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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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에게 중요한 것과 그것을 얻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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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당시에는 유대민족도 또한 이방민족들도 동일하게 흑암에 붙들린 자들은 모두 산으로 데리고 가서 그곳에 머물게 하므로 다른 자들에게 어떠한 피해를 주지 않도록 했다. 하지만 그들 서로가 서로에게 몸을 부딪히므로 서로가 서로를 사망으로 인도하는 경우가 있었기에 쇠사슬로 묶어놓기도 했다. 그런데 무덤에 거하다 그날 그리스도를 만났던 그 영혼은 오직 한 명이었으니 마태도 처음엔 한 명으로 기록했으나 원수는 사람들이 말씀을 보고 아버지의 뜻과 계획을 깨닫지 못하도록 하나님보다 윗사람을 두려워하는 서기관들을 통해 늘 이곳 저곳을 고치고 빼고 더한다. 그러므로 마가와 누가의 글은 그대로 놔두고 마태의 기록에서만 두 명으로 바꾸었으되 거룩하신 영께서는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영혼들과 갈급한 영혼들에게는 올바른 깨달음을 허락하신다.
말씀에 불순종이 쌓이니 먼저 영이 흑암에 감싸이고 또한 돌이키지 아니하니 혼도 붙들리고 계속 불순종하니 결국 자기의 몸까지 내어주고 무덤에 거하던 그는 어릴 때부터 부모의 말에 순종치 아니하였으며 세상의 높은 곳에 올라가 자신이 모든 영광을 언젠가는 취하겠노라 늘 마음속으로 다짐했던 자였다. 또한 날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는 어떠한 거짓말도 다하였으며 남이 잘되는 것을 보고는 늘 빼앗았다. 그러므로 사망이 임한 그 영혼을 보며 기억해야 할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 어린 생명일 때 자기부모의 말에 불순종하는 자녀들은 늘 나쁜 것들이 그의 안으로 들어갈 것이요 둘째 자신의 유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것들을 빼앗는 자들은 악한 것들이 열 배로 들어갈 것이요 셋째 세상의 영광을 취하겠노라 다짐하는 자들에게는 그것들이 백배로 들어가리니 그것은 아버지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그의 마음과 혼과 몸이 놀이터요 안식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당시 그에게는 군대가 들어있었는데 흑암의 군대조직은 적으면 200에서 300이요 많으면 수천도 넘는다. 하지만 숫자만 많다고 군대가 아니요 그 조직의 수가 12이 넘어야 군대라 칭하는 것이니 예를 들어 어떤 소대장이 자기 밑에 30의 부하를 데리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의 조직이다. 이때 그 소대장의 위치에 있는 흑암을 강한 자로 칭하는데 바로 그런 강한 자들이 12을 넘어야 흑암의 군대가 되는 것이다. 또한 그 강한 자들 가운데 가장 더럽고 악한 자가 그 흑암의 군대에서 가장 높은 자이되 흑암의 세력은 오직 자기의 위에 있는 강한 자의 말만을 듣기에 강한 자라도 다른 강한 자의 밑에 있는 죽은 영혼들에게는 명을 내릴 수 없다. 그리고 이런 군대의 조직은 원수와 그와 함께 타락한 사자들도 마찬가지니 원수는 오직 자기의 밑에 있는 종에게는 명할 수 있으나 그 종의 밑에 있는 다른 종들에게는 오직 자기의 밑에 있는 그 종을 통해서만 명령을 내린다.
한편 흑암의 세력들이 사람에게서 발할 수 있는 육체의 힘에도 기준이 있으니 한 성인의 어둠의 세력이 들어갔다면 그 흑암의 영적인 힘과 그 살아있는 사람의 육신의 힘이 합해지니 두 성인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만일 어둠의 세력 다섯이 한 성인에게 들어가면 계산상으로 그는 나무를 땅에서 뽑을 수 있을 것이요 100이 들어가면 강한 철판을 뚫을 수 있고 500이 들어가면 집 한 채를 무너뜨릴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의 육체를 이룬 뼈와 살의 한계가 있으며 또한 영적인 어둠의 세력도 물리적인 한계가 있기에 가장 큰 힘을 내도 오직 쇠사슬을 끊을 수 있을 정도다. 또한 흑암들은 갑자기 많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차츰차츰 사람을 정복하니 구체적으로 그 당시 무덤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그 영혼은 2321의 흑암들을 품고 있었으되 그는 어릴 때부터 조금씩 그의 육신에 악한 것들이 들어갔으며 어느 순간에 그의 육신의 모든 감각을 그들이 붙든 후 큰 무리가 그 안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또한 어둠의 세력들 1000을 기준으로 삼아 그 이상이 되면 반드시 행위로 나타날 것이요 이하로도 그 악한 것들이 행위로 나타낼 수도 있으나 1000을 넘을 때까지 강한 자들이 잠잠하게 하는 이유는 그들이 늘 이루는 그 일을 위함이되 때로는 한 흑암도 더럽고 악한 행동을 할 수 있으며 또한 그를 사망으로 이끌기 위한 일들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며 즐기는 것이 어둠의 세력의 특성이다.
흑암의 세력은 육을 입고 숨쉬며 사는 동안 십자가의 피를 통한 자신의 죄들의 용서와 거듭남을 거부했으니 사망으로 들어간 자들 가운데 그 마음이 가장 악한 자들이다. 즉 자신이 그리스도께 받은 그 사망의 심판을 이미 사망으로 들어간 원수를 통해 생명으로 바꾸고자 세상과 사람들을 음란과 불의와 죄악으로 이끌어가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이 자기의 욕심과 영광과 의를 위해 불의와 죄악을 행하는 것은 원수의 그 마음과 동일하다. 그러므로 자신의 유익을 위해 원수의 뜻대로 사람과 이 세상을 이끌어가고 있는 그들을 가리켜 원수의 자식이라고도 부른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성전에 거하는 목자들이 자신의 육의 욕심과 높아짐과 의를 기뻐하며 아버지의 말씀을 이용해 백성들을 이끌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기에 바울처럼 돌이키는 자가 있기를 원하시며 그들을 보고 너희 거짓의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한다고 경고하셨던 것이다.
흑암의 세력가운데 강한 자는 오직 원수의 밑에 밑에 밑에 있는 나부랭이 종의 명대로 움직이는 자들이니 자신만을 위한 욕심과 영광과 의로 가득한 자들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바로 그들의 일이다. 또한 그런 마음을 품고 외모가 좋아진 자들을 통해 세상을 불의하고 불공평하고 악하게 이끌되 불신자들보다는 살고자하는 자들과 첫사랑을 굳게 붙들고 있는 자들과 심령이 가난한 자들을 늘 가시로 더욱더 내리누른다. 그들은 또한 많은 자들의 영혼을 한꺼번에 추수하여 사망으로 데려가기를 원하므로 시대마다 전쟁을 준비한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때에도 이 세상의 적그리스도들과 잘생긴 자들을 통해 한민족의 환난과 그 마지막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 한 개인에 대하여는 불의와 선악으로 묶어 사망으로 데려가는 일을 행하고자 그들은 자신이 붙들고 있는 사람이 육의 욕심과 기쁨을 즐기며 세상을 따르게 한다. 그러나 육은 썩어질 것이요 이 세상은 결국 영원한 형벌로 들어감을 깨닫고 오로지 아버지의 나라를 소망하는 자들은 자신의 안에 있는 헛된 우상들을 제하고 십자가의 은혜를 주신 아버지와 아들께로 마음을 돌이킬 수 있다. 또한 음란과 미움과 질투와 혈기와 비판과 거짓과 질병도 당연히 흑암의 세력이 전해주는 것들이요 사람의 혼을 붙든 경우 그 결과로써 나타나는 증상들을 보고는 사람들은 빙의 다중인격 정신분열 공황장애 간질 환청 우울증 대인기피증 강박증 악몽 성도착증 공포증 불면증 치매 동성애라는 말들을 붙인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 가운데 자기의 정신이 때로는 있는 것과 하나도 없는 것이 있으니 전자는 육체의 질병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자기의 죄들을 회개하고 돌이키므로 자유함을 얻을 수 있고 후자는 아버지께서 그 영혼의 살고자하는 마음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어 먼저 온전케 해주신 후에 그가 이제는 온전한 마음과 인격으로 자기의 죄들을 회개하게 된다.
그런데 무덤에 거하던 자는 후자의 경우였으니 그리스도께서는 군대에게 붙들린 그 영혼을 먼저 불쌍히 여기셨다. 그리고 그의 안에 있던 흑암의 세력들도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이 붙들고 있는 그에게 은혜를 베푸시려는 것을 느꼈다. 그러므로 가장 강한 자가 나와 그의 입을 붙들고 당신과 우리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질문을 했으니 그것은 우선 대화를 통해 자기의 시간을 늘리고자 함이었다. 둘째 의미는 어둠의 세력들도 그리스도는 거룩한 자들을 찾으시는 것을 아니 당시에 죄로 인해 이미 죽은 이 자는 거룩한 자가 아니요 죄를 선택한 더러운 자라는 법적인 고발이며 그리하여 이 자와 당신과 상관이 없으니 이 자도 또한 자신들도 그냥 내버려두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 악한 자의 참소를 받아들이지 아니하심은 오직 그 영혼의 살고자하는 마음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기에 군대를 내어쫓으려 하셨다. 이때 악한 자들은 자신이 이제는 그의 육체에서 나가야 함을 깨닫고 이 지방에서 내어 보내지 마시기를 구했으니 그것은 자신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때가 찰 때까지 이 땅 위에 그대로 거하도록 그 땅 아래로 보내지 말아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런데 사망의 심판을 받은 그들이 무저갱으로 내려가는 것은 이미 사망으로 들어간 그 원수와의 관계이며 천년왕국의 끝에는 둘째 사망의 심판이 있으니 즉 계속 악을 행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이니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허용하신 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하셨다. 그러나 그때 강한 자는 옆에 있는 짐승들에게 들어가겠노라 허락을 요청하되 자기생각으로 그리스도께서 어디로든 들어가지 못하게 하실까 두려웠다. 그러므로 믿지 못하는 그들은 그 두려움과 의심으로 인하여 그 요청을 한 후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재빨리 14마리의 돼지들에게 들어가버렸다.
그러나 원수는 서기관들을 통해 거의 2천 마리의 돼지 떼로 바꾸어 기록했으니 그 이유는 자신이 행한 불법은 숨기고 그리스도를 더욱더 험한 사람으로 기록하여 알리기 위함이다. 즉 그리스도는 오직 사람만을 생각하니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창조하신 짐승과 또한 식물과 또한 다른 모든 자연들은 원치 아니하신다는 거짓말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방민족들에게 복음이 다 전해진 후 그리스도께서 둘째하늘과 그 안의 낙원을 이끌고 이 첫째하늘로 들어오셨을 때 원수와 사람들이 더럽힌 자연과 그 마지막 전쟁으로 황폐케 된 이 땅을 오히려 태초에 자신이 선하게 창조하셨던 에덴동산과 그 안의 만물처럼 깨끗하게 회복시키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그 영혼은 아버지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아 자유를 얻었으나 흑암으로 인하여 혼적인 능력이 전혀 없는 자들은 아버지께서 그들의 살고자하는 마음을 보시고 은혜를 먼저 베푸시고 나중에 온전한 마음과 인격을 찾은 후 자신이 범했던 죄들을 회개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그는 깨끗함을 얻은 후 그리스도께로 자기의 모든 죄들을 다 내어놓고 아버지께로 회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마을사람들은 자기의 이웃이 온전케 된 것을 보고 함께 기뻐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리스도께로 떠나달라고 요청했다. 그 이유는 첫째 그 마을에서 또 다른 어떤 이에게 그러한 형벌이 내릴까 두려웠으니 그들은 자신의 죄들을 회개하고 용서함을 받아 영생 얻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 그 강한 자를 다시 불러 다른 어떤 이에게 들어감을 명할까 두려웠으니 그들은 그리스도를 생명이 아닌 형벌을 주는 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셋째 자유함을 얻은 그 이웃이 자기들을 향하여 무엇인가를 말할까 두려웠으니 그것은 그 동안 고통가운데 있던 자기이웃에게 행했던 그들의 죄악들에 대하여 이제는 그가 온전케 되었으니 누구누구가 나에게 이러이러했다고 말하며 나와 같은 처지에 거하게 하므로 나도 그에게 똑같이 대하겠노라는 말을 할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짐승이 아니고서야 은혜를 입은 자가 어찌 다른 사람들에게 그러한 말과 행위를 하리요? 물론 요즘엔 짐승보다 못한 악한 자들도 종종 있으니 자신이 십자가의 피로 형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그 첫사랑의 은혜를 잊고 늘 자판을 두드리며 자신의 입을 열어 믿는 지체들에게 더러운 말들과 가시들을 쏟아내므로 죽은 자가 자신을 장사시키고자 보내는 그 죽은 자들을 불러들이는 어리석은 자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받은 은혜가 큰 것임을 깨닫고 감사하며 오히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되길 원했으되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그가 살던 곳에 두셨으니 그 이유는 자신이 전하지 못한 선한 말씀을 그 영혼을 통해 전하게 하심이었다. 또한 그가 그리스도께 받은 그 은혜를 자신의 식구와 친척과 친구에게 알리어 그들도 함께 그 은혜를 얻게 하려 하심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우선 잠잠히 자신의 입을 다물고 자신의 옛 생활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소식을 듣고 기회가 될 때에는 늘 그곳에 찾아가 그리스도께로 말씀을 듣고 또한 다른 이적들도 보았다. 그러나 그는 유대전통으로 인하여 인자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은 약했으되 자신이 얻은 그 은혜만큼은 잊지 않았다. 또한 불행하게도 진리를 찾으려 애쓰지 아니했기에 진리의 깨달음은 없었으나 오로지 예수라는 이름으로 사람이 온전케 되는 것만을 전하며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저희더러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그리스도께서 2천년 전에 이 땅에 계실 때 자신을 따라다니는 제자들 중에 11명은 자신이 직접 부르셨으나 애비의 힘으로 물질과 권세를 가지고 있던 그 마지막 제자는 자신이 부르신 제자가 아니요 그가 오직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따라다닌 자였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제자들은 12명이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들 외에도 자신을 진실하게 따르는 영혼들은 그들의 마음과 결단이 약해도 모두다 자신의 제자로 보셨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마가는 새로운 것을 꺼리며 늘 불안한 마음가운데 있었으니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칠 때마다 항상 뒤로 도망가 숨는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요한과 베드로처럼 가장 앞에 서서 적극적으로 따르지 못했으며 그로 인하여 12제자에는 속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아무리 연약하고 자신감 없이 항상 저만치에서 거리를 두고 자신을 따라다녔어도 그의 능력을 보심이 아니요 오직 그의 살고자하는 마음과 순종의 마음을 보시고 그를 자신의 제자로 인정하셨다.
또한 유대인들은 육신의 병을 고치는 일을 이방인들처럼 의사가 하는 것이 아니요 치료와 마무리 제사까지 오직 성전에 거하는 목자들이 행한다. 그러므로 누가는 자기 애비의 권세로 성전목자들 가운데 서기관의 위치를 얻어 윗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면서 꼼꼼하게 글을 남기는 일을 행하고 있었으나 중간에 이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결단과 함께 의사의 일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랐으니 그리스도께서는 누가도 자신의 제자로 인정하셨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는 마가와 누가도 말씀의 목격자가 되어 보고들은 대로 기록할 수 있게 하셨고 거룩하신 영께서도 계시를 주셨기에 그들이 붓을 들어 그 복음서들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다른 서기관들과 70인과 120인 중에도 그리스도를 따라다니던 자들이 있었다. 또한 성전의 독사새끼들 중에 가장 악랄한 자로써 의문의 율법에 갇혀 신령한 율법을 깨닫지 못하면서도 말씀을 아는체하며 그저 세상의 명예욕으로 가득 차 대제사장만을 바라보고 온 힘을 다하던 자도 살고자하는 마음으로 돌이켰기에 그리스도께서 그 영혼을 자신의 제자로 받아주셨으며 거룩하신 영을 통해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았기에 복음의 비밀을 기록해 이방인의 신령한 교회에 여러 서신서들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누가는 그리스도의 복음서를 기록할 때 12제자들 외에는 그리스도를 따라다녀도 제자라고 표현하지 않았으나 마태는 꼭 12제자가 아니더라도 그리스도를 따라다니면 다 제자라고 기록했다. 그러므로 마태는 그리스도께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는 이 말씀의 비밀을 들었던 그 영혼을 제자 중에 또 하나라고 기록하는 것이요 누가는 그냥 다른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따라다니기는 했으나 12제자에 속하지 못한 한 제자가 자신의 애비를 잃었다. 그러므로 그는 부친을 장사하러 떠나기 전에 다녀오겠노라고 주님께 인사하러 나왔으되 어리석은 자들은 이 말씀을 보며 나는 제자이니 가족을 장사하지 않고 주님 위해 가족도 버리겠다 말한다. 한편 교만한 자들은 그럴듯한 말로 사람들에게 자기의 생각을 가르친다. “영이 산 자는 영이 죽은 자를 장사하면 안 된다.” “율법을 장사하라는 의미다.” “영혼을 살리는 일이 중요하니 그리스도를 따라야 한다.” “복음전하는 것이 육의 부모를 모시는 것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만일 그런 뜻으로 말씀하셨다면 그의 육의 애비를 누가 장사하리요? 셋째하늘의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그의 육의 가족들을 누가 돌보리요?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육의 애비의 장사를 다녀오며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영적인 의미를 다시 한 번 마음 깊이 기억하길 원하셨다.
첫째 사람은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자신에게 없는 것은 주고 싶어도 못 주고 오로지 자신에게 있는 것을 남과 나눌 수 있음이니 생명이 없는 자가 생명이 없는 다른 자에게 생명을 줄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사람에게 생명을 못 주되 오직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아버지의 영생을 전해줄 수 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오직 아들의 십자가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정하셨으니 누구든지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그 십자가의 길에서 새 생명을 이룰 수 있으며 또한 그리스도의 그 평화의 복음을 다른 자들에게도 나누어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그가 어떤 사람이라도 자신에게 생명이 없으면 생명을 전할 수 없으니 생명 있는 자만이 생명 없는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겨 그에게 생명을 전해줄 수 있다. 그러므로 말씀의 씨로 영이 거듭난 자는 회개와 영의 거듭남의 생명을 전할 수 있고 거듭난 후 그리스도를 따르며 새 생명을 얻은 자는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얻는 영광의 복음도 나누어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에게 복음이 있다 하여 아무 때나 아무에게나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생명 얻을 기회를 얻어야 하며 또한 간절히 생명을 원해야 한다. 즉 생명 없는 자는 육의 기회가 있을 때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져야 생명 얻은 자를 통해 그것을 전해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중생이 없는 영혼의 영원한 죽음을 모르니 숨이 붙어있는 자신이 살아있는 줄 알고 산 사람이라도 살아야 한다는 어리석은 말을 하되 거듭난 자들 가운데 자신의 생각과 의를 따르느라 의를 따르지 않는 교만한 자들은 자신이 복음을 들었고 새 생명 가운데 있노라 말하되 복음의 비밀과 새 생명이 무엇인지 모른다.
둘째 생명 없는 자가 생명 없는 자에게 생명을 줄 수 없는 것처럼 죽은 자가 죽을 자를 장사하지 못하며 또한 한다 하여도 죽은 자들이 하는 것이 아니요 오로지 이미 그를 선악의 죄와 세상으로 삼킨 자가 하는 것이다. 고로 이것은 사람의 육의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영적인 세계이니 사람의 영혼이 육에서 나오면 그가 쌓은 죄와 거룩에 따라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상급이나 혹은 형벌을 받는다. 그러나 사망으로 들어간 그의 육이 작은 알갱이(쿼크/렙톤)의 창조재료인 티끌로 돌아갈 때 원수가 세포들을 가져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용한다. 그 이유는 마지막 때에 이 세상으로 올라올 자신을 예비하기 위함이니 자신이 육을 입고 나오기 전에 144000의 목을 베는 짐승들을 만들고자 하되 스스로 지혜롭다는 그가 티끌로 알갱이를 빚어 세포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적인 세계에서는 죽은 자들조차 죽을 자를 장사하지 못하고 오직 거짓말의 아비가 그를 장사하고 있으니 사람이 어찌 죽은 사람을 장사할 수 있으리요?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사람들에게 천륜과 인륜을 다하도록 공평하신 뜻을 주셨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므로 슬픔을 당한 자가 떠난 자의 마음을 깨닫고 행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 그것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서는 각 사람의 영혼이 그리스도께 아뢰는 공통된 소원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땅에 남은 가족들은 죽은 자를 장사하고 있지만 한 사람의 육이 땅으로 돌아가며 그 영혼이 심판대에 섰을 때 그가 받을 생명과 사망의 상급과 또한 그가 어디로 갈지를 아버지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법적인 심판대에서 정하신다. 그런데 그때 심판대에서 모든 영혼들이 한 가지를 늘 그리스도께 요청하니 그것은 그가 다시 이 첫째하늘로 내려와 자신이 사랑하는 자들에게 가기를 원함이다.
그 영혼들이 가족들에게 가기 원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이니 사람들의 표현으로 하면 다음과 같은 영적인 유언을 전하기 위해서다.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이여 내가 인생을 살아보니 또한 죽어서 심판대에 서보니 돈을 따라가거나 이 세상의 영광을 구하거나 주님을 믿는다며 마음 없는 행위를 열심히 드리는 것이 사람의 목적이 아니요 마지막에는 죄와 거룩에 대한 심판과 상급이 있으니 부활을 소망하며 거룩의 믿음을 가지고 거룩에 애쓰며 자신의 영과 혼과 육을 거룩하게 지어가는 것이 삶의 목적이니라.” 즉 그들의 공통된 마음은 무저갱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그 부자와 같으니 부모로써 자기의 자녀들이 나중에 세상에서 잘되고 성공하도록 어릴 때 늘 공부하라는 말을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사람은 인격체이니 공부도 자기가 좋아야 하고 목적과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영혼들에게는 12제자들만이 아니요 연약한 제자들에게도 이렇게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에 대해 늘 알려주셨다. 그러므로 12제자가 아닌 그 제자는 이미 그전에 들은 바가 있었기에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달았으며 또한 자신이 들은 대로 순종하고자 했다. 즉 자신이 먼저 그리스도를 따르며 받은 복음을 깨닫고 순종하므로 거룩을 이루어 새 생명을 얻은 후에 또한 자신의 가족과 친척과 친구의 영혼들도 불쌍히 여겨 생명을 전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의심 가운데 순종했을지라도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마음도 불쌍히 여기셨으니 그것은 그가 비록 의심가운데 있으나 순종하려는 그 겸손한 마음을 보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보고 그리스도는 이 땅에 계실 때 거처가 없었으며 가난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자기생각으로 가르치는 자들은 나는 집도 없고 가난하며 아무것도 없으니 네가 만일 이 길을 가려면 너도 무소유가 될 것이니 그럴 각오가 되어있느냐는 뜻이라고 전하며 자신을 제자로 여기니 뿌듯하다. 그래서 그가 말한 대로 사는 자인가 하여 들여다보면 이방인들과 똑같다. 한편 어떤 자는 지금은 마지막 때라며 사람들을 불러 모으되 결혼해서 아기들을 줄줄이 낳고는 앞에 서서 설교하길 홍수가 나서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그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갔다며 울분을 토한다. 최고봉은 이것이니 혼자 있을 때 늘 음행을 즐기는 자가 돌이키지는 않고 지금은 환난과 재림이 임박한 마지막 때이니 우리 함께 깨어서 신부단장하자며 사람들을 모아놓고 입을 돌리길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며 자위한다.
그러나 우리의 구세주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동일한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셨어도 이 땅에 육신을 입고 계셨으니 어찌 음식을 취하지 않고 대변을 보지 않으셨겠는가? 거처가 없어 날마다 산에서 주무셨겠는가? 또한 자신을 세상과 사람들이 아니요 오직 아버지께만 맡기셨으니 주식과 땅과 보험은 취하지 않으셨어도 공적인 복음사역을 시작하시기 전 원수의 시험을 이기기 위한 그 40일 외에는 오로지 일용할 만큼의 영과 육의 양식을 늘 취하셨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앞날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니 곧 인자에 대한 예언이다.
아버지께서 정하신 창조원리에 따라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도 짐승도 동일하게 그들의 육신이 죽을 때가 되면 자기의 가족과 친척과 친구를 찾도록 창조하셨으니 그들은 자기가 자라 나온 곳으로 돌아가 그곳에다 자신의 육신을 묻는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앞으로 자신이 죽음을 당할 때 사람들과 또한 짐승들도 하는 그 일조차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로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던 것이다. 하지만 가증스러운 자들은 그가 가난했으며 또한 거할 처소도 없었다고 가르치며 자신을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알리되 머리 둘 곳만이 아니요 다른 모든 것들도 철저하게 준비하다 결국 머리 둘 곳 없는 그 마지막 죽음은 피한다. 그리하여 그런 육신적인 준비들과 양들을 위한 죽음의 거부는 그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아니요 바리새인이었음을 스스로 증거한다.
그런데 이 말씀은 예언이요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지니 그리스도께서 그 죽음을 맞이하실 때 그를 따르던 제자들 즉 친구들은 모두다 도망갔다. 또한 그의 육의 어미도 자기의 생각을 따르며 육과 세상으로 분주하여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다가 오로지 주님이 돌아가실 때에 십자가로 나아왔다. 게다가 그의 육을 담는 그곳도 자신이 마련한 것이 아니었으니 오직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기고 자신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자 사단의 자식이란 소리를 들으며 극한 고통가운데서도 십자가의 죽음만을 끝까지 이루셨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그 참된 생명을 이루고자 죽음을 당하실 때에 사람들과 짐승들이 하듯 그 모든 것을 다 하지 아니하시므로 인자의 그 예언을 그대로 이루셨다.
한편 이 예언의 말씀이 나온 상황과 대상이 있었으니 우선 그리스도를 좇아 다니던 한 서기관이 있었다. 그런데 그 자는 참으로 마음이 악했으니 자신이 영의 생명을 얻고자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라다닌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를 보니 그가 왕이 될 때에 자신도 그 왕의 자리에 함께 가길 원하여 따라다녔다. 즉 그는 율법공부를 다 마친 후에 자신이 서기관자리에서 바리새인이나 혹은 장로로 올라가지 못할 것을 이미 예측하고 그리스도를 좇아 다녔다. 그러나 인자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쪽으로 형편이 기울어지자 얼마 못 있다 그리스도를 버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좇지 못한 그 서기관은 생명도 얻지 못하고 또한 세상의 명예도 얻지 못했다.
그런데 그 악한 서기관이 바로 그때 자신의 그 마음을 숨기고 그리스도께서 어디를 가든 자신은 그리스도를 끝까지 따르겠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왕이 될 때 자신도 그 자리에 함께 앉을 때까지 따르겠다는 것이지 자신도 머리 둘 곳 없는 그 죽음까지 따라가므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겠다는 마음이 아니었다. 이에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악한 마음을 아시니 그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리요? 너의 마음을 돌이키라는 말을 인격체에게 계속해 반복하시리요? 아님 다 큰 성인에게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시리요?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 악한 서기관에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아니하셨으니 그것은 그가 자기의 사람이 아닌 것을 이미 아셨기 때문이다.
한편 서기관의 고백 바로 전에 열두 제자 중 한 명이 그들이 이제는 육의 안식도 취하기 원하여 쉴 곳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제자의 마음은 정말 육신의 안식을 위해 쉴만한 곳을 찾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와 제자들에게 계속적으로 사람들이 붙으니 그의 육적인 욕심과 영적인 교만으로 자기의 사람들을 고르고자 함이었다. 즉 그 제자는 사람들 가운데서 누가 그리스도의 말이 아닌 자신의 육적인 말을 들을까 하여 자기를 따를 자들을 고르기 위한 생각을 가지고 쉴 곳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제자는 믿는 자들 중에서 지금으로 말하면 저 불쌍한 사람들의 육을 돕자고 말하는 자들의 조상이니 동성애는 죄요 내 안의 음란은 성령이 주는 것이고 바벨론의 공산주의는 마귀정권이요 바벨론의 자본주의는 하나님이 세웠으니 묶였던 자가 자유케 되는 그 영광의 날은 내 안의 죄를 이기는 날이 아니요 북한정권이 무너지는 날로 여기며 노래 부른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그 서기관에게는 무슨 말씀을 하지 아니하셨으나 그 전에 그 제자가 사람들을 자기에게 이끌어 자기의 말을 듣게 하므로 자기가 높아지고자 쉬는 곳을 찾는 그 잘못된 마음을 아시고 그 대답으로써 그 제자에게 주셨던 말씀이 곧 이 인자의 예언이었다.
이처럼 가룟유다는 늘 다른 자들보다 자기가 더 육적인 이익을 얻고자 했으며 또한 그 육을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가 아닌 오히려 육을 많이 가진 자신을 따르도록 이끌었다. 이에 그리스도께서는 또 한번의 기회를 주어 그가 잘못된 마음을 돌이키길 원하셨기에 그에게 머리를 둘 곳이 없는 인자의 그 죽음에 대해 알리셨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라 하면서도 그의 마음은 오직 육의 욕심과 세상에 있었으며 또한 살고자하는 마음도 없었으니 그는 자신에게 생명의 기회를 주는 이 말씀을 깨닫지 못했고 돌이키지도 못했다.
그런데 2천년 전의 이런 상황은 이 마지막 때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으니 어떤 제자는 물질의 어려움과 사람의 수가 적은 것을 보며 십자가라 생각하여 적음으로 자신을 높이려는 마음이 그의 안에 있고 풍부한 물질과 많은 수를 이룬 제자는 큰 것으로 높인다. 그러므로 그들이 만일 그 마음을 돌이켜 처음에 약속한대로 죽기까지 낮아지신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한다면 그들은 육의 사망으로 들어간다. 반면 어떤 제자는 처음부터 자신이 목적으로 삼은 그것을 복음을 이용해 다 이루었으니 내려오지 못할 만큼 높아졌다. 그러므로 그가 만일 거짓을 돌이키지 못하면 영혼의 사망으로 들어감은 잘못된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른 그 제자의 마지막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나라의 왕자가 백성들 가운데서 얼굴이 예쁜 여자가 아니요 오로지 자신에게만 마음을 주는 깨끗한 여자와 혼인을 하고 싶었다. 그러므로 그 왕자는 큰 왕궁 문을 열고 나가 자기나라의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마음을 이리저리 바꾸지 않는 여자를 택했으나 외모는 많이 딸렸다. 하지만 그 왕자는 그 여자에게 진실한 사랑을 베풀고는 이러한 말을 해주었다. “나는 당신에게 원하는 것이 오직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당신을 맞으러 돌아올 때까지 당신의 마음이 오직 나만을 기다리며 당신 자신을 나를 위해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요. 그러면 나의 아버지께서는 필요할 때마다 왕궁에 거하는 사람들이 당신과의 혼인잔치를 잘 준비하도록 또한 당신이 나를 맞이할 준비를 잘 하도록 나의 종들에게 시켜 왕궁에서 나팔을 불게 하실 것이요.” 왕의 말을 듣자 그 여자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고는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그 왕은 혼인잔치를 준비하러 왕궁으로 돌아갔으며 그 여자는 자기자신을 아름답고 깨끗하게 꾸미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세상의 친구들이 재미있는 곳에 놀러 가자고 하면서 찾아왔다. 하지만 그 여자는 자기의 신랑 될 남자를 위해 준비할 것이 있다면서 거절했다. 또한 외모가 좋은 남자가 좋은 것을 가지고 찾아와서 큰 관심을 보였으나 자신이 받은 첫사랑을 잊거나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 잘생긴 남자를 쳐다보지도 않고 또한 자신도 자기의 모습을 그에게 조금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왕궁에서는 빵빠라빵 빵빵빵 빵빠라빵 하면서 큰 나팔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에 궁전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그 나팔소리를 듣고 혼인잔치를 더 열심히 준비했으며 그 여자도 그 나팔소리를 듣고 자신을 더욱더 자신을 아름답고 정성스럽게 가꾸었다. 그리고 두 번째 나팔이 불자 왕궁에 거하는 종들은 혼인잔치를 거의 마무리했으며 그 여자도 자기의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거의 다 끝냈다. 그러나 왕에게 자기의 마음을 두고 있는 그 여자 외에 다른 세상사람들은 그 나팔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러다 종들이 마지막 나팔을 크게 불자 왕궁의 문이 열리며 일하는 사람들이 나와 빨간색 카펫을 그 여자가 거하는 곳까지 깔았다. 그리고 왕궁에서 나온 멋진 종들이 그 왕자가 기다리는 왕궁의 문 앞까지 그 깨끗한 신부를 데리고 갔다. 그리하여 그 남자는 그 여자를 자신의 품에 안고 혼인잔치로 들어갔다. 그러나 다른 세상사람들은 그것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이와 같이 아버지와 아들께서 종들을 통하여 이 첫째 하늘에 울려 퍼지게 하시는 그 나팔소리는 교회의 머리요 신랑인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정결한 신부를 데리러 나오시기에 준비하라는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거듭난 자들 가운데 십자가를 통해 받은 그 첫사랑의 은혜를 잊지 않고 깨어있는 영혼들과 또한 자기의 생각이나 이 세상을 따르지 아니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영혼들은 그 나팔소리를 듣는다. 그리하여 이 마지막 때에도 아버지의 그 뜻과 나라에 마음이 있는 그 영혼들이 그 나팔소리를 듣고 더욱더 자신과 공동체의 거룩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의 마음을 원수가 이끄는 이 세상에 빼앗기므로 첫사랑을 잃은 영혼들은 그 나팔소리를 듣지 못한다. 거듭남의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생각과 의에서 돌이켜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영혼들도 듣지 못한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첫사랑을 잊지 않은 영혼들과 자기를 따라오는 자들에게 어두운 죄와 세상을 이기는 진리의 빛을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세상에 마음을 빼앗긴 자들이 무엇으로 어떻게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싸우며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한 의로움과 거룩함을 이루고자 애를 쓰리요?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그날까지 많은 자들이 노아의 때와 같이 자기의 마음을 육과 이 세상에 두고 먹고 마신다.
그런데 이렇게 어떤 자는 듣고 어떤 자는 듣지 못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다시 오실 그때에 울려 퍼지는 그 마지막 나팔소리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의 종들이 왕이 곧 나오신다는 의미로서 예비의 나팔을 불 때 아버지께서 아들의 안으로 임하시니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둘째 하늘의 문을 열고 나오신다. 그리고 나서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자기와 함께 거할 영혼들을 자기의 성문 앞에 부르신다. 그러면 바로 그때 신랑을 맞이하는 자들과 그를 위한 모든 자들은 주님의 종들이 부는 그 나팔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리하여 종들이 영과 혼과 육이 정결한 자들을 공중으로 데려가니 휴거 된 그들이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첫사랑을 잊은 영혼들과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던 영혼들은 그 마지막 나팔소리도 듣지 못할 것이다. 거듭난 영혼으로서 자신의 마음을 세상에 두므로 두 마음을 품고 이방인과 같이 이 세상을 바라보고 달리는 자가 어찌 그 신령한 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요? 심지어 그들은 아버지께서 택하신 자들을 통해 마지막 때의 심판을 끝까지 알리셔도 끝까지 돌이키기를 원치 아니한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그 뜻과 영원한 셋째 하늘에 마음이 없었던 영혼들은 자신의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다. 즉 자신을 거룩하고 깨끗하고 흠 없게 준비하지를 못한다. 그리하여 마지막 때에 그 선악의 죄와 함께하며 이 세상에 마음을 둔 자들이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오실 때 사망으로 들어가거나 또는 아무런 준비 없이 대환난의 침상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영혼들은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이루게 되는 그 거룩에 마음과 믿음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피를 의지해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또한 세상과 싸워 이기므로 거룩을 이룬다. 그리고 그 대환난에서 그리스도의 환난복음을 다 전한 후 목 베임으로 산 제사를 아버지께로 올려드린다. 그리하여 그 휴거 된 자들이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그리스도를 끝까지 따르므로 죄와 세상을 이긴 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왕과 제사장으로서 이 땅으로 내려와 천 년 동안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린 후 아버지께서 계신 영원한 셋째 하늘로 올라가게 된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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