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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마르크스-레닌주의 문헌에서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역사적 지위를 둘러싼 논쟁에 대하여 〔 上 〕」 『총명한 유물론』 제3집 봄호
„Zur Diskussion um den historischen Platz des staatsmonopolistischen Kapitalismus in der neueren marxistisch-leninistischen Literatur“1, Jahrbuch für Wirtschaftsgeschichte, 1976/I: 69-93.
H. Nussbaum | 구 민주독일(DDR)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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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독점자본주의의 제 문제에 관한 마르크스주의 문헌이 국제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최근 몇 년 사이 그 역사적 지위를 둘러싼 논쟁 또한 다시금 증가했다. 다양한 입장들의 모든 측면에 대한 상세한 고찰은 학술지 논문의 범위 내에서는 불가능하지만, 비판적 논평을 곁들인 간략한 개관이라도 유용할 것이다.
우선 나의 관점의 발전 과정을 요약하고, 이어서 다른 견해들의 몇 가지 측면을 논의한 뒤에, 마지막으로 나의 추가적인 고찰을 다시 한번 테제 형태로 요약하고자 한다.
독일에서의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발생에 관하여 내가 1970년에 발표한 연구2─그 안에서 마르크스·엥겔스·레닌의 해당 언급들도 상세히 분석되었다3─에서, 현시기 마르크스-레닌주의 문헌 내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역사적 지위가 통일된 해석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서두에 확정되었으며,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되었다: "견해의 다양성은 사실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만약 “자본주의의 거대 권력과 국가의 거대 권력을 단일 메커니즘으로 결합하는” 과정이 얼마나 개별 국가들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적 기준에서도 불균등하게 관철되었으며 또 관철되고 있는지를 고려한다면 말이다. 각각의 시기나 국가들에서 이 결합 과정의 규모, 강도 및 영향에 대한 정확한 평가 척도가 이미 존재하는가?"4
이 연구에는 다음과 같은 견해가 기초가 되었다: 국가독점자본주의는 제국주의의 하나의 ‘특징’, ‘표징’ 또는 ‘기초(Grundzug)’이며, 이것은 다른 ‘표징’과 마찬가지로 발전 과정에서 강화되는 것이지, 그 이전에 또 다른 "사적독점적" 단계가 선행했던 제국주의의 특수한 단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해당 연구가 (1945년까지의 발전에 대한) 개관의 시작장(章)에 해당하는 것이었기 때문에5, 거기서는 [이 견해를] 이 사고과정에 비로소 도입하는 정도에 그쳤다. 그 사고과정은 필자가 작성한 그 개관의 결론 부분에서 좀더 전개되었으나, 다른 저자들이 집필한 개관의 다른 장들과 마찬가지로 그 결론 부분도 지금까지 출판되지 않았다.
추가적인 고찰에 앞서, 나의 입장 내지 그 발전을 명확히 하기 위해 그 결론 부분의 핵심을 여기에 서술하고자 한다.
그 개요에서는 1945년까지 독일에서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형성이 어떠한 구체적 현상들 속에서 관철되었으며, 어떠한 일반적, 특수적, 그리고 상황-제약적인 추동력들이 작용했는지를 규명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기본 모순─즉 증대하는 생산력의 사회적 성격과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사이의 모순─의 전개가 국가독점자본주의로의 발전을 위한 근본적인 추동력을 이룬다는 점; 기본 모순의 첨예화가 일련의 다른 모순들의 첨예화로 발현되며, 그것들이 다시 국가독점자본주의 발전의 추동력으로 된다; 독점자본주의 사회는 이르든 늦든 국가독점적 형태들이 발전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따라서 국가독점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제국주의적 단계의 합법칙적 현상이라는 점이 논의되었다. 여기에서 독일에서의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발전이 얼마나 비약적이고 불균등하게 관철되었는지, 말하자면 "유기적인" 발전의 시기가 어떻게 급박한 새로운 형성의 시기로, 그리고 또한 그 발전이 상대적으로 목적 “의식적으로”(bewußt) 추진되었던 시기로 교체되었는지가 명백해졌다. 나아가 발전의 중심점들이 빈번히 위치를 바꾸었다는 점, 한 영역에서의 가일층의 발전이 다른 영역에서의 퇴행을 능히 동반할 수 있었다는 점 또한 명백해졌다. 만일 "자본주의에 내재하는 모순의 첨예화"를 항상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으로 간주한다면, 역사의 진로를 결코 올바르게 해석하고 이해할 수 없을 것이며─따라서 미래를 위한 어떠한 결론도 도출할 수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기본 모순은─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끊임없이 작용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항상적으로 첨예화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끊임없는 작용만으로도 이미 제반 관계의 계속적 발전을 강제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진정한 한계는 자본 그 자체이다"라고 썼으며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이것은 대다수 생산자 대중의 수탈과 빈궁화에 기초해 있는 자본가치의 보존과 증식이 오직 그 안에서만 운동할 수 있는 그 한계, 이 한계는 따라서 자본이 자기 목적을 위해 적용해야만 하는, 그리고 생산의 무제한적 증대, 자기목적으로서의 생산,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의 무조건적인 발전을 향해 나아가는 생산방식과 끊임없이 모순에 빠진다. 수단인 사회적 생산력의 무조건적인 발전은, 제한된 목적인 현존 자본의 증식과 항구적인 충돌 상태에 빠진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물질적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그에 상응하는 세계시장을 창출하기 위한 역사적 수단이라면, 그것은 동시에 이 자신의 역사적 임무와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생산관계 사이의 끊임없는 모순이기도 하다."6 끊임없이 작용하는 모순, 항구적인 충돌에 대해 마르크스가 여기서 서술한 이러한 견해는 부분적 해결이나 일시적 해결의 가능성을─혹은 심지어 그 필연성까지도─포함한다7; 그러나 동시에 근본적인 모순은 끊임없이 새롭게 재생산된다; 방금 인용한 것과 관련하여 마르크스는 이와 같이 썼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자신에 내재하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려고 끊임없이 분투하지만, 그것은 오직 자신에게 이러한 한계를 새롭게, 그리고 더 거대한 규모로 대립시키는 수단을 통해서만 그것을 극복한다."8 이 집약적인 문장 속에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의 본질이 묘사되어 있다. 그것은 항구적인 충돌, 그 충돌의 부분적 극복, 그리고 끊임없는 새로운 산출의 과정이다. 개별 모순 하나하나가 항상적으로, 즉 중단 없이 첨예화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경향성, 즉 모순의 운동 경향의 의미에서 첨예화된다. "한편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 부분적으로 자신을 상쇄하고 상대적인 해결들을 통해 기본 관계의 운동 과정을 가능하게 하려는 경향을 가진다는 점이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그리고 마르크스에 의해 수많은 사실로 확증되었다면), 다른 한편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결정적인 모순이 그것의 첨예화와 격화의 형태로 발전한다는 것 또한 하나의 사실이다. 이 두 경향은 변증법적 모순 관계 속에 놓여 있다."9
"첨예화와 격화"가 자본주의에 내재하는 모순의 경향, 운동 방향이라 할지라도 첨예화 자체가 끊임없는 것이 아니라면, 모순적 기본 관계에서 도출 가능한 모순 역시 끊임없이 첨예화되지도 않고 모두 동시에 첨예화되지도 않으며, 오히려 그 운동 단계들에서 대부분 서로 어긋나 있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재생산 과정의 내적 모순과 관련하여 일찍이 이와 같이 썼다: 대립하는 행위자들이 “때로는 더 많이 공간에서 나란히, 때로는 더 많이 시간에서 차례로 스스로를 관철시킨다.”10 모순 발전에도 불균등성의 법칙이 존재한다: 따라서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형성도 그 모든 측면의 "동시적" 또는 "조화로운" 발전의 형태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은 "제국주의의 오늘(Imperialismus heute)"에서 정식화된 바와 같이 "그 개별적 측면들의 전개 과정으로서, 부분 영역들의 점진적 발전으로서"11 나타난다.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개별 측면들은 불균등하게 전개되는데, 즉 한 나라 안에서 모두 동시에 그리고 같은 속도로 전개되지 않으며, 세계적 규모에서도 역시 모두 동시에 그리고 같은 속도로 전개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개별적 측면들의 전개"와 "부분 영역들의 점진적 발전"을 어떠한 후퇴도 없는 과정들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한 "부분 영역"으로 잠시 국가에 의한 생산의 중앙적 조절을 살펴보자. 그것은 독일에서 1925년에 1917년보다, 1964년에 1944년보다 의심의 여지없이 훨씬 약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발전을 도식으로 나타내고자 한다면, 그 추세가 상향일 가능성이 높지 않은 일종의 지그재그 곡선이 나타날 것이다. 유사한 양상이 1925년과 1964년의 국가 소유 규모에 대한 정확한 비교를 통해서도 거의 틀림없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자극(ökonomischer Hebel)’를 통한 재생산 과정의 조절 방법론, 과학-기술 진보의 조절, 또는 사회의 정신적 조작의 전체 복합체와 같은 다른 부분 영역들을 살펴보면, 서독에서는─이미 1960년대 중반에─독일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모든 전 단계에 비해 고도화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부분 영역들의 단계적 발전은 이 부분 영역 중 일부에서의 후퇴를 충분히 포함할 수 있으며, 그럼에도 전체로서의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더 나아간 발전을 낳을 수 있다. 국제적 발전을 고려하면 이 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예컨대, 단 하나의 사례만 들자면, 1920년대 독일의 상대적 국가 소유 규모는 다른 제국주의 국가에 비해 훨씬 컸지만, 오늘날에 와서 더는 일반적 수준에서 두드러지지 않는다.
"한 나라 내부에서 부분 영역들의 불균등한 전개─모순의 불균등한 첨예화에 기초하는─세계적 규모에서의 불균등한 전개”─1970년의 저 결론적 논평에서 총괄적으로 정식화된 바처럼, 이것이 아직까지 마르크스주의 문헌에서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발전 단계에의, 그리고 질적 비약이 일어났으며, 또 그것이 언제 일어났는지에의 일치된 견해가 없는 명백한 객관적 이유이다. 언제 결정적인 질적 비약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보편적으로 타당한 진술을 하려면 최소한 두 가지가 전제된다: 기준의 확정(어떤 부분 영역들이 결정적인가); 이 기준([해당] 부분 영역)의 발전 수준에의 척도 확립.
이 전제들이 갖추어져야 비로소 여러 역사적 시기와 여러 나라에서 국가독점적 형태의 발전 수준에 대한 더 정확한 비교가 가능해질 것이다. 이 전제들을 마련하는 것이 어렵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긴 하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어서, 향후 아직 다양한 연구 분야가 남아 있다.
마지막으로 집단에 의해 다소 상세한 정의를 시도하는 작업이 수행되었다. 국가독점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제국주의 단계의 기초이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독점의 우선 주로 경제적인 권력과 국가의 우선 주로 정치적인 권력의 융합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경제적 권력 지위와 국가-정치적 권력 지위의 융합은 기능적으로, 제도적으로, 그리고 소유 구조에서 표현된다. 그것은 독점자본주의적 사회체제의 유지를 위해 필요하고 불가결한 것으로 드러나는데, 왜냐하면
1. 광범위한 독점화, 즉 자유경쟁의 규제 메커니즘이 약화된 상황에서 정상적인, 즉 확장된 자본 재생산 과정은 중앙 집중식 조정 및 통제 없이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기 때문이며; 2. 독점자본은, 필요한 조절적 국가 개입이 물질적 재생산만이 아니라 자본관계, 즉 착취관계의 재생산도 보장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려고 노력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제적 권력과 국가적-정치적 권력의 이 필연적 융합은 마찬가지의 필연성으로 경제외적 강제와 조작의 도움으로 사회의 모든 영역을 규제하려는 경향을 산출한다.
레닌이 이미 독점자본 확립의 필연적 결과로 간주한 경제적 권력과 국가적-정치적 권력의 융합은, 제국주의적 시대가 ‘이행기’로서 특징지어지는 징표에 속한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일반의 기본 속성의 발전이자 직접적 연속으로서 성장하였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자본주의적 제국주의가 된 것은 비로소 특정한, 매우 높은 발전 단계에서였는데, 그 단계에서 자본주의의 기본 속성 중 일부가 그 반대물로 전도하기 시작했을 때, 자본주의에서 더 높은 경제적 사회 구성체로의 이행기의 징후들이 전 노선에 걸쳐 형성되고 가시화되었을 때였다. 경제적으로 이 과정에서 근본적인 것은 자본주의적 독점에 의한 자본주의적 자유경쟁의 대체이다.”12
그런데 독점은 그 존재를 통해 “국가의 개입을 불러일으킨다.”13 따라서 독점 형성이라는 근본적 경제 과정에는 국가 역할의 전환이 수반된다: 국가는 관념적 총자본가로서의 기능에 더하여 현실적 총독점자의 기능을 형성하며, 재생산 과정에서 경제적 포텐츠(Potenz)가 된다.
이 전환 과정은 오직 상술한 융합의 형태로만 진행될 수 있으며, 따라서 독점자본주의의 형성과 함께 시작된다.
궁극적으로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형성은 생산력의 급속한 전개와, 그것과 모순 관계에 있는 자본주의적 소유관계의 유지에서 기인한다. 자본주의의 기본 모순, 즉 생산과정의 점증하는 사회화와 사적·자본주의적 전유 형태 사이의 모순의 첨예화가 국가독점적 형태 형성의 근본적 원인이다. 이 형태는 이 모순을 자본주의 질서 자체의 틀 안에서 해결하려는 시도를 나타낸다. 그러나 국가독점자본주의는 경제적-사회적 모순의 해결로 귀결되지 않고, 궁극적으로 그것의 심화로 귀결된다.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고유한 변증법은, 그것이 한편으로는 직접적으로 사회주의를 위한 물질적 전제들을 창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의 침략적이고 반인민적인 본질을 최고도로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독점 권력과 국가 권력의 개별 부문에서의 초기 융합으로부터 전체 경제 및 사회 생활을 규정하고 점점 더 의식적으로 형성되는 국가독점적 형태의 체계가 어떤 속도로 개별 나라에서 발전하는가는 어느 정도로 다양한 모순이 첨예화되며, 따라서 그러한 해당 나라의 독점자본이 국제적 경쟁과 국내적 및 국제적 계급투쟁에 그러한 체계를 어느 정도로 필요로 하는가에 달려있다.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가 진전됨에 따라 마지막으로 언급된 요인이 주요 요인이 되며, 이것은 자본주의적 국제경쟁이 지속됨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적 국가 집단 전체의 규모에서 국가독점적 결합이 시작되고 진행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당시의 ‘나’의 입장에 대한 다소 정확한 특징 규정은 이 정도로 하자. 이 입장은 추가적인 구체적 연구와 추가적인 고찰에 의해 지금까지 본질적으로 변경되지 않았고 정밀화되었을 뿐이다.
독점자본주의 내의 생산관계 발전에서 우리가 제국주의의 “사적독점적” 단계와 “국가독점적” 단계를 말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권한을 부여할 수 있는 그러한 근본적인 질적 전화는 내 견해로는 아직도 여전히 증명될 수 없다; 현재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생산관계는 아직도 여전히 "사적독점적"이다. 그런데 "아직도 여전히"라는 규정은 사실상 심지어 과소평가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사적’ 독점자본은 지난 70년간 그 물질적 규모에서─그리고 이와 함께 그 권력에서─물론 엄청나게 성장하였기 때문이다; 1900년경 그것이 경제의 주요 요충지들을 지배하였다면, 이제는 점증하는 정도로 경제와 전체 사회적 삶의 모든 영역에 침투하고 있으며, 이때 이 침투 과정 자체조차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이 독점자본의 성장과 팽창 과정이 결합되어 국가와 독점 사이의 ‘협력 공동체’가 발전하였다. 독점자본의 발전과 마찬가지로 파동적 혹은 비약적으로 진행된 20세기 경제적 토대의 여러 영역으로의 그 침투 과정과 유사하게, 국가와 독점 사이의 관계 발전에서도 비약적 혹은 단계적 강화가 확인될 수 있다. 국가독점적 ‘기초’의 발전에서 이러한 질적 도약은 다음에 의해 야기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과 10월 혁명, 그 세계정치적 및 세계경제적 결과; 1929년부터 1933년까지의 세계경제 공황; 제2차 세계대전, 그 세계정치적 및 세계경제적 결과 및 과학기술혁명의 시작.
이 세 시간적 ‘지점’ 각각에, 단계론(Phasentheorie)의 여러 대표자들은 자신들이 보기에 근본적인 질적 전환을, 즉 사적독점자본주의 단계에서 국가독점자본주의 단계로의 이행을 옮겨놓는다. 이런 방식으로 이제─‘기초’에 관한 견해와 함께─국가독점자본주의의 역사적 지위에 관한 네 개의 견해 집단이 형성되었다.
이때 주목해야 할 점은, 1970년의 처음에 언급된 서술에서 제기된 기준의 결여 문제가 아직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보르코(Borko)가 최근 확인한 바와 같이: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발전은 많은 새로운 것을 가져왔으며, 이는 20세기 초의 자본주의와 비교할 때만이 아니라 1930-40년대의 자본주의와 비교할 때에도 그러하다. 이에 대해서는 마르크스주의 문헌에서 이견이 없다. 그러나 차이는 이 새로운 것의 크기와 수준을 평가하는 데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이제 몇 년째 계속되고 있으며, 그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현대 자본주의 연구를 진전시켰다. 이 논의가 모든 풍요로움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결함이 있었으니: 여기에는 명확하게 정식화된 기준들이 결여되어 있는데, 이에 근거해서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변화들의 성격과 정도가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하나의 질적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의 이행에 대한 척도로서 무엇이 타당할 것인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양적 변화의 누적과 이 생산양식의 발전에서의 질적 도약 사이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가?”14
사용된 기준들 몇 가지를 살펴보자.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집단 작업 『국가독점자본주의』에서는 매우 강조된 형태로 "단순 독점자본주의"의 단계(제2차 세계대전까지)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단계(제2차 세계대전 이후)와 대비된다. 그러나 두 단계의 결정적 차이가 어디에 있는지가 충분히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지 않다. 서론에서 국가독점자본주의가 간략히 정의된다: "그것은 독점적 구조가 확대되는 제국주의의 그 단계이며, 이 단계 내에서 다시 국가의 개입, 독점과 국가 사이의 증대하는 결합이 발전하는 현재의 단계이다."15
나중에 이 정의가 확대된다: “따라서 국가독점자본주의는 경제적·사회적 요소들뿐만 아니라 정치적·이데올로기적·군사적 및 기타 측면들도 포괄하는 하나의 유기적 총체로서 드러난다. 국가 재정 지원, 공공 부문, 국가 소비 및 독점적 계획이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본질적 특징이듯이, 그것은 또한 경제의 군사화, 이데올로기적 및 정치적 압박, 반동적 세력들의 결집 및 정치적 전횡의 경향에 의해서도 특징지어진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것은 명백히 제국주의 단계 내의 특수한 국면을 나타낸다; 그것은 국가와 독점 사이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조건에 의해 특징지어진다.”16[강조는 원문] 이러한 의미에서 그것은 명백히 제국주의 단계 내의 특수한 국면을 나타낸다; 그것은 국가와 독점 사이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조건에 의해 특징지어진다.”[강조는 원문] 그러나 인용문에서 저자들이 강조한 기준은 과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기에만 해당하는가? 그것은 이전 시기와의 구별된 징표를 형성하는가? 나의 견해로는 프랑스만을 고려하더라도 이것은 말할 수 없다.
프랑스 저자 집단이 "국가 재정으로부터 독점적 생산에의 재정 지원"을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주요 징표로 지칭하는17 데 반해, "BRD(독일연방공화국)의 제국주의"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된다: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경제적 주요 징표는 따라서 국가독점에 의해 강화된 금융과두제 수중에의 자본 집중 및 집적이다. 사적 독점과 국가독점의 결합은 독점의 본질에서 비롯되는 전체 경제생활의 절대적 지배 경향의 완전한 전개를 나타낸다."18[강조는 원문]
이 저작의 저자들은 프랑스 집단보다 더 강하게 국가독점자본주의 형성의 긴 과정을 다루며, 그것이 "제국주의 단계로의 이행과 직접적 연관 속에서" 발전했다고 쓴다.19 그러나 그것은 "더 긴 시간 동안 경향의 성격을 띠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국주의의 발전 단계가 되었다."20 그것이 제국주의 내부의 발전 단계임을 특징짓기 위해 다음이 확인된다: "국가독점자본주의로의 성장·전화는 제국주의의 본질에서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않았다."21 그런데 이 ‘단계’에서 새로운 것은 무엇인가? 이에 관해 저자는 이리 적는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에서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위치를 올바르게 규정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형성이 제국주의의 경제적 본질에 어떠한 질적으로 새로운 특징들을 추가하는지의 문제에 답해야 한다. 새로운 것은, 처음에는 사적 독점 형성의 토대 위에서 시작된 독점이윤의 전유가, 국가에게만 사용 가능한 수단들과 가능성들을 투입하는 국가의 경제적 활동에 의해 점점 더 강하게 지지되고 있다는 데 있다."22[강조는 나; H. N.]
이것을 더 정확히 생각해보면, 이렇게 지칭된 새로운 것은 ‘단계’의 특징만이 아니라 ‘경향’의 특징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단계’와 ‘경향’의 더욱 상세한 구분을 시도한다. 경향으로서의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본질적 기준은, "경제에 국가를 편입시키는 초기의 형태들이 독점에 의해 종종 일시적으로만 적용되었으며, 대부분 특정 영역만을 포괄했고, 아직 강한 행정적 특징을 띠었으며, 국가적 틀에 제한되었고, 더 단기적인 효과를 겨냥하여 계산되었으며, 원칙적으로 특정 모순과 갈등에 대한 반응으로서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다"는 데 있을 것이다.20 반면 "완전히 형성된 포괄적 국가독점자본주의 체계"에서는 국가의 경제적 활동이 "포괄적이고 항구적"이며, 이전의 더 경제외적 강제의 성격을 띠던 “개입”과 대조적으로 오늘날에는 "경제적 과정들의 유기적 요소"이며, “더 이상 단순한 보완이 아니라 자본의 재생산의 조건”이라고 한다.24[강조는 원문] (그런데 몇 페이지 뒤에서 후자는 다시 달리 정식화된다. “독점자본의 확대재생산은 이 과정에 대한 국가의 참여에 의해 보완되고, 실현되며, 그리하여 과학기술혁명의 오늘날의 조건들에 ‘적응된다.’”25[강조는 나; H. N.])
번역: 노준엽 | 집행위원
2026년 5월 31일
- 1975년 1월 10일 독일민주공화국 과학원에 발표한 박사 학위 논문 B „Studien zur staatsmonopolistischen Entwicklung des deutschen Imperialismus bis 1914“의 마지막 장 보충본.

- Nussbaum, Helga, Zur Imperialismustheorie W. L Lenins und zur Entwicklung staatsmonopolistischer Züge des deutschen Imperialismus bis 1914, in: Jahrbuch für Wirtschaftsgeschichte 1970, T. 4, S. 25 - 65.

- Ebenda, S. 28 - 35, 명시적으로 참조.

- Ebenda, S. 27.

- 베를린 과학원 경제사연구소 제국주의 경제사 부서 연구진 Lotte Zumpe 부서장이 1970년에 작성한 경제사적 개요 „Die Entwicklung des staatsmonopolistischen Kapitalismus in Deutschland bis 1945“.

- Marx, Karl, Das Kapital, Bd. 3, in: Marx/Engels, Werke, Bd. 25, Berlin 1964, S. 260. - Hervorhebungen von mir - Η. N.

- 자본주의에서 모순 운동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문헌들을 참고하라: Wagner, Hans, Neue Fragestellungen in der politischen Ökonomie des Imperialismusund ihre Beziehungen zur wirtschaftshistorischen Forschung, in: Jahrbuch für Wirtschaftsgeschichte 1966, T. 4, S. 96 - 125; Imperialismus heute. Der staatsmonopolistische Kapitalismus in Westdeutschland, hg. v. Institut für Gesellschaftswissenschaftenbeim ZK der SED, Berlin 1965, Kap. 10; Stiehler, Gottfried, Die Marxsche Analyse der Widersprüche im "Kapital" und der staatsmonopolistische Kapitalismus, in: Deutsche Zeitschrift für Philosophie, Nr. 8/1967.

- Marx, Karl, a. a. O., S. 260.

- Stiehler, Gottfried, a. a. O., S. 961.

- Marx, Karl, a. a. O., S. 259.

- Imperialismus heute, a. a. O., S. 13.

- Lenin, W. L, Der Imperialismus als höchstes Stadium des Kapitalismus, in: Werke, Bd. 22, Berlin 1960, S. 269 f.

- Marx, Karl, a. a. O., S. 454.

- Borko, J., Methodologische Fragen der Analyse des staatsmonopolistischen Kapitalismus, in: Sowjetwissenschaft. Gesellschaftswissenschaftliche Beiträge, Nr. 10/1973, S. 1089.

- Der staatsmonopolistische Kapitalismus, Berlin 1972, S. 9.

- Ebenda, S. 21.

- Ebenda, S. 38.

- Der Imperialismus der BRD, hg. v. Institut für Gesellschaftswissenschaften beim ZK der SED, Berlin 1971, S. 102.

- Ebenda, S. 92.

- Ebenda, S. 94.

- Ebenda, S. 103.

- Ebenda, S. 101.

- Ebenda, S. 94.

- Ebenda, S. 94 f.

- Ebenda, S. 1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