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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7/27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살고자하는 마음
  2. 2010/07/23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살고자하는 마음
  3. 2010/07/15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살고자하는 마음
  4. 2010/07/06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살고자하는 마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사람들은 흔히 이방인이라고 하면 유대인의 12지파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로써 이스라엘의 밖에 거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 이방인들 가운데는 아브라함으로부터 그리스도의 당시까지 유대인들과 함께 거하던 이방인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유대인들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 그들을 함께 따라 나왔던 이집트인들이 있었으며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로 다닐 때에 포로가 되거나 자진하여 그들과 함께 광야 길을 걸었던 주변의 이방인들도 있었다. 또한 라합과 그의 가족들도 처음에는 이방인이었으나 그 일 후에 유대인들과 함께 거했다. 또한 예루살렘성전이 세워진 후에 여호와의 구원의 이름을 듣고 여러 지방과 민족에서 포로들이 돌아올 때 함께 온 자들도 있었다.

 

이처럼 할례를 받은 후에 이스라엘과 함께 살게 된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맺은 관계는 요즘에도 색깔과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함께 거할 때 벌어지는 일을 보면 이해하기 쉬우니 그들이 어렸을 때는 함께 어울리며 친밀한 관계를 맺지만 성인이 되고 성숙해지면 서로가 다른 것을 깨달았기에 그 친밀한 관계가 변하여 오히려 더 원수의 관계가 되었다. 그러므로 악한 유대인들은 자기의 조상 때부터 자기들과 함께 살던 그 이방인들의 후손들을 형제자매로 받기보다는 늘 낮게 여기며 종처럼 대우하므로 아버지께서 주신 그 계명들에 순종하지 못했으며 유대인들과 함께 거하던 이방인들 중에 악한 자들도 유대인들을 미워하며 싸웠으니 그들도 사랑의 계명을 지키지 못했다.

 

그리스도의 당시에 이렇게 유대인이 아닌 유대인으로써 유대 땅에 거하는 자들의 수효는 남자가 1872명이요 여자가 2134명이 있었으며 성인의 나이인 12세가 되지 않은 어린 남자는 881명이요 어린 여자의 수는 822명이었으니 그들이 바로 유대인의 하속이라고 불리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자기가 태어난 자기의 민족을 떠나서 다른 민족들이 거하는 땅에 살겠다는 것은 사람이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의 하속의 조상들은 자기가 속한 그 뿌리를 떠났으니 그것은 그들이 유대인들에게서 육적인 것을 더 얻거나 혹은 이 세상의 나라에 속한 타락한 육적인 이스라엘에 그 어떠한 소망이나 영광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의 마음은 썩어질 육과 이 세상의 헛된 소망을 버리고 오직 율법과 계명과 법도에 순종하여 거룩에 이르므로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그 부활의 생명에 이르고자 자기가 태어난 민족을 떠났던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의 하속들과 그들의 조상들 가운데 자기의 민족을 떠나올 때 가졌던 그 첫 마음을 지키지 못한 자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택함의 은혜를 얻고도 거룩을 저버린 유대인들처럼 그 거룩한 뜰로 들어가 그들의 손을 펴되 오로지 썩어질 것들과 헛된 것들만을 구했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는 그 거룩한 곳으로 들어와 거룩한 행위의 모양을 보이되 영원한 생명을 주는 자신을 이방인들의 신처럼 섬기던 그들에게는 눈을 돌리시고 귀를 막으셨으니 그들도 육적인 유대인처럼 그저 아버지의 마당만 밟을 뿐이었다.

 

반면 그들 가운데 자신이 여호와를 만날 때의 첫 마음을 끝까지 지키므로 자기의 마음에 우상을 허락하지 않은 영혼들이 그리스도의 전에도 또한 그리스도의 당시에도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들을 위한 뜰에 들어갔을 때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룩에 이르고자 애썼다. 즉 그들이 자기민족의 풍습을 버리고 유대인의 약속과 또한 그 거룩한 행위의 능력을 따른 것은 그들이 오직 아버지의 뜻에 이르고자 함이었으니 아버지께서는 이방민족에서 유대로 들어와 거룩에 애쓴 그 하속들에게 은혜를 내리시어 그들을 의롭고 거룩케 하셨다. 또한 그들이 썩어질 육에서 벗어났을 때에는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그 약속을 그들에게도 지키셨으니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부활하신 후 그 영혼들도 거룩한 몸을 입고 그 거룩한 성으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도 또한 아들께서도 그들을 보실 때에 이제는 더 이상 이방인이나 유대인의 하속들로 보시지 아니하시고 오로지 유대인의 자녀들 가운데 딸로 여기신다.

 

그러나 이렇게 동서로부터 많은 유대인 아닌 유대인들이 와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그 약속을 이루는 동안 오히려 바깥의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가는 유대인들이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유대인들을 향한 말씀처럼 보이되 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을 유대인만이 아니요 자신의 십자가 이후에 있을 그 일곱 교회시대에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모든 영혼들에게 선포하신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주신 이 경고의 말씀을 깨닫고 돌이키는 이방인에게는 영생의 유익이 있다.

 

그러므로 각 교회시대마다 또한 어린양의 다시 오심이 임박한 이 마지막 때에도 나는 그리스도를 안다 믿는다 따른다 말하되 거룩에 마음이 없는 이방인들이 있으니 그것은 자신의 마음을 육과 또한 자신이 나왔던 이 세상에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자들은 십자가의 첫사랑을 회복하고자 자신의 심령을 찢기보다는 그저 때가 되면 아버지의 앞에 나와 마음 없이 행위만을 보인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마음 없는 더러운 곳에는 임하시지 못하시니 그들이 비록 거룩한 곳에 나와 늘 예배를 드리며 여러 가지 행위들을 열심히 드린다 할지라도 아버지께서는 그들을 받으시거나 그들의 몸을 성전으로 삼으시지 아니하신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음을 보시는 그리스도의 심판에 따라 그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 영원히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것은 나는 세상에 있을 때 오직 예수이름으로 모든 것을 했는데 내가 왜 여기에 있는가 라는 불평과 불만이다.

 

이와 같이 유대의 주변에서 온 이방인들은 그가 어느 시대에 거하든 나는 예수를 믿는다 따른다 또한 예수님을 좋아한다 라는 말을 하되 그들의 마음은 오로지 그 육을 어떻게 채울까에 가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바로 그런 육적인 이방인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엄중하신 심판의 선포였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믿는 자들이 말씀을 듣고 보았을 때 생명과 소망이 없는 이 헛된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켜 이미 약속된 그 푯대의 생명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당시만이 아니요 교회시대와 이 마지막 때에도 늘 입으로만 믿는다 따른다 하는 자들에게 그들의 귀로 또한 눈으로 이 어두운 곳에 대한 말씀을 분명히 듣고 똑똑히 보게 하시는 것이다.

 

반면 십자가의 피로 영이 거듭난 후 이 땅에서는 비록 주변에 거하되 그들이 이 세상을 등지고 광야와 섬들에 거하는 이유는 자기의 생각이나 의나 사람의 가르침이나 이 세상의 풍조에서 돌이켰기 때문이요 십자가아래에 모이는 그날을 소망하기 때문이다. 이에 아버지께서는 바벨론의 주변에 거하며 마음과 믿음을 오로지 거룩에 두고 마음과 몸과 정성과 뜻을 다해 거룩에 애쓴 그들도 부활시켜 어린양의 신령한 신부나 이방인가운데 거룩한 아들과 딸로 삼으신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통해 거룩한 육체의 생명 얻은 그들이 영적유대인과 함께 천년왕국과 또한 그 끝에 맏아들을 따라 올라갈 영원한 셋째하늘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가까이에 거하므로 기쁨과 영광이 충만해지며 아버지의 모든 것을 누리며 그 의롭고 거룩한 나라를 영원토록 다스리게 되는 것이다.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한 의로운 왕이 높은 산의 꼭대기에 있는 왕궁에 거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왕이 산밑에 있는 도시사람들을 가만히 보니 그들은 돈을 취할 수 있다면 무슨 일도 다했으며 배가 불러도 더 챙기려고 늘 거짓말했다. 그리고 여자는 자신과 첫사랑을 나눈 남자에 만족하지 않고 힘있는 남자를 따라다녔으며 남자는 자기의 아내가 있음에도 늘 기회를 만들어 다른 여자와 즐겼고 남자와 남자가 여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거나 서로가 부부를 바꾸어 취했다. 또한 자신이 높은 곳에 올라가고자 자기의 가족도 다른 사람에게 내주었다. 그러니 자신도 깨끗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불의와 죄와 실수를 보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보통이었다. 한편 도시를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자기의 욕심과 앉은 자리를 위해서만 움직였으며 많은 사람들의 앞에 서서 말하는 자들은 무슨 말을 하든 무엇을 하든 그것은 오직 자기자신만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 나라에서는 부하고 강한 자는 대우를 받고 가난하고 힘없는 자는 늘 서러움을 당했다. 이에 그 왕은 불의하고 죄악된 그 도시를 심판하고자 했다. 하지만 자기만 사랑하는 그 악한 자들 가운데서 진심으로 그 불의하고 죄악된 도시에서 나오기 원하는 사람들은 그 심판 전에 다 구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도시에서 나와 자신을 섬긴 자들로 하여금 자기의 나라를 다스리는 영광을 주고 싶었다. 그 왕은 이러한 뜻과 계획을 가지고 자기의 아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아들아 너는 저 산밑에 있는 도시로 내려가서 나의 뜻과 계획을 전한 후 다시금 왕궁으로 올라오며 너의 발자국을 선명하게 찍어놓아라. 그러면 저 불의하고 죄악된 도시에서 벗어나 이 좋은 곳에서 왕자와 공주가 되기 원하는 자들은 이 산꼭대기까지 올라오는 것이 비록 힘들고 어려워도 참고 인내하며 너의 그 발자국을 따라 끝까지 올라올 것이니라.” 왕의 말을 듣고 난 후 그 아들은 산밑에 있는 도시로 내려가 자기 아버지의 뜻과 계획을 다 전했다. 그리고 왕궁이 있는 산꼭대기를 향했으니 다섯 사람이 그 아들을 따라갔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참으로 더럽고 불공평한 세상이라고 말하면서 거기서 나오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그 세상에 미련이 있거나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한편 많이 가진 자들은 거기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면서 죽을 때까지 즐기고 싶었다. 이제 그 아들은 산꼭대기를 향해 바라보며 가장 빠르고 쉬운 길로 올라가며 발자국을 만들었다. 그러나 다섯 사람의 눈에는 그 길이 가장 멀고 험하게 보였으며 또한 그렇게 느껴졌다. 그러므로 첫 번째 사람은 그 자리에 그냥 주저앉았으며 두 번째 사람은 한 발은 산을 향해 한 발은 도시에 두고 다리를 벌리고 서있었으며 세 번째 사람은 자기의 눈에 빠르게 보이는 곳으로 가다 웅덩이에 빠졌고 네 번째 사람은 자기의 눈에 쉽게 보이는 곳으로 가다 악한 짐승들에게 쫓겨 다녔다. 그러나 다섯 번째 사람은 불의하고 죄악된 자신과 그 도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간절히 가졌다. 또한 왕궁에 도착해 영광을 얻게 되는 그 소망을 늘 품고 그 아들이 찍어놓은 발자국만 따라갔다. 그러자 그 아들은 자기를 따라오는 그 사람에게 맛있는 빵과 물을 늘 주었으며 또한 재미있는 이야기도 항상 들려주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해도 기쁨으로 그 고난을 참고 인내하며 끝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그리하여 왕의 약속대로 그는 그 아들과 함께 왕자로서 그 의롭고 높은 나라를 다스리는 영광을 얻었다. 그러나 그 불의하고 악한 도시를 사랑한 사람들은 모두다 심판을 받았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영광에 이르는 그 길을 오직 자신의 십자가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영원한 셋째 하늘의 성소에서 아버지의 영광과 얼굴을 보는 그 기쁨과 평화를 누리기 원하는 영혼은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그 어떤 행위나 율법에 빠지지 아니하고 오직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간절히 가진다. 또한 마음에서부터 이 불의하고 죄악된 세상을 벗어나기 원한다.

 

     그러나 사람은 육의 한계가 있으며 또한 영적인 세계를 보지 못하니 마음은 있어도 자신이 마음대로 그것을 못한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영께서는 아버지의 그 뜻과 때와 계획에 따라 그 영혼을 이 어두운 세상으로부터 그리스도께로 이끄신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그 진리와 생명의 길을 내셨기 때문이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만이 그 십자가의 길을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그 영혼에게 자신의 그 살과 피를 주신다. 그러면 그는 그 영광스러운 것을 의지해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싸운다. 또한 원수가 그에게 메어놓은 세상의 줄들이 하나씩 풀리니 결국에 그는 그 어둠의 죄와 어두운 이 세상을 이긴다. 오직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죄와 세상을 이기는 빛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걷는 그 십자가의 길에는 혼적인 고난이 있다. 날마다 자기의 생각과 의를 내려놓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말씀에 순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환난과 더불어 순교도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그 길에는 육적인 고난도 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뜻을 이룬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 아들과 한 몸을 이루기 원하는 영혼들에게는 말씀의 기초를 시작으로 거룩한 것과 영광스러운 것을 차례차례 주시어 마음과 영혼에 늘 기쁨과 평화를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고난가운데서도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른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마지막에 그 환난에서 아버지께로 피의 제사를 드리므로 넉넉히 이기고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거룩한 육체를 입는다. 그리하여 영화롭게 된 그가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왕국을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리며 또한 그 후에 셋째 하늘의 영원한 기쁨과 다스림에도 그리스도와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한 나라안에 어떤 지역에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어떤 지역에는 사람들의 수가 적다. 예를 들어 변두리나 시골지역에는 5만 명이 넘고 경기도에는 100만 명이 넘는 시도 있으나 둘 다 동일하게 시라고 칭한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당시에도 어떤 지역에는 많이 어떤 지역은 적게 살았으니 예루살렘은 지금으로 말하면 사람의 수가 가장 많은 특별시와 같았고 나사렛은 작은 시와 같았다. 그런데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자신의 욕심과 영광을 구하며 늘 원수의 말을 듣고 말하며 행하는 악한 자들이 있으니 반드시 질서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백부장이라는 위치는 사람의 수가 100명인 마을을 대표하며 책임지는 자이되 그 마을에 꼭 100명만 거하는 것이 아니요 마음의 명부에 기록된 인구수와 일치하지 않았으며 또한 어떤 백부장에게는 50명을 어떤 백부장에게는 30명을 더해주기도 하였기에 당시 백부장이 다스리는 마을의 사람 수는 대체로 100명보다 훨씬 더 많았다.

 

또한 그리스도 당시에는 지금의 군대조직과 달랐으니 만일 악한 이방인들이 쳐들어오면 성인의 나이인 12세 이상의 남자는 누구나 나가서 함께 싸웠으나 여자는 항상 집안에 거하며 집안일을 도왔다. 그러므로 백부장과 천부장은 행정적인 책임과 더불어 군사적인 권세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른 자들에게 위협과 죽임을 당할 수도 있으니 자신의 안전을 위해 자기의 주변에 늘 칼을 든 종들을 두고 다녔으며 밤에는 칼을 든 그 군사들이 밤새워 그들을 지켰다. 구체적으로 백부장과 천부장은 늘 여섯 부류의 종들을 데리고 있었으니 우선 칼을 잘 이용하는 종들과 집안의 일을 하는 종들과 집밖의 일을 하는 종들과 가정의 모든 재산을 관리하는 종들과 자녀들을 가르치고 보호하는 종들과 다른 모든 종들을 관찰하는 종들을 데리고 있었다.

 

결국 백부장과 천부장은 그 힘으로 어떠한 두려움과 타협 없이 의롭고 공평하게 마을을 다스리며 또한 모든 백성을 아끼며 정직하게 대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야곱으로부터 12지파를 이룬 후 이집트에 있을 때에도 또한 광야에 있을 때에도 백부장과 천부장이 자기의 목숨을 바쳐 백성들을 위해 일했다. 그러나 그때도 지금처럼 그 자리에 앉아 백성들을 위해 선하게 다스리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욕심과 자리만을 구하는 자들이 있었으니 그런 자들은 백성들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내어놓고 섬기고자 함이 아니요 오로지 자신에게 있는 부유한 것을 다른 자들에게 보여주며 또한 자신이 앉은 그 자리가 합당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마음을 가지고 많은 종들을 데리고 다녔다. 그리하여 그런 마음을 품고 그 자리에 앉아있는 자는 앞에서는 입술로 백성들을 위한다고 말하며 돌아다니되 뒤에서는 늘 백성들을 속이며 그 자리를 통해 자기의 유익을 얻고자 자기의 자리를 굳게 지켰으니 지금의 높은 자들과 똑같았다. 또한 사람들은 지금은 종이 없도다 라고 하며 너와 나가 동등하다라고 말하되 세상을 가만히 보아라! 아직도 그 물질이 있는 자들은 물질이 없는 자들을 늘 물질로 사서 종을 만들어 온갖 더럽고 위험한 일을 시키며 모든 물질을 쌓아놓되 자기가 부리는 자와 그 가족을 책임지기는커녕 종의 가치가 없어지면 잘라버린다.

 

당시 가버나움은 두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셨을 때 나온 백부장은 가버나움의 두 백부장들 가운데 한 영혼이었다. 그 영혼은 성품이 선하였으며 또한 다른 영혼들을 늘 불쌍히 여기는 자였다. 그러므로 자기의 종이라 하여도 자기의 종같이 여기지 아니하고 늘 한 가족으로 여겼으니 낮은 종들에게도 늘 공평하게 나눌 것을 나누어주었다. 또한 항상 자신만을 위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온 가족들과 또한 온 종들을 위하여 애쓰는 자였다.

 

하지만 그 선한 백부장의 종들 가운데 한 종이 그 병에 걸려 그 몸을 온전하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 병은 자신의 마음을 이미 원수에게로 빼앗겼기에 원수는 그의 두 번째 단계인 육체의 기능을 자신이 잡아 사망으로 데려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번 육체에 어떠한 충격이 올 때에 흑암의 세력이 그 한 부분과 또한 다른 한 군데를 동시에 잡기에 그 병에 걸린 자들은 그 잡힌 한 부분을 이용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원수는 자기가 원할 때마다 그 부분을 이용하여 그가 끝까지 아버지께로 나가지 아니하고 오히려 부인하게 하므로 영원한 사망으로 이끌고자 함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아들의 그 피를 의지하여 아버지께로 나와 자신의 죄와 범한 허물들을 회개하면 아버지께서는 그의 육체 안에 군데군데에 죽은 피가 머물러 다른 피를 그 육체로 퍼지지 못하게 막고 있는 그 썩은 피들을 종을 통해 거두어주신다. 그러므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죄들을 회개하고 돌이킨 자는 그 피가 이제는 원래처럼 온 몸을 돌게 되니 그 병에서 온전케 된다.

 

그런데 자식들이 만일 악한 부모를 따르며 보고 자라면 자식들도 부모처럼 악해져 서로간에 결국 원수로 변하듯 악한 지도자의 밑에는 반드시 악한 종들이 밑으로 들어가 서로 헐뜯고 끌어내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반대는 반대이니 그 선한 백부장의 종들 가운데서 한 영혼이 예수그리스도의 소식을 들었다. 그러므로 그 종은 그 병에 걸려 자기의 옆에 누워있는 종이 그 병에서 일어나길 원했기에 자기의 주인에게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리고 주인은 늘 선한 마음이 있기에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유대인으로써 자신이 기다리던 메시아의 앞에 나아와 속죄의 권위가 있는 그리스도의 앞에 그의 마음을 다 내어 놓았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 백부장의 선한 마음을 이미 알고 계셨으니 그의 마음중심을 보시고 그에게 거룩이 담긴 복된 말씀을 허락하시므로 그가 생명을 얻었으며 또한 그의 종도 육만이 아니라 영의 구원도 얻었다. 즉 병으로 인해 누워있던 종도 자기의 주인에게 거룩을 전해 들었을 때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를 믿고 자신의 허물들을 돌이켰기에 영이 거듭나는 그 은혜와 육의 깨끗함도 얻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그 백부장을 향하여 말씀하신 이만한 믿음이라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으니 첫째로는 그 영혼이 자기의 핏줄도 아닌 낮은 종을 살리고자 하는 그 선한 마음을 뜻하는 것이요 둘째로는 그가 이 세상의 다른 그 누구에게로 찾아가지 아니하고 가장 먼저 창조자에게 나와 자신과 또한 자신의 종의 영혼을 맡긴 것에 대한 마음과 믿음을 뜻하는 것이니 당신의 마음 안에는 과연 그만한 믿음이 있는가?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이 땅에는 아버지와 아들께서 거룩하신 영을 통해 세우신 은사 자들도 있으나 원수가 세운 자들이 더욱더 많이 거하고 있으니 영적인 원인을 치료받지 못하고도 오직 육신만 병상에서 일어나는 자들이 많다. 그러므로 회개와 돌이킴 없이 일으킨 그 신유의 은사가 누구에게로 온 것인지 쉽게 깨달을 수 있다. 그리하여 불의와 죄악을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그대로 숨겨두고도 원수에 의해 그저 육신만 일어난 자들은 반드시 자기의 뜻을 아버지의 뜻이라고 말하며 행하며 자신의 의로움과 높아짐을 이루어가게 되어있다. 하지만 많은 자들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여 질병에서 일어난 모습만을 바라보고 또한 그 후에 그가 거룩과 상관없이 이루어가는 큰 일들을 보며 그가 일어난 것과 이룬 일을 하나님의 능력과 거룩하신 영의 역사로 인정하면서 따라간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진흙이 떨어져나가는 병을 얻은 자가 찾아왔을 때 다른 병든 자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그에게도 동일하게 돌이킴을 명하셨다. 이에 그는 자신의 모든 죄들을 마음을 다해 회개하고 완전히 돌이켰기에 그 영혼을 사망으로 이끌어가던 그 죄를 용서하시어 영의 생명을 허락하셨으며 또한 그가 거룩에 애쓸 수 있도록 그의 육신도 깨끗하게 하시므로 육의 수명을 연장해주셨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제사장들을 찾아가 그의 치유된 몸을 보이고 아버지와 원수가 되도록 이끄는 의문의 율법과 계명이 아닌 사람을 신령하게 하는 모세의 율법과 계명에 따라 예물을 드리라고 그에게 이르셨으니 그 이유는 첫째 질병에서 해방된 그가 신령한 계명에 순종하도록 하시기 위함이요 둘째 성전에 거하는 제사장들에게 증거할 것이 있으셨기 때문이다.

 

신령한 율법 의문에 속한 율법의 차이는 이것이니 전자는 그리스도께서 모세에게 호렙산과 지성소에서 일일이 내려주신 것이요 후자는 그것을 제사장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바꾼 것이다. 깨닫기 쉬운 비유로써 어떤 왕이 두 종에게 석판을 주고 그것을 손에 들고 읽으며 그대로 행하라고 명했다. 하지만 한 종은 그것이 너무 무거워 일부를 깨서 버려버리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말을 종이에 써서 석판에 붙였으되 다른 종은 석판을 손에 들고 읽으며 그대로 행했다. 그러므로 전자가 바로 신령한 율법을 무겁게 여겨 자기의 의로 바꾸어 지킨 성전의 목자들이요 후자는 그리스도께 받은 것을 그대로 지켰던 세례요한까지의 선지자들이었으니 전자가 말씀을 힘겹게 느낀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썩어질 육의 욕심과 자신의 영광에 빼앗겼기 때문이되 후자는 여호와께 두었기에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율법에 죽기까지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육체로 폐하신 것이 바로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이되 다 이루신 것이 대대로 영원히 지켜야 할 신령한 율법과 계명과 법도와 율례다.

 

그리스도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제물가운데 진흙이 떨어져나가는 병에서 깨끗함을 얻은 영혼을 위해 가장 중요한 예물 두 가지는 첫째로는 양을 드리되 가장 젊고 아무런 흠이 없어야 하며 더불어 그 순한 짐승에게 아버지의 영광이 있는 양만을 드려야 하되 형편이 나은 자는 다른 한 짐승을 더 잡아 피를 흘릴 수도 있었다. 둘째로는 비둘기이되 날아다녔던 산비둘기가 아니요 어느 한 장소에서 따로 키웠던 집비둘기여야 된다.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람과 같이 육신을 취하시지 아니하시는 아버지께서 짐승의 살이나 피를 좋아하시거나 기뻐하시기 때문이 아니시니 오직 죄에서 자유를 얻은 그 영혼이 그 제사제물을 통해 그 피의 의미를 마음 깊이 깨닫고 있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즉 아버지께서는 그가 비록 자신대신 짐승을 잡아 그 피를 흘리되 오로지 그 의미를 마지막 제사의 그 순간까지 자신의 마음속에 늘 기억하고 있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께서 당시 성전에 거하던 자들에게 증거하기 원하셨던 것은 바로 아버지의 아들이셨던 자신이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피를 진흙으로 가리는 범죄에 빠진 영혼에게 진흙이 떨어져 나가는 병을 허락하시거나 또는 회개하고 돌이킨 영혼의 육신을 낫게 하시는 분은 오직 셋째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밖에 없음을 제사장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성전에 거하며 오직 거룩한 모습의 본을 보이므로 자신과 백성들의 몸이 하나님을 위한 성전이 되게 하는 그 거룩한 일을 하던 자들에게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증거하시기 위해서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 두 가지 목적을 위해 정결케 된 그 영혼으로 하여금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고 증거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형편에 따라 수양과 집비둘기와 또한 소까지 가지고 성전의 제사장들을 찾아가 자신의 몸을 보인 후 제사장들을 통해 아버지께로 제사를 드렸다. 그런데 그때에 일곱 명의 제사장들 가운데 한 제사장이 그 영혼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를 알아본 제사장이 자기의 입을 열어 이리저리 돌리지 못함은 이 땅에 하나님께서 내려와 계심을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하고 두려웠기 때문이되 그는 돌이키기 보다는 오히려 슬쩍 뒤로 가서 숨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그 병에서 나음을 얻은 영혼을 통해 당시 백성들을 거룩으로 인도하던 성전목자들에게 자신을 증거하라고 하시므로 제사장들이 그 영혼을 위한 속건제를 드리며 이 땅에 아버지께서 내려오셨음을 깨닫기 원하셨다. 그러므로 그들도 아들을 통해 아버지를 맞이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하심이요 또한 백성들에게 그것을 선포케 하므로 모든 백성들도 생명의 아버지를 만나 아버지와 함께 거할 수 있는 그 날을 사모하게 함이셨다. 그러나 입으로는 이 땅에 오시는 그리스도를 간절히 기다린다 말하되 그들의 마음은 오직 자기의 육과 높아짐에 있었다. 게다가 그리스도께서 오심을 믿고 인정하려면 그 누구보다 먼저 영혼의 목자인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가 앉은 자리에서 거룩은 이루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신의 뜻과 계획을 아버지의 것이라며 이루어갔고 그 과정에서 백성들에게 얻는 물질과 영광이 좋았으니 그것을 끝까지 돌이키지 못했기에 어리석게도 죄와 두려움을 그대로 가지고 뒤로 들어가 숨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땅에 거하는 이방인목자들과 양들도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마지막 때에 동일한 일을 겪을 것이니 자신이 받은 그 십자가의 첫사랑을 잊고 썩어질 육과 헛된 영광에 마음을 빼앗긴 목자들과 자기의 생각과 의에서 돌이키지 못하여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하고 있는 목자들은 늘 하나님아버지 예수님 주여 주여라고 부르고 심지어 재림과 휴거와 마라나타와 대환난을 설교하며 양들을 위로하되 자신의 깊은 곳에 있는 그 욕심과 교만과 의를 돌이키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돌이키지 못하기에 의를 따르지 못하여 거룩을 이루지 못하는 목자들과 또한 성경을 펴서 자신이 들은 설교를 말씀에 맞추어보지 않고 따르는 어리석은 양들은 대환난전에 그들의 육이 사망의 은혜를 얻는다. 하지만 세상에 환난이 임할 때 그들이 찾고 부르짖어도 아버지께서 응답하시지 아니하심은 아버지께서 약속을 어기심이 아니시요 오직 그들 스스로 육과 세상에 두고 있는 그 음란한 마음을 끝까지 돌이키지 않았기에 환난 중에 큰 도움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거듭난 자들 가운데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자와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의를 따르는 자와 말씀 앞에 자신의 의를 내려놓는 겸손한 자와 연약한 자와 첫사랑을 붙들고 거룩의 약속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세상에 환난이 임할 때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얼굴을 숨기시지 아니하시고 오른손과 왼손으로 구원하시어 피난처로 이끌어 들이시니 육과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킨 자들은 십자가아래에서 오직 거룩만을 이루어간다. 그리하여 영과 혼과 육의 정결함에 이른 영혼들이 대환난전에 공중으로 들림을 받아 신령한 몸을 입고 혼인잔치에 참여하며 대환난에서 몸의 산 제사로 영광을 돌려드린 영혼들이 거룩한 몸을 입고 144000에 참예하게 되는 것이니 거룩을 이룬 자녀들은 왕과 제사장으로써 이 땅에 내려와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다스린 후 그 천국의 끝에 셋째하늘로 올라가 영원토록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늘 영광 중에 거하게 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시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