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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위원회를 싫어하는 이유, 좋아하는 이유

 
정책위원회 구성원으로서 이런 글을 쓴다면, 아무래도 다들 '변명'처럼 읽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글이 제3자로서의 입장은 담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글을 읽는 당원들이 나름대로 정책위원회가 싫은 이유를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써 본다.

 


[정책위원회를 싫어하는 이유]

 


1. 정책위원회가 제시하는 정책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ㅇ 당원들, 특히 열성 활동 당원들 입장에서 보면, "지역에서 뭔가 지역주민들과 대화하고 일도 벌이고 싶은데 머릿속 가슴속 감동을 주는 정책, 즉 필 꽂히는 정책이 별로 없다."

 

- 우선, 세상에 오만가지 일이 다 문제다. 정책위가 그 오만가지 일에 대한 답을 만들지 못한다면 이런 불만은 해소할 수 없다. 일개 정당의 정책위가 그 거대한 국가기구도 제시하지 못하는 오만가지 답을 다 만들 리 만무하다. 그래서 정책위는 존재 자체가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다.

 

- 그렇다고 '감동을 주는 정책'을 만들 수 없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감동은 '정책적 논리성'이 주는 것이 아니고 '정치적 적합성'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정책위의 정책생산 활동은 '정치적 적합성'에서 취약한 측면이 있다.

 

- 진보정당의 정책의 수준은, 그 사회의 진보적인 지적 활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거의 대부분의 진보진영의 지적 활동은 각 영역별로(정치, 경제, 노동, 복지, 의료, 환경, 교육, 문화, 여성 등) 분절되어 있다. 인간의 삶이란 영역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따라서, 정책이 '정치적 적합성'을 가지려면 영역별로 분절되어서는 안된다. 한국사회의 이러한 지적 환경에서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만이 거의 유일하게 분절된 곳을 연결하는 지적활동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그 힘, 통합의 힘이 아직은 부분적으로만 작동하고 있다.

 


2. 정책위원회가 제시하는 정책을 믿을 수가 없다.

 

ㅇ "다른 정당들과 정부는 뽀대나는 정책을 많이 제시하는데, 정책위가 하는 얘기는 논리적이지도 않고 구체적이지 않다. 맞아, 빈곤해 보인다."

 

- 정책위원회가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는 영역들이 있긴 한데(이를테면 환경), 이 영역들을 제외하면 논리 싸움에서 민주노동당의 정책은 열에 아홉은 무조건 이긴다. 진짜다. 2002년 대선에서 그랬고 2004년 총선에서 그랬다. 지금도 왠만하면 이긴다. 왜냐고? 민주노동당 정책이 완벽하다기 보다는 다른 정당들이나 정부가 하는 얘기가 우리보다 논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 민주노동당의 정책에 대한 믿음은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정말 '믿음'의 문제이다.

 

-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기 마련이라, 당에 대한 자긍심이 없는 당원들, 특히 귀 얇은 이들은 모두, 당의 정책을 믿지 않는다. 그렇다고 당의 정책에 신뢰를 보내지 않는 이들이 모두 당에 대한 자긍심이 없는 당원들은 아니다.(이 대목을 읽을 때는 주의하라!)

 

- 정책에 대한 믿음의 근거는 '논리성'에만 있지 않고 '정치적 적합성'에도 있으므로 믿음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 '정책의 빈곤함'을 느끼는 것은, '정책적 논리성 결여'보다는 '정치적 적합성 부족'이나 '힘의 상대적 빈곤함' 때문인 경우도 많다.

 


3. 정책위원회가 제시하는 정책은 나의 이해관계와 다르다.

 

ㅇ "정책위가 제시한 이 정책은 나의 이러저러한 사정을 해결하지 못한다."

 

- 자신의 특정한 이해관계 때문에 당의 정책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 대표적인 예를 들어보자. 작년 부유세 1단계 법안이 최고위에서 한번 씹힌 적이 있었다. 그때 몇몇 최고위원들이 "1가구1주택 소유라고 해도 양도차익을 2억 이상 얻은자에게 세금을 걷는 건 중산층을 적으로 돌리는 정책이다" , "간이과세제 폐지는 영세 상인만을 당의 적으로 만드는 정책이다"라고 공격했었다.

 

- 이해관계는 경제적 이해관계만이 아니다. 직업적 특성이나 또 다른 요인에 의한 특성 때문에 이해관계가 발생한다. 정책을 만드는 과정은 노조나 시민사회단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이때 정책위는 욕 뒤지게 많이 먹는다.

 


4. 정책위원회는 특정 정파의 정치적 견해를 대변한다.

 

ㅇ "정책위원회는 진정추 조직이 장악하고 있다", "우리 정파의 의견은 애써 무시한다", "정책위원회는 개량주의다" 등등

 

- 정책위원회가 특정 정파, 특히 진정추의 견해를 대변하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나는 이런 얘기 들을면 화가 난다. '나를 진정추 따위로 분류하다니...'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금 진정추가 있나?

 

- 정책위원회가 정책을 만들 때 결국에는 반영되지 않는 정파들의 견해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대체로 그 정파들은, 정책위원회가 만드는 특정 분야의 정책에 대한 견해가 별로 없다.

 

- '민주노동당의 정책은 개량주의, 혹은 의회주의'라는 비판은 지속적인 긴장을 유발할 것이다. 정책위원회가 제시하는 정책은, 어떤 면에서 보면 좀더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이는 '의회에서의 법안 통과', '유권자들의 통념'에서 더욱 자유로와져야 가능하다. 즉, '정치적 적합성'이 정책을 생산하는 주요한 기준이 되었을 때 가능하다.

 


5. 정책위원회는 딴지를 건다.

 

ㅇ "정책이나 제대로 만들지, 내가 하는 일에 딴지나 걸고 있다."

 

- 정책위원회는 사무총국과 각종위원회, 의원단(실)에 딴지 꽤나 많이 걸었다. 그리고 이번엔 몇몇 지방의원들의 감세조례발의 및 동의에 늦게 나마 딴지를 걸고 있다.

 

- 그런데, 이렇게 딴지 거는 걸 정파 문제로 본다면 큰 오해다. 어쨌든 사무총국과 각종위원회를 책임지는 최고위원들과 정책위의장의 정파가 확연히 달랐던 건 사실이었지만, 정파적 배경때문에 딴지를 걸지는 않는다.

 


6. 정책위원회는 오만하다.

 

ㅇ "하여튼 뭐 좀 아는 것들은 재수없어."

 

- 개개인의 능력에도 좌우되기는 하나, 당의 기관으로서의 특성으로 인해 정책위원회는 정보에 있어서 당내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편이다. 그리고, 정책을 고민하는 게 일이다 보니 대체로 정보 분석에 있어서도 훨씬 탁월하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의 독특한 문화 환경 때문인지, 대체로 말빨에서 밀리다보면 말빨 좋은 것들이 재수없게 보이기도 할 것이다.

 

- 기본적인 자질이 있는 당원 중 누구든 정책위원회에서 일하게 된다면 다 그런 오해를 사게 된다. 애초부터 재수없는 것들이 모인 데는 아니라는 것이다.

 


7. 남 일 해주기에 바쁘다 : 정책위원회 내부에서 이는 불만

 

ㅇ "자기 할 일 열심히 해서 성과를 남겨야지, 왜 남의 일이나 대신하고 있어!"

 

- 사무총국과 각종 위원회에서 집행해야 할 사업계획을 정책위원회 구성원들이 작성해 준 사례가 많다 또, 위원회에서 발간하기로 한 선전 자료집들도 내용 뿐만 아니라 심지어 편집까지 해 준 적도 여러 번이다. 이게 다 사무총국과 각종 위원회 명의로 회람되거나 발표되니까 정책위원회 구성원이 했다는 티가 안 난다.(그렇다고 모든 일을 대신했다는 건 아니다)

 

- 정책위원회에서는 올해 보육 사업을 해야겠다고 맘 먹고, 2월에 보육조례표준안까지도 만들어 놓았는데, 이 시점에 비하면 정작 당의 보육 사업은 늦게 시작되었다. 보육 사업 담당 최고위원이 사업계획안 마련을 미루다 미루다 그렇게 되었다. 정책위원회에서 사업 아이디어까지 정리(거의 계획안 수준이었음)해서 줬는데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

 

- 일 잘하는 보좌관들도 꽤 있고, 능력 있는 의원들도 있다. 하지만, 의원실들도 마찬가지다. 몇몇 의원실은 아예 노골적으로 일을 대신해 달라고 한다. 순진해 빠진 정책위원회 구성원들은 그일을 한다. 잘 나가는 의원실들도 한번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떠 넘긴 적이 있다.

 

- 이런 관계는 업무 협력과는 다른 것이다. 물론 대신해주기와 협력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일도 있긴 하겠지만 명백한 '대신해주기'가 많다.

 

- 일을 대신해 주는 건, 당을 위하는 일이 아니다. 지금 당장은 필요한 일을 해결하는 듯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든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본분을 잊는 짓이다.

 


8. 또 무슨 이유가 있을까?

 

- 이 글을 읽는 당원들은 위의 7가지 이유 중 무엇때문에 정책위원회를 싫어하시나. 또 다른 이유도 있을 듯하다.

 

- 나는 개인적으로 1.과 7. 때문에 정책위원회가 종종 싫다.

 


[정책위원회를 좋아하는 이유]

 


- 나는 개인적으로 정책위원회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당원을 본 적이 없다. 다만, 정책위원회를 지지하는 당원들이 있다는 사실은 안다. '좋고 싫음'과 '지지와 반대'는 다르다.

 

- 정책위원회가 제시하는 정책을 지지하는 당원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에 정책위 구성원들은 일을 한다. 당원들 중에 '좋아한다'는 표현을 해 주는 이가 있다면 좀 더 기쁘게 일을 할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