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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위당과 민주집중제─트로츠키주의적 왜곡에 대한 비판
김의진 | 회원
✮ 머리말: 당이란 무엇인가?
✮ 1. 참여와 지도, 자생성과 의식성의 상호 연관
✮ 2. 레닌주의인가 트로츠키주의인가?
✮ 결론
머리말: 당이란 무엇인가?
당은 정치적 의사를 관철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현대사회에서 당은 여러 가지 형태를 띠며 정치적 활동을 전개한다. 그러나 오늘날 ‘포괄정당’, ‘대중정당’, 블록(bloc)형 정당 등으로 불리는 부르주아 사회의 각종 ‘당’들은 규율의 부재와 당적 참여의 결여가 주된 특징이 된다. 즉, 이들 정당 형태는 지도와 참여의 통일이 결여되어 있다.
규율의 부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규율의 부재는 당을 와해시키고, 정치적 수다가 난무한 동호회의 수준으로 전락시킨다. 당적 사업에 대한 개입은 규율을 통해 완성된다. 규율이 함께하지 않는 이상, 자발성에 기초한 참여는 극대화될 수 없다. 반대로, 참여의 부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참여의 부재 하에서 규율의 일괄적인 적용은 정치사업과 선전사업, 현장사업에 대한 하부 단위들의 집행권을 침해한다. 그렇다면, 지도와 참여의 통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즉, 당원의 의사에 따른 조직적 활동을 독려하기 위한 기제의 확립과 실천을 의미한다.
1. 참여와 지도, 자생성과 의식성의 상호 연관
제2인터내셔널 휘하 제 정당은 당의 통일성을 높이는 대신 수많은 파벌의 난투장으로 전락했다. 규율의 부재는 당 기관 및 조직 사이에서 기회주의를 야기했다. 레닌은 제2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에 맞서 러시아 혁명의 사상적 기반을 구축했다.
당대의 제2인터내셔널 산하 모든 당 기관에서는 다양한 견해가 개진된 바 있는데, 이 견해들은 지도와 참여의 통일을 촉진하는 대신 수많은 계급적 목표의 단순한 혼재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제2인터내셔널의 가맹 정당들은 이색적인 조류들의 유입을 방치한 결과 “부분적인 일상투쟁에 치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최대강령과 최소강령의 연관성을 사상한 채로 부르주아 국가 자체를 프롤레타리아 해방의 수단으로 삼겠다는 환상에 함몰됐다.1 반면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872년 9월 2일에서 7일까지의 헤이그 반대회의 결의안」에서 “프롤레타리아는 유산 계급의 집단적 권력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유산 계급에 의해 설립된 낡은 모든 당과 대립되는 특별한 정당으로 자기 자신을 구성할 때만 계급으로 행동할 수 있다”2고 말했다. 그러나 제2인터내셔널 산하 정당들은 “특별한” 정당으로서 자체적인 입지를 확립하는 대신 당내에서 프롤레타리아와 중소 부르주아의 이해관계 충돌을 방관하는 경향을 빚었다.
레닌의 입장을 견지하였던 볼셰비키는 수많은 정치 논쟁과 실천으로써 제2인터내셔널 산하 당 기관의 기회주의에 대항하며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론을 수면 위로 건져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론을 일관적으로 견지하면서, 레닌은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내부의 경제주의와 추미주의(Khvostism), 조합주의에 맞서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당”─전위당을 추구했다. 그는 노동계급은 오직 임금투쟁에 집중해야 하며, 정치적 운동이 부르주아 계급의 소임이라고 주장했던 경제주의자들에 대항하여 정치의 영역에서 노동계급 정당이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야 함을 역설했다.3
레닌은 의식성을 통해 노동계급의 즉자적인 의식이 보다 높은 수준으로 발전될 수 있다고 보았다. 자생성에 대한 배타적인 옹호는 노동계급의 계급의식을 저해한다. 미래의 지배계급으로서, 노동계급을 끌어올리는 데에 반대하고, 그러한 일환으로서 당의 정치적 지도에 반발하는 것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의 목적의식적 운동을 반대했기 때문에, 스탈린이 『레닌주의의 기본에 대하여』에서 지적했듯이, “자본주의에서 ‘실현될 수 있고’, ‘용납될 수 있는’ 요구들만 제기하는 운동을 선호”했던 것이었다.4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20세기 초반, 러시아 혁명의 전야에서 자생성을 옹호했던 경제주의자들은 정치투쟁을 부르주아에게 맡기고, 노동계급이 아무런 역할도 맡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었다.
경제주의자들의 주장에 맞서 의식성을 강조하며, 운동에 대한 계획적 지도를 옹호·고수하는 것은 볼셰비키의 혁명 실천에서 항상 핵심적인 입장으로 되었다. 레닌에게서 당은 지도와 참여의 통일을 바탕으로 투쟁을 지도하는 “조직된 당”이었다. 1903년 당 규약에 대한 논쟁에서 레닌은 『일보전진 이보후퇴』에서 당원의 자격이 당 차원의 활동에 개입하지 않고 단지 지지만 하는 인자들에게 주어질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며5, “계급과 당을 혼동”했던 마르토프의 입장을 비판했다.6 ‘새로운 형태의 당’은 당원들의 의무적이며 적극적인 활동을 독려했다. 이러한 활동은 전일적인 당적 규율에 의거하며, 그 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레닌주의적 맥락에서 당적 지도와 상향식 참여는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의존적이며, 불가분적인 성격을 지닌다. 스탈린이 지적한 것처럼, “강철같은 규율은 당내에서의 비판과 의견투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전제로 한다.”7
노동계급의 당 내부에서 사상적 통일을 공고화하는 것은 이색적 조류들에 대한 견결한 투쟁을 수반한다. 이러한 이색적 조류들은 분파, 혹은 ‘당내당’의 형태로 나타나며, 당 규율에 해악을 끼치는 동시에 민주주의적 의사결정을 저해한다. ‘분파의 자유’를 용인할 경우, 기층부 당원의 의사가 직접적으로 중앙위원회에 전달되는 것이 아닌 만큼 개별 분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왜곡된다. 그리고 분파의 또 다른 문제점은 당보다 개별 분파들의 평당원에 대한 장악력이 강력해진다는 점에 있다. 이는 실질적으로 여러 개의 ‘중앙위원회들’을 창출함으로써 당 정책의 실질적인 집행을 가로막고, 당을 토론동호회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야기한다.8
분파적 이해와 “당내민주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 독자적인 강령을 갖춘 분파의 존재는 민주주의적 중앙집중제의 실현에 있어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다수의 의견그룹과 소수의 의견그룹의 존재는 민주집중제의 원칙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당에서 물론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기층부 당원들의 토론과 논쟁, 즉 참여는 당적 강령과 규율을 뒷받침하며, 이때의 지도는 강제성을 띠지 않는다. 그러나 독자적 강령을 가진 분파의 활동은 지도에 대한 부정으로서, 자발적인 의지에 따른 당적 규율을 부정하기 때문에 민주집중제에 명백하게 위배된다. 레닌이 러시아 공산당(Б) 10차 대회 보고에서 지적했듯이, 민주집중제의 실현은 기층부 당원들이 소비에트와 당 기구에 직접적으로 자신들의 의사를 여과 없이 전달하여 당에 잠재되어 있는 결점을 규명할 때만이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다.9
2. 레닌주의인가 트로츠키주의인가?
트로츠키가 그랬던 바와 같이, 오늘날의 수많은 트로츠키주의자는 스탈린의 민주집중제가 레닌의 민주집중제와 다르다고 말한다. 그러나 소련과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당 조직’이 ‘현명한 중앙위원회’의, 심지어는 개인의 권위에 의존하여 운영됐다는 견해가 트로츠키주의자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역사를 노골적으로 비방하는 제 세력─‘혁명세력’을 자칭하는 트로츠키주의 조직의 사관에서 노골화한 자유주의적 사관에 이르기까지─은 전연방공산당(Б) 제17차 당 대회를 예시로 들며, 스탈린의 민주집중제가 상부 기관의 무조건적인 복종을 기초로 한 운영 원칙에 불과했다고 적는다. 그러나 하부의 상부를 향한 비판과 상부의 자아비판은 스탈린 당시에도 볼셰비키적 당론의 핵심을 이룬 문제였다.
스탈린은 제17차 당 대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당이 올바른 노선을 작성하여 누구나 다 알도록 공표하고, 일반적인 테제나 결정서의 형식으로 서술할 것을 만장일치로 가결하기만 하면 승리가 저절로 온 것이라고 여긴다. 물론 이는 옳지 않다. … 이러한 성과와 승리는 사실상 자연발생적으로 온 것이 아니라 당의 노선을 관철하기 위한 적절한 투쟁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다. 결코 승리가 저절로 오는 법이란 없다. 승리는 항상 쟁취하여야 하는 것이다. 당의 총노선에 대한 좋은 결정서와 선포문은 다만 사업의 시작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승리하는 희망을 의미할 뿐이지 승리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옳은 당 노선이 제기되고 문제가 옳게 결정된 후의 사업적 성과는 조직적 사업, 즉 당의 노선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조직하고, 사람들을 옳게 선발하며, 지도 기관들의 결정을 전반적으로 검토하는 데에 달려있다. 옳은 결정이 나온 후에는 조직 사업이 정치노선 자체의 운명까지도 포함한 모든 것, 즉 그의 실행이나 혹은 실패까지도 결정한다.”10
전연방공산당(Б) 제17차 대회의 다른 이름은 〈승리자들의 대회〉였다. 당은 트로츠키의 좌익 기회주의와 부하린의 우익 기회주의에 맞서 승리를 쟁취했다. 그러나 이러한 승리는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좋은 결정서’와 향후의 계획을 위한 선포문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스탈린의 언급하였던 바와 같이, 일꾼들을 옳게 선발하고, 지도 기관들의 결정을 전반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행동의 통일은 상부의 강제가 아니라 하부에서 상부에 이르는 전당적 토론과 검토를 통해 형성되며, 당의 총노선은 발의된 이후에도 끊임없이 점검되어야 했다. 스탈린은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 기구 내부에서 민주주의 보장의 방편으로서, 행동 통일 촉진의 방편으로서 자아비판을 강조하였다: “어떤 동지들은 오로지 지도자들이 작업 결과에 따라 사람들을 평가하는 하향식 평가로만 사람들을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물론 하향식 평가는 사람들을 평가하고 작업을 완료하였는지 검증하는 데 필요한 효과적인 수단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하향식 평가로서 평가 업무 자체가 끝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또 다른 종류의 평가로서 상향식 평가가 있는데, 이것은 지도자들이 인도하는 대중들이 지도자들을 평가하고, 지도자들의 실수에 관심을 갖고, 그리고 이러한 실수를 교정할 수 있는 방법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종류의 평가는 사람들을 평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11
스탈린은 이처럼 관료주의에 맞서기 위한 방편으로서 자아비판을 당 조직에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인식했다. 1930년대 당시 소련은 내전 이래로 줄곧 만연했던 인맥, 혈연, 지연에 입각한 관료주의를 근절해야 했다. “승리가 저절로 오는 법”이란 없었다. 스탈린의 말처럼, 승리는 쟁취해야 하는 것이었다. 스탈린적 맥락에서 자아비판은 본질적으로 상부에 대한 비판을 통해 당 내부의 민주주의를 진작시키는 기제였다. 만약 하부가 상부에 대해 무조건적인 복종이 “스탈린적 당”의 특징임이 사실이었다면, 1937년 2월 벨르이 지구 일대의 사례에서 보듯, 상급 당 기구에 대한 소환과 파면, 광범위한 민주주의가 당 중앙위원회에 의해 장려될 수 있었겠는가?
마리오 소사(Mario Sausa)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한다: “1937년 2월 중앙위원회 회의 후 노동자 계급 속의 그러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한 예를 보자. … 예전에는 회의에서 거의 발언을 하지 않거나 소극적이었던 평당원들이 이번엔 연이어 발언에 나섰고, ‘직위에 상관없이’ 거리낌없이 발언했다. 240명의 당원 중 220명이 벨르이 지구위원회의 회의에 참석하였다. 그 중에서 77명이 발언하였고, 지구당 서기인 코발레프를 준엄하게 비판했다. … 코발레프를 거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당원들의 비판은 회의 내내 계속되었고, 혐의 사실의 목록은 길어졌다. 회의는 당원들이 즉시 코발레프를 걷어차고 카르포프스키를 지구당 서기로 선출하는 것으로 종결되었다.”12
스탈린 지도부에 의해 장려된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은 지역 단위에서 끝나지 않았다. 1937년 2월 전연방공산당(Б)은 중앙위원회 회의 후 비밀 투표를 기초로 하여 당 기구의 쇄신을 꾀하고 부패를 일소하기 위한 일환으로서, 1937년 4월에 전국적인 규모의 선거를 실시하였다. 기존에 지도적인 위치에 있었던 당원들은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토론은 길어졌고, 회의록은 세세하게 작성됐다”는 언급에서 알 수 있듯이13, 1930년대 소련의 이러한 사회상은 ‘권위주의’와 거리가 멀었다.
‘좌익’적 인사들은, “지도”를 중앙에 의한 일방적인 집중으로 오인한다. 트로츠키는 1904년에 일찍이 레닌의 민주집중제를 “아시아적 중앙집중주의”의 일종으로 폄하했다.14 민주집중제를 곡해하며, 분파적 이해를 옹호했던 그의 행보는 내전 이후에도 지속됐다. 1927년 15차 당 대회 당시 전연방공산당(Б)의 표결에서 스탈린이 70만 표를 차지했던 데에 반해 트로츠키와 좌익반대파는 약 4천 표에 그쳤지만, 그럼에도 노동계급의 지지와 신임에 기초하여 확립된 당의 강령보다 독자적인 강령의 이해에 충실했다. 트로츠키와 좌익반대파의 행보는 다수파의 강령에 소수파가 순응하고, 추후 강령의 검증을 통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는 민주집중제의 근본적인 원칙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이 당시 스탈린의 서기국이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지 못했기 때문에, 트로츠키는 ‘보나파르트’적 관료집단에 의해 타도된 것이 아니었다.
트로츠키는 분파의 존재가 레닌주의적 민주집중제의 핵심적인 요체라고 주장한다. 이는 사실인가? 당내에서 분파는 물론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분파, 혹은 의견 그룹의 존재는 당적 강령에 입각하여 움직이며 10차 당 대회 보고에서 독자적 강령에 입각한 분파적 활동을 금지했을 때 레닌 또한 ‘일시적’인 금지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혁명 이전부터 레닌은 당 조직 내부에서 수많은 분파적 강령, 파벌조직의 존재를 용인하지 않았다. 분트와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내부의 여러 분파와 사상적, 이론적 투쟁을 전개하면서 레닌은 1900년대 초부터 조직의 양적인 팽창과 “통합”, “포괄적 협의체”를 추구하는 노선과, 당내 당을 지향했던 경향들에 반대하여 기존 조직들의 완전한 통합을 요구했다. 레닌의 볼셰비키 당론(黨論)에 따르면, 기존 조직들은 종래의 조직적 구도와 체계에 천착하는 대신, “새로운 형태의 당”, 즉 전위의 체계 내부에 융합되어야 했다.15 당적 집중은 행동의 통일이 충분한 토론을 거친 후 결정되는 측면을 지니기 때문에 당원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이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를 전제로 삼는다. 당은 동호회가 아닌, 엄연한 정치조직이기 때문에 독자적인 강령을 갖춘 분파는 반(反)레닌, 반(反)마르크스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다.
레닌이 제시한 새로운 형태의 당은 민주주의와 규율의 통일을 전제로 삼는다. 전위의 규율은 민주주의를 통해 확립됐다는 측면을 전제로 삼는데, 이는 토론과 논쟁을 기초로 하여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오늘날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복원할 때, 전위당론을 복기하는 절차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며, 이러한 과정은 트로츠키주의가 집요하게 왜곡하고 있는 민주집중제와 당 조직론을 바로세우는 것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결론
‘전위’에 대한 레닌의 이론은 러시아 혁명과 세계 각국의 사회주의 운동에서 지도적인 동력으로 기능했다. 20세기 사회주의가 소련의 해체로 인해 부침을 겪고 있다고 해서 전위당론의 유효성은 사장되지 않는다. 의식의 불균등성은 ‘자생’적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조직적 지도를 요구하며, 지도는 또한 강학 사업으로 대표되는 교육적 참여로써 보강된다.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극대화하고, 의식적 연속성을 강화할 수 있는 길은 자생성에 대한 숭배가 아니라 이를 고양할 방편, 의식의 불균등성을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방편에 있다.<끝>
2024년 7월 16일
- W. Z. Foster, 『세계 사회주의 운동사』, 제1권, 서울: 동녘, 1987, 161.
- K. Marx & F. Engels, 「1872년 9월 2일에서 7일까지의 헤이그 일반 대회의 결의안」,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제4권, 서울: 박종철출판사, 1997, 157.
- 황인평, 『볼셰비키와 러시아혁명』, 제1권, 서울: 거름, 1985, 40.
- J. V. Stalin, 「레닌주의의 기본에 대하여」, 『스탈린 선집』, 제1권, 東京: 학우서방, 1964, 278.
- 레닌은 당과 계급을 동일시했던 마르토프의 견해를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모든 파업 참가자에게 ‘스스로를 당원이라고 선포할 권리’를 허용한다면, 그것은 기회주의적으로 노골적 허위를 합법화하는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경우 그러한 ‘선포’는 거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훈련받지 않은' 비숙련 노동자들의 광범위한 계층을 짓누르는 끝없는 분열, 억압, 그리고 정신적 마비 상태를 직면하면서, 모든 파업 참가자가 사회민주주의자가 될 수 있고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당원이 될 수 있다고 스스로나 타인을 설득하려 한다면, 안이한 몽상에 빠질 뿐이다. 이 ‘파업 참가자’의 예는 사회민주주의적 방식으로 모든 파업을 이끌고자 하는 혁명적 지향과, 모든 파업자를 당원으로 선포하는 기회주의적 구호만 남발하는 태도 사이의 차이를 특히 선명하게 드러낸다. 우리는 사실상 전체 혹은 거의 전체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사회민주주의적 길로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계급의 당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로부터 ‘당과 계급을 말로만 동일시해야 한다’는 결론을 끌어내는 것은 오직 아키모프류의 인사들뿐이다.”
- V. I. Lenin, Collected Works, Vol. 7, Moscow: Progress Publishers, 1977, 260.
- 「레닌주의의 기본에 대하여」, 『스탈린 선집』, 제1권, 1964, 363.
- 위의 책, 363.
- V. I. Lenin, Collected Works, Vol. 32, Moscow: Progress Publishers, 1977, 243.
- J. V. Stalin, 「전 련맹 공산당(볼쉐위크) 제17차 대회에서 한 중앙 위원회 사업 총화 보고(발취)」, 『스탈린 선집』, 제3권, 東京: 학우서방, 1964, 164-5.
- J. V. Stalin, Collected Works, Vol. 14, London: Red Star Press Ltd, 1978, 282.
- M. Sousa, 「1930년대 쏘비에트공화국에서의 계급투쟁 (4): 쏘련공산당(CPSU)의 숙청과 정치재판」, 『정세와 노동』, 40, 2008: 80-1.
- M. Sousa, 『진실이 밝혀지다: 쏘련 역사에 대한 거짓말』, 서울: 노사과연, 2013, 175.
- L.D. Trotsky, “Part III: Organisational Questions”, Our Political Tasks, 1999, https://www.marxists.org/archive/trotsky/1904/tasks/ch04.htm (2025년 3월 17일 접속)
- Politsturm, “A New Type of Party: What Kind of Organization Do We Need?”, 2021, https://us.politsturm.com/a-new-type-of-party-what-kind-of-organization-do-we-need/ (2025년 3월 17일 접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