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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스런 울타리

 

파란꼬리의 친구가 지난 일요일 정읍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3월 8일은 파란꼬리와 말걸기의 결혼기념일인데 뭐든 신나는 일을 꾸미고자 했던 우리는, 결혼식 당일 새벽부터 헐레벌떡 수선 떨지 말고 전날 내려가서 여행 기분 좀 내고자 했다.

 

결혼식 전날 저녁 정읍으로 내려간 파란꼬리와 말걸기는 맛없는 정읍 음식을 먹으며 결혼할 친구와 친구의 친구들, 그리고 그들의 짝꿍들과 잠시 놀고선 자정을 넘기기 전에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은 둘의 여행 중 신혼 여행을 제외하고는 거의 유일하게 아침 일찍 일어난 날이었다. 파란꼬리와 말걸기는 시장통에서 국밥 하나씩 먹었음에도 오후 1시까지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가을 단풍으로 으뜸이라는 내장산에 다녀왔다.

 

애초에는 산에 갈 계획은 없었기 때문에 맛만 살짝 볼 요량으로 케이블카를 타고 올랐다. 정장 차림에 구두 신은 사람들을 가끔 산에서 볼 수 있는데, 이제는 나름의 사정이 있어서 그런 '정신나간' 차림으로 산에 왔구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어쨌든 서비스 정신 밑바닥인 내장산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가 근처에 있다는 능선으로 오르고 있었다.

 

 

산비탈의 나무들은 아직 봄의 기운이 없었음에도 매력적이었다. 눈에 보기에도 생김새가 참으로 여럿인 나무들로 숲을 이루고 있었다. 나뭇가지 모양도 가지가지였다. 빛깔이 탁한 이 계절에도 저리 풍성한 느낌을 주니, 가을 단풍은 얼마나 아름다울지 상상만 해도 기대가 되었다.

 

케이블카에 오르다 눈에 확연이 띄는 곳이 있었다. 케이블카가 오르는 능선과 마주선 서래봉 아래 비탈이었다. 푸른 나무숲을 뒤로하고 하얗게 모습을 드러낸 곳이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전망대로 가 보았다. 서래봉 아래 양지바른 비탈에 웅크리고 있는 건 벽련암이었다. 내장산 내장사의 사내암자 중 하나인 벽련암은 660년 백제 의자왕 20년 환해선사가 창건하였단다. 1539년 조선 중종 때 폐찰령에 의해 소실되었다가 1925년 중창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또 소실되었단다. 현재의 전각은 1986년 문화재 관람료로 중창되었고 현재는 설법전이 복원 중이란다.

 

안타까운 역사를 지닌 이 암자는 20세기 후반 건축물이다. 이 20세기 현대 건축물의 특징은 정말 20세기다운 모양새이다. 전망대에서 병풍처럼 장막을 두른 서래봉 능선을 바라보면 눈을 자극하는 곳이 보인다.

 

 

하얀 담장과 도로가 강렬하게 다가왔다. 비탈 한 가운데를 차지한 벽련암에서는 자연에 대한 겸손을 볼 수 없었다. 인간의 문명이란 게 다 그래 보일 수는 있지만 숲과 함께 공존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느낄 수 없었다. 숲을 파헤치고 들어와서는 '여기는 내 땅이다'라고 외치는 듯하다. 왠지 구멍이 뻥 뚫린 흉터처럼 보였다.

 

 

사찰들은 한반도의 산과 함께 살아왔다. 전쟁과 박해로 사라진 건 안타깝다고 할 수 있지만 존재했다는 기록만으로 없어진 그 터에 죄다 현대적 이념의 사찰 건물들을 짓는 게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적절한가 싶다. 저 울타리를 그을 때 얼마나 많은 미물들이 부처를 원망했을까.

 

지난 대선 때 조계종을 비롯한 불교계가 후보초청 토론회를 열었다. 파행이었다지만 그들이 참석을 요구한 후보들에게 보낸 토론 질의 중에 이런 문구가 있다. "불교계가 실질적으로 문화유산을 보호하려는 노력에 비해 정부예산의 지원 폭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면서 "전국 산지에 분포한 폐사지 역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복원과 보존대책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벽련암이든 어디든 내장산 내 사찰 근처에도 가지 않은 파란꼬리와 말걸기는 2,000원씩 내고 국립공원에 입장했다!)

 

2002년 대선 때 조계종은 각 정당에 질의를 빙자하여 이런 요구를 하였다. 익산 미륵사와 경주 황룡사를 지어달라는 요구였다. 10여 년 전에 익산 미륵사터에 가 본 적이 있는데 그 터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주춧돌만 보더라도 그곳은 사찰이라기보다는 궁궐이었다. 그 거대한 사찰을 국민 세금으로 지어주면 자기네들이 영업해서 돈 벌겠다는 속셈을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낸 요구였다.

 

그 당시에 별로 재미를 못 보았는지 5년이 지난 2007년 대선에서는 뭉뚱그려 '폐사지 복원'을 요구했다.  아니 전국 2곳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곳의 복원을 요구하니 탐욕이 더 커진 걸지도 모르겠다.

 

사실 문화유산을 복원한다는 건 주춧돌만 있는 곳에 21세기 건물 올리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 오랜 역사의 사건들의 결과로 현재의 모양이 되었다면 그 모양이 유지될 때만 역사적인 것이다. 복원은 더 이상의 인위적 훼손을 막음으로써 역사성을 드러내고, 그래서 결국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불교계는 지난 대선 후보초청토론회에서 '환경-생태 분야' 질의라고는 아래 하나 달랑 물었다.

 

"이미 우리는 세계문화유산인 불국사석굴암,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전 및 종묘와 세계기록유산인 승정원일기, 팔만대장경판 등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가야산, 지리산, 경주권역은 역사적, 문화적, 종교적, 환경적 가치가 우수한 복합유산이기도 한데요, 후보께서 생각하시는 복합유산의 보존방법, 어떤 것이 있을까요? 또 각 후보 진영에서 제시한 공약 중에 불교환경과 관련된 정책이나 입장이 있는지도 아울러 말씀 해주십시오."

 

자기들 이익만을 위한 단체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말이 나올까. 이해관계가 비슷한 자들끼리 모여서 이익단체를 구성하고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건 나쁜 게 아니다. 돈 버는 자들이 세금도 안 내면서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서 국가 돈 내놓으라는 것도 가증스럽고 생명 존중을 교리로 삼는 이들이 숲의 파괴에 앞장선다는 게 한심하다.

 

산과 숲과 들에 오랜 동안 터를 이어왔다고 해서, 오래 전에 스승의 스승의 스승이 터를 잡았었던 적이 있었다고 해서 산과 숲과 들이 자기네들인 것 마냥 탐욕스런 울타리를 치고자 하는 불교계가 이명박의 대운하를 반대하는 진짜 이유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평소에도 '빽' 좋은 기독교에 밀린다는 의식까지 있는 마당에 이명박이 오만불손하게 하나님을 들먹이니 더 재수 없어서 그런 건지, 산 속에 울타리 친 자기네들 '사유지'가 훼손될까 걱정하는 건지 모르겠다.

 

 

탐욕스런 울타리 만큼이나 케이블카도 인간의 이기심의 결과이니, 아이러니한 내장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