자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세상을 구하는가?>책을 출판해 자본주의에 무지한 사람들 때문에 세상을 구한 자본주의가 ‘악의 꽃’이 됐다고 항변한다. 성공한 경영자인 버핏과 빌 게이츠는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내자며 제안했고, 영국의 억만장자들은 재산의 10%를 자진 납부하는 운동을 조직하고 있다. 그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제 실천으로 세계자본주의 위기극복을 하자며 좋은 자본가도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 역시 노동자민중의 반자본주의 투쟁을 샛길로 새게 만들려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짓거리’다.
한국에서도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분노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고용불안, 비정규직, 청년실업으로 고통 받는 것이 개인의 무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임을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은 ‘정리해고 없는 세상,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희망버스, 대학생들의 등록금투쟁, 한미 FTA 반대투쟁에 참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거대한 자본과 정권, 사회에 맞서 싸울 수 없어 자포자기했던 자들이 연대로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투쟁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자본주의 세상을 바꾸기엔 미약하다. 분노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반자본 정서가 곧바로 반자본주의 투쟁, 체제에 대한 전복으로 연결되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수정 보완으로 가능하다는 논리는 대중을 포위하고 있고, 현실에서 분노는 반MB 선거 심판론에 머무르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노동자민중은 그리스 총파업과 월가 시위로부터 환기할 것이 있다. 첫째, 선거를 기다리지 말고 과감한 행동을 조직해야 한다. 정리해고, 불안정한 노동과 일자리 부족, 물가인상 및 등록금에 항의하는 파업과 시위에 나서자! 둘째, 신자유주의 정부만이 아니라 친노동 세력을 자처하는 수정자본주의 정부가 대중의 필요보다 자본의 이윤을 위해 임금삭감, 일자리감소, 복지축소 등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을 공격한다면 즉각 반격에 나서야 한다. 셋째, 자본주의 폐해를 보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넘어서려는 투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그리스의 ‘노동자통제 하의 은행 몰수 국유화’, 월가점령운동의 ‘모든 공장에서의 노동자파업과 민주적 조직에 의한 노동자통제’ 등 투쟁요구가 그것이다. 대중들의 자발적인 투쟁요구를 반자본주의 투쟁으로 이끌고 대안 사회,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이행을 위한 투쟁요구>를 분명히 해야 한다.

 

거점을 확보하자
 

쟁점에 따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메뚜기가 아니라 분명한 점거의 거점을 확보하여 총체적으로 대응하는 투쟁체계를 갖추자. 점거의 공간은 지나 몇 년간의 투쟁의 경험으로 상징화된 서울광장일 수 있다. 당장 투쟁의 핵심으로 한미FTA 반대 사람들, ‘비정규직 없는 세상! 정리해고 없는 세상’을 위한 희망버스의 탑승자들, 장기투쟁노동자, 차별에 저항하는 장애인, 이주노동자, 사회소수자, 철거민, 노점상 빈민 등, 정치사상에 대한 탄압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하는 사람들, 모든 개인과 대중투쟁단위 그리고 정치조직, 노동사회단체 등 가릴 것 없이 앞장서서 점거운동에 돌입하자. 우리는 2008년 촛불투쟁으로부터 최근의 희망버스까지 세계 어느 곳에서 보다 점거와 직접행동을 체현하고 진전시켜 왔다. 자신들의 투쟁요구를 모두 내걸어야 하기 때문이니 투쟁요구가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점거의 자리에서의 투쟁과 민주적 토론은 자본주의로부터 고통 받는 노동자민중의 중심요구를 만들어 낼 것이다. 직접행동과 직접민주주의는 대리주의를 한계를 넘는 저항의 무기이며, 전복의 씨앗이다.

 

정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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