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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꿀한 시절...

 

말걸기는 최근 꿀꿀해졌다. 9월 초가 되자 이제야 백수다운 생활을 하겠구나 생각하며 여유와 함께 다음 삶을 설계해야겠다 마음 먹었다. 물론, 몇 가지 미루어 온 잡일들을 하면서. 그런데, 9월 들어 사람들을 만나면서 꿀꿀해졌다. 꿀꿀해진 이유는 만난 사람들마다 제각각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꿀꿀... 말걸기가 돼지라서 사람 만나면 '꿀꿀'거리나 보다.

 

 

상처 받은 영혼들

 

말걸기 주위에서는 왜 이리 상처 받은 영혼들이 많을까. 그들의 상처를 이해할수록 말걸기도 갑갑해진다. 만남의 자리에서는 그 상처를 감싸주며 딛고 일어서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름대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상처에 덧나지 않도록 조심조심 하면서. 그러다가 그 사람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올 때는 말걸기의 마음도 너덜너덜해졌음을 깨닫는다.

 

말걸기도 상처 받은 영혼인데 그들은 말걸기의 상처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들 스스로의 상처에 갖혀 남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말걸기의 의지가 될 수 없는 자들이다.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상대가 되지 못한다. 말걸기가 큰 아량과 내면의 힘이 있다면 모를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과련 그런 인연은 계속되어야 하는가?

 

 

상처 받고 있는 영혼들

 

아무리 뜯어보아도 소위 '운동판'에서는 잡것들이 주류다. 좌파니 우파니 정체성을 논해도 대부분 잡것들이거나 잡것들이 쳐놓은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매한 것들이 주류다. 나름의 건강한 상식과 신념과 철학을 갖추어도 이런 상황에서 개인의 힘은 무력하기 짝이 없다. 상당한 능력을 발휘해야 할 사람들이 오래된 그물에 걸려 허우적댈 뿐이다. 얼마나 괴로울까?

 

그들은 상처 받으면서도 의연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더 상처를 받는다. 말걸기도 옆에서 함께 개거품 물면서 그 얼토당토 않은 사태에 분노와 조롱을 표하지만, 그랬다고 그들의 상처가 치유되겠는가. 결국 말걸기가 그들에게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손짓

 

만나는 사람 중에는 말걸기와 함께 일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말걸기에게 기회를 제공할 의사가 있다는 것은, 말걸기를 과대평가한 면도 있을 터이고 구제해야겠다는 우정의 발로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의 절박함, 또는 욕심이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말걸기가 원하는 일과 그들이 제안한 일이 얼마나 일치하는 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 간략한 재보기에 따르면 이 일은 이래서 부담스럽고, 저 일은 저래서 부담스럽다. 그리고 이 일은 이 방향으로 가는 길이고, 저 일은 저 방향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말걸기에게는 기로다. 꼭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기로다. 말걸기의 길은 과연 어디인가?

 

 

또 다른 세계

 

말걸기 평생에 만날 것 같지 않았던 사람들과 인연이 쌓이고 있다. 그들은 꼭 특별한 길을 함께 가고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흐름이 있고 분위기가 있다. 말걸기의 가치와는 상당히 동떨어진 가치가 난무하는 무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말걸기가 꼭꼭 누르고 살았던 욕망을 자극하는 세계이다.

 

말걸기에게 그림을 가르쳤던 선생은, "너무 많은 재주를 가지고 있어서 그림에 열중하지 못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과연 말걸기는 또 다른 세계로 질주할 수 있을 것인가? 그곳으로 가다가 문득 '신념'의 부름에 괴로워하지는 않을까? 어쩌면 그 '신념'도 하나의 '욕망'일텐데 말이다.

 

 

은근한 무게, 가정

 

진경맘과 너나나나의 블로그의 포스트들은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다른 이의 경험이 이토록 큰 깨달음을 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깨달음이 한 덩이 무게라면 두려움은 두 덩이 무게이다. 말걸기에게, 스스로 '이래야 한다' 말하는 명제를 충실히 지킬 자질이 있는가 의심스럽다. 그 의심을 파란꼬리와의 잦은 다툼에서 확인한다.

 

 

 

9월은 중순부터 확 꿀꿀해져 버렸다. 피곤해도 잠도 안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