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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라는 것을 그리스도전에는 오로지 한 영혼이 한 만군의 여호와를 통하여 들었다. 그리고 그 계시의 내용은 오직 아버지의 계획과 아버지의 심판과 아버지의 은혜에 대한 것이었으니 선지자가 먼저 그것들을 알고 믿었다. 그리고 나서 구약의 선지자들은 유대인과 이방인들도 그것들을 알고 믿도록 전해주었다. 이때 그 말씀을 듣고 믿은 자들은 썩어질 육과 사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켜 말씀에 순종해 아버지의 뜻을 이루었다. 그러므로 순종한 자들은 멸망과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을 때 오히려 그 생명에 이르렀다.
한편 계시라는 것을 그리스도의 후에는 아버지의 말씀의 비밀들을 두 사람 또는 세 사람이 함께 듣고 본다. 그리고 나서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아버지의 뜻과 때와 맞게 그대로 전해주어 믿는 자들이 그 길의 마지막을 바라보고 앞을 향해 나가게 한다. 그러므로 진리의 깨달음을 얻은 자들은 육과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켜 이 마지막 때에도 거룩을 이루어가고 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룬 자들 가운데서 정결한 신부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들림을 받고 또한 환난으로 들어간 자들이 환난복음을 다 전한 후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므로 그 생명에 이르는 것이다.
그런데 계시를 받을 때 이렇게 받는 자가 따로 있고 선포하는 자가 따로 있는 것은 초대교회도 교회시대의 모든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한 자가 받고 같은 자가 선포하게 되면 그것이 진리일지라도 사람들이 믿지 못하고 오히려 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람 이상이 함께 듣고 또한 비밀을 깨닫고 선포하며 이것이 진리이다 할 때는 오히려 다른 지체들도 의심이 없이 그 진리를 따라간다. 그러나 의심이 끝까지 생기는 자들은 그들과 함께 거하지 못하여 떠나간다.
예를 들어 초대교회 당시의 바울은 처음에는 안디옥교회에서 그 지체들 가운데 함께 하는 자들과 함께 들었으며 두 번째로는 디모데와 함께 하였다가 그 후로는 바울과 함께 있었던 자들과 함께 들었다. 또한 요한도 그가 가장 아끼던 제자가 있었으니 그 제자와 함께 듣고 함께 보았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그 자들을 가리우시는 것은 사람이 가리워지고 오직 아버지의 그 뜻만을 찾도록 그렇게 행하시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또한 자신과 아들의 그 소원대로 계시를 주실 때 그리스도의 전이든 교회시대든 기준이 있으시다. 그러므로 오로지 연약하고 지혜도 없고 오직 한 길로만 가는 자를 택하시니 그 자가 들을 것이요 선포하는 자도 지혜도 없고 또한 말도 더듬거리되 오로지 진리만을 믿고 그 길로만 걸어가는 자를 택하시어 선포하게 하신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그 섭리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초대교회 때에도 또한 교회시대에도 또한 이 마지막 때에도 또한 세상의 끝날까지 이루어져가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만일 그렇지 아니한 자를 택하신다면 그는 자신의 생각을 따르거나 사람의 말을 들으리니 그가 어찌 그리스도를 따르며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리요?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를 통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그 소원이 이루어지리요 아님 그가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리요?
하지만 그리스도께 은혜를 얻은 요한은 아버지의 기준에 맞는 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지혜도 없고 말도 더듬거렸으나 거룩하신 영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았기에 그 복음서를 기록할 수 있었다. 또한 계시를 통해 자신이 본 환상과 들은 음성을 즉 마지막 날에 실제로 있을 일들의 비유를 이방의 교회들에게 전해주었다. 그리하여 당시의 신령한 교회들로 하여금 그 날을 끝까지 기다리며 또한 소망하게 했다.
이렇게 계시를 통해 아버지와 아들의 소원과 또한 그 섭리가 이루어지는 것은 환난으로 다가가는 이 마지막 때의 믿는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은 진리를 듣고 마음을 돌이켜 전통과 이 세상에서 나와 거룩에 애쓰며 오직 그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끝까지 진리를 의심하는 자들은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거룩한 공동체를 떠나가나 그곳은 사람이 자기의 힘으로 나오거나 거부할 수 없는 두려운 세상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불의와 죄악이 가득하니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세상을 따른 그들이 어찌 거룩을 이루어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에 이르리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깨달음을 얻지 못하여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으신 것은 오직 이 땅에 와서 물의 침례를 받을 때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미 태초에 아버지의 계획가운데서 아들은 아버지께로 모든 것을 받으셨으며 모든 것을 이루셨으며 모든 것을 다스리셨다. 그리하여 자신이 창조한 이 땅에 자신이 창조한 사람과 같은 그 육신을 입고 그리스도로서 내려와 그 거룩의 일을 다 이루셨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의미와 그 사역이 무엇인지 또한 나의 생명과 그리스도가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한 가지 비유를 통해 알 수 있다.
한 의로운 왕이 아들을 한 명만 낳아서 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왕은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백성들 가운데서도 자기의 의로운 자녀들을 얻고 싶었다. 그러므로 어느 날 자기의 아들에게 이러한 말을 해주었다. “아들아 나는 왕궁밖에 있는 백성들 가운데 오직 너를 믿고 따라오는 자들을 나의 자녀들로서 또한 너의 형제자매로서 삼기를 원하는 도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루도록 나의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노라. 그러므로 백성들이 입는 옷을 입고 나가거라.” 이에 그 아들은 이러한 질문을 했다. “그런데 백성들이 자기들과 똑같은 옷을 입은 제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요?” 이 질문에 그 왕은 이런 대답을 해주었다. “너는 나의 아들이니 내 말의 뜻을 알고 있노라. 그러므로 내 말의 뜻을 알려주면 네가 나의 아들임을 그들이 믿을 것이니라. 또한 마지막에 나의 사랑의 징표를 높은 산에서 보여주면 알리라. 그래도 믿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믿고자 하는 자에게는 새롭고 확실한 증거도 보여주거라. 그러면 그들이 왕자와 공주가 입는 옷을 너를 통해 입게 될 것임을 확실히 믿겠노라.” 이제 그 아들은 백성들이 입는 옷을 입고 왕궁 밖으로 나가서 왕의 말을 전해주었다. 그랬더니 어떤 사람들은 그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고는 그것은 왕의 말임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말을 통해 그가 왕의 아들임을 알았다. 그리고 어떤 자들은 그 사랑의 징표를 보고 믿었으며 어떤 자들은 새롭고 확실한 징표를 보고 알았다. 그러므로 그의 말과 징표를 보고 듣고 그것을 알게 된 20명은 그 왕의 아들을 따라가 모두다 왕자와 공주가 입는 옷을 입고 왕의 자녀들이 되었다. 그러나 다른 백성들은 동일한 것을 듣고도 보고도 또한 확실히 보고도 깨닫지 못했으니 그들은 의로운 왕자와 공주가 되어 왕궁에 거하는 것보다는 세상을 즐기는데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그 선하시고 기쁘신 생명의 뜻을 이루시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아들에게 주셨으니 이것이 바로 기름부음의 의미이다. 그러므로 예수라는 그 이름을 받으신 그 인자가 바로 오직 한 분 신이시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께로 기름부음을 받으신 그리스도시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모든 것은 오직 아들과 딸들이시다. 그러므로 아들은 아버지의 모든 것을 가지고도 아버지의 그 뜻과 계획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놓았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통해 아들에게 거룩한 육체를 허락하셨으며 또한 아들인 그리스도를 따라 그 길로 따라오는 자들에게도 아들이 입은 것과 같은 그 거룩한 육체를 주신다.
또한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주셨으나 그 아들께서는 모든 것을 자신의 거룩한 형제자매들에게 나누어 주시되 그들이 아버지의 그 뜻대로 행한 대로 공평하게 나누어주신다. 자신이 아버지께로 모든 것을 받은 그리스도시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이처럼 그 생명과 또한 다른 상급들도 오직 그 아들을 믿고 따르는 자에게 주시고자 계획하셨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것을 얻으려면 육과 이 세상이 아니요 그 어떤 다른 사람도 아니요 오직 아버지의 아들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그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한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자들이니 자신에게 그 생명을 줄 수 있는 그리스도를 기다렸다. 그러므로 2천년 전에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유대인들은 표적을 보려고 혹은 육적인 것을 얻으려고 인자를 따라다닌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지 아닌지를 분별하고자 그를 따르며 그가 하는 말을 유심히 들었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또한 부활하신 후의 그 거룩한 육체를 통하여서는 확실히 믿었다. 그리고 믿음을 얻었으니 자신도 그 생명을 얻고자 그리스도를 따라 그 십자가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유대인들은 아버지와 아들은 안다 하면서도 육의 욕심과 필요를 가지고 이 세상에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전하시는 그 말씀을 듣고 그것이 진리인지 아닌지 그가 아버지의 아들인지 아닌지를 알고자 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쉽게 분별하고자 그저 표적만을 구했다. 그러나 표적은 원수도 행하는 것이다. 게다가 거룩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요 썩어질 육과 사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의 것들을 얻으려고 군중으로서 따라다닌 거짓된 자들도 많았다. 또한 불의한 자신을 의롭고 깨끗하게 여겼으니 알아도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은 자들도 있었다. 그리하여 심지어 아버지와 아들을 안다 하며 그 아들을 잡아서 죽인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을 거부하고 진리를 따르지 않은 그들은 마지막에 모두다 사망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당시에 있었던 이러한 일들은 교회시대에도 또한 이 마지막 때에도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전자의 마음을 가진 영혼들은 갈급함을 가지고 오직 말씀의 깨달음을 구하며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거룩한 육체만을 바라본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갈급한 자의 마음눈을 열어주시어 진리를 찾고 또한 깨닫게 해주신다. 그리하여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은 이 마지막 때에도 오직 진리만을 믿고 따르며 아버지의 그 뜻만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배가 아무리 고파도 음식을 찾아먹지 않는 것처럼 게으른 자는 전통에 그대로 주저앉아서 진리를 찾지 않는다. 깨끗한 음식은 버리고 더러운 음식을 먹는 것처럼 진리와 십자가가 밝히 보여도 마다하고 눈에 보이는 말과 귀에 들리는 말을 찾아 다니는 거짓된 자도 있다. 자신을 의롭게 여기니 알아도 따르지 않는 자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꼬임을 받아 진리를 따르지 못하는 것은 그 꼬임이 강해서요 아님 자신이 후자의 마음을 가지고 돌이키지 않기 때문이요? 그러므로 누구를 탓하리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한 나라의 모든 신하들이 자기의 왕 앞에 나갈 때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그 신하들은 자기의 몸만을 꿇고 숙이지 아니하고 마음도 그러했으니 그것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그 왕이 의롭고 정직하고 깨끗한 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그 왕의 동생들도 마찬가지였으니 그들이 비록 왕의 혈육이요 자신들도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있었지만 자기의 형과 오빠가 가진 그 왕의 권위로 인하여 그의 앞으로 나갈 때는 역시 몸과 마음이 무릎을 꿇고 숙였다. 하지만 그 왕은 자신에게 권위가 있다 하여도 자신과 한 피를 나눈 그 동생들을 늘 왕궁으로 불러 함께 만찬을 나누며 기뻐하며 즐거워했으며 또한 섬겼다. 이렇게 그 왕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것은 그 나라의 모든 백성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비록 그 왕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신하가 왕의 명을 가지고 오면 역시 그들의 몸과 마음도 왕이 거하는 왕궁이 있는 쪽으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그 말을 받았다. 그러나 마음이 악한 죄인은 이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어떤 죄인이 자신의 욕심을 위해 범죄하고도 끝까지 뉘우치지 아니하고 오히려 죄를 더 지으려고 했다. 이에 그 왕의 신하들이 그를 결박하여 왕의 앞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랬더니 그 죄인은 몸은 비록 왕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기는 했지만 이러한 생각을 했다. “만일 저 왕의 의로운 다스림이 없었다면 나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고 내가 원하는 그 죄를 계속 범할 수 있었을 텐데. 저 왕이 범죄를 많이 저지른 자라면 나를 심판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의 가까이에 두고 자기의 신하나 친구로 삼았을 턴데.” 그 죄인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오히려 그 왕을 미워하고 저주했다. 그러므로 그 죄인은 왕의 앞에서 몸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되 마음은 그렇지 않은 그것을 통해 자신이 불의하고 악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거했다. 한편 그 왕이 자기의 아버지 앞으로 나갈 때는 이러했다. 그러므로 그 왕이 자기의 아버지를 만났을 때는 아버지가 그 아들에게 무릎을 꿇거나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아들이 왕이라 할지라도 자기를 낳고 기른 자기의 아버지에게 그렇게 하며 몸과 마음을 다해 섬겼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 태초에 아들에게 지어주신 그 귀한 이름의 세 번째 의미는 왕이니 아버지께서는 바로 이러한 왕의 의미를 그 이름에 넣어두셨다. 그리고 이 세상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아니하는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그 아들은 이 땅에 내려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여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셨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모든 자들이 그 아들의 희생을 통해 거듭남의 은혜를 얻는다. 또한 자기의 생각과 세상에서 돌이켜 그 아들을 따르는 모든 자들이 그 왕의 다스림을 받으니 그들은 마음에 변치 않는 평화와 기쁨을 누리다 마지막에 온전한 구원의 은혜를 얻는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모든 만물이 다 왕이신 그리스도의 앞에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순복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베푸신 그 십자가의 은혜를 원치 않은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욕심과 불의와 죄의 기쁨을 놓지 못하여 그 은혜를 거부한 자들도 그 유황불 못에서 무릎을 꿇으며 그들의 영이 그것을 고백하게 된다. 또한 타락한 천사들과 그들의 대장도 그 뜨거운 곳에서 그리스도를 창조의 왕으로 인정하되 그들의 고통은 그대로 임한다. 아버지께서는 누구든지 끝까지 돌이키지 않은 자들의 불의와 죄악에 대해서는 아들을 통해 의로우시고 정직하시게 한번 심판하신 그것을 바꾸시거나 돌이키시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조된 모든 인격체들과 만물이 이렇게 그 이름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 하여도 아버지께서는 그 아들에게 무릎을 꿇으시지 않으신다. 오히려 왕의 이름을 가진 그 아들이 자신을 낳으시고 그 왕의 이름을 지으시어 자신에게 붙여주신 후 모든 만물을 자신의 발아래 두신 그 아버지께로 무릎을 꿇고 섬긴다. 그러므로 아버지 외에는 모든 자들이 무릎을 꿇게 되는 그 이름보다 더 의롭고 거룩하고 높은 자가 없다.
아버지께서는 또한 그 이름으로 생명을 주시되 불의와 죄악 외에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생명을 주는 이름으로서 계획하셨다. 그러나 만일 부활한 육에 질병과 고통과 아픔과 슬픔과 이별과 늙음과 죽음이 있거나 혹은 그 육에 한계가 있어서 어떠한 물질에 막히거나 하늘과 땅과 물로 마음대로 다니지 못하거나 한다면 그것을 어찌 신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또한 세포처럼 작은 것들을 한눈에 보지 못하거나 또는 수많은 생명체들을 그 안에다 넣어 거대한 도시와 같이 만들지 못하거나 태양의 빛보다 더 느리거나 시간을 초월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신의 생명이라 할 수 없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며 또한 그 무엇도 막지 못하는 그 자유로운 육체의 생명을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말씀에 순종하므로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싸워 이긴 모든 자들에게 주신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 생명을 얻은 것은 왕이요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로 섬기고 따르며 말씀에 순종하므로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었기 때문이요 자신이 따른 그 분은 그 신의 생명을 줄 수 있는 그 생명의 이름을 오직 한 분 신이신 아버지께로 받으셨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어떤 거룩한 자가 늘 선한 마음을 품고 올바른 생각과 말과 행위만을 하며 죄와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성도가 가만히 보니 어떤 사람이 자신의 욕심과 교만을 이루고자 거짓말을 했다. 이에 거룩한 자는 죄에는 사망의 심판이 있음을 알기에 그를 불쌍히 여겨 그가 생명의 심판에 이르도록 하얀 책을 펴 지적해주었다. 그러나 범죄한 자는 성도에게 지적 받고도 생각과 말과 행위를 돌이키지 못함은 욕심과 교만을 돌이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하던 자들은 돌이키지 못한 자를 옳지 않다고 판단했으나 책으로 지적해준 성도는 의롭고 온전하다고 판단했다. 이번에는 자신을 돌이키지 못한 그 사람이 동일한 이유로 자신처럼 거짓말하는 다른 사람을 보았다. 이때 돌이키지 못한 자는 입을 닫지 않고 오히려 하얀 책을 펴더니 거짓말은 옳지 않다고 되어있는데 당신은 어찌 이렇게 행하느냐며 지적해주었다. 또한 상대방의 거짓말에 대해서는 소리를 높여 비판하되 자신은 믿는 자이니 거짓말을 해도 죄가 없으며 오히려 의로운 자라고 여겼다. 그러자 지적 받은 사람은 마음에 들보를 그대로 놔두고 있는 사람에게 당신이나 잘하라고 했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그에게 어리석은 바리새인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이와 같이 다른 사람의 잘못된 생각과 말과 행위와 실수를 어찌 잘못된 생각과 말과 행위와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자가 판단하거나 혹은 비판하는 것이 옳겠는가? 그러므로 거룩하고 정결한 공동체와 또한 그 한 몸에 거하고 있는 거룩한 가정에서는 다른 사람의 죄와 허물을 보았을 때 우선 자신에게 그와 같은 것들이 있는지 없는지를 돌아보는 것이 옳다. 또한 자신이 그 십자가의 길에서 말씀과 기도와 인자의 살과 피로 온전해졌을 때에도 자신의 의와 생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아버지의 말씀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옳다.
한편 온전한 사람이 잘못된 생각과 말과 행위와 실수를 한 그 영혼에게 이것은 잘못되었다 지적할 때는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생명을 위하여 특히 그것을 돌이키는 것이 옳다. 그리고 그가 은혜를 받은 자라면 자신을 온전함과 거룩에 이르도록 자신을 지적해준 지체에게 감사한 마음을 품는 것이 마땅하다.
사람은 이렇게 거룩하고 신령한 지체들과 함께 하며 자신도 역시 말씀에 순종하며 또한 아버지께로 부르짖으며 또한 인자의 살과 피를 의지하므로 아버지의 뜻에 이른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거듭난 후에 의롭다 하신 영혼들과 거룩하다 하신 영혼들이 육신의 장막에서 나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섰을 때 생명의 심판을 내리시니 거룩하다고 인정받은 자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거룩한 육체를 입는다. 그리하여 영광의 자유에 이른 자들이 천국에서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린 후 셋째하늘에 올라갔을 때에 24장로와 장자와 자녀와 또한 신령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아버지와 아들의 품에 영원히 함께 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반드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아버지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수 있으니 영의 거듭남을 얻은 자들 가운데 육신의 기회가 있을 때 혼의 거듭남을 이루지 못한 자들은 온전하게 되는 그 과정에서 거룩을 이루므로 온전케 된다. 그리하여 그 과정에서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은 자들이 자신처럼 온전케 된 의로운 영혼들과 함께 셋째하늘에서 아버지의 의로운 백성으로서 영원히 거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사람들이 더 큰 구원에 이르길 원하시니 이 세상에 있을 때 거룩에 이르므로 아버지의 백성보다는 아버지의 자녀가 되는 그 권세와 언약을 이루기 원하신다. 그러므로 피의 은혜로 영이 거듭난 백성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늘 지적하시는 것은 그들의 깊은 속에 있는 마음과 혀와 생각이다. 그리하여 그것을 돌이키는 자들은 나중에 그리스도와 함께 성소에서 아버지의 자녀요 그리스도의 형제자매요 신령한 교회로서 거하겠고 돌이키지 못하는 자는 시온산에 있는 그 새 예루살렘성전으로부터 먼 곳에서 거하게 된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아버지께서는 태초에 자신의 품에서 낳으신 그 아들의 이름 안에 세 가지의 의미를 넣어두셨으니 두 번째 의미는 온 세상이 똑같이 부르며 생명에 이르는 이름이다. 다음과 같은 비유를 통해 예수라는 이름의 그 두 번째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자기의 백성들이 의롭고 깨끗하게 되기를 원하는 왕이 있었다. 그런데 그 왕은 아들을 낳고서 감히 백성들도 참으로 부르기 쉬운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자라서 이제는 자기에게 사랑과 은혜와 훈계를 베푼 아버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아이는 아버지가 자기를 늘 부르는 그 이름에 담긴 뜻을 알기 원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지어서 붙여준 아버지에게 자기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그 아버지는 이런 말을 해주었다. “나는 너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백성들에게 내가 가진 소중한 진주를 공평하고 의롭게 나누어주고 싶노라. 하지만 만일 남자에게만 진주를 주고 여자에게는 주지 않거나 돈이 많은 자에게는 주고 가난한 자에게는 주지 않는다면 그것이 어찌 공평하다 하겠느뇨? 그러므로 지위가 낮고 배움이 없는 자들에게도 진주가 공평하게 허용되는 것이 옳도다. 또한 나의 말에 순종하며 진주를 구하는 자와 불순종하며 진주를 구하는 자에게 똑같이 진주를 준다면 그것을 어찌 의롭다 하겠느뇨? 만일 불순종하며 있는 자에게 똑같이 진주를 주는 게 의롭다고 한다면 과거에 불순종한 그가 마음을 돌이키지 않아도 오늘 진주를 주어야 하니 내가 어찌 나의 백성이 어제처럼 똑같이 내일도 불의하고 더러움을 행하도록 하겠느뇨? 하지만 그가 과거에 불순종했어도 오늘 마음을 다하여 뉘우치는 자에게 진주를 주어 내일의 기회와 소망을 얻게 하는 것이 오히려 의로운 것이 되겠노라. 또한 나의 말에 순종하며 진주를 구하는 자에게는 더욱더 큰 진주가 주어지는 것이 공평하노라.” 그 아들은 자기아버지의 말을 가만히 듣고는 자기이름에 담긴 의미를 깨달았다. 그러므로 백성들에게 가서 이렇게 전했다. “누구든지 왕에게 진주를 받기 원하는 자는 나의 이름을 정직하게 부를 것이요 나의 이름을 더욱더 정직하게 부르는 자는 더 큰 진주를 얻겠노라.” 그러자 백성들 가운데 어떤 자들은 그 아들의 이름을 정직하게 부르며 왕의 말에 순종했다. 그러므로 그 왕은 하나의 진주를 그들에게는 베풀어주었다. 하지만 그 아들의 이름을 거짓되게 부르는 자들에게는 진주를 내리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의 진주를 얻는 자들 가운데 어떤 자들은 왕의 마음을 이해하고 왕의 뜻을 이루기 원했으니 그 아들의 이름을 계속해 부르며 왕의 말에 순종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더 큰 진주를 베풀었다. 하지만 진주를 얻은 후 거짓되게 부르는 자들에게는 더 이상 큰 진주를 주지 않았다. 한편 백성들 가운데 어떤 자들은 왕의 말에 불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품고 있는 것이 좋았으니 그 아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 왕은 아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은 그들에게는 진주를 내리지 않고 오히려 의롭고 정직하게 심판하여 옥에 가두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자들은 원수가 심은 그 선악과로 인하여 또한 스스로가 자신의 욕심과 유익을 구하는 마음을 품을 때 불의와 죄악을 범하며 사망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라는 그 이름을 가진 자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다. 그러므로 온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부를 수 있는 그 이름은 생명의 이름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그 선악의 죄로 인하여 어제는 비록 죄악되고 불의했으나 그 아들의 이름은 누구든지 부를 수 있는 생명의 이름이다. 그러므로 그가 오늘 자신의 죄와 허물을 회개하며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 아버지께서는 예수라는 그 이름 하나로 그에게 거듭남의 은혜를 베푸시니 그는 영원한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진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아들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임하는 그 생명은 공평한 은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진주가 무엇인지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자들과 귀히 여기지 않는 자들은 아버지의 앞에 나와 진주를 구하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오히려 생명 없는 돌을 구한다. 그러므로 그 생명의 이름을 거짓되게 부르는 자들에게 어찌 아버지께서 진주를 내리시리요?
한편 그 공평한 은혜를 얻은 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기 원한다. 즉 자신이 의롭고 깨끗하게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에 자신은 참으로 연약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자기의 생각이나 이 세상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아들의 이름을 부른다. 그러면 생명을 이룬 아들이 그에게 임하니 그를 사망으로 이끄는 그 선악의 죄는 그의 마음에서 떠난다. 그리하여 그 이름을 정직하게 부른 그가 거룩에 이르러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에 이르니 그가 큰 구원을 얻은 그것도 역시 공평한 은혜이다.
그런데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의 은혜와 긍휼을 받아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에게 셋째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내려주시는 지식이 있다. 그러므로 이 깨달음은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사람이 자기의 지혜나 경험으로 혹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지식으로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태초에 모든 계획을 의롭고 공평하게 세우신 아버지께서는 그 이름을 가진 아들에게 자신의 모든 권위를 주셨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께로부터 나오신 거룩하신 영께서는 오직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그 말씀과 또한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 일만을 증거하여 완성하신다. 그러므로 공평하고 의로운 그 생명의 이름 안에는 아버지와 거룩하신 영께서 한 분으로 속하여 계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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