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10/04

9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4/28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살고자하는 마음
  2. 2010/04/27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
    살고자하는 마음
  3. 2010/04/22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살고자하는 마음
  4. 2010/04/19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살고자하는 마음
  5. 2010/04/14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살고자하는 마음
  6. 2010/04/12
    반드시 속히 될 일
    살고자하는 마음
  7. 2010/04/08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살고자하는 마음
  8. 2010/04/07
    요한에게 배울 점
    살고자하는 마음
  9. 2010/04/01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살고자하는 마음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에 끝없이 열매를 맺는 두 그루의 사과나무가 서있었다. 그런데 한 나무는 뿌리가 좋으니 나무도 좋고 가지에 달린 열매들도 깨끗했으나 가지가 하늘로 높이 솟아있기에 높은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야만 열매를 딸 수 있었다. 반면 옆에 있는 나무는 뿌리가 나쁘니 나무도 나쁘고 열매도 더럽고 벌레가 우글거렸으나 가지가 땅으로 처져있어 아주 쉽게 딸 수 있었다. 어느 날 말을 참 재미있게 잘하는 한 여자가 길을 걷다 곧장 썩은 사과를 땄고 곧이곧대로 말하는 한 남자는 사과재배법이란 책을 펴서 비교한 후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힘들게 열매를 땄다. 잠시 후 여자는 이것은 맛있는 사과라며 길을 걷던 일곱 사람에게 건넸다. 그러자 일곱 명은 사과재배법 책을 펴서 맞추어본 후 그 사과가 썩은 것임을 알고 안 먹겠다며 거절하고는 대신 남자를 찾아가 그의 사과와 책을 비교한 후 얻어먹었다. 이에 여자는 자신의 사과를 누구에게 줄까 고민하다 세 사람이 눈을 감고 땅에 가만히 드러누워 입만 벌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가서 이 사과는 맛있다면서 그들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사과가 참 맛있고 고기 맛도 난다며 기쁘게 받아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세 명 가운데 첫째 사람이 눈을 뜨고 책을 펴서 비교해보니 자신이 먹던 사과의 반은 썩고 반은 벌레가 꾸물거리는 것을 깨닫고 남자에게 가 그의 사과를 책과 비교한 후 얻어먹었다. 반면 둘째 사람도 눈을 떴을 때 나쁜 사과임을 알았으나 나의 입에다 사과를 넣어주는 저 사람은 참되니 썩은 사과도 나에게는 상관없다며 책과 비교하지 않고 눈감고 계속 받아먹었다. 한편 셋째 사람도 눈을 뜨고 나쁜 사과임을 확인한 후 더 이상 받아먹지는 않았으나 남자에게도 가지 않고 사다리를 오르는 것도 원치 않았으니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걸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여자의 소문이 방방곡곡에 퍼져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앞에 모여들어 눈을 감고 땅에 가만히 드러누워 입을 벌렸다. 그러므로 여자는 큰 돈과 명예를 얻었으며 또한 말을 재미있게 잘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나쁜 사과를 먹인 여자와 그것을 받아먹은 자들은 결국 전부다 병에 걸려 죽었다.

 

백의민족에 감나무 밑에 누워 홍시가 입 안에 떨어지길 바란다는 말이 있으니 그것은 게으른 자들을 향한 말이다. 하지만 죄는 육신에 한 순간 기쁨을 준다. 그러므로 사람이 한두 번 범죄했을 때 돌이키지 아니하면 세 번째부터는 무감각해지고 오히려 담대해진다. 사람의 욕심이 끝없고 불평불만이 한없고 자신을 계속적으로 높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것들은 다 이미 사망으로 들어간 원수의 성품들이니 원수는 자신의 인격을 던져보고 실행하는 자들을 자신에게로 이끈다.

 

예를 들어 원수와 마음을 합한 자들은 게으름으로 인해 육의 풍성함과 세상의 영광은 얻지만 잠시 후에는 그 게으름이 그들을 사망으로 데려간다. 그러므로 말씀을 들으러 나오는 자들 가운데 게으른 자들은 거짓목자가 그들에게 이것이 진리라고 하며 전해주면 그것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거룩한 생명의 말씀인지 아니면 육과 세상에 속한 말인지를 구별하기 위하여 무릎을 꿇고 말씀을 펴서 들여다보며 거룩하신 영께로 도움을 구하지 아니한다. 그저 눈을 감고 입을 벌리고 땅에 드러누워 홍시가 떨어지길 기다리듯 썩어질 것과 헛된 것이 은혜롭다며 날름날름 받아먹고 열매를 맺는다. 그러므로 난독증이라는 병은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요 게을러서 생기는 병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육과 세상으로 이끄는 설교를 받아먹는 동안 그것이 썩은 것임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눈과 귀를 열고 그 썩은 것들을 분명히 보고 듣는다. 또한 영을 전하는 자들이 뒤로는 돈과 땅을 끝없이 챙기며 자신을 계속해서 높이고 늘 음행을 탐하는 모습을 보며 교회가 이래서야 되느냐고 말하되 심지어 이방인을 통해서도 듣는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목자는 참되니 썩은 것도 나에게는 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고 오직 그 거짓된 자들을 하나님의 참된 종으로 믿고 더욱더 따른다. 자신의 마음이 이미 영과 셋째하늘을 버리고 육과 세상을 구하고 있으니 어찌 거짓된 자들과 그들이 전하는 말을 의심하리요?

 

결국 거듭남도 없이 처음부터 이세벨의 말을 듣고 따른 양들은 오로지 육의 것과 세상의 것만을 취하니 그들에겐 썩어질 헛된 열매들이 있다. 반면 의와 거룩의 열매는 맺지 못함은 그녀의 말은 사람을 씻어서 의롭고 거룩하게 하는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안에 거하는 죄를 따라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위로 불의와 선악의 열매를 맺고 있는 그들을 어찌 그리스도께서 받으실 수 있으리요? 그리하여 거짓선지자만 원수를 따라 유황불 못의 가운데로 들어가지 않고 그를 따르던 수많은 목자들과 양들도 그리스도의 양들이 아니기에 그 불에 함께 던져지는 것이다.

 

그러나 참된 목자는 자신의 혼도 결국 거룩하게 된다는 믿음이 있으니 구약시대에도 교회시대에도 이 마지막 때에도 자신의 생각과 이 세상에서 돌이켜 오직 그리스도만을 따른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적은 무리에게 자신이 아버지께로 받은 거룩한 진리를 허락하신다. 이때 참된 목자는 자신이 먼저 살고자하는 마음으로 진리에 순종하여 의와 거룩에 이르고 또한 주님께서 맡겨주신 그리스도의 양들에게도 오직 거룩한 진리만을 먹인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열매를 맺던 목자들이 대환난에서 목숨을 버린 후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되며 영과 혼과 육으로 정결한 열매를 맺던 양들이 환난 전에 들림을 받아 그리스도의 신령한 신부가 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

     초대교회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예루살렘교회를 이끄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경륜의 복음을 전했다. 그러다 핍박으로 인해 이방인들 가운데 첫 교회가 안디옥에 세워졌으니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은 바울은 그곳에서 그 그리스도의 복음을 모든 이방민족들에게 전했다. 하지만 그 당시 바울만이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요 다른 자들도 계시를 받지는 못했으나 그리스도를 전했다.

 

     그런데 계시를 받고 전하는 것과 계시 없이 전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으니 그것은 아버지의 뜻을 아느냐 모르느냐이다. 그러므로 계시를 통해 아버지의 뜻을 깨달은 바울은 경륜을 이루고자 거룩만을 전했다. 또한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두렵고 떨림으로 거룩을 이루어가라고 했다. 하지만 계시가 없는 자들은 아버지의 그 뜻을 몰랐으니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말로서 그저 온전한 구원의 첫걸음인 거듭남만을 전하며 전통을 이루어갔다. 물론 어떻게 거듭나는지 조차 말하지 아니하고 그저 영을 말하여 육의 이익을 끼치는 거짓선지자들도 그때부터 있었다.

 

     이런 식으로 이방의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이 전해지자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자신들이 교회라고 하는 곳이 이 세상에 모두 1243개로 늘어났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택하신 일곱 교회가 있던 소아시아에도 모두 12곳이 있었다.

 

     그런데 요한은 당시 그리스도께 계시를 받은 후 그 말씀을 오직 일곱 교회에만 보냈다. 그러므로 그때 계시록을 받은 교회의 수는 전체 교회의 수에 비교할 때 많지 않았다. 마지막 때의 말씀을 받은 교회들과 받지 못한 교회의 차이가 무엇이었는지 한가지 비유를 통해 알 수 있다. 즉 택함 받은 교회와 전통에 속한 교회의 차이를 알 수 있다.

 

한 포도원주인이 두 종에게 포도나무를 한 그루씩 주면서 이러한 말을 전했다. “나는 오직 깨끗하고 풍성한 포도열매를 원하는 도다. 그런데 열매라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다하여 자기의 나무를 가꿀 때 얻을 수 있는 것이니라. 또한 다른 자들도 땀 흘리는 너희를 보고 따라 행할 것이니 깨끗한 열매가 더욱더 풍성해질 것이니라.” 이 말을 듣자 첫 번째 종은 자신이 받은 포도나무를 가꾸느라 온 마음을 다했으니 그의 온 몸에서 땀이 흘렀다. 그러므로 그의 나무는 하루하루가 지나며 깨끗하고 튼튼하게 자라갔다. 그리하여 그 종의 나무에서 맺히는 열매들도 깨끗했으며 점점 더 풍성해져 갔다. 그러나 두 번째 종은 땅을 넓혀서 포도나무를 많이 심으면 열매를 더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는 땅을 넓히며 나무를 많이 심는데 자신의 온 마음과 힘을 다하면서 이것이 바로 주인이 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나무와 열매는 썩어가되 그의 땅은 점점 더 넓어져갔다. 이것을 보자 어떤 사람들은 첫 번째 종에게 가서 그 종을 따라 일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크고 근사하게 보이는 것이 좋았으니 두 번째 종에게 가서 그 종을 따라 일했다. 하지만 첫 번째 종과 일하는 것은 처음에는 힘들었으나 나중에는 쉬웠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은 중간에 포도원을 떠나기도 하고 두 번째 종에게 옮겨가기도 했다. 반대로 처음에는 두 번째 종에게 갔다가 첫 번째 종에게 옮겨가는 사람들도 몇이 있었으니 주인의 뜻을 이루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제 추수 때가 되자 그 주인이 돌아와 열매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랬더니 첫 번째 종과 그를 따라 일한 자들은 모두다 깨끗하고 풍성한 열매를 갖다 바쳤다. 그러나 두 번째 종과 그를 따르던 자들은 주인에게 신 포도를 갖다 바치면서 자기들이 넓힌 땅을 자랑스럽게 보였다. 이에 그 주인은 자기의 말에 순종한 자들은 가까이에 그 불순종한 자들 가운데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깨끗한 열매를 맺겠다고 하는 자들은 멀리 두었다. 그러나 자기의 뜻을 끝까지 원치 않은 자들은 포도원에서 쫓아냈다.

 

     이와 같이 당시 아버지께서 택하신 교회는 초대교회든 안디옥교회를 비롯한 이방인의 교회든 자신의 마음을 다해 오직 아버지의 뜻만을 이루어갔다. 그리고 이것은 라오디게아 교회시대의 마지막 때인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전통에 속한 교회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버지와 아들은 알지만 거룩을 깨닫지 못하니 당시에도 지금처럼 여러 가지 일들을 이루어가며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요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그때나 지금이나 은혜를 받아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교회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행위들을 이루어가는 그 전통에 속한 교회들의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차이점들이 있다.

 

     우선 은혜를 받은 교회에 모인 영혼들은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며 그리스도를 통한 거룩의 믿음도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말씀과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자신이 의롭고 거룩하게 될 것을 믿고 자기의 생각과 의를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그리스도를 따르며 말씀에 순종하므로 거룩을 이루어간다. 그러나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교회는 그 마음을 포기했으니 거룩을 이루기보다 자기가 원하여 마음에 품은 뜻이 주님의 뜻이 되게 하옵소서 라고 하며 그것을 열심히 행한다.

 

     두 번째로 은혜를 받은 교회에는 말씀에 순종하는 거룩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그들 가운데 여자는 자신의 남편을 따르며 남편의 말에 마음을 다해 순종한다. 또한 거룩한 공동체로 모였을 때는 그 입을 열지 아니하고 집에서 늘 종용하게 남편에게 배운다. 그러나 전통에 속한 교회에서는 이러한 순종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그러한 것은 초대교회에만 그런 것이지 지금은 시대와 문화가 달라졌으니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는 그 말씀도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 번째로 은혜를 받은 자들은 그 마음이 오직 아버지의 의와 셋째 하늘만을 구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것을 위하여 오직 자신이 의롭고 깨끗하게 되기만을 구하며 말씀에 순종한다. 또한 아버지의 나라만을 소망하니 그 증거로서 이 세상에서 나왔으며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전통에 있는 영혼들은 그것을 구하지 아니하니 순종이 없다. 또한 자기의 몸은 예배 드리는 곳에 있을지라도 자신의 마음은 자신이 돌이켜 나왔던 이 세상에 있다.

 

     네 번째로 은혜를 받은 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깨닫지 못했으면 자기의 입을 열지 아니한다. 오직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그 진리의 깨달음을 아버지께로 구하며 겸손히 엎드린다. 그러나 전통에 있는 영혼들은 깨닫지 못해도 입을 벌려 가르치며 전하다 모르는 것을 질문 받으면 ‘그냥 믿어라. 기도해보자. 구원과 관계가 없는 것은 몰라도 된다. 너무 깊이 알려고 하면 잘못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인도자도 따르는 자도 둘 다 함께 구덩이에 빠져있다.

 

     다섯 번째로 전통에 있는 영혼들은 사탄이 무엇으로 어떻게 죄를 짓게 하는지 또한 생명나무의 깨달음도 없으니 늘 선악에 이끌리며 자신은 다른 영혼을 선악으로 누르고 자신도 다른 영혼에게 그 선악으로 눌린다. 그러므로 그들의 마음에서는 기쁨과 평화를 이미 빼앗겼다. 그러나 택하신 교회의 지체들은 그 선악을 뽑아내고 이겼으며 어떤 자들은 이기고자 싸우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마음에는 그리스도께서 끼치시는 기쁨과 평화가 변치 아니하며 오히려 더해간다.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한 농부가 투명구슬을 맺는 씨앗을 가지고 가만히 보니 길을 잃은 어떤 고아가 깨끗한 구슬을 원했다. 이에 농부는 어린 아이의 마음을 알고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이 씨앗을 심고 마음을 다해 가꾸면 내가 원하는 열매를 많이 얻을 것이니라. 또한 사람들이 너에게 와 그 씨를 좀 나눠달라고 할 것이니라.” 어린 아이가 농부의 말을 듣고 자기의 땅에 그 씨를 심었더니 하얀 싹이 나왔다. 그리고 그것을 보자 무거운 짐을 내려놓듯 마음이 가벼워졌으며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났다. 또한 농부가 원하는 열매를 얻고자 자신의 힘과 정성과 뜻을 다해 가꾸었다. 그랬더니 그 나무는 투명구슬을 풍성히 맺었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열매를 원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그 씨를 얻어 자신들의 땅에 심었다. 그런데 뿌리가 튼튼하고 좋아서 그런지 그들의 나무와 가지들도 튼튼하고 좋았다. 그러므로 그들이 가꾼 나뭇가지들에도 투명구슬이 풍성히 맺혔다. 그러나 하얀 싹을 본 후 자신의 마음을 빨강구슬과 황금구슬에 빼앗긴 사람들은 농부가 원하는 구슬을 맺지 못했다. 반면 어떤 도박꾼이 빨강구슬과 황금구슬을 맺는 씨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가 가만히 보니 양털로 짠 옷을 입은 양치기 네 명이 울긋불긋한 구슬을 원했다. 그러니 도박꾼이 그들의 마음을 꿰뚫고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주는 씨앗을 심고 열심히 가꾸면 당신들이 원하는 구슬을 많이 얻을 것이오. 또한 당신들처럼 눈에 보이는 열매를 원하는 사람들이 그 씨를 받으러 구름 떼처럼 몰려올 것이오.” 이에 양치기들은 그 씨를 받아 자신의 땅에 심고 열심히 가꾸었다. 그랬더니 그들의 나무는 열정적이고 영광스런 구슬을 많이 맺었다. 또한 다른 양치기들과 양들이 대박난 소문을 듣고 몰려와 그 씨를 받아서 심었다. 그런데 그 뿌리가 튼튼하고 좋아서 그런지 나무와 가지들도 튼튼하고 좋았다. 그러므로 그들이 가꾼 나뭇가지들에는 빨강구슬과 황금구슬이 많이 맺혔다.

 

사람은 흙으로 지음을 받았으니 동물처럼 육신이 있고 그로 인해 육신의 생각이 있으나 동물과는 달리 코를 통해 생기를 받았으니 인격체로 불리며 마음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유의지라 부르는 바로 그 마음에 따라 아버지께서 각 사람의 앞에 두신 생명과 사망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영생을 원하는 자는 자신과 자손이 살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거듭남의 은혜를 얻는다. 그러나 원치 않는 자는 십자가를 거부하되 악한 자는 자손들도 믿지 못하게 한다.

 

또한 사람은 땅에서 온 육을 따르면 썩어질 육을 위해 세상에 묶여 살고 영원한 셋째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온 영을 따르면 그 귀하고 거룩한 것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하늘을 바라보고 살되 그 선택도 역시 사람의 능력과 판단이라 불리는 자유의지 즉 마음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거듭난 자라도 첫사랑을 버리고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것을 따라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구하며 살 수도 있고 영을 따라 살 수도 있다. 그리하여 육의 기회가 있을 동안 영혼의 구원을 이루어 생명나무의 약속에 참여하는 자들도 있고 혼의 거룩을 이루지 못하여 그 과정에서 호리까지 다 갚고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로 나오되 육체는 심판 받고 소멸되어 영혼이 하나님처럼 사는 백성들도 있고 끝까지 자신의 생각을 붙들고 거룩을 거부하므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에 처하는 자들도 있다.

 

결국 사람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가거나 은혜를 거부하고 영원한 유황불 못으로 들어가는 것과 또한 아버지의 자녀나 백성으로 살거나 영원히 슬피 우는 것이 사람의 능력과 수행과 교양 같은 외모가 아니요 공평하게 오직 각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다. 이처럼 사람은 씨를 받았을 때 자신의 마음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아버지께서 내어놓으신 십자가를 통해 생명이나 사망을 이룰 수 있는 인격체다. 또한 그 뿌리가 좋아야 나무도 좋고 가지와 열매도 좋되 나무도 나쁘고 가지와 열매도 나쁜 것은 그 뿌리가 나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람이 밖으로 내는 열매를 보면 그 뿌리를 알 수 있고 또한 그가 누구에게 어떤 씨를 받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영의 뿌리를 얻은 자는 그 목자가 먼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거룩에 애쓰며 오직 영으로만 모든 것을 다스린다. 그러므로 자신과 또한 거듭난 후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그 가지들이 맺는 것은 오직 영의 열매이다. 즉 영의 씨를 얻은 목자는 그의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위로 오직 의롭고 거룩한 열매를 맺고 또한 그 목자에게서 영의 씨를 받으며 그 목자의 본을 보고 따르는 양들도 역시 하얀 털을 낸다. 오직 아버지께로 온 진리만이 사람을 씻어 거룩하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마찬가지로 육의 뿌리를 얻은 자도 그 목자가 먼저 썩어질 육의 욕심과 사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의 헛된 영광을 구하며 늘 육으로 모든 것을 다스린다. 그러므로 거짓된 목자의 뿌리로 인하여 그 가지들에 거하는 거짓목자와 양이 맺는 열매도 오직 육으로 나타나 육의 풍성함과 세상의 영광을 얻되 그들의 영혼은 늘 실족하며 마음에는 기쁨과 평화가 없다. 원수에게로 온 말은 사람을 오직 육과 세상으로 이끌어 들이며 세상은 사람의 마음과 영혼에 기쁨과 평화를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사람들의 앞에 서서 영을 전하는 자에 대한 영 분별은 그가 맺는 열매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으니 그가 누군가에게 받은 영을 전하되 그의 입술과 행위가 의롭고 거룩한 열매를 맺고 있으면 그는 참된 목자다. 또한 그를 따르는 자들도 그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순종해 자신의 안에 거하는 죄와 싸우며 거룩에 애쓰고 있으면 그들은 그 목자의 양이 아니요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그리스도의 양들이다. 그리하여 하늘에 쌓아두신 아버지의 그 기쁘신 뜻을 위하여 늘 영을 따른 목자와 양들이 목자장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어떤 목자가 누군가에게 받은 영을 전하며 육의 이익을 끼치되 그에게는 주님께서 받으실 만한 거룩한 열매는 없고 오히려 선악의 연료가 되는 욕심이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있다. 고로 거짓목자를 판단할 수 있는 아주 쉽고 정확한 것으로서 그는 그리스도께서 광야의 시험에서 이기신 것들을 오히려 많이 가지고 있다. 즉 뒤에 숨겨놓은 돈과 쌓아 올린 영광이 그의 거짓됨을 증거하되 그것들을 보고 따른 거짓된 많은 목자들과 양들도 그를 따라 영원한 형벌로 들어간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마음을 지으시고 그 양심 안에 생기를 넣어주셨어도 그 나무에 거하는 자들은 욕심으로 마음을 더럽히고 그 거짓된 것을 부러워하며 자기 발로 따라갔으니 누구를 탓하리요?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사람이 인간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가장 높은 산이 있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매우 높고 험한 그 산을 끝까지 다 올라간 후 다른 사람들도 올라갈 수 있는 길을 지도에다 그렸다. 그 후 그가 가만히 보니 어떤 두 사람이 그 산을 올라가고 싶어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 산을 올라갈 수 있는 지도를 그 두 사람에게 똑같이 하나씩 주면서 ‘이 지도를 보고 따라 산을 올라가면 복이 있을 것이요.’라고 말했다. 이에 둘 중 한 사람은 지도를 준 사람의 말을 믿었으며 또한 그 산의 꼭대기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므로 그는 그 지도를 보고 그대로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물론 그 험한 산길을 올라가며 힘도 들고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었다. 또한 평생을 길러준 자기주인의 은혜를 원수로 갚고 산으로 도망쳐온 짐승들이 날카로운 이빨을 크게 벌리고 덤벼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어려움을 이기고 산의 중간 정도까지 올랐을 때는 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마음에 기쁨을 얻었다. 또한 산 밑에 있는 많은 세상을 내려다 보며 참 작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산의 중턱이니 밑에 있는 세상이 다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기쁨과 깨달음을 얻은 후 다시금 그 지도에 나와 있는 길을 보며 계속 산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힘도 들고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조금만 더 올라가면 꼭대기에 도착할 수 있다는 믿음과 기대를 가지고 그 지도에 나있는 길을 따라 끝까지 올라갔다. 그러므로 그는 높은 산꼭대기에서 주위에 있는 모든 산들의 경치를 다 볼 수 있었다. 또한 산 밑에 있는 온 세상을 한눈에 다 내려다 볼 수 있었으니 그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했다. 한편 다른 한 사람은 자기가 그 산 위에서 주위에 있는 모든 산의 경치를 다 볼 수 있으며 온 세상을 다 내려다 볼 수 있다고 믿었으며 기대도 했다. 그러므로 자신이 받은 그 지도는 참으로 복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 복된 지도를 가지고 있는 자신에게는 복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 지도를 보고 따라 올라가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고난 받은 후에 얻는 그 성취감을 얻지 못했다.
 
     이와 같이 지도가 복된 것임을 알고 있는 자와 그 복된 지도를 가지고 있는 자가 복된 자가 아니다. 그 복된 것을 가지고 있는 자신에게 복이 있을 것은 알지만 가만히 있는 자도 복된 자가 아니다. 오직 그 복된 지도를 따라가는 자가 복된 자이다.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선지자들에게 주신 예언들과 초대교회와 일곱 교회시대에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주신 계시도 이와 같다. 그러므로 앞으로 마지막 때에 있을 일들을 알고 있다고 복이 있는 게 아니다. 말씀의 비밀들을 가지고 있어도 복된 것이 아니다. 오직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그리스도께서 내신 그 길을 따라가는 자에게 복이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살고자 하는 마음을 계속 가지는 영혼과 첫사랑을 잃지 않는 영혼은 오직 그리스도를 따르며 말씀에 순종하기 원한다. 오직 그것을 통해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그 생명의 소원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두 사람과 두 가지를 동시에 따르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따르기 원하는 자는 먼저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의를 내려놓으므로 자신을 따르지 아니한다. 또한 그리스도만을 따르기 위해 육과 이 세상을 따르지도 아니한다. 오히려 마지막에 사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켜 나온다. 그리하여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따르게 되는 것이다.

 

     물론 지도를 보고 따라 올라가는 길에는 힘도 들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는 것처럼 십자가의 길에도 그것이 있다. 하지만 그 길을 기쁨으로 예비하신 아버지와 그 길을 평화로 내신 아들께서는 그 고난의 길을 걷는 영혼의 마음에 기쁨과 평화를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길을 걷는 그는 그 길에서 자신과 세상을 따르는 사람들이 얻지 못하는 마음의 복을 누린다. 게다가 그 길은 믿는 자를 위하여 죄를 이기신 승리의 길이니 그는 그 길에서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를 이긴다. 그리하여 죄의 가리우심을 받은 그가 마지막에는 목 베임을 통해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산 제사를 아버지께로 올려드리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씨를 뿌리고 땀을 흘린 후에는 반드시 추수가 있으니 고난 후에는 영광이 있다. 그러므로 고난가운데서도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고 아버지께로 영광을 돌려드린 그는 약속대로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한 육체를 얻는다.

 

     그런데 그 부활의 영광을 얻은 자는 아버지께로 나가는 거룩한 자녀요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형제자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이루시는 천년왕국에서 왕과 제사장이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공의와 사랑으로 천국을 다스리는 그 약속을 성취한다. 또한 그 영광과 권세의 복은 천국의 끝에 영원한 본향인 셋째 하늘에 올라가서도 아버지의 영광을 이룬 그들에게 영원토록 주어진다.

 

     이처럼 그 복이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그들이 진리가 복된 것임을 알고 있거나 가지고 있거나 진리를 가지고 가만히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직 그 약속을 믿고 말씀에 기록된 대로 지켰기 때문이요 의롭지 못한 자신을 내려놓고 그리스도를 따라가며 그 고난스런 십자가 길을 끝까지 걸어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어떤 영혼이 성경을 읽다 말씀을 전하는 목자들 가운데 거짓선지자가 있다는 구절을 보게 되었다. 또한 거짓선지자는 그 수효가 많고 때로는 표적을 보여 택함 받은 자들까지 유혹하다 마지막에는 유황불 못에서도 원수가 들어가는 가장 뜨거운 곳으로 던져진다고 되어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행여 거짓선지자를 따르다 자신도 마지막에 거짓선지자처럼 될까 봐 걱정되어 거짓선지자가 어떤 자인지를 정말로 알고 싶었다. 이에 지팡이로 백성들을 섬긴 사람이 그의 간절한 마음을 보고 찾아와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떤 사람이 무슨 일을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그는 한 양치기가 많은 양들을 이리저리 이끄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그는 많은 양들이 양치기를 따르는 모습이 영광스럽게 보였으나 늑대가 왔을 때 양들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다 자신의 목숨을 잃어야 한다는 것은 깨닫지 못한 채 자신도 그저 많은 양들을 치고 싶은 마음으로 목자가 되어 그 소원을 열심히 이루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바닷속에 있는 도축장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길 양털을 깎아 자기에게 주면 돈과 맛있는 것으로 보답하겠다고 했다. 이에 그는 날마다 양털을 깎아 그에게 바치되 양들에게 깨끗한 풀을 먹이지 않고 오히려 길거리의 개와 돼지가 먹는 것을 가져다 먹였다. 그러므로 양들은 하얀 털이 아니라 매우 더러운 털을 내며 병들어 갔으나 도축장주인은 더러운 털이 좋다며 돈과 맛있는 것을 점점 더 많이 주었다. 또한 그 목자는 지팡이가 있기는 했지만 양들이 잘못된 길로 가도 가만히 놔두었으니 양들이 맞아서 아프면 털을 내지 못할까 혹은 도망가지는 않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도축장주인이 한밤중에 찾아와 아주 큰 돈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을 주겠다고 하자 그 목자는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었다. 이에 도축장주인은 당신이 치는 양들이 무엇을 먹고 자랐는지 식별하기 위해 세자리 번호를 붙여서 도축장으로 데려오라고 했다. 이에 그 목자는 양들을 푸른 초장이 아닌 바다로 인도했으니 양들은 한 마리씩 물에 빠져 죽기 시작했고 또한 물에 빠져 죽어가는 양들을 보고도 건져내지 않고 오히려 계속해서 물속으로 이끌었다. 그러다 양들이 도축 당하기 직전에 식별번호를 받게 해주며 평화롭고 안전한 세상이라고 외쳤다." 지팡이로 백성들을 섬긴 사람은 이야기를 마치며 바로 이러한 자가 거짓선지자요 그를 따르며 길거리의 음식을 받아먹던 자들도 마지막에 이 세상이 사망으로 들어갈 때 함께 들어갈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므로 거짓선지자를 어떻게 판단하리요? 목자는 양들에게 받아먹는 자가 아니요 오히려 초장으로 인도하여 양들을 먹이는 자며 또한 마지막에 자기의 목숨을 구원코자 하는 자가 아니요 양들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잃는 자니 참된 목자는 반드시 목자의 옷을 입고 나타나게 되어있다. 그러나 거짓된 목자는 오히려 자신이 양의 옷을 입고 나와서 그 양들을 하나씩 하나씩 삼킨다.

 

또한 목자는 목자장이 이 땅에 계실 때 어떠한 말과 행실로 양을 치다 마지막 순간에 어떻게 섬기셨는지를 자기의 마음에 품고 각오하고 있는 자이니 양들에게 늘 깨끗한 것을 먹이며 보이며 또한 지팡이가 양들의 앞에서 떠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목자는 늘 거룩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말씀과 진리만을 먹이며 양 무리에게 거룩한 본을 보이며 또한 오직 지팡이를 바라보도록 이끈다. 이때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깨끗한 것에 순종하므로 자신을 늘 누룩에서 돌이키고 또한 불의와 죄악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도 구별되어 나오는 영혼들이 있으리니 그들은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는 그리스도의 양들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양들을 거룩으로 이끈 목자가 마지막에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잃고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하고 참된 목자를 따르며 자신을 신령한 지체로 단장한 양이 그리스도를 통해 무릇 살아서 정결한 신부의 생명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거짓목자는 지팡이가 무엇인지 모르기에 갈 길을 잃은 불쌍한 양들이 아무리 바라보아도 그 지팡이를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지팡이와 상관없이 오늘은 이것을 내일은 저것을 하되 십자가의 고난과 영광을 가리키지 않는 말과 행위는 다 불법이다. 또한 거짓목자는 푸른 초장이 무엇인지 먹을 것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주일에 육의 양식을 먹여 한주간 세상으로 이끈다. 그러나 양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풀이니 풀 외에 다른 것을 주어 거룩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자들은 다 거짓선지자라 판단을 내려야 한다. 즉 이것이 영이라 말하되 양들에게 육의 유익을 끼치며 이것이 영원한 셋째하늘의 영광이라 말하되 세상의 영광으로 양들을 이끄는 자들은 다 거짓에 속해있으니 따르든지 말든 지를 자기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거짓된 목자는 그가 사람들의 앞에 서서 하는 말을 잘 들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여러분들이 헌금을 많이 해야 우리 교회가 살고 또한 내가 살고 내가 살아야 저 가난한 자들도 살 수 있습니다.” 이 말을 한 자가 바로 그 양의 옷을 입고 나온 자이다. 이렇게 말하는 자들도 많다. “666은 이단이나 혹은 내가 예수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믿는 자는 이미 사람의 수를 안 받은 것이고 안 믿는 자는 이미 받은 것이니 실제가 아니라 상징입니다. 게다가 온 세상에 평화와 안전을 가져다 주는 그것이 어떻게 짐승의 수가 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말들로 원수의 나타남을 예비하고 있는 자들은 마지막 때의 대환난에서 양들이 반드시 666을 받도록 인도하여 자신도 양도 육과 세상의 삶을 유지하게 할 것이니 이런 말은 자신이 거짓선지자임을 스스로 증거한다.

 

그러나 거짓을 설교자의 속이 아닌 오히려 말씀을 듣는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며 분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러므로 자신이 스스로 자신을 볼 때 영이 거듭났으나 아버지의 뜻에 관심이 없으니 혼의 거룩을 이루어가고 있지 않다. 또한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요 오히려 사망으로 들어가고 있는 이 세상을 따르며 썩어질 육의 욕심을 이루어가고 있다. 양들을 이렇게 노략질하고 있는 자를 어찌 참된 목자라 할 수 있으리요마는 기억할 것은 자신이 그런 목자를 따르고 있는 것은 영이 아닌 썩어질 육을 또한 아버지의 나라의 영광이 아닌 이 세상의 헛된 영광을 구하는 거짓된 마음이 이미 자신의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격체인 사람이 다른 누구를 탓하리요?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반드시 속히 될 일

어떤 선한 사람이 실제로 일어날 일을 영화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의 종에게 주면서 자기의 동생에게 보여주라고 했다. 이에 그 종은 그 선한 사람의 동생에게 가서 그 영화를 보여주었다. 그 영화의 제목은 순교였으며 모두 네 편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첫 번째 장면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질병들이 온 세상을 돌고 있었으며 모든 나라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전쟁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거하는 사람들은 고통과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차례차례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한 악한 자가 사람들이 두려움가운데서 죽어가는 그 모습을 보며 참으로 기뻐했으니 그는 그 질병과 전쟁의 환난을 일으킨 자였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 난리가운데서도 아무런 고통과 두려움 없이 오히려 평안한 마음을 유지하며 기쁨과 소망가운데서 포도나무를 가꾸고 있었다. 그러다 그들 가운데 반은 깨끗하고 풍성한 포도열매를 따서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러므로 그 악한 자는 자신이 일으킨 질병과 환난으로도 그들을 죽이지 못한 것을 참으로 원통해했다. 두 번째 장면은 이제 전쟁이 끝나자 그 악한 자가 나와서 이 세상의 모든 나라들을 한 나라로 만들었으니 세상은 평화롭고 안전해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욱더 돈과 자신만을 사랑했으며 더욱더 음란해졌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된 세상을 보며 이것이 참된 자유가 아니겠냐고 하면서 즐겼다. 세 번째 장면은 포도나무를 가꾸던 자들 가운데 남아있던 반이 그 하나된 나라의 왕이 인류의 역사에서 행했던 모든 악한 일들을 사람들에게 그대로 알려주었다. 또한 평화와 안전을 이룬 그가 잠시 후에는 다시금 전쟁과 온갖 자연재해로 큰 환난을 일으켜 사람들을 사망으로 이끌 것이지만 자신의 마음을 불의한 이 세상과 죄에서 돌이키는 사람은 마지막에 선한 사람이 이 불의하고 악한 세상을 심판할 때 오히려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전해주었다. 이에 그 악한 왕은 그 말을 전하는 사람들을 붙잡아 이 세상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정의를 행한다고 하면서 한 명씩 목을 베어 죽이기 시작했다. 네 번째 장면은 그 악한 왕에게 죽은 사람들의 말대로 이 땅에는 지진과 해일과 화산과 우박 같은 것으로 큰 환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에는 그 선한 사람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자들과 그 악한 왕에게 죽은 자들을 데리고 이 땅으로 내려오며 그 악한 자가 일으킨 모든 환난을 멈추게 했다. 또한 그 악한 자가 더럽힌 이 세상을 낙원과 같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회복시킨 후 그 나라를 참된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렸다. 그 선한 사람의 동생은 영화를 다 보고 나자 열심히 포도나무를 가꾸기 시작했다. 또한 자기의 친구들에게 자기가 본 영화를 그대로 전해주었으니 그의 친구들도 열심히 포도나무를 가꾸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영화는 실제로 일어날 일이었다. 그러므로 마지막에 그 선한 사람의 동생과 그의 친구들 가운데 반은 깨끗하고 풍성한 포도열매를 가지고 하늘로 올라갔으며 반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전할 말을 다 전했다. 그 후 그들은 모두다 그 왕에게 잡혔으나 담대히 죽음을 맞이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아버지께로 받은 진리가운데 마지막 때에 대한 그 계시를 교회의 인도자인 요한에게 주신 목적이 있으니 교회의 인도자들과 따르는 자들은 이것을 잘 깨달아야 한다. 또한 이 마지막 교회시대에 이 땅에서 말씀을 전하는 모든 자들과 자신을 스스로 하나님의 종이요 목자라 하는 자들도 깨닫고 그 마음을 육과 세상에서 돌이키면 유익이 있을 것이니 그 유익은 자신의 생명이요 가족의 생명이요 자신과 함께하는 영혼들의 생명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는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시고자 자신의 종들을 통하여 참으로 각 교회시대에 아버지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들을 보여주시고 또한 알려주시기 원하셨다. 그러므로 요한은 그것을 보고 듣고 자신의 거룩에 애쓰며 자신과 함께하는 공동체의 지체들도 오직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어가도록 인도했다. 또한 아시아에 거하는 교회의 인도자들에게 그것을 그대로 전했으니 그들도 역시 거룩을 이루었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요한도 다른 교회의 인도자들도 담대히 순교의 피를 흘렸던 것이다.

 

     그런데 계시를 주신 목적은 이 마지막 교회시대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종들을 통해 참으로 라오디게아 교회시대에 아버지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보여주시며 또한 알려주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것을 보고 들은 자들과 또한 그것을 전했을 때 믿은 자들도 오직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싸우며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어간다. 그리하여 그 마지막의 대환난에서 복음을 다 전한 후 담대히 순교의 피를 흘리므로 그 영광을 오직 아버지께로 돌려드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교회의 인도자로서 아버지의 뜻을 거부하고 오히려 자기의 뜻과 계획을 이루고자 열심을 다하는 자에게는 진리의 깨달음을 허락지 않으신다. 또한 목자의 일을 하되 그의 마음이 오직 자기의 먹을 것과 혹은 사람이 많아져 자기가 얻게 될 그 영광에 있는 자에게도 깨달음을 허락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그들이 계시록의 말씀을 보고 들을 때 누구에게 깨달음을 얻으리요?

 

     그리하여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은 자가 사망으로 들어가는 것이요 양들의 앞에 서서 말씀을 전하며 자신과 자기의 가족들이 원하던 것을 얻은 삯꾼은 마지막 때에 자신의 목을 베는 그 칼을 볼 때 양들을 버리고 도망을 가는 것이요 원수에게 영광을 받아 누리던 거짓선지자는 양들에게 666을 받게 해 영광을 원수에게 바치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어떤 왕이 자기를 비우고 종처럼 낮아져 모든 사람들을 공평하게 섬긴 후 자기의 백성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은혜 받은 자는 나의 빛나는 왕궁 안으로 들어올 것이되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빛이 나는 돌이니 그것을 가져오는 자는 왕궁으로 들어올 수 있는 상급을 내릴 것이요 빛나지 않는 돌을 가져온 자는 성밖에 거할 것이요 똥이 묻은 돌을 가져온 자는 어두운 곳으로 쫓겨날 것이요 더러운 돌을 가져온 자는 은혜를 거부한 자들과 함께 뜨거운 감옥에 갇힐 것이니라.” 그런데 왕이 베푼 공평한 은혜를 거부한 자들은 빛난 돌을 원치 않았으니 어딜 가든 무얼 하든 누굴 만나든 늘 돌을 주워서 더러운 곳으로 던지며 발로 차버렸다. 하지만 성은을 받은 백성들은 왕을 만족시키고자 나름대로 돌이 있는 곳으로 가서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떤 백성들은 많은 사람들이 가는 곳에는 좋은 돌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린다고 생각했으니 큰 문으로 들어가 넓은 길을 걸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은 사람들의 손이 많이 타서 깨끗한 돌이 다 더럽혀졌으니 그곳으로 간 자들은 더러운 돌을 주워 왕의 앞에 내어 놓았다. 한편 대부분의 백성들은 그냥 편하게 자기가 앉아있는 곳에서 주운 돌이 왕이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들이 드린 것은 빛나지 않는 돌이었다. 반면 어떤 백성들은 저 돌은 더럽고 저 돌은 빛나지 않는다며 비판을 즐기되 자기자리에 그대로 앉아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 자신이 보기에 빛나는 돌을 주워서 드렸으나 그것은 똥 묻은 돌이었다. 그러나 몇 사람은 빛나는 돌을 얻으려면 반드시 좁은 문으로 들어가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함을 성은의 나무막대기를 보고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 적은 무리는 그 어느 곳으로도 가지 아니하고 오직 자신이 있는 곳에서 자기의 앞에 있는 나무막대기를 잘 살펴보면서 돌을 주워 자신을 기쁘게 비춰보고 그 돌이 자신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깨끗한 돌을 드렸다. 이에 왕은 약속대로 그 19명에게는 영광스런 상급을 베풀되 다른 사람들의 모든 돌들은 다 버렸으니 향방 없이 달음질하고 허공을 치며 싸운 그들의 수고는 다 헛된 것이 되어버렸다.

 

이처럼 살고자하는 마음으로 십자가의 보혈을 믿고 영이 거듭나는 은혜를 얻은 자들에겐 이제 혼이 거듭나 새롭게 되는 기쁨과 육이 거듭나 영광에 참여하는 약속이 주어져있다. 그러나 많은 자들이 바리새인과 같은 자신의 의와 생각을 돌이키지 않아도 그리스도께서 받아주시고 아버지께서 자신의 혼과 육안에 임하시어 성전을 삼으신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오셨으니 회개치 않는 세리와 창녀와 바리새인들은 불로 멸하시되 돌이키는 돈 벌레와 이방인과 목자들은 세상에서 불러내 자신을 따르게 하시고 아버지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품어주신다. 그러나 자기의 의와 생각에서 돌이키는 것이 사람에게 가장 큰 고난이다.

 

그러므로 좁은 문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무슨 뜻이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왜 멸망으로 인도하는 큰 문으로 들어가며 넓은 길을 찾게 되는가? 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겠는가? 그 이유는 사람은 자신이 의롭다는 생각에서 돌이키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요 또한 자신의 불의와 잘못된 생각을 고침 받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니 거듭나고도 말씀에 순종치 못하며 생명과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자들이 돌이키지 아니한 채로 무엇을 원한다 할 때에 그곳으로 가 오히려 깨끗한 것도 더럽히므로 왕의 앞에 돌을 갖다 놓으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더러운 마음과 혼을 받으실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은 한 번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자신을 돌이키지 못한 자는 혼의 거룩에 이르지 못한 채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되 돌이 더러우니 주님께서 어찌 그 더러운 영혼을 받으시리요? 그럴 수 없도다. 그리하여 자신의 의와 생각을 부인하지 못하므로 그리스도를 따르지 아니하면서 말하고 행한 그들의 모든 수고는 다 헛된 것이요 그리스도의 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니 그리스도를 따르지 아니한 자는 결코 의와 거룩에 이르지 못한다.

 

게다가 누룩이라는 것은 서서히 퍼져 온 떡을 다 부풀게 하는 것이니 자신을 돌이키지 않은 자들이 아버지의 앞에 나와 주님을 섬긴다면서 많은 말들을 하고 각종 행위를 열심히 드리되 오히려 그들은 말할수록 행할수록 자신과 함께하는 영혼들까지 더럽힌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과 행위로 인하여 공동체 안에 있는 자들도 쉽게 더럽혀짐은 더러워지는 자들도 돌이키지 아니하고 그곳에 있기 때문이요 심지어 자신을 돌이키려는 영혼들까지 위험에 처한다. 하지만 돌이키지 않은 자들은 자신의 말과 행위로 자신과 다른 영혼들을 더럽히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이 빛이 되고 있다고 생각함은 늘 자신이 기준이 되어 자신의 눈에 보이는 돌만 고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좁은 문으로 들어가 협착하고 좁은 길을 걷는 영혼은 오직 그리스도만이 의로우심을 마음으로 믿고 자기의 의와 생각에서 돌이켜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요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을 따라오는 자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거룩한 것을 베푸시니 그는 이제 비로소 말씀과 기도로 또한 인자의 살과 피를 힘입어 자신을 빛나게 가꿀 수 있다. 또한 거룩하게 가꾼 자는 그의 머리 위에서 영광스런 빛이 나기에 자신의 주변에 있는 돌들에게까지 그 빛난 돌을 얻게 해준다. 그러므로 이 첫째하늘에서 가장 거룩하고 귀한 것을 말하며 행하는 자는 자신만이 아니요 자신의 가족과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그 빛과 생명을 얻게 한다.

 

이렇게 자신의 앞에 있는 그 영광을 소망하는 자는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돌을 보았을 때 아무런 설교나 다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그 돌을 들어 빛이 있는지 없는지 자신을 비추어보고 빛이 없는 것은 버린다. 어찌 생명의 말씀과 진리가 아닌 것이 불의한 죄인을 의롭고 거룩하게 가꿀 수 있도록 자신을 비추어주리요?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빛나는 돌을 찾았을 때는 우선 자신을 그 돌에 비추어보고 무엇보다 먼저 자신을 깨끗하게 가꾸며 기뻐하되 죽기까지 말씀에 순종하며 진리를 따른다. 그리하여 결국 영혼의 구원에 이른 그가 그 빛난 세마포를 입고 성소로 들어가 아버지의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며 영광의 자유를 누리는 그 복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이 땅에서 얻는 그 기쁨과 아버지의 나라에서 누리는 그 영원한 복을 오직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므로 이루어지도록 하셨으니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되 자신의 생각과 의의 기준으로 자신이 원하는 말과 행위를 하는 문은 크고 길이 넓기에 자신의 몸을 외식과 불법에 바치는 자가 많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요한에게 배울 점

     사람은 마음에 있는 그 선악의 죄로 인하여 누구나 불의하지만 오히려 자신을 의롭게 여긴다. 그리고 사람은 자신을 의롭게 여기는 그 내용이 누구나 다 똑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의롭게 고치려는 마음은 가지지 않고 그 상태에서 오히려 다른 사람과 이 세상에 대하여 올바른 것을 요구하는 자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바 외식하는 자의 태도와 같은 것이니 아버지께서는 그러한 자를 참으로 어리석게 보신다.

 

     게다가 이 세상을 불의하고 악하게 이끌고 가는 원수도 이렇게 어리석은 자를 자신이 심은 그 죄로 더욱더 강하게 묶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도 의롭지 않은 상태에서 어떠한 말과 행위를 하면할수록 더욱더 자기를 위해 다른 사람을 해친다. 또한 자신의 부끄러움보다는 상대방의 부끄러움을 더욱 드러낸다. 그리하여 어리석은 자는 더 깊은 사망의 죄와 불의로 빠져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그 의로우심과 온전하심에 이르셨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누구든지 진리를 따르는 자도 그 의와 거룩에 이르도록 하셨으니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룬 자에게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주신다. 결국 이 세상의 모든 자들이 공평하게 그 사망의 줄을 풀 수 있는 생명의 길은 오직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켜 자기의 의를 내려놓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요한의 의는 베드로와 그 내용은 같았지만 더 강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의롭지도 깨끗하지도 못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자신을 의롭고 거룩하게 고치려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므로 요한은 우선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켰으며 자신의 그 옳지 못한 강한 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의와 거룩을 이루신 그리스도를 따르며 진리를 구했다. 또한 그리스도의 말이라면 순종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요한이 품은 그 생명나무의 마음을 늘 기뻐 받으셨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생각과 의를 따르지 않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말씀을 원한 것은 요한만이 아니요 다른 열명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즉 그리스도께서 부르신 모든 제자들도 다 그 마음을 가졌기에 진리를 원했으며 또한 그 진리를 통하여 생명을 얻고자 하는 원함이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항상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스스로 제자를 하겠다고 그리스도의 앞으로 나온 제자는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불의했으나 자신을 의롭고 깨끗하게 고치려는 마음이 없었다. 그리고 살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니 진리를 요구하는 마음도 없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따라다니며 일반의 사람들보다 더 어리석은 말과 행위를 했다. 게다가 썩어질 육과 사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을 그의 마음에서 끝까지 내려놓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는 그리스도를 따르고도 마지막에는 사망으로 들어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제자인 교회의 인도자들이 자신과 자신이 이끄는 양들의 생명을 위하여 유다와 같은 마음을 품고 말과 행위를 하는 옳은 것이요 아님 다른 열한제자들과 같은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옳은 것이요? 만약 후자를 원하는 목자의 영혼이 있다면 그리스도께로 말씀을 받으며 그리스도만을 끝까지 따랐던 사도 요한에게 배울 것이 세가지가 있다.

 

     첫째 요한은 마음이 순수하여 오직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되 아무런 행위를 그리스도의 앞에서 나타내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제자들은 말씀을 듣고 가서 자신이 말씀대로 행한 것과 또한 그로 인하여 나타난 것을 늘 자랑했다.

 

     둘째 그는 마음이 강하여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실 때 항상 그의 오른편에서 걸어갔다. 그것은 그가 늘 그리스도의 마음 안에서 거하며 그의 말에 항상 귀를 기울이고자 함이었다. 그러므로 혹이나 다른 제자가 그 옆을 걸어가는 것을 보면 그가 달려와 그 사이를 가로질러 그리스도 옆에 있었다.

 

     그러나 그 마음이 없는 한 제자의 경우는 진리를 구하는 마음도 없고 또한 자신의 생각이 강하여 항상 그리스도께로부터 제일 멀리 서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안에 거하지 않은 그의 마음에는 세상의 말이 그에게 틈타 그가 범죄했으며 나중에는 그것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그리스도의 그 마음에서 그를 끌어 내려놓았다.

 

     셋째 그리스도께서 다른 제자들보다 요한을 사랑하셨던 것은 이것이니 그는 썩어질 육이 아닌 오직 영에만 소망이 있었고 또한 욕심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도 그를 더욱 사랑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끝없이 넓은 어떤 나라의 왕세자가 왕궁밖에 사는 백성들에게 이러한 말을 해주었다. “누구든지 나의 섬김을 받기 원한다면 내가 거룩한 말을 전하며 거룩한 행실을 보여 너희를 섬긴 것처럼 너희도 먼저 다른 사람들을 섬기어라. 그러면 너희는 나의 왕궁으로 들어와 왕자와 공주로 세움을 받을 것이니 너희는 나의 명을 직접 받을 수 있는 영광을 얻어 너희가 거룩한 말과 행실로 섬겼던 사람들을 계속 섬길 것이니라. 그러나 만일 자신이 원하는 말과 행위를 하므로 자신이 섬김을 받은 교만한 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하리니 나의 왕궁 안으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니라.” 왕세자의 말을 듣자 백성들 가운데 첫 번째 사람이 종처럼 낮아져 오직 왕세자의 말만을 전하며 거룩한 행실을 보여 다른 사람들을 섬겼다. 한편 두 번째 사람은 첫 번째 사람에게 자신이 거룩한 말과 행실로 섬김을 받은 대로 자신도 역시 종처럼 낮아져 다른 사람들을 섬겼다. 그러나 세 번째 사람들은 자신이 높아지는 것이 기뻤으니 섬기기보다는 오히려 섬김을 받고 싶었다. 심지어 왕세자보다 더 높아지고 싶었으니 그들은 자신이 왕세자의 종이라고 말하며 행했으나 그것은 오직 자신을 높이는 말과 행위였다. 그러므로 그들로 인해 섬김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왕의 말을 듣고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말을 듣고 따르며 그들을 섬겼다. 이에 왕세자는 첫째 사람을 왕궁으로 불러 자기의 남동생으로 세운 후 어명을 내렸으니 그는 깨끗하고 올바른 마음에서 나오는 거룩한 말과 행실로 둘째 사람을 섬기는 왕자가 되었고 둘째 사람은 왕자가 된 첫째 사람에게 계속적으로 이런 저런 말을 듣고 순종하며 그 넓은 나라의 백성들을 섬기는 왕세자빈이 되었다. 그러나 자신이 하고 싶은 말과 이루고 싶은 계획을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섬기게 만들었던 사람들은 왕세자빈의 섬김을 받으며 가장 낮은 백성으로 살거나 감옥에 갇히거나 형벌을 받았다.

 

이와 같이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은 오늘 잠시 육신을 입고 사는 이 첫째하늘에서의 섬김과 내일 영원히 거하게 될 셋째하늘에서의 섬김의 비교이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전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행위로서가 아니요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으로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주님을 따르며 그리스도께 받은 아버지의 생명의 말씀과 진리로 또한 거룩을 구하는 기도로 종처럼 낮아져 자신을 비워야 다른 사람들을 섬길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시간과 공간의 한계가 없는 영원한 셋째하늘에서 자신이 누구에게 섬김을 받고자 하는 자는 이 첫째하늘에 있을 때 오히려 종같이 낮아져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사람들을 섬겨야 한다. 즉 자기가 원하는 말과 자기를 의롭게 보이는 행위와 육적인 기도를 함이 아니요 오직 말씀과 진리만을 전하며 또한 말씀에 순종하는 거룩한 행실을 하며 거룩을 구하는 기도로 섬겨야 한다. 그런 후 그리스도께서 그를 자신의 형제로 높여주시는 날에는 이 첫째하늘에서 섬긴 자를 셋째하늘에서도 그리스도께 받는 말씀으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계속 섬기게 된다.

 

이처럼 이 첫째하늘에서 그리스도를 위한 정결한 처녀들의 거룩을 위해 말씀과 진리로 섬긴 영혼의 인도자들은 셋째하늘에 갔을 때 이방인의 장자로서 아버지와 아들의 섬김을 받으며 자신이 섬겼던 신령한 지체들에게 말씀과 진리를 전하되 한 몸의 인도자들에게 섬김을 받으며 다른 영혼들을 기도로 섬긴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은 셋째하늘에서 장자의 섬김을 받으며 온 백성들을 섬기게 된다. 그러나 이 땅에서 자신이 섬김을 받은 인도자들은 거룩한 육체를 통한 영광의 자유에 참예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의문의 율법을 전하며 섬김을 받은 구약의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독사의 자식들이니 유황불 못의 뜨거운 섬김을 받지만 이 첫째하늘에서 신령한 율법으로 백성들을 섬긴 선지자들은 셋째하늘에 갔을 때 유대인의 장자로서 여호와의 섬김을 받으며 자신이 섬겼던 12지파에게 영원히 율법을 선포한다. 왕이 백성의 말에 순종함이 아니요 백성이 어명을 듣고 따르며 없는 사람이 가진 사람을 대접함이 아니요 가진 사람이 없는 사람을 대접할 수 있으니 셋째하늘에서도 말씀으로 섬기는 자가 아래가 아니요 말씀을 전하는 그가 오히려 더 위에 있는 거룩한 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세상에서는 오직 오늘 하루를 살되 아버지의 나라에서는 영원히 사니 이 땅에서 대접하는 자는 짧은 시간을 대접하고 하늘에서는 영원한 시간을 누구에게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이 땅에서 참으로 자신의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섬기려는 자들이 몇 없으니 그 이유는 말씀을 전하는 자들은 말씀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며 그리스도의 의보다 자기의 의를 드러내고 싶어하고 기도하는 자들은 다른 영혼들의 거룩을 위해 간구하기보다는 썩어질 육과 세상의 헛된 것을 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의 말과 계획을 아버지의 것으로 바꾸고 늘 그것을 이루어가며 말씀과 기도로 섬긴다 하되 사실은 불법을 행하며 대접받고 있는 것이니 말씀을 이용해 영광을 취한 자들은 새 예루살렘성전 밖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혹은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어두운 곳이나 유황불 못의 가장 뜨거운 곳에서 불법을 행한 만큼 대접을 영원히 받는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