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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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비가 일주일 동안 낯선 곳으로 여행을 다녀오게 된 자식들에게 이러한 말을 해주었다. “여행가서 낯선 사람이 주는 음료수를 마시거나 쓸데없는 곳에 들르거나 물건들 잔뜩 사오지 말고 할 일을 마치면 곧장 집으로 돌아오너라.” 그 아비는 이렇게 말하고는 여행에 꼭 필요한 만큼의 돈과 단 한 벌의 옷을 입혀서 돕는 종들을 함께 딸려 보냈다. 세 자녀들은 드디어 여행지에 도착해 이것저것을 구경하다 첫째는 아비의 말을 기억하고 아비가 챙겨준 일용할 양식을 먹고 마시며 함께 간 종의 도움을 받아서 자기가 해야 할 일에 열심을 냈다. 그러므로 첫째는 자기가 이루어야 할 일을 다 마친 후에 아비를 위한 작은 선물 하나를 준비해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둘째는 그 낯선 여행지를 보더니 이곳은 너무 좋다면서 여행지에서 살고 싶어했다. 또한 어떤 남자가 준 음료수를 받아 마신 후 자기의 소중한 몸을 그에게 맡기고 신기하다며 음란한 곳을 돌아다녔다. 또한 아비가 준 일용할 양식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여행지에서 돈 벌고 집 사고 새로운 물건들을 하나씩 둘씩 모으며 더 큰 것으로 바꾸는 기쁨을 누렸으나 점점 더 허무함에 빠져들었다. 둘째는 그렇게 자기의 옷을 위해 마음과 몸을 다했으니 나중에는 그 여행지에 쓸모 없는 것들을 잔뜩 쌓아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어리석고 헛된 욕심을 이루느라 정신이 팔려서 정작 자기가 여행지에서 이루어야 할 일은 시작도 못했고 마음은 허무로 가득 찼다. 게다가 자신이 돌아갈 고향과 자기의 아비까지 마음에서 잊어버렸으니 둘째를 돕기 위해 함께 갔던 종은 아비의 뜻을 위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둘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으며 그로 인해 사랑하는 아버지와 형제자매들의 얼굴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반면 셋째는 그 낯선 곳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시작은 했으나 둘째처럼 자기의 옷에 모든 정성을 다 쏟았으니 시작한 일을 마치지 못했다.
이와 같이 낯선 곳에 여행을 갔을 때 그곳에다 곡식을 쌓아두는 사람은 없다. 만일 낯선 사람이 건네준 음료수를 마시고 그것에 취하면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악한 자들에게 다 빼앗긴다. 음란한 세상을 보고 처음에는 놀랍고 신기하지만 그 음료수의 힘을 얻어 점점 더 음란을 담대하게 즐기게 된다. 또한 낯선 여행지에 잠시 일을 보러 갔다 이삿짐과 같은 많은 짐들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오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몇이나 있으리요? 그러므로 여행을 떠난 사람은 낯선 곳에 가서 오로지 자신이 해야 할 일만 마치고 돌이켜 고향으로 속히 돌아오는 것이 지혜요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낯선 곳을 자기의 고향이라고 생각하며 곡식을 쌓아두거나 많은 짐들을 구하고자 애쓴다면 그는 헛된 것에 소중한 시간을 빼앗겼으니 자기가 여행을 떠난 목적을 이루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며 그리하여 자기부모와 형제자매를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혼을 주시고 한 번은 죽어야 할 육을 입히시어 이 세상에 보내셨으니 사람들이 공평하게 받은 오직 한 번뿐인 인생을 사는 동안 사람과 같은 옷을 입고 이 땅에 오셨던 우리의 유일한 구주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보며 깨닫기 원하시는 것이 있으시니 그것은 바로 이것이다. 이 땅은 오로지 나그네길이요 사람은 순례자임을 기억하길 바라신다.
아버지께서는 또한 참으로 그 영혼들을 나그네로서 이 세상에 보내실 때에 아버지께서 하늘에 쌓아놓으신 그 거룩한 육체를 믿고 영광의 자유를 소망하며 그 낯선 곳에서 오직 거룩을 이루고 돌아오길 원하신다. 하지만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면 그가 육의 생명이 있는 동안에 육신의 삶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이 있어야 하니 먹을 것과 마실 것과 누울 곳과 더불어 목숨이 붙어있어야 한다. 하지만 욕심을 부리며 원수의 말을 듣고 원수를 따라 어두운 세상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아버지께서는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오직 필요한 만큼만을 육과 영에 일용할 양식으로 늘 제공하신다.
그러나 거듭난 자라도 이것을 믿지 못하는 자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방인처럼 세상에 들어가 헌 옷만을 위해 살다 돌아가고 심지어 믿는 자라도 원수에게 자신의 마음을 내어주고 원수의 말을 듣는 자들은 먹을 것을 걱정하며 자신만 죽는 것이 아니요 가족의 목숨도 자신이 끊기도 한다. 그리하여 말씀은 원수를 짐승이라 칭하는 것이니 사람이 양심과 이성이 있을지라도 원수의 말을 들으면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자신이 순례자임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마지막에 사망으로 들어갈 이 헛된 세상으로 들어가 썩어질 것을 모으는데 마음과 몸을 다할 수밖에 없으니 그는 인생의 목적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십자가의 첫사랑을 잃고 썩어질 것과 헛된 곳에 마음을 빼앗긴 자들에게 어찌 아버지께서 사람이 사는 이유를 알려주시리요? 알려주셔도 오히려 스스로 거부한다.
한편 양심이라는 말을 사용해도 창조자와 영원한 생명을 구하지 않는 자들이 있으니 그것은 선한 양심이 아니다. 이런 자들은 살고자하는 마음이 없으니 예를 들어 시장에 가 이거 얼마냐고 묻지만 자신에게 안 맞으면 쉽게 뒤돌아 설 정도로 아버지께서 주시는 영생을 가볍게 여긴다. 그러므로 아무리 과학을 파도 철학을 파도 종교를 파도 사람이 사는 이유를 깨닫지 못한다. 게다가 양심을 말하며 오히려 독주를 마시는 자들은 교만이 하늘을 찌르니 인자의 살과 피를 거부하고 인간의 가르침과 수행으로 거룩을 이루고자 노력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주가 우주를 낳았으며 자연이 하나님이라 주장하되 그들이 부르며 섬기는 아버지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가 아니요 셋째하늘에서 독주를 빚고 쫓겨난 원수요 그들이 믿는 아들은 원수와 함께 타락하고 쫓겨난 종들이요 그들이 말하는 성령은 그리스도께 받은 심판에 불만을 품고 무저갱에서 올라와 사람들에게 생각을 주며 비 진리와 세상으로 이끄는 흑암의 세력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아무리 아버지 예수님 성령님을 말하며 사람은 영과 혼과 육으로 된 존재라는 것을 알아도 거룩을 이루지 못하되 오히려 자신의 마음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따르며 원수와 함께 영원한 형벌의 사망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거듭난 후 선한 양심을 품고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아버지께서 입혀주시는 그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새 옷을 믿고 소망한다. 그러므로 그는 이 세상은 잠시 걷는 나그네길이요 자신이 순례자로서 목적을 가지고 이곳에 와 먹고 마시며 숨쉬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도록 썩어질 육체에 있어야 할 것들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오직 필요한 만큼만 늘 제공해주시는 것도 믿는다. 그리하여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기며 의를 따르는 자는 한 평생 헌 옷만을 위해 살다 떠나는 동물 같은 삶을 살지 아니하니 오히려 일만 악의 뿌리와 그 뿌리에서 맺은 썩어질 열매들을 버려 두고 자신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거룩하고 정결한 지체들과 한 몸을 이루어 오늘도 모퉁이 돌 위에서 순례자의 그 목적을 함께 이루어가고 있다.
*순례자: 이 세상이라는 낯선 여행지에 육신을 입고 온 영혼이 하늘의 아버지께서 주신 인생의 목적인 거룩을 이룬 후 다시금 아버지께서 기다리시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가 없는 그 거룩하고 영원한 셋째하늘로 돌아갈 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자가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이용해 많은 자들을 죽이고 싶었다. 그러므로 왼쪽에다 넓은 도로를 내고 크고 작은 금과 의자를 이곳 저곳에 무질서하게 뿌려놓았다. 반대로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한 자가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한 생명을 주고 싶었다. 그러므로 오른쪽에다 나무로 좁은 길을 만들고 그 길을 따라 하얀 종이 다섯 장을 순서대로 펼쳐놓았다. 그런 후 두 갈래의 갈림길입구에 이렇게 써놓았다. “금과 의자는 육에 기쁨을 주겠으나 허무함을 이기지 못하며 저 넓은 길의 끝에서는 썩어져 없어질 것이되 하얀 종이들은 마음에 늘 기쁨과 만족과 평화를 주며 영원히 썩지 않겠노라. 또한 저 넓은 길의 끝에는 사망이 있으나 이 좁은 길의 끝에는 편히 쉴 수 있는 낙원이 있도다. 그러므로 자기가 주인으로 섬기는 것이 왼쪽에 있으면 반드시 왼쪽 길을 오른쪽에 있으면 반드시 오른쪽 길을 걷겠노라.” 이제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다 그 두 갈래의 길로 모여들었으니 첫째 사람은 그곳에 오자마자 코앞에 있는 금과 의자들 가운데 가장 좋아 보이는 것을 들고 그 푯말을 힐끗 보았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생명보다는 생명 없는 것들이 커지는 것에 있으니 왼쪽 길을 열심히 걷되 더 큰 금과 더 높은 의자를 얻으려는 간절함과 또한 그것을 얻을 때마다 느끼는 기쁨으로 인해 첫 번째 하얀 종이를 펴보고도 자신이 지나온 길을 돌아보지 않고 오히려 종이를 구겨버렸다. 또한 그는 자신이 걷고 있는 그 넓은 길의 끝에 죽음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무시했고 자신이 왜 사는지도 몰랐다. 계속해 둘째 사람도 그곳에 와서 금과 의자부터 집어 들었으나 종이를 펴보고는 잠시 기뻤다. 하지만 그는 교만한 자이니 푯말을 대충 읽고 오히려 푯말을 이용해 다른 자들을 비난하고 정죄하되 그의 원함은 첫째 사람과 동일했다. 그러므로 그는 금과 의자를 붙들고 그 위에 종이를 얹은 후 왼쪽 길을 열심히 걸으면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거짓말했다. “나는 믿는 자이니 내 몸과 혀로 범죄해도 결코 정죄함이 없고 나는 이미 마지막 종이를 받았으며 육의 기쁨이 마음의 기쁨이요 사망이 낙원이니라.” 한편 셋째 사람도 그곳에 와서 곧바로 금과 의자를 취했으나 하얀 종이를 얻은 후 기뻐했다. 또한 그 푯말을 읽은 후 금과 의자를 내려놓고 좁은 길을 만든 사람을 주인으로 영접했다. 하지만 잠시 후 마음이 변했으니 오른발은 오른쪽 길에 왼발은 왼쪽 길에 두었다. 그러므로 발걸음을 뗄 때마다 두발이 점점 벌려지더니 가랑이가 찢어지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한 손으로 종이를 잡고 두 손으로 금과 의자를 들고 위태롭게 왼쪽 길을 걸으며 언젠가 비가 내려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지는 않을까 염려했다. 그러므로 잠시 얻었던 기쁨과 만족과 평화를 곧 빼앗겼으며 자신이 왜 사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손에 있는 그 종이 한 장을 보고 자신은 지금 오른쪽 길을 걷고 있으며 또한 마지막 종이도 얻었다고 착각했다. 네 번째 사람도 그곳에 오자마자 당연히 눈앞에 보이는 금과 의자를 먼저 취했으나 하얀 종이를 얻은 후 나무로 길을 낸 사람을 주인으로 영접했다. 또한 그 푯말을 보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천천히 살펴보며 낙원으로 들어가고 싶었으나 안 보이니 믿지 못했다. 하지만 좁은 길을 낸 주인이 그의 간절한 마음을 보고 믿음을 선물해주니 그는 자신이 취했던 금과 의자를 배설물처럼 버리고 첫 번째 종이를 붙들고 주인이 원하는 길을 걸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 길에서 나머지 종이 네 장도 순서대로 다 얻었다. 그리하여 자신의 마음이 원하던 것을 얻은 그는 사람이 왜 사는지를 깨달았으며 또한 힘들어도 기쁘고 즐겁게 그 길을 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른쪽 길은 찾는 이가 적되 왼쪽 길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육체를 지으실 때 두 손을 공평하게 주시므로 누구든지 그 두 손으로 자기의 마음이 가있는 그 무거운 것을 오직 하나만 들 수 있도록 해두셨다. 마찬가지로 공평하게 두 발을 주시어 그 길이 넓든 어둡든 편하든 좁든 누구든지 자기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그 한 길만을 걸을 수 있게 하셨다. 그리하여 마지막에는 자신이 원하던 영원한 사망을 거두든 영원히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든 육신은 멸하고 영혼만 구원을 얻든 그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육체를 얻든 한 마음과 한 인격을 가진 한 영혼이 오직 한 가지만 영원히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에게 생명을 주는 진리를 붙들든 아니면 마지막에 썩어질 물질과 이 세상의 헛된 영광을 붙들든 둘 중에 오직 하나만을 자신의 주인으로 섬길 수 있다. 또한 누구든지 거듭남부터 영원한 셋째하늘의 새예루살렘성전까지 나있는 그 십자가의 길을 그 길의 주인과 함께 걷든 마지막에 사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의 길들을 공중권세를 잡은 자와 함께 걷든 역시 자신이 원하는 오직 한 길만을 택해 걸을 수 있다. 사람은 마음도 하나요 몸도 하나요 인격도 하나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영이 거듭난 후에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오직 의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진리를 하나씩 깨우쳐주시며 또한 천년왕국과 그 천국의 끝에 올라갈 영원한 본향의 비밀도 알려주신다. 그러므로 사람이 왜 숨을 쉬며 사는지 또한 자신은 어제 왜 거기 있었고 오늘은 왜 여기 있으며 내일은 왜 거기에 있을 것인지에 대한 답을 인간의 역사에서 수많은 자들이 알고자 했어도 결코 얻지 못하되 오직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들만이 진리로 그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하여 생명의 말씀을 믿고 하늘의 푯대를 소망하는 자들이 사망의 땅과 흑암에 앉아있던 곳에서 일어나 이미 세상에서 나온 자들과 함께 거룩하고 신령한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거룩에 애쓰며 영광의 자유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의 허무함을 기쁨과 만족과 평화로 바꾸어주는 진리는 오직 본향에 계신 아버지께서 내려주시며 절망과 욕심과 두려움은 땅속에 있는 원수가 올려준다. 그러므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진리를 붙들고 자기의 주인과 함께 그 좁은 길을 걷는 자는 마음에서 기쁨과 만족과 평화를 빼앗는 물질과 자신의 생명을 빼앗는 이 세상을 미워할 것이요 반대로 거듭난 자라도 그것이 없는 자는 아버지의 영원한 나라의 믿음과 소망이 없기에 다시금 불의와 죄악이 가득한 이 세상으로 들어가 오직 썩어질 것과 헛된 것을 취하며 선악을 쌓게 되니 그들의 영혼은 절망과 욕심과 두려움에 감싸이고 마음은 허무하다. 그러므로 며칠 동안 여행을 떠난 자가 볼일을 마치고 곧장 집으로 돌아옴이 마땅하되 악한 자들이 진을 치고 있는 여행지에서 돈을 벌며 살림을 늘이는 자들은 어리석은 영혼들이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어떤 세 여자가 믿음이 부족하니 눈으로 읽은 말씀을 믿지 못했다. 언젠가는 반드시 생명의 열매를 맺기에 썩지 아니하는 씨이며 마음 안에 있는 그 강한 죄를 몰아내기에 거룩한 능력이며 이 어두운 세상에서 밝고 빛난 셋째하늘의 예루살렘성전까지 인도하는 그 십자가 길을 가는 자의 발 앞에 등인 그 빛 된 말씀을 보고도 순종치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다른 자들도 자기들처럼 믿음 없이 말하며 행하는 것을 늘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순종치 못하는 자신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예를 들어 그들이 말씀을 펴서 보니 여자는 거룩한 자들이 함께 모였을 때 입을 열지 말고 집에 가서 남자에게 종용이 배우라고 되어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거룩한 몸에 있을 때 이런 저런 말을 했고 마음으로는 다른 자를 비판했고 심지어 앞에서 남자들을 말씀으로 가르치기까지 했다. 그러니 집에 있을 때는 입을 닫고 남자에게 말씀을 배우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자기가 머리가 되어 남자를 이끌므로 빛을 따르지 않았다. 영이 거듭난 후 아버지와 아들께로 소망을 두는 거룩한 여자는 오직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거룩하게 단장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말씀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는 믿음 없는 그 영혼들에게 큰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베푸셨다. 즉 거룩한 자들이 모였을 때 입을 벌리지 않고 집에서 종용이 남편에게 배우는 한 여자를 보이셨으니 그들은 자신의 눈으로 살아있는 믿음을 직접 확인했다. 이때 첫째 여자는 남편에게 순종하여 자기를 거룩하게 단장하는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을 이전엔 믿지 못했으나 이제는 믿어졌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믿음이 없었음을 깨닫고 돌이켜 말씀에 순종한 그 여자도 결국 큰 구원을 이루었다. 즉 믿음 있는 자가 비추는 빛을 보고 그 빛으로 나아가 자신도 믿음을 얻어 그 빛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여자의 눈이 성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둘째 여자는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 그 거룩한 여자를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보고도 말씀을 믿지 못했다. 그러므로 말씀이 찔러주고 거룩하신 영께서 책망하셔도 남편에게 불순종하는 자신을 돌이키지 못했으니 아버지께로 믿음도 또한 빛도 얻지 못하여 결국 큰 은혜도 얻지 못했다. 즉 눈으로 보고도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긴 것은 그 여자의 눈이 어두웠기 때문이다. 반면 셋째 여자는 자신의 입과 몸으로 늘 범죄하되 회개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자신은 믿는 자이니 믿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당당히 말했다. 또한 거듭남이 무엇인지 어떻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지 몰랐으나 자신은 믿는 자이니 거듭났으며 빛에 거한다고 생각했다. 즉 그 여자에겐 거룩한 믿음을 보기 원하는 눈이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말씀을 믿고는 싶어도 믿음이 부족한 영혼에게는 아들의 거룩한 육체에 있는 창자국을 실제로 보여주신다. 또한 부활을 믿고 말씀과 그리스도의 계명에 순종하고 있는 자들의 그 거룩한 빛도 보여주신다. 이때 사람의 육체가운데는 귀가 들을 수 있듯 오직 눈이 볼 수 있으니 눈이 성한 자는 자신의 두 개나 되는 눈을 통해 빛에 거하는 영혼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도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고자 그 빛으로 향하여 한걸음씩 나아가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의 눈을 통해 온몸이 빛에 거하므로 영이 거듭난 그가 이제는 혼도 거룩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에 있는 눈이 어두운 자는 빛을 보지 못하며 빛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그곳으로 갈 수도 없다. 하지만 거룩하신 영께서 빛을 보이시지 아니하며 빛이 있는 곳을 알려주시지 아니하며 그의 발걸음을 그곳으로 인도하시지 아니함은 보혜사로서 돕는 일을 게을리하심이 아니요 그 사람의 마음이 원치 아니하기 때문이다. 즉 그는 마음속에 그 죄를 붙들고 있으며 그의 마음은 이 어두운 세상에 있으니 행여 그 빛을 본다 하여도 자기 스스로 그 빛을 거부한다. 그러므로 눈이 어두운 자는 영이 거듭난 후에 자신이 거하던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기에 혼의 거룩에 이르지 못하여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과 영광의 자유에도 이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몸에 있는 그 눈이 성하냐 어두우냐에 따라 한 영혼의 생명이 좌우되는 것은 십자가 후로 교회시대마다 또한 마지막 때의 큰 환난에서도 동일하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큰 환난이 다가오는 이 마지막 때의 모든 영혼들에게도 아버지께서 택하신 일곱 교회들이 비추는 그 빛을 공평하게 보여주시고 들려주신다. 아버지의 뜻에 마음 없는 행위와 의문의 율법에 열심인 자들의 거룩한 모양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의 계명을 가지고 세상 끝날까지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 자들의 그 거룩한 능력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자들이 보고도 믿지 못하니 온몸이 빛으로 나오지 못하고 그냥 빛을 비추지 못하는 자들과 함께 거하며 육의 사망이나 슬피 울며 어두운 곳으로 들어간다. 또한 오히려 거짓된 자들과 끝까지 함께 거하며 영원한 형벌의 장소로 들어가는 자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전자가 빛으로 나오지 못함은 눈이 없어서가 아니요 오직 그들의 눈이 어둡기 때문이되 첫사랑을 잃고 영혼의 눈이 어두워진 것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후자가 영혼의 사망으로 들어가는 것도 눈이 없어서가 아니요 자칭 믿는 자들과 함께 모여서 말하며 행하되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적이 없었으니 아예 처음부터 거듭남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전자든 후자든 모든 영혼들이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무슨 핑계가 있으리요?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돈을 넣으면 때로는 돈이 더 많이 나오기도 하지만 때로는 돈만 먹고 돈이 하나도 나오지 않기도 하는 기계들이 있었다. 그리고 입이 매우 큰 사람이 그 기계들이 있는 건물의 제일 앞에 서서 돈을 넣으면 돈이 나오고 문제도 해결된다고 외쳐댔다. 그러므로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돈을 넣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자가 돈에 마음이 있으니 그 사람들의 사이에 앉아서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돈을 넣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정말 돈이 많이 나올 때도 있었고 돈만 먹고 돈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므로 시간이 지나도 돈이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고 거의 그대로였다. 그래서 그가 의심을 품자 사람들 앞에 서서 돈을 넣으라고 외치던 자가 와서 그에게 와 이런 말을 해주었다. “돈이 더 많이 나오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돈을 넣어야 합니다. 또한 돈을 더 많이 넣으면 돈이 더 많이 나오고 문제도 해결될 것입니다.” 입 큰 자의 말을 듣자 그는 큰맘을 먹고 믿음을 가지고 자기에게 있는 돈을 아낌없이 많이 넣었다. 그랬더니 정말로 돈이 많이 나왔고 문제도 해결됐다. 그러므로 그는 결국 도박의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되 자신은 믿음이 좋다고 생각했다. 반면 은혜를 받은 자들이 은혜를 내려준 자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모이는 집이 있었다. 그 집에는 사람들이 모일 때마다 자기의 마음과 몸과 정성과 뜻을 다해 찬양하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은혜를 내려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경건의 능력이 있는 그곳에는 오직 두세 사람이 모여있었고 그곳에도 속이 깊은 통이 있었다. 그런데 은혜를 내려준 자가 어떤 가난한 두 사람에게 그 집에 있는 자들의 거룩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그들도 그곳을 찾아가 한 명은 그 깊은 통에 십 원을 넣고 다른 한 명은 하나도 넣지 못함은 그들에겐 오직 일용할 양식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은혜를 내린 자는 그들이 마음을 드리러 나온 것을 알았기에 그들이 바친 것을 참으로 귀하게 받으며 그들이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친 것이라고 인정해주었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로 헌금을 하든 말을 하든 행위를 하든 그 무엇을 하든 우선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의 마음이 썩어질 육의 욕심과 헛된 세상의 영광에 있는지 아니면 아버지께서 베푸신 십자가의 은혜를 붙들고 있는지를 보신다. 그리하여 그가 어떠한 재물과 말과 행위를 드릴지라도 마음이 없는 것들은 다 헛된 것이요 마음이 아버지의 뜻에 있는 자의 재물은 아무리 조그만 것일지라도 그것이 아버지의 눈에는 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마지막 때에 많은 자들이 영이 거듭나고도 원수에게 첫사랑을 도적질 당하였으니 혼의 거룩에 이르려는 마음이 없으며 영원한 셋째하늘에 대한 소망도 다 빼앗겼다. 오히려 마음에 그 죄의 뿌리를 그대로 두고 불의하고 죄악된 이 세상에서 돈을 더 벌며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원하며 그저 자신과 자손의 육신이 건강하기 바라며 자신과 자식들이 사망으로 들어가는 이 세상에서 잘되기를 바라며 의문의 율법을 열심히 행하며 거르지 않고 돈 통에 돈을 넣고 있다. 그리고는 아버지께로 마음 없는 그 희생의 똥을 향기롭게 받으시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재물을 드릴 때마다 아버지를 속이려 하되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창조하셨으니 외모를 보시지 아니하시고 오직 사람의 마음이 깨끗한지 더러운지를 늘 살펴보신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아시니 거룩과 아버지의 영원한 나라에 마음이 없는 자들과 속이는 자들의 그것들은 오로지 형식일 뿐이요 아버지께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가인의 제사일 뿐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아버지의 뜻을 위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들의 욕심과 계획을 이루는 불법적인 것에 사용되는 것이다.
반면 살고자하는 마음과 갈급한 마음을 가진 자는 그들의 마음이 오직 보화에 있다. 하지만 보화는 사람의 노력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오로지 셋째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사람의 마음을 보시고 허락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힘으로는 아무리 보화를 찾아도 못 찾고 찾았어도 안 보이고 안 들리되 거룩하신 영께서 아버지의 뜻과 때에 따라 그를 숨겨진 보화로 이끄시고 또한 그의 마음에 있는 눈과 귀를 열어주시어 찾은 보화를 보고 듣게 하신다. 그리하여 그가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세상에서 나와 마음을 다해 진리를 따라가 결국에는 그 십자가 길의 끝에서 자신이 받은 은혜를 산 제사로 올려드리므로 그 거룩한 육체를 입고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살고자하는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오직 은혜만을 붙들고 있는 자들은 그들의 마음에서 이미 육과 세상을 버렸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구약의 십일조를 온전히 이루신 것을 믿고 자신도 이미 모든 것을 드린 후 일용할 것을 받아 사용하고 있으니 재물을 드리는 것이 아니요 오직 자신의 마음을 드리며 아버지의 뜻만을 이루고자 애쓰고 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가진 깨끗한 한 영혼이 또 다른 깨끗한 한 영혼과 연합하여 함께 하니 그들은 비록 적은 무리일지라도 아버지께서는 그들에게 보화를 주시며 그 십자가 길의 고난을 지나 영광까지 인도해주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신이 아버지께로 받은 천년왕국과 본향의 모든 영광과 권세를 그들과 나누심은 그들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을 따르며 자신의 한 몸 안에서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마음과 몸을 다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마음과 몸의 가치는 가히 이르지 못하여 아버지의 눈에는 그 생명이 보석같이 귀하고 귀하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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