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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1/17
    <부유세-무상교육-무상의료>의 실현 가능성
    말걸기
  2. 2004/11/24
    [기고] 세상 돌아가는 것 좀 읽으시라!
    말걸기

정책위원회를 싫어하는 이유, 좋아하는 이유

 
정책위원회 구성원으로서 이런 글을 쓴다면, 아무래도 다들 '변명'처럼 읽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글이 제3자로서의 입장은 담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글을 읽는 당원들이 나름대로 정책위원회가 싫은 이유를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써 본다.

 


[정책위원회를 싫어하는 이유]

 


1. 정책위원회가 제시하는 정책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ㅇ 당원들, 특히 열성 활동 당원들 입장에서 보면, "지역에서 뭔가 지역주민들과 대화하고 일도 벌이고 싶은데 머릿속 가슴속 감동을 주는 정책, 즉 필 꽂히는 정책이 별로 없다."

 

- 우선, 세상에 오만가지 일이 다 문제다. 정책위가 그 오만가지 일에 대한 답을 만들지 못한다면 이런 불만은 해소할 수 없다. 일개 정당의 정책위가 그 거대한 국가기구도 제시하지 못하는 오만가지 답을 다 만들 리 만무하다. 그래서 정책위는 존재 자체가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다.

 

- 그렇다고 '감동을 주는 정책'을 만들 수 없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감동은 '정책적 논리성'이 주는 것이 아니고 '정치적 적합성'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정책위의 정책생산 활동은 '정치적 적합성'에서 취약한 측면이 있다.

 

- 진보정당의 정책의 수준은, 그 사회의 진보적인 지적 활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거의 대부분의 진보진영의 지적 활동은 각 영역별로(정치, 경제, 노동, 복지, 의료, 환경, 교육, 문화, 여성 등) 분절되어 있다. 인간의 삶이란 영역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따라서, 정책이 '정치적 적합성'을 가지려면 영역별로 분절되어서는 안된다. 한국사회의 이러한 지적 환경에서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만이 거의 유일하게 분절된 곳을 연결하는 지적활동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그 힘, 통합의 힘이 아직은 부분적으로만 작동하고 있다.

 


2. 정책위원회가 제시하는 정책을 믿을 수가 없다.

 

ㅇ "다른 정당들과 정부는 뽀대나는 정책을 많이 제시하는데, 정책위가 하는 얘기는 논리적이지도 않고 구체적이지 않다. 맞아, 빈곤해 보인다."

 

- 정책위원회가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는 영역들이 있긴 한데(이를테면 환경), 이 영역들을 제외하면 논리 싸움에서 민주노동당의 정책은 열에 아홉은 무조건 이긴다. 진짜다. 2002년 대선에서 그랬고 2004년 총선에서 그랬다. 지금도 왠만하면 이긴다. 왜냐고? 민주노동당 정책이 완벽하다기 보다는 다른 정당들이나 정부가 하는 얘기가 우리보다 논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 민주노동당의 정책에 대한 믿음은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정말 '믿음'의 문제이다.

 

-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기 마련이라, 당에 대한 자긍심이 없는 당원들, 특히 귀 얇은 이들은 모두, 당의 정책을 믿지 않는다. 그렇다고 당의 정책에 신뢰를 보내지 않는 이들이 모두 당에 대한 자긍심이 없는 당원들은 아니다.(이 대목을 읽을 때는 주의하라!)

 

- 정책에 대한 믿음의 근거는 '논리성'에만 있지 않고 '정치적 적합성'에도 있으므로 믿음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 '정책의 빈곤함'을 느끼는 것은, '정책적 논리성 결여'보다는 '정치적 적합성 부족'이나 '힘의 상대적 빈곤함' 때문인 경우도 많다.

 


3. 정책위원회가 제시하는 정책은 나의 이해관계와 다르다.

 

ㅇ "정책위가 제시한 이 정책은 나의 이러저러한 사정을 해결하지 못한다."

 

- 자신의 특정한 이해관계 때문에 당의 정책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 대표적인 예를 들어보자. 작년 부유세 1단계 법안이 최고위에서 한번 씹힌 적이 있었다. 그때 몇몇 최고위원들이 "1가구1주택 소유라고 해도 양도차익을 2억 이상 얻은자에게 세금을 걷는 건 중산층을 적으로 돌리는 정책이다" , "간이과세제 폐지는 영세 상인만을 당의 적으로 만드는 정책이다"라고 공격했었다.

 

- 이해관계는 경제적 이해관계만이 아니다. 직업적 특성이나 또 다른 요인에 의한 특성 때문에 이해관계가 발생한다. 정책을 만드는 과정은 노조나 시민사회단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이때 정책위는 욕 뒤지게 많이 먹는다.

 


4. 정책위원회는 특정 정파의 정치적 견해를 대변한다.

 

ㅇ "정책위원회는 진정추 조직이 장악하고 있다", "우리 정파의 의견은 애써 무시한다", "정책위원회는 개량주의다" 등등

 

- 정책위원회가 특정 정파, 특히 진정추의 견해를 대변하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나는 이런 얘기 들을면 화가 난다. '나를 진정추 따위로 분류하다니...'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금 진정추가 있나?

 

- 정책위원회가 정책을 만들 때 결국에는 반영되지 않는 정파들의 견해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대체로 그 정파들은, 정책위원회가 만드는 특정 분야의 정책에 대한 견해가 별로 없다.

 

- '민주노동당의 정책은 개량주의, 혹은 의회주의'라는 비판은 지속적인 긴장을 유발할 것이다. 정책위원회가 제시하는 정책은, 어떤 면에서 보면 좀더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이는 '의회에서의 법안 통과', '유권자들의 통념'에서 더욱 자유로와져야 가능하다. 즉, '정치적 적합성'이 정책을 생산하는 주요한 기준이 되었을 때 가능하다.

 


5. 정책위원회는 딴지를 건다.

 

ㅇ "정책이나 제대로 만들지, 내가 하는 일에 딴지나 걸고 있다."

 

- 정책위원회는 사무총국과 각종위원회, 의원단(실)에 딴지 꽤나 많이 걸었다. 그리고 이번엔 몇몇 지방의원들의 감세조례발의 및 동의에 늦게 나마 딴지를 걸고 있다.

 

- 그런데, 이렇게 딴지 거는 걸 정파 문제로 본다면 큰 오해다. 어쨌든 사무총국과 각종위원회를 책임지는 최고위원들과 정책위의장의 정파가 확연히 달랐던 건 사실이었지만, 정파적 배경때문에 딴지를 걸지는 않는다.

 


6. 정책위원회는 오만하다.

 

ㅇ "하여튼 뭐 좀 아는 것들은 재수없어."

 

- 개개인의 능력에도 좌우되기는 하나, 당의 기관으로서의 특성으로 인해 정책위원회는 정보에 있어서 당내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편이다. 그리고, 정책을 고민하는 게 일이다 보니 대체로 정보 분석에 있어서도 훨씬 탁월하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의 독특한 문화 환경 때문인지, 대체로 말빨에서 밀리다보면 말빨 좋은 것들이 재수없게 보이기도 할 것이다.

 

- 기본적인 자질이 있는 당원 중 누구든 정책위원회에서 일하게 된다면 다 그런 오해를 사게 된다. 애초부터 재수없는 것들이 모인 데는 아니라는 것이다.

 


7. 남 일 해주기에 바쁘다 : 정책위원회 내부에서 이는 불만

 

ㅇ "자기 할 일 열심히 해서 성과를 남겨야지, 왜 남의 일이나 대신하고 있어!"

 

- 사무총국과 각종 위원회에서 집행해야 할 사업계획을 정책위원회 구성원들이 작성해 준 사례가 많다 또, 위원회에서 발간하기로 한 선전 자료집들도 내용 뿐만 아니라 심지어 편집까지 해 준 적도 여러 번이다. 이게 다 사무총국과 각종 위원회 명의로 회람되거나 발표되니까 정책위원회 구성원이 했다는 티가 안 난다.(그렇다고 모든 일을 대신했다는 건 아니다)

 

- 정책위원회에서는 올해 보육 사업을 해야겠다고 맘 먹고, 2월에 보육조례표준안까지도 만들어 놓았는데, 이 시점에 비하면 정작 당의 보육 사업은 늦게 시작되었다. 보육 사업 담당 최고위원이 사업계획안 마련을 미루다 미루다 그렇게 되었다. 정책위원회에서 사업 아이디어까지 정리(거의 계획안 수준이었음)해서 줬는데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

 

- 일 잘하는 보좌관들도 꽤 있고, 능력 있는 의원들도 있다. 하지만, 의원실들도 마찬가지다. 몇몇 의원실은 아예 노골적으로 일을 대신해 달라고 한다. 순진해 빠진 정책위원회 구성원들은 그일을 한다. 잘 나가는 의원실들도 한번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떠 넘긴 적이 있다.

 

- 이런 관계는 업무 협력과는 다른 것이다. 물론 대신해주기와 협력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일도 있긴 하겠지만 명백한 '대신해주기'가 많다.

 

- 일을 대신해 주는 건, 당을 위하는 일이 아니다. 지금 당장은 필요한 일을 해결하는 듯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든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본분을 잊는 짓이다.

 


8. 또 무슨 이유가 있을까?

 

- 이 글을 읽는 당원들은 위의 7가지 이유 중 무엇때문에 정책위원회를 싫어하시나. 또 다른 이유도 있을 듯하다.

 

- 나는 개인적으로 1.과 7. 때문에 정책위원회가 종종 싫다.

 


[정책위원회를 좋아하는 이유]

 


- 나는 개인적으로 정책위원회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당원을 본 적이 없다. 다만, 정책위원회를 지지하는 당원들이 있다는 사실은 안다. '좋고 싫음'과 '지지와 반대'는 다르다.

 

- 정책위원회가 제시하는 정책을 지지하는 당원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에 정책위 구성원들은 일을 한다. 당원들 중에 '좋아한다'는 표현을 해 주는 이가 있다면 좀 더 기쁘게 일을 할 것도 같다.
 

 

 

<부유세-무상교육-무상의료>의 실현 가능성


1.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정책 실현 가능성

 


(1) 제시한 정책이 그 사회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가
(2) 정책을 추구하는 주체가 처한 권력 관계로 보아 정책을 도입할 수 있는 힘이 있는가

 

(2)의 기준으로 따지자면 민주노동당이 제시하는 90%의 정책·공약은, 당장은 실현 가능성 없음. 민주노동당이 '당'이 된 이유는 노동자·민중에게 필요한 정책을 '도입·실현'하기 위해 권력을 키우고자 함임.(지금의 권력관계에서도 민주노동당은 자신의 정책을 일부 실현하기도 함. 이동보장법률 등이 그 예.)

 

어떤 정책이든, (2)의 기준과는 달리 (1)의 기준으로도 평가받음. 분명히 알아야 할 점은, (1)의 기준에 의한 평가도 사실은 이데올로기 투쟁임. 어떤 정치세력이 제시한 정책이 맘에 들지 않는 또 다른 정치세력은, 이를 부정하기 위해 온갖 '객관적 지표'를 제시해 가며 실현 가능성을 훼손함. 이는 우파나 좌파나 다 똑같음.(우파끼리 좌파끼리도 그러함. 민주노동당 내에서도 그러함.)

 

<현실 상황-그로 인한 문제점-정책 대안-정책 효과>를 논리적이고 일관성을 갖도록 구성하여 대중들에게 제시, 그들로부터 그 정책에 대한 지지를 획득하는 것이 바로 정책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는 과정임. 이 과정에서 정책에 대한 지지 기반의 계급적 속성이 드러나게 되어 있음. 즉, 민주노동당의 입장에서 보면 부르조아지들의 세련된 비판을 되받아칠 논리는 마련해야 하나, 그들의 세련된 비판 때문에 당정책을 심각하게 수정할 이유가 없음.(수정하면 계급적 속성이 무뎌져 당의 정체성이 수정될 수 있음. 즉, 지지 기반의 이탈이 형성되고 결국 지지 기반이 달라짐.)

 


2. <부유세-무상교육-무상의료> 정책의 실현 가능성

 


(1) <무상교육-무상의료>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획기적으로 국방예산을 감축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민주노동당의 주장임. 민주노동당 국가 예산 정책은 언제나 국방예산 감축을 적시하고 있음. 다만, 현재상황에서 국방예산을 아주 세세하게 분석하는 데 어려움이 있음. 현재의 정보 수집의 한계(국가권력에 대한 당의 권력의 약소함)를 고려한다면 앞으로는 더욱 적극적으로 국방예산의 감축(동아시아 평화 프로세스의 구체화와 함께)을 주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임.

 

(2) <부유세>로 얼마를 거둘 수 있는가

 

정하기 나름임. 민주노동당은 16대 대선에서 처음으로 <부유세> 과세 기준을 순자산 10억으로 제시했었는데, 3억으로 정할 수도 있고 30억으로 정할 수도 있음. 그리고 세율/누진율도 정하기 나름임. 따라서 사회적 필요에 따라 6조를 거둘 수도 11조(16대 대선에서 제시한 수치)를 거둘 수도 있음. '사회적 필요'가 곧 '사회적 쟁점'은 아님. 따라서 <부유세>의 '사회적 필요'를 어떻게 '사회적 쟁점'으로 형성하느냐에 따라 도입과정에서 부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세금을 거둘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음. 세수의 액수는 <부유세>라는 이름으로 미리부터 정해진 바가 아님.

 

(3) <부유세>만으로 <무상교육-무상의료> 재원이 마련되는가

 

민주노동당은 <부유세> 도입과 함께 이런저런, 그러나 상호 유기적인 조세 개혁으로 사회복지에 투여할 재원을 확보하는 바를 정책으로 삼음. <무상교육-무상의료> 등 사회복지 재원의 확보는, 돈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둔다는 조세 형평의 실현과 함께 불합리한(혹은 부당한) 세출을 줄임으로써 가능함. 즉, <무상교육-무상의료>의 재원을 <부유세>만으로 확보할 이유가 없음. 그리고, <부유세> 도입 등 조세 개혁과 국방비 감축은 충돌하는 정책이 아님.

 

(4) <부유세-무상교육-무상의료> 정책의 실현 가능성

 

<부유세-무상교육-무상의료>는 한국의 경제력을 달성했던 서구의 대부분 국가는 이미 도입하고 있는 정책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음. 따라서, '제시한 정책이 그 사회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가'라는 기준으로 볼 때는 한국사회에서 무리한 정책이라 할 수 없음. 다만, 민주노동당이 '정책을 도입할 수 있는 힘이 있는가'라는 기준으로 볼 때, 민주노동당은 더욱 성장해야 함. 앞서 말했듯이, 정책의 사회적 필요를 대중들에게 설득하여 지지를 획득하는 과정이 바로 정책 실현의 과정임을 확인할 때 비로소, 왜 민주노동당은 <부유세-무상교육-무상의료>를 주장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분명해짐.

 

(5) 정책 도입에 대한 저항

 

<부유세> 등 조세 개혁 조치는 당연히 힘있는 자들로부터 저항이 큼. 마찬가지로 한반도 평화의 정착과 군축을 통한 국방예산의 획기적 감축 또한 힘있는 자들로부터 저항이 큼. <부유세> 도입에 대한 저항을 이유로 <부유세> 도입보다는 국방예산의 획기적 감축이 세수 확보에 더 현실적이라는 근거는 없음. 수구 꼴통을 없애버리면 당연히 공평한 과세와 평등한 재정 운용이 가능하나, '수구 꼴통 없어져라'라고 외친다고 수구 꼴통이 없어지는 게 아님. 민주노동당이 공평 과세로서 <부유세>를, 평등 재정으로서의 <무상교육-무상의료>를 외치면서 대중들로부터 지지를 얻는 과정이 수구 꼴통의 입지를 줄여 정책을 실현하는 과정임.

 


3. 결국에는,

 


<무상교육-무상의료>가 한국 노동자·민중에게 필요한 정책이라면, ①정책의 실현 경로를 합리적으로 구성하고 그 재원을 확보할 방안을 제시해야 하며, ②정책을 대중에게 적극적으로 전파하여 그 정책을 도입할 수 있는 힘을 갖도록 대중들로부터 지지를 획득해야 함.

 

<무상교육-무상의료> 정책이 이 사회에 필요하다는 점을 설파하여 지지를 얻는 만큼 정책 실현의 가능성이 증대되므로, 민주노동당이 <무상교육-무상의료>의 재원으로 주요하게 제시하고 있는 <부유세> 등 조세 개혁에 대한 저항을 이유로 현재의 당 정책을 '사기'라고 한다면, 민주노동당은 어떠한 정책도 제시해서는 안됨.(한반도 평화·통일, 미군 축출 등도 마찬가지)

 

 

[기고] 세상 돌아가는 것 좀 읽으시라!

<월간 네트워커 칼럼 기고문 - 0411122>

 

 

세상 돌아가는 것 좀 읽으시라!

 


이런저런 일도 많고 참으로 시끄럽다. 세상이 시끄럽다는 건 그만큼 역동적인 사회란 뜻이겠지만 시끌벅적 다툰 결과가 우리 사회에 유익하다면야 모든 걸 견디고 이해하겠지만, 우리 귀를 자극하는 소란한 사태 중 여럿은 별 도움도 못되는 싸움이라는 게 문제다.


지난 11월 12일 정보통신부는 KT, 하나로텔레콤 등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에게 31개 '친북사이트' 접속을 차단하도록 명령했다. 정부가 또 사고쳤다.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는 불법통신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번에 차단한 31개 사이트가 제53조 제1항 8호인 '국가보안법에서 금지하는 행위를 수행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에 해당한다며 정통부 장관이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차단 명령을 내린 것이다. 배경에는 국가정보원과 경찰의 요청이 있었다.


정부의 '친북사이트' 접속 차단은, 표현의 자유·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남북관계 진전이라는 측면에서, 국가보안법은 사문화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인터넷 사이트 접근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등등, 어떤 기준으로 보아도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처분이다. 그런데, 그 '친북사이트'들은 예전부터 운영되고 있었고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나름대로 필요와 선호로 '애용'해 왔던 사이트들이었는데, 하필 지금 그런 명령을 내렸을까? 그것도 '대규모'로.


정부는 북한과의 교류를 위해 법률도 만들고 투자도 안내하고 무역도 허하고 관광도 부추긴다. 북한방송을 보여주는 것도 안 말린다. 실컷 그래놓고선 이번엔 '친북사이트'라며 31개를 골라서 차단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마르크스와 레닌의 저작은 웬만한 서점과 도서관에서 다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한국사회가 사회주의 국가가 되진 않았다. 마찬가지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저작이 서점과 도서관, 인터넷 사이트에서 다 볼 수 있다고 해서 한국사회가 북한의 이념을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 사회의 권력은, 허용해서는 안 될 목록은 차츰 줄이면서도 유독 북한과 관련한 목록을 줄이는 데는 신경을 곤두세운다. 북한, 혹은 북한의 주장이 이 사회에 위협이 되지 않으리라는 점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이번 정신분열적 조치는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로 수구세력과 자유주의 세력이 쌈박질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국가보안법은 반공규율을 상징함과 동시에 수구세력의 존재 징표이다. 그 때문에 거대여당은 자기들의 존재 근거를 잃지 않으려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막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사라진다는 것은 87년에 이루지 못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기틀을 다지는 것이며 새로운 합리적 보수주의의 출현을 강제하는 것일 뿐이다.


우스운 건, '친북사이트'야 아무리 막아도 볼 사람은 다 볼 터인데, 우리를 위하는 척하면서 수구세력의 준동에 부응하여 이들 사이트를 차단하는 정부의 작태다. 국가보안법 폐지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한 여당을 얼마나 우습게 알았으면 정부조직이 국가보안법을 근거로 '친북사이트'를 차단했겠냐마는, 대통령과 여당의 무능함을 조롱하기보다는, 오늘은 정부조직을 야단쳐야겠다. 세상 돌아가는 것 좀 읽으시라. 공익과 정의를 위해 일한다는 정부가 '사고'를 칠 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이젠 제발 시대에 뒤떨어진 거 말고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진지하게 머리 맞대고 지혜를 나누고 싶다. 누구랑? 정부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