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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온 지 2달이 넘어가도록 서랍 정리를 못하고 있다가
어제 오늘 서랍 속 잡동사니를 무조건 꺼내놓았다.
솔직히 말해 어제 오늘 꺼내놓은 서랍 속 잡동사니는
이사오기 전에도 5-6년 내내 거의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이사를 다닐 때마다 서랍장 통채로 옮겨다니던 것들이었다.
지금 책상 위는 물론이고 의자 주변 가득히 서랍 속 잡동사니들로 정신이 없다.
오래된 영수증, 이면지, 정리되지 않은 명함, 너저분한 문구류, 나무곤충 작업 도구들...
어떻게 정리할까 막막하던 차에
'에라 모르겠다' 하고 쇼파에 누워 아무 생각없이 책을 읽기로 했다.
위즈덤하우스에서 발간된 <<경청>>청이란 책.
지난해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배려>>란 책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내심 많은 감동을 받았었다.
<<경청>>이란 <<배려>>에 이은 일종의 시리즈로 나온 책인데,
보름 전에 사 놓고 읽는다 읽는다 하면서도 계속 손을 못대던 것이었다.
책을 읽다가 문득 마음에 드는 부분이 눈에 띠어
황급히 컴퓨터를 키고 인터넷을 접속하여 내 블로그에 왔다.
내 블로그의 [삶의 양식]이란 내가 읽은 책 중에서 기억하고 싶은 부분을 적으려고 만든 것.
<<경청>>에서 기억하고 싶은 부분은 이렇게 적게 됐다.
======================================== <<경청>>, 위즈덤하우스, pp.65~67
[이 선생. 혹시 이 선생은 청력이 좋았을 때,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편이었습니까?]
갑작스런 구 박사의 질문에 이토벤은 가슴이 뜨끔했다. 한동안 무슨 말을 할까 망설이는데 구 박사가 다음 대화를 이었다.
'곤란한 질문을 했나 봅니다. 장자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음악 소리가 텅 빈 구멍에서 흘러나온다.']
[무슨 뜻인가요?]
[악기나 종은 그 속이 비어 있기 때문에 공명이 이루어져 좋은 소리를 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바이올린에서도 소리를 내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 공명통입니다.]
이토벤이 아는 체를 했다.
[그런데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토벤은 구 박사와의 대화에 흥미가 동했다.
[이번에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에게도 공명통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사람의 공명통은 마음입니다.]
구 박사는 천천히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러니까 사람은 마음을 비워야 좋은 소리가 난다는 것인가요?]
이토벤이 재빠르게 답변을 달았다.
[맞습니다. 마음을 텅 비우면 사람에게서 참된 소리가 생겨난다는 뜻입니다.]
구 박사도 빠르게 대화를 이어갔다.
[마음을 텅 비울 때, 비로소 우리는 상대방과 대화할 준비가 되는 법이지요. 그렇게 되면 대화 속에서 진실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이토벤은 잠시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관련된 지식을 모으고, 상대의 말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고,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내 주장을 관철시킬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박사님, 솔직히 말씀 드리면 잘 모르겠습니다. 텅 빈 마음으로 대화를 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그렇게 대화를 한다면 결국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끌려가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토벤은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고, 잠시 후에 구 박사의 답변이 모니터에 떴다.
[우리는 대부분 상대의 말을 듣기도 전에 미리 나의 생각으로 짐작하고 판단하곤 합니다. 상대의 말을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빈 마음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텅 빈 마음이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나의 편견과 고집을 잠시 접어 두라는 의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