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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26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살고자하는 마음
  2. 2009/01/19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살고자하는 마음
  3. 2009/01/12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살고자하는 마음
  4. 2009/01/08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살고자하는 마음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진리는 오로지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아버지께 속한 말씀이요 순종하므로 아버지께 갈 수 있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영생을 주시는 빛 되신 아버지께로 인도하지 아니하고 썩어질 육과 영원한 사망으로 들어가고 있는 이 어두운 세상으로 이끄는 말과 글은 전부다 어둠에 속한 언어다. 그것이 비록 유명한 자의 말이요 정치인의 약속이요 그럴듯한 시나 소설이나 영화의 내용이요 사실을 전한다는 뉴스요 유행가 가사요 심지어 목사의 설교라도 진리가 아닌 말과 글은 다 어둠이다.
 
아버지께서는 바로 그런 진리를 오직 아들에게 주셨으며 그리스도께서는 진리가운데 있는 율법과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셋째하늘과 둘째하늘과 이 첫째하늘을 창조하신 후 가장 먼저 아브라함에게 언약과 함께 주신 후 모세를 통하여는 모든 유대인에게 주셨다. 그러자 광야교회에 거하던 유대인가운데 셋째하늘로 올라가 아버지와 영원히 함께 거하길 원하는 자들은 그것을 받은 후 자신의 마음과 몸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지켰다. 또한 당연히 자식의 영혼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니 자기후손들의 손목과 미간에 붙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것을 가르쳐 지키게 했다.
 
그러나 육의 욕심과 교만과 세상의 영광을 좇아간 성전의 지도자들은 지키기 힘든 말씀을 바꾸었다. 그러므로 생명의 율법은 점점 의문의 율법으로 변해갔다. 예를 들어 생명의 율법에는 살인에 대하여 이렇게 되어 있었다. “마음으로 살인한 자는 거룩에 이르기 위하여 마음의 고통이 있을 것이요 실제로 피를 흘린 자에게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공의롭게 심판하시리니 그가 피의 값을 치르겠노라.” 그러나 의문의 율법은 부담이 되는 ‘마음’을 빼버리고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는다고만 가르쳤다. 그리하여 예로부터 유대인들은 늘 마음이 아닌 행위로만 지켜오고 있었다.
 
하지만 광야교회의 유대인들에게 신령한 율법을 주신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을 때 백성들의 영혼을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일을 하는 그 목자들이 바꾼 의문의 율법을 본래에 주셨던 의미대로 올바르게 가르쳐주길 원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과 70인과 군중이 십자가 이후의 신약교회 안에 있을 때 은혜가운데 거하도록 살인에 대한 계명을 다음과 같이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한 형제지간에 미워하는 자와 시기하는 자와 분쟁을 일으키는 자는 아버지께서 그 영혼을 받아주시지 못하시니 그에게 참으로 안된 일이로다. 이는 그가 자기의 한 몸 된 형제를 미워하였으니 아무리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얻고자 하여도 은혜를 얻지 못하리니 그가 사망에 이르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한 형제를 위하며 또한 한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를 얻는 길이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전하신 이 아버지의 말씀대로 십자가 전에 있던 사람들과 그리스도의 후의 사람들을 심판대에서 다음과 같이 공의롭게 심판하셨으며 지금도 그렇게 심판하고 계신다.
 
우선 그리스도의 십자가 전에 있던 영혼들은 육에서 떠났을 때 심판 후 아버지께서 받으시지 못하시는 자는 곧바로 땅속에 있는 무저갱의 불로 들어갔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받으실 자들은 낙원이 있는 둘째하늘에 그들을 두시고 그리스도께서 이 첫째하늘에 내려와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시고 거룩한 육체를 입은 후에 심판대에 앉아 그 영혼들을 심판하셨다. 그러므로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보다 먼저 부활한 자는 없다.
 
한편 십자가 이후의 영혼들은 육에서 나오면 둘째하늘로 올라가 그리스도께 곧바로 심판을 받되 아버지께서 받으시지 못하시는 자들 가운데는 땅속의 무저갱으로 들어가는 자도 있고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으로 들어가는 자도 있고 둘째하늘의 온전케 되는 과정으로 들어가 거룩을 이룬 후 셋째하늘의 의로운 백성이 되는 자도 있다. 하지만 아무나 온전케 되는 그 과정으로 들어가 의인의 영이 되는 것이 아니요 반드시 거듭난 자로서 그리스도의 피를 붙들고 있어야 한다.
 
반면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진리의 말씀에 마음과 몸과 정성과 뜻을 다해 순종하므로 아버지의 뜻을 이룬 영혼들은 썩어질 육의 장막에서 나온 후 그리스도의 심판대로 가서 심판을 받은 후 그리스도와 같은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입고 부활한다. 그러므로 진리에 죽기까지 순종한 영혼들은 아버지의 거룩한 자녀의 생명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심판대에서 자신의 전에 있던 사람들을 공의롭게 심판하신 것처럼 교회시대의 사람들도 지금까지 공의롭게 심판하고 계신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아들을 다시 살리신 후 심판의 권위를 주신 것과 그리스도께서 맏아들이라 인정받으신 것은 육에 계실 때 죽기까지 말씀에 순종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아들과 같은 그 영광스런 생명의 심판에 이르는 것도 이와 같으니 거룩한 육체를 입고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은 오직 끝까지 순종한 자들에게 상급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어떤 사람이 기쁨과 감격과 눈물과 마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평안을 두 사람에게 허락한 후 이런 말을 해주었다. “하루에 세 번 깨끗하게 손을 씻으면 거룩하게 될 것이니라. 하지만 그 행위를 하되 거룩해져서 아버지와 함께 거하겠노라는 마음이 있어야 하노라. 또한 거룩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마음과 몸과 정성과 뜻을 다해 씻어야 하겠노라.” 이 말을 듣자 첫 번째 사람은 아버지와 함께 거하고 싶은 마음을 품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지고 자기의 마음과 몸과 정성과 뜻을 다해 손을 씻으니 얼굴에서 땀이 흘렀다. 또한 그의 온 마음이 오직 하루에 세 번 손을 깨끗하게 씻는 그 시간과 장소에 다 가있었다. 그러다 그는 자기가 들은 말을 기쁨과 감격과 눈물과 마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평안을 얻은 사람들에게 전해줄 기회가 생겼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들은 말을 그대로 전하며 마음을 다해 손을 씻는 행함도 보여주었다. 그리하여 그 말을 전해들은 자들 가운데 아버지께 마음이 있는 자들도 그 말을 전해준 자와 함께 거룩의 능력이 나타나 마음의 소원을 이루었다. 반면 두 번째 사람도 하루에 세 번 자신의 손을 씻었으나 그의 마음에는 아버지가 없었으니 씻는데도 마음이 없었다. 그러므로 손을 씻는 행위는 보였지만 땀과 정성을 드리지 않았으되 오히려 자기가 원하는 일을 위해서는 마음과 몸과 정성과 뜻을 다해 땀 흘리다 때가 되자 하루에 세 번 형식적으로 손을 씻었다. 그러면서 나는 하루에 세 번 손을 씻고 있으니 거룩한 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그 사람도 사람들에게 자기가 들었던 말을 전해줄 기회가 생겼으니 그는 그 말을 전하며 자신의 마음 없는 행위도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것을 보고 들은 자들 가운데 아버지께로 향한 마음과 믿음을 돈과 세상과 바꾼 자들은 그의 말과 행위가 옳다고 여기며 그 시간과 장소에 모여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온 마음과 몸과 정성과 뜻을 다하되 아버지의 뜻을 위해서는 그저 형식적으로 씻었다. 게다가 그렇게 거룩의 모양을 보이며 오히려 거룩을 위해 손을 씻는 자들을 보고는 미쳤다고 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의라는 것은 우선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말씀을 지키려는 그 마음이요 다음으로는 말씀을 지키려는 그 행위를 뜻한다. 하지만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의라는 것은 말씀을 지키는 것이로되 그들이 만일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힘들 때는 말씀을 바꾸어서 그 변화된 말씀을 지켰다. 즉 지키기 어렵거나 지키기 싫은 것들은 그 말들을 바꾸어 자신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을 지켰으며 또한 지키기 쉽게 바꾸어서 지켰다. 그리하여 모세 이후로 그것이 계속적으로 전해 내려와 의문의 율법과 사람의 유전이 된 것이다.
 
결국 그들이 사람에게 거룩하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그 신령한 율법을 지키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이요 아버지께서도 육과 세상에 마음을 빼앗긴 자들에게는 말씀과 진리의 깨달음을 주시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전의 종교지도자들을 따르는 자들은 자기의 위에 있는 자들이 바꾼 그 잘못된 말씀만을 지키고 말하며 행하되 자신이 말하고도 그 말의 뜻을 몰랐고 성전에서 어떤 행위를 하되 왜 하는지를 모르고 행했다. 물론 그들도 말씀을 지키는 경우가 있었으나 잘못된 의도로 지켰으며 또한 자기에게 유익이 있을 때는 지켰다.
 
하지만 할례를 받거나 영이 거듭나 성전의 뜰로 들어간 사람은 이제 말씀에 순종하므로 혼의 구원에도 이르니 거룩에 이른 자가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왕국과 또한 그 후에 올라가는 영원한 셋째하늘에서 왕과 제사장의 다스림에 참여하며 또한 영광의 자유에도 이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를 믿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성전의 뜰만 밟고 가만히 서있지 아니하고 이제는 아버지의 말씀을 마음과 정성을 다해 그대로 지키므로 거룩에 이르러 성소까지 들어가길 원하신다. 즉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낫기를 원하신다.
 
또한 아버지께서도 아들께서도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는 늘 거룩하게 되는 능력의 복을 주시며 말씀에 숨겨진 비밀의 깨달음도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그들은 거룩하고 정결한 한 몸 안으로 모였을 때 자신이 왜 그런 행위를 하는지 깨닫고 움직이며 또한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말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생명의 말씀을 통하여 이 땅의 모형에서 기쁨을 얻고 몸의 소망가운데 거하다 육의 장막을 벗은 후에는 손으로 짓지 아니한 몸을 얻어 실제로 왕과 제사장의 그 다스림과 영광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다해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룩의 복과 말씀의 깨달음을 얻지 못하니 오히려 그 말씀들이 그에게 더욱더 부담이 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므로 영원히 지켜야 할 신령한 율법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육체로 폐하신 그 의문의 율법을 구분하지 못하여 안타깝게도 육의 생명을 마칠 때까지 의문의 율법은 열심히 지키며 거룩의 모양만을 보이되 어리석게도 검은 머리 짐승처럼 은혜만을 구하며 생명의 율법은 버린다. 그리하여 그들은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거룩의 능력이 나타나지 아니하니 육의 생명이 떠날 때까지 이 땅에서 고통과 허무가운데 거하다 나중에는 그리스도와의 다스림과 영광에도 참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어떤 사람이 많은 사람들의 앞에 우뚝 서는 것을 원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싶었으며 사람들이 자기가 한 말대로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만족했다. 그러므로 그는 많은 사람들의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하루에 세끼이상 먹지 못합니다. 큰 차도 굴러가고 작은 차도 굴러가 자신이 가야 할 곳에 데려다 줍니다. 넓은 집이든 좁은 집이든 부부와 자녀들이 등을 대고 잘 수 있으면 족한 것 아닙니까? 높은 곳에 평생 앉아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사람은 썩어질 육의 욕심을 품고 세상의 헛된 것을 얻고자 할 때 불의와 죄악을 범하게 됩니다. 게다가 육신은 점점 후패하고 이 세상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심판을 받아 멸망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거룩한 장막은 아픔과 슬픔과 후회는 없고 영광의 자유가 있으며 아버지께서 기다리시는 셋째하늘은 고통과 이별과 죽음이 없고 영원히 기쁘고 즐거운 곳입니다. 그런데 밝고 빛난 그 좋은 곳에는 거룩한 자라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과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켜 한 마음을 품고 아버지께서 영원한 본향에 쌓아두신 거룩한 육체의 생명에 소망을 두세요. 그리고 십자가에서 이미 아버지의 뜻이 다 이루어졌음을 믿고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마음과 정성과 뜻과 목숨을 다해 말씀에 순종하며 거룩을 이루어가세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작 이렇게 가르친 그의 마음 안에 썩어질 육의 욕심과 자기가 높아지려는 교만과 헛된 세상의 영광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여러 가지 할 일도 많고 사람의 썩어질 육을 도와야 한다면서 적지 않은 돈을 받고 양들의 중간 정도가 적당하다고 말하며 좋은 차를 타고 책이 많고 사람들이 많이 오니 큰 집에서 산다고 했다. 게다가 그는 앞에 서서 가르친 것 중 단 하나에라도 자기의 마음을 다해 순종하는 것이 없었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때에 아버지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는 자가 살고자하는 마음을 포기하고 가르쳐야 할 것을 입술로만 가르치고 행위로는 가르치지 않고 있음은 자신의 마음에 육과 세상의 욕심이 있기 때문이요 정작 자신은 행치 아니하면서도 돌이키지 못하고 계속 가르치는 것은 자신이 바리새인이라는 증거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런 목자를 따르는 것은 그가 바리새인임을 몰라서가 아니요 이미 알고 있으나 그가 가지고 있는 육의 부요와 세상의 영광을 자신도 얻기 위함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전에 있던 바리새인과 장로와 율법사와 랍비와 제사장과 대제사장이 바로 그와 마음을 품고 그와 같은 행위를 하며 영원한 사망으로 들어갔음을 알고 계셨다. 또한 당시에 큰 건물을 붙들고 있던 성전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자신의 십자가 후에 있을 일곱 교회시대의 목자들도 그 길을 뒤따라 걸을 것을 이미 아셨다. 하지만 그들이 영원한 사망이나 영원히 슬피 울며 이를 갊이나 영원한 부끄러움에 이르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그와 같은 길을 걷지 아니하도록 또한 교회시대의 목자들도 그 어리석은 길을 따라가지 않도록 가르치는 자에 대한 예언을 주셨으니 그 말씀의 의미는 이와 같다.
 
“누구든지 가르치기를 원한다면 말씀의 한 가지를 믿고 마음을 다해 순종하여라. 이렇게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아버지께서도 그를 가까이하시되 그렇지 아니하는 자는 아버지께서도 그를 멀리 두시니 그는 영원히 아버지의 얼굴을 뵙지 못하며 그의 음성도 듣지 못하리니 그것이 그에게는 이 땅에 사는 동안 늘 부끄러움이 되며 나중에 아버지의 나라에서는 영원한 부끄러움이 되겠노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유대인들은 옛 언약과 함께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신령한 율법과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그리스도의 십자가보다 먼저 받았다. 하지만 사람은 육신이 연약하니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그것을 다 지키지 못한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유대인들에게 내려주신 옛 언약은 반드시 율법을 완성하는 자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니 유대인이 만일 그것을 완성하지 못하면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처음 들어오셨을 때 자녀 됨의 언약이 성취되지 못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아버지께서는 거룩한 자녀를 얻으시지 못하시니 구약의 경륜은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생명을 주시기 원하시니 한번 세우신 뜻과 계획은 반드시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변함없이 오직 아들을 통하여 이루어가신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거룩한 피가 없었던 그리스도전의 할례 받은 유대인들은 자신의 온 마음과 힘과 정성과 뜻을 다해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둘째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셨던 그리스도께서 거룩에 자신의 마음과 믿음을 두고 애쓰는 영혼의 그 간절한 마음을 보시고 순한 짐승의 피와 속죄제물을 통해 도와주셨다.
 
결국 할례 받은 유대인들 중에 거룩에 이르고자 마음을 드린 자들은 거룩한 제물을 먹고 마시며 거룩에 애썼으니 자신이 지키지 못하던 율법과 계명을 하나씩 이룰 수 있었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죽기까지 순종하므로 더 이상 가인과 같은 인간의 의와 피가 아니요 아벨과 같이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그리스도의 피를 몸의 산 제사로 아버지께로 올려드리므로 그 거룩의 완성으로 나아갔다. 그러므로 그들이 바로 성전에 거하며 사람의 유전과 규례에 따라 의문의 율법을 지키므로 아버지와 원수가 된 독사의 자식들이 아니요 오히려 그들에게 죽임을 당한 구약의 선지자들이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처음 오셔서 십자가에서 부활하셨을 때 무덤들이 열리며 구약의 거룩한 자들도 함께 부활하여 거룩한 성에 들어가므로 옛 언약을 성취했던 것이다.
 
한편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의 이방인들은 신령한 율법과 계명과 법도와 율례보다 십자가의 은혜를 먼저 받는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주신 신령한 율법과 새 계명을 십자가에 담아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새 언약과 함께 주신다. 그러므로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이방인들 중에 그 소중한 마음을 가지고 새 언약의 소망과 믿음을 가지고 아버지의 뜻에 이르기 원하는 자들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자신이 그리스도께 받은 거룩하고 신령한 것들을 지키고자 애쓴다.
 
그러나 이방인도 할례 받은 유대인처럼 육신이 연약한 것은 마찬가지이니 거듭난 이방인도 그것들을 완전히 다 지키지는 못한다. 하지만 구약의 유대인들을 도우셨던 그리스도께서 신약의 이방인들도 도우시니 그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드리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과 믿음을 보시고 이제는 더 이상 순한 짐승의 피가 아니요 십자가의 산 제사로 율법과 계명을 다 이루신 거룩한 생명이 있는 자신의 살과 피로 도와주신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아버지의 신령한 율법이요 나중에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유대인과 달리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오직 인자를 의지하며 자신의 마음과 힘을 다한 이방인도 스스로는 신령한 율법과 새 계명을 지킬 수 없었으나 이제는 인자의 살과 피를 힘입어 하나씩 이루며 나아가게 된다. 그리하여 십자가의 거룩한 산 제물을 의지해 거룩을 이루어가던 이방인도 유대인과 동일하게 죽기까지 순종하는 그 마지막의 완성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즉 이방인도 더 이상 인간의 의와 가인의 피가 아니요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드리므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새 언약을 성취하므로 그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이 거룩에 이르는 것은 그리스도의 전에도 이와 같고 그리스도의 이후도 이와 같으니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든 자들이 자신의 마음과 믿음을 오직 아버지의 뜻에 두고 율법을 지키고자 애쓰며 계명을 지키려고 힘을 다한다. 그러나 육신을 입은 사람이 지키지 못하는 것이 분명히 있으니 그것들에 대해서는 오로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힘입는 자만이 완성시킬 수가 있다.
 
이에 아버지께서는 아들인 그리스도를 의지해 그것을 완성한 자에게는 그의 의롭다 함과 거룩하다 함을 말씀하시며 또한 인정하신다. 그리고 그 칭함과 인정은 좌우로 흔들리는 사람에게서부터 나는 것이 아니요 오직 한 분 신이시며 모든 생명의 근원되신 절대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분께로 얻는 칭함과 인정이다. 그러므로 의롭고 거룩하다는 칭을 아버지께로 받은 자들은 이 땅에서도 오직 아버지의 참된 아들과 딸의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 그러나 그 칭함과 인정을 받지 못한 자들은 그 누구도 또한 인간의 어떠한 노력과 의로도 그 모습을 보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사람이 생명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선 자기의 생각과 의에서 돌이키는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으니 생명이라는 것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요 싸우며 유지되고 이기고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룩한 육체의 부활에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있을 수 없으니 고난에도 구별이 없다. 그러므로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의를 따르는 자들은 아버지의 원수와 그가 공중권세를 잡고 불의와 죄악으로 이끌어가는 이 세상에게 고난도 함께 받는다. 그리하여 그것이 바로 구약의 유대인과 신약의 이방인가운데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며 하늘의 푯대를 소망하는 자들에게 동일하게 임하는 환난과 곤고와 핍박과 기근과 적신과 위험과 칼의 실제적 고난이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니 죽기까지 순종한 유대인에게 옛 언약을 이루어주셨던 것처럼 그와 같은 이방인에게도 새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주신다. 또한 씨를 뿌리고 땀 흘린 후에는 열매를 얻고 고난 후에는 반드시 영광이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새 언약을 믿고 소망하며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세상에서 나와 의를 따른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두 번째로 들어오실 때 거룩한 육체를 입고 비밀의 경륜에 이르므로 그 영원한 약속을 성취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처럼 이 첫째하늘과 땅이 유황불 못으로 변하는 그 천년왕국의 끝에 아버지께서 기다리시는 영원한 본향 셋째하늘로 올라가기 전에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지게 되는 것이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